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식이 끝난 뒤.
시상식장에서 결투를 벌이려고 해서 잠시 쫓겨났던 두 사람을 다시 불렀다. 우수상에 입선한 두 사람이 갑자기 서로 싸우려고 든 이유가 궁금해서다.
“대체 왜 시상식장에서 싸우고 그러십니까?”
“아, 헤로도토스 작가님! 들어보십쇼! 저 친구가 글쎄, 명명백백한 승패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네야말로 억지를 부리는 것 아닌가!”
“남자면 남자답게 인정하게!”
“자네야말로 지성인답게 좀 굴게나!”
“하!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억지나 부리는 게 지성인다운 태도인가?”
“사실을 제멋대로 왜곡해서 억지를 부리는 것보다는 낫지!”
“이 자식이 그래도! 결투다!”
“누가 도망갈줄 알고? 결투다!”
이게 뭘까.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언쟁하던 두 사람은 또다시 서로에게 결투를 신청하며 달라붙기 시작했다.
결국 나와 출판사 직원이 달라붙어서 말려야만했다.
두 사람이 겨우 진정하고, 이번에는 싸우지 않도록 한 명을 따로 불러서 이야기를 들었다.
“진정하세요. 그러니까, 대체 무슨 문제가 있길래 그렇게 원수처럼 그러십니까?”
“승부를 했습니다.”
“승부요?”
“네! 이번 공모전에서 누가 더 높은 성적을 내느냐하는 승부입니다. 그래서 저희 둘 다 우수상을 받았고요.”
“그러면 무승부 아닌가요?”
“신성한 결투에 어떻게 무승부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가려내실 것이니(Novit enim Dominus qui sunt eius)─, 결투의 결과는 천주께서 주관하시는 것이고, 시상식에서 저의 이름이 먼저 불렸다는 것이야말로 천주께서 저를 선택하셨다는 명명백백한 증거이지요.”
“예?”
어, 이게 무슨 소리지…? 아니, 어쩌면 이게 이 세계 사람들의 평균적인 인식일지도 모르겠지만, 음.
신이 실존하는 세계에서의 관념이라는 건 역시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그러니까, 음,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한스입니다.”
“예. 한스 씨의 의견은, 시상식에서 한스 씨의 이름이 먼저 불렸으니 이 승부는 자신의 승리라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하지만 작품을 평가하고 공모전을 주최한 저희 입장에서는, 시상식에서 이름을 호명한 순서는 그 작품의 성적과는 딱히 관련이 없어서요. 정확히는, 같은 순위, 그러니까 우수상 수상자들끼리는요. 그러니 그건 조금 억지가 아닌가….”
“결투에 무승부는 없습니다.”
“흐음….”
“저와 그 친구는 꽤 자주 결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무승부로 끝내었던 적은 없고요.”
“네?”
한스의 입장은 완고했다.
들어보니 지금까지 이런 결투나 승부를 벌인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는 것 같다. 그때마다 어떻게든 승자를 정했기 때문에 무승부로 끝난 적은 없었고 말이다.
단지 이번에는 ‘공모전’이라는 방식으로 겨룬 탓에 의견이 갈린 것이고.
“흐음…. 그렇다면 승부를 조금 더 길게 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승부를 말입니까?”
“네. 무승부─ 그러니까 공모전에서 두분 다 우수상을 받은 것이 문제이니, 결국 두 사람 다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글을 겨루면 되는 것이겠죠.”
“흐음….”
“한스님의 말처럼, 한스님의 승리라면 이번에도 천주께서 가려내지 않으시겠습니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헤로도토스님께서 자리를 마련해주신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어쩌면 잘 된 것일지도 몰랐다.
승부의 수단이 ‘문학’인 이상, 결국 이득을 보는 것은 새로운 ‘문학’을 볼 수 있는 나였기 때문이다. 재능있는 작가들이 글로 빼어남을 겨룬다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득뿐이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한분도 부르도록 하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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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씨랑….”
“요한입니다.”
“네. 요한 씨. 사정은 한스 씨에게 들었습니다. 공모전의 결과를 통해 승부를 겨루기로 하셨다지요?”
“그렇다면 그러한 승부를 하게 된 배경에 대한 들으셨겠군요.”
“배경 말입니까?”
“네. 저는 헤로도토스 작가님의 ‘셜록 홈즈’가 추리소설로 더 뛰어나다고 이야기했고, 한스 저 친구는 호메로스 작가님의 ‘브라운 신부’가 셜록 홈즈보다 낫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누가 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은지 겨루고자 승부를 한 것이죠.”
“이 자식이?! 그걸 말하면 헤로도토스 작가님께서 당연히 네놈한테 점수를 더 주시지 않겠나! 비겁하게!”
“허, 내가 뭐 없는 사실이라도 이야기했나? 이런 배경에 대한 설명도 없이 자기 입맛에 맞는 말만 하는 자네의 행동이 더 비겁한 짓이지!”
두 사람은 질리지도 않고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기 시작했다.
저대로 두면 또 싸울 것 같아서 서둘러 말렸다.
“자자, 진정들하세요. 저도 호메로스 작가님의 ‘브라운 신부’가 굉장히 빼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스 씨께서 이 사실을 저에게 말하시지 않은 것도, 평가의 공정성을 위해 그리하셨을 것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장본인인 저도 공정성을 보장하기가 어려워졌으니….”
잠시 눈을 감고 고민하는 척을 한 나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호메로스 작가님께도 함께 작품의 평가를 부탁드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호메로스 작가님께 말입니까?”
“네. 그분과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조금 있어서요.”
“좋습니다! 그분이라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작품을 평가해주시겠지요!”
“한스 자네, 지금 그 말은 헤로도토스 작가님께서는 작품을 공정하게 평가하지 않으셨을 거라는 뜻인가?”
“이 자식이?! 지금 그런 뜻이 아니지 않나! 헤로도토스 작가님! 저 독사의 자식같은 녀석의 말은 듣지 마십쇼!”
“네네. 괜찮으니까 제발 진정하세요….”
어차피 호메로스든 헤로도토스든 둘 다 나다.
그러니 저 둘은 애초부터 싸울 이유가 전혀 없었다. 브라운 신부든 셜록 홈즈든 둘 다 명작이고 말이다.
물론 그 사실을 두 사람에게 말해줄 생각은 없다.
이 오해와 다툼이 두 사람이 집필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드는 원동력이라면 오히려 권유해야할 일이다. 두 사람은 자주 결투를 벌이는 것 같으니, 아예 주기적으로 서로의 문예를 겨루도록 한다면 양질의 작품을 꾸준히 공급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셜록 홈즈 X 아르센 뤼팽에서는 두분 다 추리소설을 써주셨으니… 이번에는 두 작품과 관련이 있으면서도, 조금 색다른 소설을 써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좋습니다! 어떤 소설이든 제가 이 친구에게 질 일은 없을 테니까요!”
“하! 누가 할 소리를! 저야말로 어떤 소설이든 완벽하게 써보이겠습니다!”
“의욕이 있으셔서 좋네요. 두분이 겨룰 소설의 주제는─, ‘모험’으로 하겠습니다.”
아르센 뤼팽은 추리소설이자 ‘모험’ 소설이다. 셜록 홈즈 역시 ‘셜록 홈즈의 모험’ 시리즈로 인기를 끈 바 있었다.
사실, 모험이라는 주제 자체는 영웅의 여정을 다루는 ‘기사문학’에서도 흔히 볼 수 있으니 그리 새로운 주제는 아니었다.
“좋습니다! 제가 한스 이 친구보다 훨씬 더 뛰어난 작가라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제가 요한 이 자식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작품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그 승부의 당사자는 저와 호메로스 작가님이기도 하니, 저희 둘도 함께 ‘모험 소설’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예?”
“저와 호메로스 작가님의 소설은 두분이서 평가해주시면 되겠네요.”
“…예?”
하지만, 내가 이 세계에 퍼트리려는 모험물은 조금 달랐다.
‘코난 사가’는 ‘히로익 판타지’라는 장르의 특성 상 ‘모험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히로익 판타지의 핵심은 결국 ‘주인공’이지 ‘모험’은 아니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세계를 배경으로 한 장대한 복수극이었으니 이 또한 ‘모험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또한 핵심은 ‘복수’이지 ‘모험’은 아니었다.
기사문학이나 추리소설 또한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기획 출판을 해보려고 합니다. 호메로스와 헤로도토스의 모험 소설 연작─, 재미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나는 이 세계에 장르로서의 ‘모험물’을 퍼트릴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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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물의 역사를 말하자면 ‘영웅의 여정’으로 대표되는 신화와 기사문학까지 거슬러 올라가야겠지만─.
장르로서의 모험물을 말하자면 역시 ‘로빈슨 크루소’로 대표되는 생존기와 ‘걸리버 여행기’로 대표되는 탐험기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적인 공간과는 동떨어진 이색적인 세계. 곳곳에 숨겨져있는 비밀과 신비.
이러한 모험물은 19세기 후반에 와서 그 꽃을 피웠으며, 여러 시대를 거치며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도련님. 말씀하신 세계지도를 가져왔습니다. 각 지역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상인들의 수기와 뱃사람들의 증언, 관련 자료들도 최대한 구해왔습니다.”
“어어, 고마워.”
그리고 이러한 모험물을 대표하는 작가가 한 명 있었으니.
바로, ’15소년 표류기’와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쓴 쥘 베른이었다. 나는 그의 작품들을 빌릴 생각이었다.
“이거 다 살펴서 번역하려면 시간 꽤 걸리겠는데….”
사실, 원전 자체는 이미 전부 번역해둔 상태였다.
15소년 표류기, 80일간의 세계일주, 해저 2만리, 지구 속 여행, 지구에서 달까지…. 전부 번역해뒀다.
문제가 있다면, 모험물의 경우 고증을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생존기인 ’15소년 표류기’의 경우 어떻게든 되겠지만, 80일 간의 세계일주를 이 세계의 문화와 지리에 맞추어 로컬라이징 하는 것은 역시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애초에 이 세계는 ‘순간이동’이 가능하지 않나?”
일단 80일간의 세계일주는 보류해두자.
그렇다면 남은 것은.
“좋아. 탐험기는 ‘해저 2만리’로 간다.”
해저 2만리.
너로 정했다.
쥘 베른은 모험소설 작가이자 SF소설 작가로, 해저 2만리, 80일간의 세계일주, 15소년 표류기 등 여러 고전들을 집필했습니다.
특히 SF분야에서는 SF의 아버지이자 하드SF의 방법론을 만든 선구자로 추앙받기도 합니다. 쥘 베른의 소설에서 나오는 여러 발명품과 쥘 베른이 예측한 미래의 사회상 등은 실제로 현실에서 이루어졌으며, 아예 쥘 베른의 작품 자체가 기술 발전의 추진제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입니다.
(냉전기의 로켓 과학자들은 지구에서 달까지─그리고 2부인 달나라 탐험과 그걸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며 우주여행의 꿈을 키웠고, 아폴로 14호는 쥘 베른이 예상한 달의 착륙지로부터 겨우 2km 떨어진 장소에 착륙했으며, 아폴로 11호의 궤도를 정확히 예측했고, 해저2만리의 잠수함 이름인 ‘노틸러스 호’는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의 이름이 되기도 하는 등… 관련 일화가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표절작가 작중에 등장했던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작가인 뒤마와도 안면이 있는데, 뒤마의 아들인 ‘뒤마 피스(뒤마 주니어)’와 친구 사이라서 뒤마가 운영하는 극장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쥘 베른은 굉장히 많은 명작을 집필한 다작 작가입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번역된 작가이기도 합니다.(가장 많이 번역된 작가는 당연하게도 추리소설의 여왕이자 다작의 신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님이시고, 세 번째는 셰익스피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