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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86

# 186

#186화 대립 (2)

“성공할 확률은 높은 거겠지?”

“솔직히 말해서 반반이야. 해법을 알고 있다고 해도 변수가 너무 많거든. 유능한 민무늬를 탓해.”

“자, 잠깐 그러면……!”

“이미 늦었어.”

카리나가 팔을 들자 마법진 하나가 튀어나와 손목을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글귀가 새겨진 마법진을 진만수의 머리 위에 가져다 대자 그 위로 비슷한 글귀가 떠올랐다.

지지직.

두 글귀가 부딪치며 서로의 공백을 메웠다.

마치, 요(凹)와 철(凸)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은 형상. 제 짝을 찾은 글귀는 신기루처럼 하나둘씩 사라졌다.

이윽고, 머리 위에 떠 오른 글귀가 전부 사라지자 밝게 웃은 카리나가 입을 열었다.

“이제 됐어. 노인장은 지금부터 자유야. 물론, 나나 태민이에겐 함부로 나대지 못하겠지만.”

털썩, 주저앉은 진만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년에 고생이란 고생은 전부 겪고 있는 듯했다. 잔뜩 긴장했던 탓인지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짚고 일어나니, 대련이 끝나 있었다. 볼 것도 없이 차예리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결국, 네바드는 그녀의 솜털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자잘한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결국 차예리를 노리지 못했다는 것.

전부터 계속 벼르고 있었던 에레나에겐 좋은 건수이리라.

카리나가 중간에 난입해 기회를 노리지 못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카리나가 에레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듯 에레나 또한 카리나를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이걸로 내가 변절했다는 걸 여우, 아니 에레나가 깨닫게 되겠군.”

“뭐가 걱정이야?”

“그녀가 바로 밑에 있다는 건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언제든지 충돌할 수 있네.”

“멍청하긴. 당연히 그 전에 잡아서 족쳐야지. 당할 생각만 머리에 가득 차서 어떻게 한 방 먹일 수가 있겠어.”

“하지만 어떻게 한 방 먹인다는 거지? 에레나를 일반적인 헌터로 생각하면 안 되네. 그녀 앞에선 민무늬도 한 수 접어주니까.”

그 말에 카리나가 콧방귀를 꼈다. 괜한 걱정이었다.

“걱정하지 마. 노인장이 협조하면 쉽게 끝날 일이야.”

벽 뒤에 몸을 숨긴 카리나가 힐끗 아래를 쳐다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방긋 웃고 있는 에레나의 모습이 보였다. 돌연히 진만수와 시선이 마주친 에레나는 검지로 천장을 가리켰다.

그녀는 진만수가 무어라고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인파를 헤치며 유유히 사라졌다.

“지금 어디로……?”

“공주님이 따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하시잖아.”

카리나는 진만수를 두고 서둘러 옥상으로 올라갔다.

진만수가 민무늬의 명령을 무시하고, 결단을 내리지 않았으니 다음에 이어질 행동은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에레나가 기다렸다는 듯 여유롭게 서 있었다.

“카리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있잖아.”

“무작정 듣고 싶은 말이 있는 게 아니라요?”

“태민이가 많이 실망하고 있어.”

“아쉽네요. 실망한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왜 이렇게 변한 거지? 태민이에게 미안하지도 않아? 예전에는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이 그 녀석을 잘 보살펴주자는 약속까지 했잖아.”

“아, 그거요? 솔직히 저는 내키지 않았어요.”

“뭐?”

“그리고 저보다는 당신이 더 좋아하지 않았나요? 한때는…….”

“닥쳐.”

데저트 이글을 손에 쥔 채 에레나와의 거리를 단번에 줄였다.

정령 회로를 일깨워 탄환에 폭발적인 마력을 집어넣은 카리나는 주저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쿠쾅.

주변에 있는 물탱크를 터뜨리며 나아간 탄환이 그 뒤에 있는 안테나까지 박살냈다.

찰나의 순간, 카리나의 무릎을 밟고 도약한 에레나가 유유히 거리를 벌렸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가볍고 자연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것은 일대종사다운 풍모라 해도 충분한 표현이었다.

에레나를 쳐다본 카리나가 짧게 혀를 찼다.

여리여리한 외견 때문에 얕보기 쉽지만, 사실 에레나의 기량은 팔영웅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수준이었다.

종족 자체가 장수하는 종이다 보니 무엇을 하든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시간이 넘쳐흐르니 가만히 있어도 얻는 게 많았던 것이다.

괜히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게 아니었다.

뒤늦게 진만수가 나타나자 에레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등을 돌린 건가요, 진만수.”

“자네도 불리하면 개인적인 사정을 들먹이지 않나. 나도 똑같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두 사람이 배를 맞추고 저를 노리겠다는 건가요?”

“뚫린 입이라고 잘도 지껄이잖아?”

어느새, 타이베리안을 장착한 카리나가 블래스터를 발사했지만, 그것마저도 여유롭게 회피한 에레나가 나른하게 입을 열었다.

“카리나, 당신이 알고 있다는 건 태민이도 알고 있다는 거겠죠.”

“시답잖으니까 속내를 떠보는 짓은 그만해. 그보다 현실이나 직시하라고. 네가 도망칠 곳은 없어.”

“싸우려고 하면 못 싸울 것도 없지만……. 저보다 약한 상대를 두고 투닥거리는 건 취향이 아니라.”

옥상 끄트머리로 걸어간 에레나는 저 밑에 개미처럼 우글거리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지킬 게 많다는 건 서글픈 것 같아요.”

“뭐?”

“가령, 여기에 오버로드가 나타난다고 가정해보세요. 어떻게 할 틈도 없이 수많은 사람이 죽을 것 같지 않나요?”

“하, 꿈도 크군. 그 녀석들이 네 눈치나 보고 다닐 것 같아?”

“하지만 눈치를 보라고 주의를 줄 순 있겠죠.”

딱.

손가락을 튕기자 에레나의 등 뒤에 한 물체가 나타났다.

동그란 구체가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가 싶더니, 이내 그 안에서 수많은 다리가 뻗어 나와 공간을 휘저었다. 마치 거미가 거미줄을 짜는 듯했다.

생리적인 혐오감이 들 정도로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소금쟁이처럼 보이는가 하면, 거미처럼 보이기도 했다. 확실한 건 불길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라는 거였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녀석의 정체를 확인한 카리나가 침음을 흘렸다.

▼차원 통로 유도기, 마키아벨리

평가 : SS

효과 : 위상 차원에 유도 신호를 전파한다

설명 : 거리가 가까울수록 신호가 강해지며, 특정 생물이 나타날 확률이 높아진다

경악을 금치 못할 설명문.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마키아벨리는 오버로드를 부르는 장치나 다름없었다. 힘껏 저항해도 모자랄 판에 종말을 앞당기겠다니…….

“미친 거야?”

“이런 말을 하면 믿지 않겠지만, 저는 지극히 정상이에요.”

에레나는 마키아벨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동안 저희가 암중에서 대업을 꾸민 건 극단적인 선택을 피하기 위함이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잿더미에서 왕이 되는 건 좀 그렇잖아요?”

오버로드를 부르는 기술은 이미 예전에 확립되었다는 소리였다.

“저런 게 있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나올 오버로드들은 어떻게 처리할 건데?”

“민무늬는 쑥대밭이 되어도 괜찮다고 하더군요. 남는 건 시간이라면서. 저도 동의하는 편이에요. 귀찮게 기존 세력과 마찰을 빚을 바에야 전부 다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더 수월하잖아요?”

“이 미친년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키아벨리를 향해 블래스터를 발사했지만 에레나의 손짓 한 번에 가로막혔다. 여기에서 결판을 내는 게 불가능하다면 하다못해 마키아벨리라도 파괴해야 했다.

타이베리안을 벗은 카리나가 기계팔을 밟고 빠르게 도약했다. 거기에 더해 신속 기동으로 소리의 벽을 찢어발겼다. 거리는 30미터 남짓. 노리는 건 마키아벨리의 중심.

파이퍼 첼리스카를 꺼내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항거할 수 없는 고통이 전신을 내달렸다.

“크흑.”

볼품없이 추락한 카리나는 비명을 내질렀다. 무엇에 당한 건지 알 수조차 없었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마치 온몸이 난도질당하는 듯했다.

하지만 눈으로 보이는 외상은 없었다. 변수가 있다면 저기에서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쳐다보는 에레나 뿐.

그제야 그녀의 눈동자가 검게 물들었다는 걸 깨달은 카리나가 토해내듯 내뱉었다.

“화, 환통?”

뒤를 돌아보니 진만수도 무릎을 꿇고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면 거기에서 얌전히 지켜보고 계세요. 옛 인연을 봐서 당신에게도 이 역사적인 순간을 보여줄 테니까요. 시제품이라 뭐가 나올지는 저도 모르지만…….”

마키아벨리가 돌아가며 기이한 공명음을 토해낸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카리나, 당신도 잘 알잖아요? 제가 예전부터 운이 좋다는 건.”

이윽고, 하늘에 구멍이 뚫리고 자그마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

“표정이 한결 나아진 것 같습니다.”

“그전에는 울상이었다는 소리인가?”

“그게 아니라 그전에도 충분히 볼만했지만, 지금이 더 멋지다는……, 아니 그게 아니라, 크흠. 아무튼 기운을 차린 것 같아 다행입니다.”

유소라의 말을 들은 한태민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데아에게 모든 일의 전말을 듣고, 고민거리가 사라진 게 얼굴에도 드러난 듯싶었다.

더 이상 가려진 진실에 아파하지 않아도 되지 않던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동안 고뇌했던 게 허망해질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 싸움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보다 지금은 눈앞에 있는 문제를 해결할 때였다.

“오스트레일리아지부 조합장 웰컨 더시.”

푹신한 의자에 앉은 한태민이 등 뒤에 마련된 진열장을 쳐다보았다. 그동안 많이도 해먹은 건지 시답잖은 항목에 수여된 훈장과 상장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었다.

이것만 봐도 웰컨이라는 사람이 어떠한 부류인지 잘 알 것 같았다.

“길게 끌 것도 없다. 바로 끝내지.”

“네, 알겠습니다.”

그때, 문을 열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더부룩한 수염과 남산만 한 배. 기다렸던 상대, 웰컨의 등장이었다.

“당신들은…….”

예상치 못한 손님이 있다는 걸 파악한 웰컨이 황망한 눈으로 장내를 훑어보다, 펄떡 뛰어올랐다. 자리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이 누구인지는 명약관화했다.

한태민과 그의 측근인 유소라. 이데아의 조합장인 그가 두 사람을 몰라볼 리 없었다.

“조합 총장님?!”

“네 집무실 좀 빌려도 되겠지?”

“안 될 건 없습니다만. 어떻게, 아니 그보다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미리 연락했다면 마중이라도 나갔을 텐데요.”

한태민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제더릭에게서 얻은 비밀 장부를 던졌다. 그보다 더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

“공동체라는 곳과 손을 잡았더군. 장부를 보니 꽤 긴밀한 관계였던 거 같은데 말이야. 이거 어쩌지? 나는 그런 녀석들과 친하게 지내라고 지시한 적이 없는데.”

“그게…….”

“변명은 됐다. 그보다 그곳이 괴물을 사육하는 장소라는 건 알고 있었나?”

“…….”

“알고 있었군.”

한태민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바짝 엎드린 웰컨이 고개를 미친 듯 흔들었다.

“잠깐, 잠깐만 시간을 주면 전부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말해보라는 듯 한태민이 고갯짓하자 웰컨은 누가 잡아갈세라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쳤다.

“이건 제 전대의 전대에서부터 시작된 관행입니다. 협회가 세워지기 전부터 있었던 일이죠. 근처에 있는 길드까지 협조하는 탓에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게 말하면 됐을 텐데?”

“알, 알리면 제 가족들을 전부 다 죽인다고 협박하여 고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조합 총장님이 일을 처리하기 전에 제 가족이 먼저 사라질 판이었으니까요.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불의를 보고 넘어가면 안 된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가족이 먼저니까요.”

구구절절.

한 치의 막힘도 없이 이어지는 신파극에 한태민이 무어라고 말하려던 찰나, 유소라가 입을 열어 그의 주장을 산산이 조각냈다.

“마스터, 여기 좀 보십시오.”

그녀가 가리킨 건 오스트레일리아지부의 연혁이 쓰여진 큼지막한 액자였다.

“전대 협회장도 더시라는 성을 썼습니다.”


           


I’m an EX-Rank Hunter

I’m an EX-Rank Hunter

I'm an EX-Class Hunter I Am an EX-Hunter Ore wa EX-Kyuu Hunter da 俺はEX級ハンターだ 나는 EX급 헌터다
Score 3.0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N/A Native Language: Korean

The knight who fell into the world of hunters once again took up his s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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