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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7

#147 EP.Ⅱ-12

사람의 땀, 인간의 피 (1)

“호오.”

백발의 사도, 금빛 새벽.

그는 아이리안 왕국에 마련된 보통 사람들의 비처에서 자료를 읽고 있었다.

“‘그분’의 강림 실험을 이곳에서도 진행했었군.”

‘보통 사람들’의 정체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서로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 순간부터 서로의 정체를 정의할 수 없는 것.

그들을 엮는 하나의 신념이 있기에 함께할 수 있는 거지, 일반적인 조직구성으로 보면 모래알 중에서도 모래알 조직이라.

아무리 사도라고 하지만 다른 지역의 ‘보통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모든 것을 알 순 없기에 새로운 지역에 가면 기록을 읽는 게 관례였다.

“대륙에 비하면 거의 백 년 정도는 뒤처져 있는가. 심지어는 열차조차 안 들어가는 대귀족의 영지가 있다니, 쯧쯧.”

이미 3차 마나혁명이라고 하여 많은 부분이 달라지고 있다.

반면 아이리안은 이제 겨우 그 시작에 가까운 상황.

금빛 새벽은 아이리안을 조사해 둔 기록을 보다가 순간 멈칫했다.

「-보통력 6월 21일, 일 년 중 낮이 가장 길어지는 날 ‘계시의 판’이 반짝임.

-보통력 7월 2일, 에셀레드 백작이 후처로 용병, ‘섬광’ 아르나를 들임.

-보통력 9월 23일, 가을의 시작 날 아이를 출산. 이름은 ‘아벨’.

-의문 1. 에드먼드가 후처를 들일 성격이 아님.

-의문 2. 인간의 아이치고는 임신 기간이 너무 짧음.

-의견. 남녀 사이의 일은 알 수 없고, 여인의 특징상 임신이 티가 안 날 경우가 많음.」

그렇게 넘어간 기록이다.

백작 정도 되는 귀족에게 첩이 있는 것이 흠은 아니다.

전장 중에 만난 예쁘장한 용병과 눈이 맞는 것도 흔한 일이다.

하지만.

툭-.

금빛 새벽의 주름진 손가락은 그 부분들을 쓸었다.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여름에 시작되어 가을에 태어난 아이, ‘아벨’.

‘보통 사람들’의 사도로서.

황금의 새벽을 간절히 바라는 금빛 새벽으로서.

왠지 모를 직감이 스쳤다.

자신이 아이리안에 온 이유가 어쩌면 이것일 수도 있다는 예감과 함께.

* * *

“어…….”

자칭 철가면인 에드먼드는 반사적으로 성녀의 욕에 말문이 막혔다.

“왜죠?”

카테리나는 그런 적 없다는 듯 얼굴을 싹 바꾸며 물었다.

“뭔가를 들은 것 같은데.”

“들은 적 있으십니까, 총교구장님.”

카테리나는 바르베타에게 물었고.

“없습니다.”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맨 처음 감정에 휩싸여서 앞뒤 재지 않고 강경한 발언만 하던 카테리나의 바뀐 모습에 지어진 미소였다.

“뭐 그렇다면…….”

에드먼드는 쓴웃음을 짓고는 자신이 설정한 ‘철가면의 기사’답게 대답했다.

“내 아들을 죽이고 싶다.”

성녀는 두 손을 맞잡았다.

이것 역시 ‘빛’의 뜻이라 생각하면서 간신히 욕을 참고 되물었다.

“아들을 죽이고 싶다는 게 무슨 말이십니까.”

“그래야 강해질 테니까.”

“누가요?”

“카인이.”

“카인은 이번 왕위결정전에 안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

에드먼드의 눈이 방금 성녀가 그랬던 것처럼 동그래졌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눈치.

“대귀족들과 저희를 불러서 말한 겁니다. 아직 저쪽이 누구를 내보낼지 발표는 안 했지만, 아마 아벨이 나올 겁니다.”

“음.”

에드먼드는 들고 있는 양동이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침음성을 흘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때.

“에드먼드…… 백작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갈색 머리의 중년 기사가 다가오며 물었다.

스윽-.

에드먼드는 즉시 양동이를 쓰고 대꾸했다.

“나는 에드먼드가 아니라 철가면의 기사다.”

성녀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늦으셨습니다.”

“욕해 놓고 아니라고 우기는 거랑 같은 거라 괜찮다.”

“……모든 것은 빛의 뜻대로.”

쓸데없는 곳에서 예리한 에드먼드의 말에 그녀는 성호를 그었다.

바르베타는 당장이라도 웃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아닌 척하지만, 성녀의 성질도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미래를 위해 참아야만 했다.

“아, 이번에는 그런 설정이십니까.”

다가온 기사는 익숙한 듯 되물었고.

“나이트 갈웰(Gallwell), 이젠 왕실 기사단의 부기사단당이었지?”

“예. 다 에드먼드 백작님이 제게 검을 알려 주셔서 그렇습니다, 하하!”

그는 호탕하게 웃었다.

올리비아가 왕위결정전에 내보낼 기사답게 전신이 근육으로 꽉 차 있고, 기골이 장대했다.

그런 그가 크게 웃자 주위가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많이 컸군.”

“그렇지요. 웨인 기사단장님과 한판 벌이실 때 구경하던 게 어제 같은데 이젠 저도 아저씨가 다 되었습니다.”

갈웰은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버튼을 누르자 뚜껑이 열렸고.

틱-.

시계 뚜껑에는 갈웰과 그의 아내, 딸 셋이 찍은 사진이 작게 붙어 있었다.

“이젠 저도 아버지입니다. 백작님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었던 저도 이젠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축하한다.”

“전까지만 해도 저 같은 놈이 어떻게 가정을 꾸리고 살지 싶었는데-.”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철가면 설정은 가족사진 앞에서 녹아 버렸고, 에드먼드는 평범하게 대답했다.

갈웰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말씀하셨죠. 시간을 견디라고. 꺾이지 않는다면 성장한다고.”

“난 검의 조언만 했을 뿐, 인생을 성장시킨 건 네 몫이다.”

쿵.

기사는 심장 위로 주먹을 올리곤 맑게 웃었다.

“예스, 로드 에셀레드. 그래서 철가면은 또 어떤 설정입니까.”

이렇게까지 이야기한 이상 아무리 그 에드먼드라고 해도 겸연쩍은 눈치.

그는 머리를 긁으려다가 애꿎은 양동이만 긁곤 말했다.

“아이리안의 무명 기사인데, 올리비아를 위해 왕위결정전에 나가고 싶어 하는 거다.”

“아하.”

갈웰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천장이 무너지면서 반쯤 폐허가 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맥로든 쪽의 기사는 올리비아의 직계니 어떻게 할 순 없고, 수석 팔라딘은 성국 쪽의 전력이니 못 건드리시겠군요.”

그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도망가는 것이 아니다.

전투를 위해 거리를 잡는 상황.

“다들 일단 나가 있게.”

바르베타는 눈치껏 다른 성직자들을 물렸다.

스릉-.

에드먼드는 그의 은빛 세검을 뽑았다.

“그렇지.”

“구색 갖추기 겸, 웨인 기사단장님을 상대하려고 데려온 저를 밀어내고 나가시고 싶으시겠고요?”

스릉.

갈웰 역시 그의 롱소드를 뽑아 들었다.

어차피 반쯤 폐허가 된 곳이니 싸워도 아무 문제없으리라.

성녀는 이마를 짚으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이리안의 기사들은 하나같이 다 똑같아서는, 어휴.”

“사람 사는 것 같지 않습니까?”

성녀는 바르베타의 말에 샐쭉하게 쳐다보며 당장이라도 싸울 듯한 둘에게서 멀어졌다.

“사는 게 한 번뿐인 게 참 다행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삶이니.”

“저 사람들은 인간부터 되어야겠는걸요.”

“인간은 정이 없지 않습니까. 사람은 정이 있고.”

“……원래 이런 분이셨습니까?”

바르베타 총교구장은 어깨를 으쓱였다.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사람을 볼 뿐입니다.”

“제가 달라졌다는 말씀이시군요.”

성녀는 다른 의미로 마음 한 구석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성류관, ‘가을’이 보여 주는 예지의 감정에 흔들리던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멀어졌다는 걸 깨달으면서.

둘이 멀어진 순간.

채애애애앵-!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갈웰과 에드먼드가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예전처럼 만만하진 않을 겁니다-!”

갈웰의 고함.

스윽-.

그의 칼에 힘이 빠진다.

동시에 앞으로 내딛는 다음 발!

쉐에에에엣-.

한 바퀴 뒤를 돌아 옆에서부터 물수제비 치는 돌멩이처럼 유려한 곡선으로 롱소드가 날아온다.

그의 어깨의 유연성과 중심을 잡는 근력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 주는 필살의 일격.

사각에서 날아오는 검격!

“그렇군.”

에드먼드는 양동이 속에서 씩 웃었고.

투웅-!

그대로 앞으로 걸어가면서 갈웰의 몸통을 자기 몸으로 쳐 버렸다.

그 탓에 균형을 잃은 갈웰의 검이 목표에 닿지 못하고 애꿎은 허공에서 멈췄다.

“기사는 똑똑해야 한다. 생각하고 때려야지 잘 때릴 수 있으니까.”

“알고 있습니다!”

초근접의 상황.

갈웰은 활짝 웃고는 머리를 뒤로 젖혔다.

까아아아아아앙-!

그러곤 양동이 위로 에드먼드의 머리를 박아 버렸다. 그의 이마가 찢어지면서 붉은 피가 흘렀다.

“근데 제가 물러설 줄을 몰라서 말입니다.”

까아앙!

그리고 이어지는 박치기.

둘은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쿠웅-.

에드먼드의 왼 주먹이 갈웰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갈비 몇 대가 부서지는 감각이 제대로 느껴졌다.

까아아아앙!

“이거죠!”

갈웰의 눈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머리에 몰린 피가 눈에 차는 거라.

갈비뼈의 고통이 치솟는 것이라!

하지만 갈웰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웨인 단장님도 강하시긴 하지만 정말 목숨을 위협하시는 느낌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까아앙!

양동이가 우그러들다 못해 찢어진다. 세로로 찢어지는 틈 사이로 에드먼드의 눈이 보였다.

“피…….”

미친 소 둘이 부딪치는 듯한 둘의 싸움을 보던 성녀는 놀랐다.

양동이 속 에드먼드의 얼굴에 흐르는 피가 보였으니까.

“지금 우리가 회복시켜 줄 줄 알고.”

까앙-.

“저 난리를 피우는 거죠?”

쿠웅-.

이어지는 주먹과 박치기의 소리.

바르베타는 학을 떼는 성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냥 싸우고 싶어서 싸우는 걸 겁니다. 그리고 갈웰 경은 오랜 시간 엑스퍼트에 머물러 있었던 만큼 답답했겠죠.”

“답답하다고 저러고 싸웁니까.”

“저게 진짜 기사입니다.”

“……우리 쪽 팔라딘 분들도 그렇습니까?”

성녀의 물음에 바르베타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중에 리날도 경에게 한 번 물어보시죠.”

“미친놈들.”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칼 하나를 믿고 적들에게 달려들겠습니까. 좋게 봐주시죠. 승부가 났군요.”

털썩.

한 남자가 무릎을 꿇는다.

“커헉-.”

바닥에 새빨간 피를 토하면서도 씨익 웃는 자.

“제법이었다, 갈웰 경.”

퉁퉁퉁-.

에드먼드는 다 찢어진 양동이를 바닥에 던지면서 말했다.

“아직 모자랐군요.”

갈웰은 어딘가 개운해진 얼굴로 그의 평가를 기다렸다.

주륵-.

에드먼드 역시 멀쩡하진 않았다.

양동이 속에서 박치기를 당해서 그런 건지 그의 귀와 코에선 붉은 피가 흘렀다.

갈웰의 피와 똑같은 사람의 피였다.

“하지만 전보단 덜 모자라졌지. 아버지다워.”

“극찬 감사합니다.”

검 앞에 있어선 누구보다 냉정한 말을 하는 에드먼드의 칭찬이니 갈웰은 기뻤다.

“그럼 내가 너 대신 왕위결정전에 나서겠다.”

“어차피 이 부상으론 출전이 불가능합니다.”

툭-.

갈웰은 그대로 뒤로 누워 버렸다.

하지만 반쯤 바스러진 갈비뼈들이 내장을 찔렀고 지독한 고통이 그를 엄습했다.

회복하라.

지켜보던 성녀는 상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신성 마법으로 갈웰을 회복시켰다.

“후. 어쩔 수 없겠네요. 올리비아 왕녀의 허락은 받아 오셨을 테니, 그럼 저도 에드먼드 님이 나가는 걸로 생각하겠습……?”

카테리나는 에드먼드의 눈동자가 어색하게 돌아가는 걸 보았다.

대충 옷소매로 얼굴의 피를 닦은 후 바닥의 양동이를 집어 들어선.

우드드득-.

찢어진 부분을 악력으로 뭉쳐 대충 줄이고 얼굴에 썼다.

“철가면은 허락 맡고 온다.”

“설마 무작정 그냥 왔던 겁니까?”

“…….”

휙-.

언제 싸웠냐는 듯 에드먼드는 가볍게 바닥을 박차며 뚫린 천장으로 나갔다.

성녀는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설마 또 천장을 부수진 않겠죠.”

바닥에 누워서 치료를 받던 갈웰이나 바르베타는 똑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누가 봐도 할 인간이 자칭 철가면 에드먼드니까.

콰가가가강-.

그리고 여지없이 저 멀리 들리는 큰 소리.

방향을 생각해 보면 맥로든 후작의 별장이라.

“카인이 정말 잘 자란 거군요.”

카테리나는 한숨을 내쉬며 남쪽에 있을 그를 언급했다.

올리비아가 어째서 그를 보고 싶어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심정으로.


           


The Villain Carries the Holy Sword

The Villain Carries the Holy Sword

악역은 성검을 쥔다
Score 1.0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rother, please kill me.”

Abel, the hero who desired to die at the pinnacle of his success.

“Why are you saying such crazy things?”

Cain, the warrior who fulfilled his wish.

It’s definitely a life I lived once, but there were many things I didn’t know, so I chose to live it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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