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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5

     북부로 가는 건 금기다. 

     하지만 용사의 행보에 금기가 무슨 소용일까.

     특히 용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힘’을 얻으러 가는 일인데, 그게 마왕과의 결전에서 어쩌면 정말로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는 힘인데.

     그리고.

     -스승님. 제가 정령기를 손에 넣으면 스승님과 함께 탈 수 있는 겁니까?

     -어.

     -그럼 당장 가도록 하죠!

     용사 루키우스가 지금 그걸 바라고 있는데, 누가 감히 용사의 행보를 막겠는가!

     용사가 가는 길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용사가 가고자 하는 길이 곧 길이며, 그 누구도 용사의 행보를 막을 수 없다.

     

     특히 용사가 ‘마왕과 싸울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갑니다!’라고 말한다면, 말리는 놈은 둘 중 하나다.

     용사가 얻고자 하는 힘인 정령기, 바람의 정령기가 겉으로 드러나는 걸 두려워하는 존재이거나.

     아니면 마왕군의 첩자이거나.

     그러니 우리는 정령기를 얻기 위해 북쪽으로 가야 한다.

     그게 설령 가는 길이 너무나도 춥고 살얼음으로 차갑게 피부가 얼어붙는 곳이라고 하더라도.

     는.

     없었다.

     “…이거 맞나?”

     나는 눈발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용사 파티의 모습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전형적인 숲의 수호대 복장을 하고 있는 로즈마스.

     이제는 얼굴을 당당히 드러낸 여기사 드로니엘.

     그리고 창월여신의 교리에 걸맞게 창월여신교의 성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누가봐도 성녀라고 생각이 들만큼 겨드랑이와 등, 옆가슴, 심지어는 치골과 다리를 훤히 드러낸 민망한 성녀복의 얀 디에레.

     이들 모두 창월여신의 축복 덕분에 ‘추위에 의한 피해를 입지 않는 몸’이 되었다.

     “창월여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얀 디에레가 자신과 다른 둘에게 가호를 내리기 무섭게 푸른달빛은 마치 보호막처럼 둘을 휘감았다.

     당연히 한기는 그들의 피부를 꿰뚫지 못했고, 달빛은 마치 두터운 코트처럼 셋을 보호하며 체온이 내려가지 않게 만들었다.

     성검의 백업을 받고 있는 루키우스는 두말 할 필요도 없고.

     즉.

     “…으으, 추워.”

     “언데드인데도 추위를 느끼시는 겁니까?”

     “그런 모양이야.”

     “제가 가호를…?”

     “나를 죽일셈이냐.”

     현재, 추위에 벌벌 떨어서 두터운 코트를 입고 있는 건 나 뿐이다.

     “스승님. 주변에 사람이 없으니 제가 성검의 바람으로 주변에 결계를 치겠습니다. 스승님이 걸어가는 길은 따뜻하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바보냐? 이런 곳에서 성검의 힘을 쓰게. 성검은 중요한 곳에, 엣…!!”

     크흡.

     간신히 기침을 참았다.

     이 몸, 죽은 몸인 주제에 은근히 인간적으로 쓸데없는 면모는 잘 갖추고 있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식사는 불필요하지만 근육통이나 체온변화 같은 부분에는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을 하니, 나로서는 이 나약한 인간의 육체를 지키기 위해 옷을 몇 겹이고 둘둘 둘러쌀 수밖에 없었다.

     “드로니엘. 아버님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전해야겠어.”

     “아버님께서도 현자님의 도움이 된 걸 진심으로 기뻐하실 겁니다.”

     “그래. 이…무스탕 롱코트라고 했나? 정말 마음에 드는군.”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좋지만, 목 부분을 간질간질하게 만드는 털과 전신을 가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좋았다.

     ‘이거, 나중에 골반 즈음에서 잘라서 입고 다니면 괜찮겠는데?’

     여성의 복장은 오백년 사이 창월여신교스러워졌지만, 남성의 복장은 오백년 동안 제법 괜찮게 변했더라.

     남성미가 느껴지는 복장들도 은근히 있어 입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그걸 루키우스에게 대신 입혀보는 거로 대리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왜? 루키우스, 너도 이거 입고 싶어?”

     “아닙니다.”

     “아니면 왜 그렇게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거야? 다시 설명해줘?”

     “괜찮습니다. 스승님께서는 그렇게 옷을 두껍게 입고 계셔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는 걸요.”

     “그렇지? 흐흥.” 

     루키우스는 뭔가 씁쓸한 눈치였지만, 나로서는 이렇게 피부가 노출되는 부분이 눈 부분만 나온다는 게 상당히 좋았다.

     -북부 대륙을 여행하면 분명 필요할 겁니다. 현자님, 이건 저희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순결의 베일’이라는 겁니다. 

     -면사포를 두르라는 건가요?

     -아니요. 머플러로 이용하시지요. 모자는 그대로 쓰시고 베일로 입 부분을 가리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고마워요, 오드론 백작.

     오드론 영지에서 텔레포트를 하기 전에 머플러도 하나 선물 받았다.

     

     -당신의 딸이 루키우스와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밀어줄게요.

     -오오…! 역시 현자님이십니다. 혹시 필요한 게 있습니까?

     -마석 있어요?

     -많이 지원해드리겠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뒤로도.

     -대화가 통하는 분이군요.

     “흐흐흐.”

     

     오드론 백작과 나는 뒷거래를 했고, 머플러-순결의 베일은 그의 호의이자 선물이었다.

     

     뭔가 색깔도 설원과도 같은 하얀색의 실크라 목에 두르는 감촉도 제법 좋았다.

     

     덕분에 나는 별다른 추위를 느낄 새도 없이 나름 따뜻하게 대륙 북부로 나아갈 수 있었지만….

     새애앵.

     살얼음이 피부를 찌르고 지나친다.

     이건 대륙 북부의 차가운 공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땅에 서려있는 수많은 마왕군 부역자들이 익사하면서 내지른 비명의 단말마일까?

     아니다.

     “저기, 루키우스. 내가 뭐 잘못했어…?”

     “너는 잘못한 거 없다, 드로니엘.”

     “그런데 왜 너를 부를 때마다 표정이 별로 안 좋아?”

     “그런 거 아니다.”

     뒤에서 풍겨오는 차가운 바람이다.

     “흐응, 루키우스라고 부르는 구나….”

     “루, 루키우스라고 부르는 게 뭐 어때서? 나는 평생을 루키우스라고 부르고 살아왔어!”

     “아서라고 부르지 않았나?”

     “아니, 루키우스. 잠깐만….”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너는 나를 아서라고 부르지 않았나? 드로니엘.”

     “아, 아니. 어차피 아서나 루키우스나….”

     “헤에. 루키우스, 라고 부르는 구나….”

     

     너무나도 차가워서 등이 베일 것만 같다.

     “용사 루키우스. 그대에게는 호칭이 중요합니까?”

     “아니, 호칭이 중요하다기보다는….”

     “그럼 저는 얀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용사 루키우스가 원하는 대로 이름을 불러드리겠습니다.”

     “그, 아니, 잠시….”

     “둘 다 이름이라는 건 조금 신기하지만 불편한 것 같기도 하군요. 용사 루키우스. 용사 아서. 후후, 어느 쪽이든 그대가 용사라는 건 달라지지 않죠. 아, 하지만 용사라는 걸 숨겨야 하는 곳에서는….”

     “헤에. 용사 루키우스라고 부르는 구나….”

     “…….”

     아아, 두개골이 아프다.

     뒤에서 말로 칼싸움을 하는 것 같아, 그 칼날의 파편이 내게로 날아와 내 목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처럼 따갑다.

     아서.

     루키우스.

     용사 아서.

     “……에이, 잠깐 모두 모여.”

     나는 결국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저기 동굴있지? 마침 날도 저물었고 하니, 오늘은 저기서 휴식을 취하고 내일 계속 이동한다. 그리고….”

     나는 넷을 각각 가리키며, 마지막에 다시 한 번 루키우스에게로 손가락을 뻗었다.

     “너, 이름 뭐야?!”

     “네? 저, 저는 루키우스입니다.”

     “그럼 루키우스다!”

     현자의 이름으로.

     “뭘 이름가지고 그렇게 애들처럼 싸우고 있어! 그냥 다들 나처럼 루키우스라고 불러!!”

     통일했다.

     * * *

     “루키우스. 너 마족이냐?”

     “일단 아닙니다만, 뜬금없이 마족이라뇨?”

     “이름을 중요시 생각하는 것 같아서.”

     내 말에 루키우스는 정곡을 찔린 것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이름이라는 거 말야, 나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름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마력이 있거든.”

     “마력….”

     “그래. 아, 마족에 대한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 이름이라는 건 그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거니까.”

     세상의 모든 이름에는 의미가 있다.

     “네 이름에 관한 이야기는 알고 있어. 아서, 루키우스. 둘다 네게는 소중한 이름이지.”

     아서 루키우스.

     성 씨는 알 수 없음.

     성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게, 한 쪽은 원래 부모님이 남겨준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그를 키워준 사냥꾼 노인이 지어준 이름이다.

     “언젠가는 네게도 성씨가 생길테고, 그렇게 되면 어느 이름 하나를 정해야 할 때가 올 수 있다고 얘기했지? 아서든 루키우스든.”

     “예.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그가 결혼을 한다면, 그가 하사받는 영지의 지명에 따라 성씨가 붙거나 아내의 성씨를 따라갈 확률이 높다.

     “지금부터 당장 정하라는 건 아니야. 네가 아서인지, 루키우스인지.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가 둘 중에 하나를 정해야 한다면, 그건 나중에 정해도 된다는 거야. 지금 정한 이름을 나중에 바꿀 수도 있고! 그러니까!”

     돌려 말할까 하다가, 나는 그냥 내 생각을 그대로 말하기로 했다.

     “아서든 루키우스든, 둘 중에 하나를 분명히 정해!”

     “그건….”

     “내가 정말 많은 파티를 둘러봤지만, 용사에 대한 호칭 문제로 싸우는 파티는 이번이 처음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너, 아서나 루키우스라고 구분하는 거에 의미가 있지? 있을 거야. 있으니까 루키우스라고 다른 애들이 부르는 거에 거부감이 있는 거잖아.”

     “…….”

     “내가 부를 때는 별다른 말 없으면서, 왜 다른 애들이 루키우스라고 부르는 건 꺼리는 거야?”

     “그건….”

     루키우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겠지.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것 자체가 용사의 자질 상실이다.

     “용사는 누군가를 특별취급해서는 안 돼. 파티를 차별해서도 안 되고. 그게 용사라는 사람이야. 누군가를 특별히 좋아해서 한 명과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될 수는 있어도, 누군가를 특별히 싫어한다거나 그런 건 안 돼.”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모두가 루키우스라고 부르는 거에 딱히 문제도 없겠네?”

     “…….”

     “이거 봐. 지금 되게 민감하잖아.”

     루키우스가 이렇게 감정적으로 나오는 건 처음 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용사 파티가 시작부터 망가지는 걸 두고볼 수는 없다.

     “혹시나 내가 지금까지 루키우스라고 부른 게 불편했어?”

     “아,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닙니다. 단지….”

     “단지?”

     “…음, 그게. 제 안에서 아서라는 사람과 루키우스라는 사람 사이에서 갈등이….”

     “네가 말해놓고도 지금 정말 이상하다는 거 알지?”

     “…….”

     루키우스는 머리를 긁적거렸고, 나는 루키우스의 등을 두드렸다.

     “내가 특정 누구 편을 드는 건 아니지만, 이대로 계속 있으면 로즈마스만 이상해지잖아. 그렇지?”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건지 알겠습니다.”

     루키우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모두의 루키우스가 되는 거군요.”

     “흐흐. 야. 루키우스.”

     나는 루키우스에게로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지금의 이름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진짜로 중요한 건 네가 나중에 마왕을 쓰러뜨리고 난 뒤에 얻을 풀네임이지.”

     “제 풀네임이요?”

     “그래. 이름은 중요하지 않아. 나도 내 이름, 바꿨는 걸.”

     “…이름을 바꾸셨어요?”

     “그래. 원래 이름은 따로 있었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나를 태어나게 한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

     “뭐였어요?”

     “안 가르쳐주지.”

     미쳤다고 진명을 가르쳐주겠는가?

     만.

     이유가 있다.

     “내 이름, 너 이미 알고 있거든.”

     

    따로 알려준 적은 없지만, 내 이름은 루키우스가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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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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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ro’s Mentor is a (Demon) Witch

The Hero’s Mentor is a (Demon) Witch

Status: Ongoing Author:
I, who was once the Demon King, have become a terminally ill beautiful girl who can't do anything. To survive, I became the witch of the Hero's party. ...No, I don't like the H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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