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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9

     아르페는 마녀 벨이 싫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에게 전락한 여자 주제에 끝까지 인간을 지켜달라고 주장한 어리석은 여자라서 싫다.

     용사인 자신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믿음.

     

     마지막까지 인간을 믿어달라고, 인간을 멸망시키지 말아 달라고 끝까지 주장한 덕분에 마왕은 인간을 멸망시키지 않았다.

     그것이, 마왕의 죽음으로 이어질 줄은 누구도 몰랐겠지만.

     “…후우.”

     눈에 보기도 싫은 배신자 마녀지만, 그래도 마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인간으로서 본분을 다했다.

      오히려 마녀의 처지에서 보면 성검을 쥐고도 결국 인간이 아닌 ‘세계’를 선택한 자신이 배신자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관점과 세계의 진실을 알게 된 용사의 관점은 확연히 다르니까.

     인간의 가능성을 믿은 마녀.

     인간은 사라지고 도태되는 게 맞다고 생각한 용사.

     아르페나 마녀 벨이나 둘 다 ‘여자’로서의 관점은 같지만, 둘은 인류를 대하는 시각이 판이하였다.

     아르페로서는 인류는 아무래도 좋을 사람들이었다.

     -인간은 멸망하는 게 옳다.

     -인간이, 밉다!

     아르페는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용사가 되면서 인간의 추악하고 더러운 면모를 보며 크게 실망했다.

     -인간을 포기해서는 안 돼요. 100만 명이 모두 악하더라도, 한 명이라도 희망을 품고 있다면 인간을, 인류를 포기해서는 안 돼요.

     그러나 마녀 벨, 홍련의 마술사는 미련하게도 끝까지 인간을 믿었다.

     -저기, …? 왜 그런 짓을….

     -너는 마왕을 쓰러뜨리기 위한 제물일 뿐이야. 벨.

     -어째서…. 믿었는데…!

     -믿은 게 바보지! 하하하! 꼴 좋다! 마왕이 오면 아주 복장이 뒤집어지겠어! 아하하하!!

     인간을 믿었기에 인간에게 배신당했고, 최후에는 너무나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 그녀가 살아있다?

     마왕조차도 바람의 용사와 싸워 죽었는데, 정작 그 이전에 죽은 마녀 벨이 살아있다?

     분명.

     “…마왕님이 살려준 거지.”

     까드득.

     아르페는 마녀 벨이 밉다.

     자신은 마지막 순간, 모종의 이유로 마왕성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는데.

     마왕이 최후를 맞이하게 된 계기를 제공한 것도 싫었고, 마왕과 함께 최후를 맞이한 것도 싫었고, 마왕이 자신이 최후를 맞이함에도 굳이 자신의 남은 모든 마력을 짜내어 마녀의 영혼이 소멸하지 않게 다른 육체에 불어넣어 준 것도 싫었다.

     …마지막은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눈으로 보고 있는 정황이 그랬다.

     마녀 벨.

     작은 소녀의 몸에 깃든 그녀의 몸에서 익숙한 마력의 냄새가 느껴졌다.

     기본적으로는 평범한 마법사지만, 은근히 그녀의 몸과 마력에서는 대마왕의 흔적이 향수처럼 풍겼다.

     부럽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하고, 마왕 벨 페고르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 게 자신이 아니라 마녀 벨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화가 났다.

     보라.

     마왕이 자신이 소멸함에도.

     마녀 벨을 위해서는 다른 육체를 준비해주면서까지 살려주고 봉인을 걸어준 모습을.

     분명 봉인을 해제하는 순간, 저런 꼬맹이 같은 모습이 아니라 500년 전의 모습을 되찾게 되겠지.

     “…….”

     아르페는 아래를 잠시 내려다본 뒤, 손톱을 물어뜯었다.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힘을 해방하게 둘 수는 없다.

     비록 멀리서 관찰한 모습을 보면 언데드와 같은 상태같지만, 대마왕 벨 페고르가 그녀를 언데드로 만들어줬다면 전부 맞아떨어진다.

     지금은 마나가 없어서 불가능하겠지만, 마나가 차오르면 분명 이전의 모습을 회복할 터.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이 가득했지만, 아르페로서는 마녀 벨을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없었다.

     결국.

     아무리 싫어도, 그녀는….

     “!!”

     위험하다.

     마왕 벨제부브의 마력을 느낀 순간.

     마왕 벨제부브의 마력이 마녀 벨이 있는 마을을 향한 순간.

     아르페는 정체고 뭐고 일단 자신이 나서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구해야 하나?

     아니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믿어야 하나?

     “…….”

     아르페는 묵묵히 전장을 지켜봤다.

     마왕 벨제부브를 상대로 긴장하면서도 용사를 다독여 마왕을 쓰러뜨리고자 하는 의지를 다지는 저 마녀의 모습을 보며, 아르페는 괜히 자괴감이 들었다.

     마녀는 저렇게까지 인간들을 구하려고 애쓰는구나.

     그리고.

     “……말도 안 돼.”

     대마왕을 찌른 성검을 사용하는 용사에게 자신의 힘을 불어넣어주면서까지 마왕을 쓰러뜨리려고, 사람들을 구하려고 한다.

     “……당신은, 도대체…?”

     까드득.

     아르페는 애꿎은 손톱만 물어뜯으며 전장을 지켜볼 뿐이었다.

     마녀의 힘을 통해 한 단계 더 강해진 것 같은, 그 가증스러운 바람의 성검-아스칼론을 사용하는 금발의 용사를 바라보며.

     “…….”

     용사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 *

     서걱!

     키이이익!!

     벨제부브가 비명을 지른다.

     놈이 나를 막기 위해 뻗으려던 손은 손바닥 째로 갈라져 아래로 툭 떨어졌다.

     ‘어떠냐! 이것이 나를 죽인 검이다!’

     자조적이기는 하지만, 아스칼론의 힘은 보는 바와 같이 정말로 강력하다.

     불의 성검이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물의 성검이 모든 것을 물속에 가두거나 얼려버린다면.

     바람의 성검은, 모든 것을 찢어버린다.

     “풍신초래!”

     가벼운 기합과 함께, 아스칼론을 지면을 향해 휘두른다.

     칼바람은 땅에 부딪혀 사방으로 용솟음치며 위로 솟구쳤고, 나를 향해 뻗으려던 벨제부브의 손길은 순식간에 칼바람에 갈려 나갔다.

     기기기기긱.

     마치 몸 위로 전기가 튄 듯한 흔적과 함께, 벨제부브의 팔에는 난도질당한 흔적들이 짙게 남았다.

     뚝, 뚜둑.

     상처에서 떨어지는 디프테라의 잔해들조차 바람에 갈리며 전부 파편이 되었다.

     독성을 가진 진액조차도 마치 분자 단위로 쪼개어지듯, 금빛의 바람은 모든 것을 갈라버렸다.

     벨제부브는, 그 어떠한 공격으로도 나를 공격하지 못하고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

     “너무 그렇게 억울한 듯이 보지 마. 원래 성검의 용사라는 게 그런 거니까.”

     그래.

     이건 벨제부브가 약한 게 아니다.

     성검이라는 게 무지막지할 정도로 강할 뿐이다.

     ‘더군다나 풀파워도 아니고.’

     이건 벨제부브의 전력이 아니다.

     애초에 단일 개체로서 강한 타입도 아니지만, 적어도 아스칼론을 해방한 정도로 이렇게 쉽게 무너질 만큼 약한 녀석도 아니다.

     ‘저항하고 있구나.’

     자신의 전력을 내지 않으려고.

     자신을 조종하는 누군가로부터 저항하고 있다.

     만약 전력을 내려고 했다면, 지금처럼 육탄 공격을 감행하지 않았을 터.

     키아아악!!

     벨제부브의 날개가 쫙 펼쳐지며, 날개에서 튀어나온 디프테라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풍안결계!”

     가볍게 땅을 발로 구른다.

     나를 중심으로 금빛의 바람은 코일처럼 위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고, 나를 향해 날아들던 디프테라들은 결계를 뚫지 못하고 결계에 갈려 위로 솟구쳐 흩뿌려졌다.

     그저 금빛의 덩어리가 코일처럼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나를 중심으로 날카로운 칼바람들이 돌아가고 있는 형태.

     마왕 벨제부브가 진면목을 보이지 못하는 지금, 성검 아스칼론을 든 나를 이길 수는 없다.

     마왕이란.

     “덩칫값만으로 하는 게 아니야!!”

     마지막 일격을 위해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점프.

     단숨에 벨제부브의 명치를 향해 수 미터를 뛰어오르자, 벨제부브는 화들짝 놀라 아가리를 벌렸다.

     캬아아아ㅡㅡㅡ!!

     충격파를 일으켜 나를 억제하려고 하지만 소용이 없다.

     나는 아스칼론의 힘을 이용해 금빛 바람을 앞으로 뿌려 충격파를 상쇄했고, 허공을 발로 디디며 앞으로 나아갔다.

     “갈라져라!!”

     기합과 함께 아스칼론을 휘두른다.

     명치를 수직으로 가르며, 놈의 몸통 안으로 파고든다.

     키시시싯!!

     주변에 가득한 독충들은 이 몸을, 루키우스의 몸을 물어뜯으려고 하지만 소용없다.

     이 몸은 용사.

     성검을 개방하여 전신에 바람을 두르고 있는 만큼, 나를 향해 달려들기도 전에 칼바람에 갈리며 찢겨나갈 뿐.

     콰득!

     나는 벌레들의 틈바구니로 손을 집어넣었다.

     팔에서 뿜어져 나오는 칼바람이 눈앞을 가로막은 벌레들을 갈아버리며, 그 뒤에 숨어있던 놈을 기어이 찾아냈다.

     [키익, 키이익….]

     벨제부브.

     다른 벌레들에게 사지가 붙잡힌 채, 이마에 있는 인장만을 반짝이며 숨만 쉬고 있는 벌레.

     아아.

     그렇구나.

     나는 소녀의 몸에 깃들어 탈출했지만, 벨제부브는 이 벌레의 몸에 강제로 깃들어버렸다.

     “마왕 벨제부브.”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겉모습은 루키우스지만, 지금은 비록 성검을 들고 있지만.

     “잠들어라.”

     같은 마왕으로서.

     같은 마족으로서.

     그리고 같은 세계에서 온 이로서.

     “안녕이다.”

     푸ㅡ욱.

     나는 벨제부브의 모가지를 잡아당긴 뒤, 녀석의 모가지를 잘라냈다.

     [네, 네 이놈ㅡㅡㅡㅡ!!]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

      듣기 싫지만,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목소리.

     제파르.

     그놈이다.

     최악의 예상은 아니지만, 차악과도 같이 벨제부브는 제파르에게 소환되어 이용당하고 있었다.

     [네놈을 저주하여 죽-]

     “꺼져.”

     [키아아악!!]

     

     아스칼론을 한 번 휘둘러 주변에 바람의 마력을 터뜨렸다.

     나를 중심으로, 내가 붙잡은 벨제부브를 제외하고 뻥 구멍이 뚫렸다.

     독충들의 살점조차, 심지어 마석조차 남지 않게 갈아버리는 금빛폭풍의 위력은 내 주변을 공기와 마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진공 상태로 만들었다.

     “벨제부브.”

     제파르 따위가 지금 이 자리에서 소리를 낼 수 없다.

     지금은 벨제부브를 이 속박으로부터 뽑아낼 때.

     이제, 날 섬겨라.

     마왕, 벨페고르가 명하노니.

     “너를, 악의 주박으로부터 해방하겠노라.”

     푸욱.

     나는 작은 마석 하나를 녀석의 인장에 박아넣었다.

     벨제부브의 몸은 천천히 재처럼 바스러지기 시작했고, 인장은 서서히 마석으로 깃들기 시작했다.

     […인간 따위들이, 나를-]

     마석으로부터 전해지는 목소리.

     아니 의지.

     [이놈이고 저놈이고 감히 나를…!!]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잡아먹힐 것만 같은 살기를 내뱉는, 심연 속에서 검보랏빛 안광을 뿌리는 소녀가 저 멀리서 느껴진다.

     [이 개 같은-]

     [Hey, It’s Me. Bro.]

     [……마계어?]

     의지를 통해, 나는 드디어 동료에게 나의 정체를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이 마력 파장은 설마…!]

     [Yes, I, Am!]

     […너 왜 몸은 용사의 몸에 깃들어있는데 영혼이 암컷이냐?]

     “…….”

     아니, 씨ㅂ-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아래는 플러스 관련 공지입니다.

    이전 공지보고 플러스 12월 15일 이후에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침이 바뀌었네요.

    용사의 스승은 마왕녀님 은

    (수정) 12월 15일 플러스입니다.

    다음화 보기


           


The Hero’s Mentor is a (Demon) Witch

The Hero’s Mentor is a (Demon) Witch

Status: Ongoing Author:
I, who was once the Demon King, have become a terminally ill beautiful girl who can't do anything. To survive, I became the witch of the Hero's party. ...No, I don't like the H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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