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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8

     

    수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불꽃의 검.

    형태가 수 미터에 이를 뿐이지, 불꽃의 검이 영향력을 미치는 범위는 결계 근방을 아득히 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화륵!

    디프테라는 불꽃의 검에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불길에 휘말려 타버렸다.

    고작 작은 불씨 하나였을 뿐인데, 디프테라는 전신이 불타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화르륵.

    하얀 연기를 일으키며 디프테라의 사체가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어어, 저거 땅 타는 거 아니냐!”

    “아이고, 저기 우리 집 마당인데!”

    “걱정하지 마세요.”

    처음에는 바닥에 떨어진 디프테라로 인해 마을이 불에 타는 줄 알았지만, 디프테라의 몸에 붙은 불꽃은 풀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성스러운 불꽃입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불꽃이라, 오직 마족만을 태우죠.”

    “과, 과연…!”

    “역시 마녀님! 아니, 현자님! 대단합니다!”

    “뭘 이 정도로.”

    어차피 내 힘도 아니다.

    루키우스나 드로니엘이나 눈치를 채지 못하겠지만, 저 크고 우람한 검은 ‘성검의 레플리카’.

    불꽃의 용사 베어네스의 성검 플람베르쥬를 크게 형상화한 것일 뿐이다.

    “…드로니엘, 가자!”

    “응!”

    화륵.

    드디어 두 남녀가 함께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루키우스의 지도에 맞춰 드로니엘은 검을 함께 휘둘렀고, 검으로부터 뻗어 나간 불꽃이 하늘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하나둘 아래로 떨어지는 디프테라는 마치 불꽃의 비처럼 아래로 고꾸라졌다.

    나는 놈들의 불타는 사체에서 빙글빙글 굴러떨어지는 마석에 주먹이 불끈 쥐어졌고, 둘이 휘두르는 불꽃의 검을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플람베르쥬의 모습을 본따기는 했지만, 저 검을 유지하는 건 내 마력이니까.

    지금 나는 내 마나를 사용하여-정확히는 이 마을 사람들로부터 얻었던 마석의 마나를 사용하여 싸우고 있다.

    나의 수명을 실시간으로 깎으며, 벨제부브를 상대하고 있다!

    “가라, 루키우스! 전부 다 썰어버려!!”

    화륵, 화륵!

    불꽃의 참격을 날리던 루키우스와 드로니엘이 검을 바닥과 수평이 되도록 놓았다.

    그러고는 서로를 바라본 뒤, 힘차게 하늘을 향해 크게 휘둘렀다.

    화르륵!!

    크게 휘두른 궤적은 반원을 그리며 하늘을 갈랐고, 디프테라들은 또다시 불타며 아래로 떨어졌다.

    마치 불꽃에 날개가 타들어 바닥에 처박히는 모기들처럼, 디프테라들도 하염없이 바닥에 바스러질 뿐.

    “릴리에즈. 결계 버티는 건 괜찮아요?”

    “네, 네. 괜찮습니다. 지금은….”

    “그럼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아무래도 저쪽에서도 큰 거 하나 올 것 같으니까.”

    “예?”

    키샤아아앗!!!

    포효가 울려 퍼진다.

    권속의 죽음에 분노하는 건지, 아니면 마왕인 자신이 이런 마을 하나 제대로 공략하지 못해서 쩔쩔매는 것에 분노하는 건지.

    …그도 아니면 이성을 상실하고 누군가에게 지배당하는 것에 대한 울분인 건지.

    무엇인지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벨제부브의 분노는 분명했고, 이런 상황에서 벨제부브의 성향은….

    “합체가 온다.”

    “예?”

    “정령기가 상대했던 그 갑충거인처럼 될 거야.”

    파사삭!!

    디프테라들이 일제히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우욱…!”

    이전의 괴인이 그나마 강철같은 키틴질 피부가 엮여있어 비늘처럼 연결되어있었다면, 지금은 그냥 구더기가 들끓는 듯한 덩어리가 하나의 거인처럼 서로 달라붙을 뿐.

    “생명을 마나로. 살점을 살점으로. 하나의 생명이 전부 세포가 될 지어니.”

    “예?”

    “저것이구나. 전승에 나오던 괴물이…!”

    그런 전승은 없다.

    그냥 용사 파티의 현자들이라면 이럴 때 아는 척을 하면서 적의 실체를 외쳐줘야 하는 게 기본이니까 이러는 거다.

    “조심해라, 루키우스! 저 괴물은 진짜로 보통 존재가 아니야! 아마 내가 아는 게 맞다면…!!”

    쩌적, 쩌저적!!

    거대한 괴인의 몸에서 검보랏빛 안개가 퍼져 나와 괴인을 감쌌다.

    마치 벌레의 고치와도 같은 형태로, 놈은 순식간에 자신을 휘감았다.

    “저, 저거 지금 바로 공격을ㅡ”

    “아니야. 공격할 틈도 없어. 시간이 걸리는 변신이 아니야.”

    그냥 그렇게 보이는 형태일 뿐.

    평범한 곤충이라면 고치를 찢고 밖으로 날개를 펼치겠지만, 고치와 같던 표면은 실은 안에 있는 생물세포들을 감싸는 껍질일 뿐이다.

    “온다.”

    캬아아앗!!

    “마계의 마왕, 폭식의 군주,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심연의 아귀, [벨제부브]!!”

    아아.

    이렇게 외쳐줘야 체면이 살지.

    릴리에즈가 저 마왕의 권위를 알겠는가, 아니면 루키우스가 알겠는가?

    ‘고마워해라, 짜식.’

    내가 지금 벨제부브에게 겁을 먹은 척, 긴장하는 척함으로써 벨제부브는 마왕으로서의 권위를 얻을 수 있다.

    “마녀님!”

    “괘, 괜찮아…!! 아직, 아직 할 수 있다.”

    다리를 일부러 떨며, 지팡이를 아래에 찍어 자세를 바로잡는다.

    “스승님!!”

    “괜찮다니까!”

    지금까지 그 어떤 마족을 눈앞에 두고도 떨지 않던 내가 떨고 있다?

    루키우스마저도 나의 연기에 깜빡 속아 넘어가, 정령기와 비슷한 크기를 가진 저 거대한 파리괴인-마왕 벨제부브에 긴장하여 침을 꿀꺽 삼키고 있다.

    “아무리 하나로 합체했다고 한들, 이전에 잡았던 그 거인과 비슷해! 형태만 마왕의 형태일 뿐이지, 안에 있는 실체는 괴수들일 뿐이야!”

    “그렇다면…하나하나 전부 죽여버리면 되겠군요!”

    “그래!!”

    거대한 세포 덩어리를 하나하나 죽이면 된다.

    그냥 죽이는 거면 힘들겠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벨제부브를 상대함에 있어 가장 효율이 높은 무기가 있다.

    “루키우스, 휘두르는 거야! 알겠지?!”

    “네! 그럼ㅡ”

    쿵!

    벨제부브가 땅을 가볍게 굴렀다.

    그리고 동시에 놈은 좌우로 입을 벌리며 숨결을 토해냈다.

    “!!”

    나는 급히 고막을 마력으로 막았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귀를 막아요!! 어서!!”

    “무슨-”

    털썩, 털썩.

    내가 외치기도 전에 많은 이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드로니엘!!”

    “크, 으읏…!!”

    심지어 결계 안에 있던 사람들과 로즈마스조차도 쓰러졌다.

    “칫…!”

    언데드라서 버틴 것도 있지만 역시 강하다.

    “초음파 공격…!”

    강력한 파동을 일으켜 인간들이 들을 수 없지만, 너무나도 그 파동이 커서 뇌 전체를 흔들어 순간적으로 뇌진탕을 일으키는 벨제부브의 주특기.

    지금 살아남은 이들은 고작 넷.

    나, 루키우스, 드로니엘, 그리고 릴리에즈.

    “이건…?!”

    “설명은 나중에!! 루키우스! 드로니엘을 데리고 결계 안으로!”

    “예?! 하지만 이 검, 제가 놓으면 사라지는 게-!”

    “작전타임!!”

    “알겠습니다!!”

    루키우스는 바로 검을 벨제부브를 향해 내던지며 드로니엘을 붙잡았다.

    나는 그냥 검을 역소환하려고 했지만 루키우스의 센스에 검을 폭발시키는 방향으로 새로운 마법을 펼쳤고, 우리를 향해 손을 뻗으려던 벨제부브의 전신에 불꽃이 활활 붙었다.

    “마녀님!”

    “릴리에즈. 결계를 최소한으로 축소하세요.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 만큼만.”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 적은….”

    “쓰러뜨릴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리고….”

    지금.

    모두가 기절한 순간.

    “보여줄게요. 정령기의 힘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힘으로도 저런 괴물을, 마왕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걸.”

    “스승님.”

    루키우스는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준비되어있습니다.”

    “…너 설마?”

    “제가 싸우는 것보다 스승님이 싸우시는 게 더 좋을 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럴 겁니다. 스승님.”

    루키우스는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한쪽 손을 내게 건넸다.

    “부디 저를 써주십시오.”

    “…미안. 마왕급이 아니라면 나도 네게 기회를 주고 싶은데, 상대가 상대라서.”

    “괜찮습니다. 스승님과 사람들을 지킬 수만 있다면.”

    “둘이, 도대체 무슨….”

    “드로니엘.”

    나는 드로니엘을 불렀다.

    결계 밖에서 내가 외치기 무섭게 고막을 자신의 마나로 보호한 덕분에, 그녀는 지금 유일하게 두 발로 일어선 사람이었다.

    “제 의식을 루키우스의 안에 밀어 넣을 거예요. 루키우스의 몸을 잠시 조종하면서 저 마왕을 상대하는 거죠. 그동안 제 몸을 부탁해도 될까요?”

    “현자 님의….”

    드로니엘은 루키우스를, 그리고 아래에 쓰러진 사람들을 슬쩍 바라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대신, 반드시 사람들을 구해주세요…!”

    “물론이죠.”

    나는 루키우스가 내민 손에 손등을 마주 대었다.

    “갈게.”

    “…예.”

    루키우스는 다소 불만스러워 보이는 듯했다.

    자신의 실력이 조금만 더 강했으면 마왕도 상대해볼 텐데, 아쉽긴 하겠지.

    하지만 상대가 마왕이라면 그 급을 맞춰야 하는 법.

    ‘어딜 초짜 용사가.’

    상대는 마왕.

    마왕을 상대할 수 있는 건 적어도 최종 각성을 마친 용사 수준은 되어야 한다.

    그러니.

    “……접속, 개시.”

    지금은 내가 상대한다.

    사아아.

    루키우스의 몸속으로 다시 의식이 파고든다.

    마녀 벨의 육신에서 루키우스의 육신으로 갈아타며, 루키우스의 의식은 어둠 속으로 잠들기 시작한다.

    루키우스가 내어준 공간.

    그곳에 나는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는다.

    아주 천천히.

    나라는 존재를 루키우스의 몸에 각인시킨다.

    그리고 이 각인의 배경이 되는 기반은 루키우스가 가진 바람의 성검.

    “…릴리에즈, 그리고 드로니엘.”

    내가 둘을 부르자, 둘은 흠칫 놀라며 내-루키우스의 얼굴을 살폈다.

    “혹시…?”

    “잠시 몸을 빌렸습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저걸 상대하는 데 있어서 제가 이걸 다루는 게 더 효과적이라.”

    둘은 이 현상을 처음 보는 만큼 설명이 필요했다.

    “루키우스라면 안전하니 안심하시길.”

    “그, 마녀님은…?”

    “제 육신만 괜찮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육신도 혼이 빠져나갔으니 실시간으로 죽어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빨리 저 마왕을 처리하고 오면 되겠죠.”

    그리고 이런 설명을 할 만큼, 나는 지금 여유가 있었다.

    “결계 안에서 기다려주십시오. 금방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사아악.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결계 밖으로 나갔다.

    얼음의 벽을 통과하여, 마왕 벨제부브를 눈앞에 두고 혈혈단신으로 나선 채 호흡을 가다듬었다.

    “바람이여.”

    고오오.

    서서히 내 손에 나타나는 금빛의 검.

    황금빛 바람이 나를 중심으로 몰아치고, 나는 검을 옆으로 늘어뜨렸다.

    “나의 곁으로 오라. 그리고 그 힘을 드러내라.”

    그 힘은.

    마치 질풍과도 같으니.

    “나의 바람은 결코, 쓰러지지 않으니.”

    해방.

    “오라.”

    아스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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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ro’s Mentor is a (Demon) Witch

The Hero’s Mentor is a (Demon) Witch

Status: Ongoing Author:
I, who was once the Demon King, have become a terminally ill beautiful girl who can't do anything. To survive, I became the witch of the Hero's party. ...No, I don't like the H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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