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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79

    ***

    갑작스러웠다.

    그런데 세린의 행동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됐다.

    “아리야.”

    직후 귓가에 들린 세린의 음성에 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따스했다. 그리고 좋았다.

    이렇게 맞닿으니까, 더 좋다는 걸 부정할 순 없었다.

    그간 지켜만 봤고 의도적으로 나는 선을 지켰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진심으로 만족하게 됐으니까.

    “……왜?”

    그래서 대답하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어놓은 선을, 세린이 직접 넘어오려 하니까.

    날 좋아해도, 그게 내가 지닌 감정으로 좋아하는 게 아닌 걸 아는데. 왜 이런 여지를 주는 행동을 하는 건지도.

    사뭇 알 수 없었다.

    “나도 아리, 너 많이 좋아해.”

    “…알아. 가족처럼 나 좋아하는 거.”

    답하면서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살며시 세린을 마주 안아가면서도, 그냥 이 순간을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네가 작정하고 날 꼬셨으면 아마 나도 널 다른 의미로도 좋아했을 거라 생각해.”

    하지만 연이어 들린 말에 나는 조금 놀랐다.

    그리고 새삼스레, 세린이 얼마나 신기한 여자인지 깨닫게 될 정도였다.

    “그래?”

    “응.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그 말은 지금은 아니란 것처럼 들리는데?”

    내가 장난스레 말하자, 세린도 옅게 웃음을 지었다. 

    서로가 아는 거였다.

    이미 너무 가까워졌다는 걸.

    그리고 그게 이제 다른 관계로 발전하기엔 내가 이미 그렇게 관계를 만들었다는 것도.

    ‘아마 서윤이랑은 느낌 자체는 달라도, 세린이는 분명 날 비슷하게 보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제 와서 내가 세린이에게 마음을 받아달라고, 부담을 짊어주는 건 도저히 해선 안 될 짓이었다.

    ‘그건 서윤이가 세린이에게 진심으로 고백하는 것과 거의 같은 의미를 지닐 테니까.’

    그래서 더더욱 이 상황에 만족하기로 했다.

    세린과 더 거리를 좁힐 수 있음에도, 여기서 만족하며 세린이의 곁에서 보내는 삶.

    그리고 이미 뉴튜버로서 자리 잡았고, 나 자신으로서 이 세상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게 된 삶도 꽤 좋았다.

    “……뭔가 있지. 아리야, 나 정말 복잡한 느낌이야.”

    “충분히 그럴 거라고 생각해. 어쩌면 지금 내 말로 네가 더 충격받았을 거라고도 생각하니까.”

    “솔직히 충격이었어. 네가 날 그렇게 생각할 거라곤 예상치 못했거든.”

    토닥토닥.

    살며시 내 등을 두드리는 세린의 손길을 받으며 나는 잔잔히 손길을 받아들였다.

    좋았다.

    그리고 기뻤다.

    ……상황이 어떻든, 세린이 날 안아주고 이렇게 내게 여러 마음을 토로하는 거니까.

    그 자체로 나는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세린에게 그만큼 뜻깊은 사람이 됐다는 게 순수하게 기뻐서.

    그래서 내가 행동해야 함도 알았다.

    스르륵.

    살며시 세린을 껴안아 가던 손을 풀어가면서도 조심스레 고개를 떼어내자, 자연스레 세린의 품에서 벗어나게 됐다.

    “아.”

    오히려 나보다 더 아쉽다는 듯 탄성을 내뱉는 세린을 보며, 순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세린아, 너 진짜 못됐다.”

    “……응?”

    “너 지금 나 유혹하는 거야?”

    “아니, 그게…… 그렇게까지 의미를 둔 건 아니지만. 아리야 그게…….”

    “됐어. 그래도 지금 네 행동이 나도 좋긴 했으니까. 아무튼, 이 상황에 만족하고 더 깊게 들어가고 싶지 않아. 우연히 내 마음을 밝혔다고 생각해. 이제 너도 내 마음이 어떤지 잘 알잖아?”

    자연스레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오면서도, 상황을 정리해갔다.

    왜 그간 여러 여자가 세린에게 얽매였는지.

    지금처럼 비정상적인 연애 관계를 구축한 건지도 자연스레 이해했다.

    ‘정말 이렇게 다 홀리고 다니니까 그렇지.’

    아무 여자나 지금처럼 대하지는 않았겠지만, 세린은 천성적으로 여지를 흘리고 다니는 건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내가 쐐기를 박아야 했다.

    “앞으로 평소처럼 우리 사이를 유지해도 나는 아무 변함이 없을 거야. 그래서 이참에 마음을 밝히고 싶기도 했어. 나중에 가서 괜히 이상해지는 것보단 이게 낫다고.”

    “정말, 정말 고마워. 아리야.”

    “그래. 그러니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으면 해.”

    나와 세린에 관한 얘기는 이걸로 끝이다. 내가 세린을 찾아온 가장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더 의견을 전하고 싶었다.

    혼란스러워하는 세린이의 마음을, 내가 조금이나마 도와주고 싶으니까.

    “……응.”

    조심스레 답하는 세린을 보며, 나는 여전히 생각이 크게 바뀌진 않았다.

    “나와 천류화는 아마 하나부터 끝까지 전혀 다를 거야. 내가 지금 생활에 만족한 것과 달리, 내가 본 천류화라면 널 어떻게든 가지려 할 테니까. 다소 힘을 쓰는 한이 있더라도 난 분명 그렇게 행동할 거라 생각해.”

    “…….”

    내 말에 귀를 기울인 세린을 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천류화니까.’

    과거 시련에서 그녀와 마주쳤고, 급박한 순간 속에서 여러 감정의 교류를 나누었다.

    비록 세린이 만큼은 아니더라도 좋은 마음을 가졌던 게 바로 천류화였다. 오늘 재회하고 천류화에 대해 더 알게 된 것도 난 솔직히 너무 기뻤다.

    ‘그래도 나는 세린이를 더 우선시하겠지만.’

    굳이 세린이에게 간섭하며, 말을 건네는 건 모두 그런 이유였다.

    천류화가 이 세상에서 마기라는 기운은 다루지 못한다고 해도, 성정이 바뀔 인물은 아니었다. 그야 내가 본 인간 중 가장 강한 인간이자, 가장 자기주장이 확고했으니까.

    그리고 그게 바로 천류화니까.

    그녀가 스스로 뜻을 굽히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럴 때일수록 세린이 네가 더 바로 행동해야 해. 천류화가 어떻게 널 대하든 간에 네 마음이 제대로 중심이 서 있다면, 난 아무 문제도 안 될 거라고 보거든.”

    “그렇……겠지.”

    이해하지만 힘들다는 반응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금 내 말로 인해서 더 혼란스럽지?”

    끄덕.

    조금 민망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세린이 귀엽다 싶으면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결국, 천류화가 이 세상에 있는 것도 다 네가 좋아서니까. 다른 세상에서 이룬 모든 걸 포기할 만큼 널 우선시했기에 이 세상에 있을 거야.”

    “지금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 만큼, 세린이 네 행동은 천류화에겐 하나하나가 전부 다르게 보일 거야.”

    “내 행동이?”

    “나는 천류화에게 네가 분명 처음일 거라 생각해. 자신이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던 사람, 그리고 원함에도 도저히 이룰 수 없던 것은 분명 너뿐이었을 거야.”

    이건 짐작이지만, 천류화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러리라 생각했다.

    다른 남자라던가, 아니면 다른 여자가 마음에 들었다면 천류화가 그렇게 세린에게 헌신적인 무언가를 보이지 않았을 거였다.

    지난 시련을 마주하며 세린의 몸에 강신해 있음에도 모든 걸 다 걸려고 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건 오직 그녀의 마음이 향한 방향이 세린이었다고.

    “……이해했어.”

    “그리고 유화는 분명 다음에는 더 강하게 행동하겠지.”

    “…….”

    연신 수긍하는 세린을 보며 나도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아마 천류화가 아닌 다른 여자였다면, 내가 조금도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겠지만 지금은 세린이의 마음을 우선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언제나 그랬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네가 천류화를 받아들일 건지, 아닐지. 나는 바로 정해야 한다고 생각해.”

    “바로 정하라니. 그게 어떻게 쉽게 되겠어…….”

    “하지만 초반에 바로 잡지 않으면, 천류화가 이후에 무슨 행동을 할지 확신할 수 있어?”

    멈칫.

    “아리야. 아무리 그대로 무슨 행동을 한다니.”

    순간 부정하는 세린의 모습에 더 강경하게 말을 이었다.

    “세린아, 내가 왜 지난 너의 연애 관계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하고, 지금은 이렇게 너에게 간섭하려 들겠어? 너도 진지하게 생각하면 알잖아.”

    천류화는 바로 예측할 수 없는 존재니까.

    같은 인간임에도 그녀는 무척 이질적인 존재였다.

    ‘천마’라는 게 어떤 건지 이 세상의 지식으로 이젠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존재인 건지 이젠 더 안다.

    그런 천류화에게 상식을 바라거나, 합리적인 행동을 바라고 있다간 나는 분명 늦는다고 생각했다.

    만에 하나의 일이 터진 후엔 제대로 대처할 수 없을 거라고.

    꿀꺽.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세린이 침을 삼키며 긴장하자, 나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네 마음을 제대로 정해. 천류화를 받아들일 거면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받아들이고, 거절할 거면 아예 작은 여지조차 주지 않아야 해. 오늘 네가 나한테 행동한 것처럼은 절대 행동해선 안 돼. 지금 내 말 알겠어?”

    “……알겠어. 네가 뭘 걱정하는지도 완전히 이해했어.”

    “그래, 그럼 나도 더 말하지는 않을게.”

    스륵.

    살며시 세린의 손을 한차례 힘주어 잡곤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이제 더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했다.

    “그럼 그만 가볼게. 이미 밤이 늦기도 했고…… 세린아, 신중하게 그러면서 네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길 바랄게.”

    “고마워.”

    마지막 세린의 답을 끝으로 방을 빠져나왔다.

    철컥.

    거실은 어두웠다.

    그리고 그걸 눈에 담으며, 나도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어떻게 될까.’

    나도 이번만큼은 세린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천류화를 받아들일지, 거절할지.

    그런데도 세린의 선택이 가장 중요한 건 분명했다. 이후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되든 세린이 결과에 책임져야 하니까.

    “다 같이 친해졌으면 좋겠는데.”

    개인적으로는 세린이 천류화를 받아들였으면 했다.

    그렇게 되면 현재 연애 중인 세 여자와의 관계가 완전한 아수라장이 되겠지만, 그게 천류화를 거절하는 미래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혼돈…!
    파괴…!
    천류화인 겁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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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살육에 미친 스트리머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being trapped in the game world for several years, I was transported back to real world. However, my appearance was exactly like that of the character in the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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