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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77

     

     

     

    ***

     

     

     

    청담플리아나.

    ㅡ28층.

     

    밤이 깊은 시각.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와 함께 천류화는 걸음을 내디뎠다.

     

    사락사락.

     

    특유의 소리 없는 걸음은 세린과 무척 닮아 있었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얼굴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철컥.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그녀의 가슴엔 아직도 큰 열기가 맴돌았다.

     

    “하아.”

     

    달뜬 숨을 내쉬며 무심코 현관문에 몸을 기대었다.

     

    서늘한 겨울철, 차가운 문이 뜨거운 몸을 조금은 식혀주는 듯했다.

     

    그러다 불현듯, 살며시 내 입술을 어루만지게 됐다.

     

    “…….”

     

    뜨겁게 닿았던 짧은 순간의 열기.

     

    그게 내겐 첫 키스였다.

    엄밀히 말하면 키스라고 부르기에도 부족한 지극히 짧은 입맞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내겐 너무나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저 입술과 입술이 닿았을 뿐인데 그 행동이 주는 열기는 결코 적지 않았다.

     

    “……이런 거구나.”

     

    무심코 중얼거렸다.

     

    사랑을 한다는 게.

    그리고 사랑을 표현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이젠 더없이 알게 된 느낌이었다.

     

    솔직히 기분이 좋았다.

    더불어 확실히 지금의 내가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어려운 행동도, 대단한 몸짓을 한 것도 아닌데. 사람의 마음이 이토록 쉽게 바뀐다.

     

    툭. 툭.

     

    가볍게 발을 풀면서, 그대로 현관을 벗어난다. 그리고 그대로 거실을 지나쳐 곧바로 내 방으로 돌아갔다.

     

    철컥.

     

    방문을 닫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왜 연인들이 그토록 멍청해 보였는지.”

     

    이젠 더없이 실감이 났다.

     

    감정이 넘쳐흐르면, 그게 곧 외부로 티가 난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건 내 생각보다도 아주 큰 감정이었다.

     

    스륵, 스르륵.

     

    들고 있던 백을 내려놓으며, 걸치고 있던 옷가지를 하나하나 벗어간다. 그에 따라 긴장했던 내 마음도 서서히 풀리는 듯했다.

     

    툭.

     

    그렇게 나신이 되자, 곧바로 세면실로 향했다.

     

    쏴아아……!

     

    쏟아지는 뜨거운 물줄기, 곧바로 내부를 가득 채우는 새하얀 수증기 사이로 멍하니 몸을 맡겼다.

     

    두근.

    두근.

     

    크게 뛰는 심장은 평소와도 달랐다.

     

    그리고 내 눈엔 계속해서 세린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놀란 듯한 모습으로 내게 무방비하게 몸을 허용하던 모습이, 그리고 그 끝에서 혼란과 번민으로 물든 그녀의 얼굴까지.

     

    “과연 나는 선을 넘은 거라고 봐야 할까.”

     

    말하면서도 나조차 오늘의 이후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았다.

     

    세린과 내 관계가 정말 어떻게 될지.

    내가 원하는 관계야 당연히 세린을 가지는 것이지만 사실 불확실함이 있었다.

     

    그녀를 내 것으로 하여, 내 품에 계속 가두고 싶을 만큼 거대한 애욕이 전신을 지배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세린을 내가 강제하기엔 제한 조건이 많았다.

     

    ‘무엇보다…….’

     

    이 세상에서 나는 더는 천마가 아니니까.

    지고한 위치에서 만민을 내려다보며, 모든 걸 가질 수 있던 세상의 내가 아니었다.

     

    스르륵.

     

    물기로 번들거리는 몸을 어루만져가면서도 천천히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런데 어차피 행동해야 했겠지, 세린의 마음에는 틈이 없었으니.”

     

    만약 세린에게 연인이 없었다면 나는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다.

    아니, 연인이 단 한 명만이었다면 나는 오늘처럼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오늘의 나는 충동적이었다.

     

    내가 나에 대해 잘 알았다.

     

    해야 하니까, 그렇게 행동한 거라고.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행동했을 거라고.

     

    “나는 그런 존재니까.”

     

    따스한 물줄기에 몸이 풀어지는 느낌이 오늘따라 굉장히 좋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결과’였다.

     

    나는 세린을 탐하였고, 세린은 무방비하게 내게 몸을 허용했다.

     

    그 과정에서 세린이 정말 당황할 수밖에 없을 만큼. 내 마음이, 그리고 내 몸이 앞섰다는 것도 알았다.

     

    사르륵.

     

    물기로 젖은 머리칼을 크게 쓸어내리면서도 내 행동에 대해 후회는 없었다.

     

    오늘 아침에 생각했던 대로 세린을 만날 수 있었고, 오늘 하루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소득이 있었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세린은 나를 내치지 못하니까.”

     

    그것 하나만큼은 알았다.

     

    세린의 성정.

    변화한 성격.

    평소의 습관과 날 대하는 마음가짐이 어떠한지.

     

    그 모두를 아니까, 충동적이었다고 하나 나는 그리 행동했다.

     

    세린이 날 거부하지 못하리라는 걸 알기에, 그대로 거침없이 애정을 표현했다. 설령 날 거부하려 했어도 내가 그걸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륵.

     

    손을 움켜쥐면서도 몸속에 존재하는 안정된 기가 느껴졌다.

     

    세린은 그야말로 일반인과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할 만큼 자그마한 기조차 없는 상태였고, 그에 반해 나는 지금 완전한 일류는 아니더라도 이류의 끝자락에 다다라 있다.

     

    기가 없음에도, 마음의 깨달음인지 경지의 상승은 내 예상보다도 빨랐다.

     

    내가 마음먹는다면 세린은 육체적으로 내게 저항할 수 없으니.

     

    “하지만 이건 그저 범죄가 아닌가.”

     

    픽 실소를 터트려가면서도 고개를 절레 저으며 손에 쥔 힘도 풀었다.

     

    중원이라면 힘이 곧 법이었겠지만 현실은 다르니.

     

    그래서 오늘처럼 강압적으로 세린을 탐하는 건 앞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후는 그저 시간을 가지며 세린에게 답을 강요할 것이다.

     

    “…….”

     

    미미하게 숨을 내쉬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

     

    ‘마음에 틈이 없다면. 틈을 억지로라도 만들어내야 하니까.’

     

    세린의 마음이 크게 혼란스러운 이때, 나는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했다.

     

    계속해서 갈등하고, 번민하게 하며 세린이 날 더 강하게 의식하게 만들어야 한다.

     

     

     

    ***

     

     

     

    한편 천류화가 떠나고, 방송마저 끝낸 세린은 극도의 혼란 속에 빠져 있었다.

     

    유화의 충동적인 행동 이후, 그녀는 애써 2부 방송을 진행했고, 현재 서윤이와 아리와 뒤늦은 저녁을 먹고 있는 상황 속.

     

    “…….”

     

    그녀는 눈의 초점이 좀 멍했다.

     

    달그락달그락.

     

    본래라면 화기애애한 저녁 식사 시간이어야 함에도 세린이 평소와 달라 보이자, 서윤이가 가장 먼저 그 이변을 눈치챘다.

     

    “…언니. 언니?”

     

    “아, 응. 서윤아. 왜 불러?”

     

    “아니, 언니 갑자기 좀 이상한 것 같아서.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있다고 해야 하나? 갑자기 걱정거리라도 있어? 왜 이렇게 멍해.”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랬나 봐.”

     

    “하긴, 피곤할 만하지. 세린아, 장조림 좀 먹어봐, 오늘따라 진짜 맛있어.”

     

    툭.

     

    아리가 자연스레 반찬을 그릇 위에 올려주자, 세린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아리야.”

     

    그렇게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던 차, 아리가 세린을 향해 묘하게 눈을 흘겼다.

     

    “…혹시 유화랑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쿨럭!”

     

    순간 밥을 먹다 말고 세린은 헛기침했다.

     

    “……언니? 왜 그래. 괜찮아?”

     

    괜스레 주변이 어지럽혀지자, 서윤이가 놀랐다.

     

    그리고 그에 세린조차 다급히 자신을 바로 잡으며 고갤 끄덕였다.

     

    “미안. 하아. 갑자기 나도 모르게 좀 놀랐나 봐.”

     

    “조심 좀 하지. 그래도 막 크게 어지럽혀진 건 아니니까.”

     

    서윤이의 말속에 세린은 멍하니 아리를 바라봤다.

     

    “진짜 피곤한가 보다. 우선 밥 먹자.”

     

    “……어.”

     

    뭔가 평소랑 다른 듯한 아리의 반응에 세린은 얼떨떨하게 저녁 식사를 이어갔다.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세린은 계속해서 혼란에 빠져 있어야 했다.

     

    ‘왜?’

     

    그리고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아니, 혹시 처음부터 유화는 내게 그런 사심을 갖고 있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이 이어진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자꾸 유화의 행동이 떠올랐다.

     

    날 품에 안았고, 이후 내 입술을 강탈하듯 강압적으로 탐하였다.

     

    그리고 난 그걸 무방비하게 당해야만 했다.

     

    입을 맞출 땐 저항하려 했음에도 유화의 눈을 마주한 이후, 천적을 마주한 초식 동물처럼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유화는 바람처럼 홀연히 떠났다.

     

    ㅡ다음에 다시 만날 땐 조금 더 진지하게 대화하도록 해.

     

    그것도 너무 여유롭게 내게 말을 건네고선…….

     

    “언니. 진짜 오늘은 좀 빨리 쉬는 게 좋겠어. 되게 피곤해 보여.”

     

    “……응. 그럼 나 먼저 들어가 볼게.”

     

    “응, 오늘도 고생했어.”

     

    서윤이의 인사를 끝으로 돌아가려던 차, 내 눈엔 아리가 밟혔다.

     

    “세린아.”

     

    그리고 때마침 내게 다가오자, 나는 멍하니 아리를 바라봤다.

     

    ‘분명 아리는 유화랑 제대로 말을 나눈 것 같았는데.’

     

    “어. 왜 아리야?”

     

    “혹시 나랑 잠시 대화할 수 있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그래. 들어와.”

     

    말하면서 자연스레 아리와 함께 방으로 들어서게 됐다.

     

    조금 전 유화에 대해 말할 때도 마치 뭔가 아는 듯했으니까.

     

    ‘그럴 리가 없는데.’

     

    오직 나와 유화만이 아는 방송 도중 있었던 그 해프닝.

     

    철컥.

     

    그렇게 문을 닫고 멍하니 침상에 걸터앉았다.

     

    툭툭. 그리고 나는 자연스레 내 곁을 두드렸다. 그리고 자연스레 아리는 내 곁에 몸을 앉혔다.

     

    아리 특유의 보랏빛 머리칼이 신비롭게 내 시야를 장식하던 차.

     

    “되게 오랜만이지. 이렇게 너와 둘이서 얘기하는 건.”

     

    아리는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오랜만이지. 그래서 할 말이 뭐야?”

     

    “다름 아니야. 그냥 유화에 대해서 할 말이 좀 있어서.”

     

    “유화에 대해서…….”

     

    “응. 오늘 유화가 너한테 뭘 한 거지?”

     

    이후 거침없이 묻는 아리는 마치 확신하는 듯했다.

     

    나와 유화 사이에 있었던 그 야릇한 순간을.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

     

    나도 모르게 입술을 머뭇거렸다.

     

    “편하게 말해도 돼. 세린아, 나는 언제나 네 편인 거 알잖아?”

     

    그러다 들린 부드러운 말에 무심코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긴 이건 내가 고민하고 말 주제도 아니었다.

    애초에 아리는 언제나 내 편이니까.

     

    “……그렇지. 아리는 내 편이니까. 네 말대로 유화랑 나 사이에 일이 좀 있었어.”

     

    말하면서도 털어놓기로 했다.

     

    적어도 아리에게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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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살육에 미친 스트리머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being trapped in the game world for several years, I was transported back to real world. However, my appearance was exactly like that of the character in the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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