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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80

     

     

     

    ***

     

     

     

    1월 21일 금요일.

    새벽 5시.

     

    아직 겨울이 다 가시지 않아 쌀쌀한 새벽과 아침의 경계.

     

    그 속에서 나는 세린은 이불을 덮은 채, 멍하니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결국 밤새버렸네.”

     

    툭 울린 힘없는 음성이 대기를 떠돌다 아스라이 흩어졌다.

     

    지난밤 사이.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아리와 나눈 대화는 그만큼 충격이었고, 내가 정말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천류화에 관한 생각이 아리에 대한 사실로 뒤덮이듯 충격받았고, 끝에선 다시 천류화로 생각이 귀결되었다.

     

    “……하아.”

     

    짙은 숨을 토해내면서도 멍하니 제 얼굴을 한차례 쓸어내렸다.

     

    오늘도 새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데, 잠을 잤어야 했는데. 그런데 고민이 너무 크니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지금조차…….

    고민이 끝나지 않았으니.

     

    “진짜 어쩌지.”

     

    말하면서도 마음이 멍했다.

     

    머릿속도 멍한데, 마음도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아리가 큰마음 먹고 날 도와주기 위해 여러 말을 한 걸 텐데.

    그것도 굳이 내게 간섭해올 만큼, 유화는 일반 사람과도 전혀 다르다는 것도 강조했다.

     

    그녀는 갖고 싶으면 그게 무엇이든 가져야 하는 성격이었고,

    실제로 그녀는 줄곧 그런 삶을 살아왔다.

     

    천마라는 지고한 위치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았고 권력과 부 중원에서 그녀는 가질 수 있는 모든 걸 가지며 살았다.

     

    심지어 황제마저 무릎 꿇렸을 정도니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그리고 그런 유화가 지금은…….’

     

    날 원하고 있다.

     

    나를 가지고 싶어 하고, 어제 내게 돌연 자신의 마음을 밝히며 내 입술을 훔쳤다. 단 하루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충격의 연속이었다.

     

    부스럭.

     

    멍하니 몸을 뒤척이면서도 자꾸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내 마음 그리고 내 선택이 중요하다고…….”

     

    아리의 말에 이해는 했다.

     

    유화가 내게 지닌 마음과 별개로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나라고, 그런 유화에게 내가 어떻게 행동하냐에 따라 모든 게 바뀔 거라고.

     

    그러니까, 내가 선택해야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갑자기 좋아한다고 해도 말이야.”

     

    나로선 오히려 유화가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뭐 연인과의 관계를 숨기고, 유화를 유혹하고 그랬으면 몰랐다.

     

    그런데 나는 그 전에 이미 내 연인을 소개했고, 내가 현재 얼마나 복잡한 관계에 있는지도 다 밝혔다.

     

    일반적으로 세 명의 여성과 사귄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일까.

     

    “말도 안 되는 건데.”

     

    나조차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심지어 세 사람과 합의를 본 채 사귀고 있었다.

     

    그리고 유화는 그런 내 상황을 알면서 갑작스레 내게 마음을 고백해왔다. 마치 선전포고하듯 자신의 마음을 내게 밝히곤 그대로 떠난 거였다.

     

    사르륵.

     

    거칠게 머리칼을 쓸어올려 가면서도 눈가가 흐려졌다.

     

    “정말 막무가내야.”

     

    다른 사람은 절대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상황을 다 알면서 거기서 마음을 표현한다니.

     

    그런데 한편으론 또 유화를 이해할 여지가 있기도 했다.

     

    “…같은 마음이라고 했지.”

     

    아리가 내게 숨기고 있어도 될 마음을 밝힌 이유.

     

    그건 유화가 어떤 마음인지 아리가 이해하고, 내게 제대로 말해주려 했기 때문이었다.

     

    가볍게 생각하거나, 그냥 넘어갈 생각하지 말고 제대로 답을 하라고.

     

    아리는 그런 의미로 내게 말한 거였다.

     

    세상을 넘어서까지, 그리고 본래 가지고 있던 수많은 걸 포기하고 이 세상에 올 만큼 마음이 크니까. 더 진지하게 생각해달라고.

     

    ‘아리도 분명, 유화를 좋게 생각할 테니까.’

     

    시련에서의 인연은 결코 작은 인연이 아니었다. 그만큼 아리도 유화에게 지닌 내적 친밀감이 아주 큰 거였다.

     

    그런데도 날 더 좋아하기에, 내게 제대로 대화의 시간을 갖고 여러 말을 해왔다.

     

    “내가 잘 선택했으면 해서.”

     

    그래, 그러니까 내게 어제 말한 거였다.

     

    나도 이젠 모두 알았다.

    이렇게 진지하게 상황을 파악하면 할수록, 내가 얼마나 복잡한 상황에 놓인 건지 더없이 이해했다.

     

    그런데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거랑.

    그 후에 어떻게 행동할지는 또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이해한다고 해서 내가 뭘 해야 할지 쉽게 답이 나오는 게 아니니까.’

     

    툭. 툭.

     

    제 뺨을 두드려가면서도 여러 선택에 관한 결과가 떠오른다.

     

    “……유화를 받아들여도, 거절해도 다 이상하겠지.”

     

    사실 상황을 이해하면 유화를 거절하기는 힘들었다.

     

    그녀가 얼마나 큰 각오와 결심을 굳히고 이 세상으로 온 걸까.

    얼마나 날 생각하고 있을지 돌이켜 보면, 유화는 내게 정말 큰마음을 갖고 있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그 마음을 거절하면, 나는 마치 유화의 삶 자체를 부정하는 것 같았다.

     

    중원에서 모든 걸 이뤘던 그녀가,

    날 선택하기 위해 모든 걸 버렸는데 나는 그걸 부정하는 거니까.

     

    “그렇다고 해서 유화를 받아들이는 게…….”

     

    정말 답이 될 수 있을까.

     

    개인적인 감정으론 유화는 정말 특별한 존재였다.

     

    사랑하느냐, 마느냐를 떠나 그 이상으로 본질적으로 내겐 정말 소중한 사람.

     

    좋게 보면 가장 절친한 친구가 되길 바랐고, 그게 어제 유화의 행동으로 깨져버린 지금 극단적인 선택이 남았다.

     

    ‘연인이 되느냐 아니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느냐.’

     

    유화의 성격상 친구로 남는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천마인 그녀가 날 가지지 못한 채 내 곁에 머문다는 건 우스갯소리로도 상상이 안 가니까.

     

    “……하아.”

     

    짙은 숨을 토해내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뭐가 계기인지, 왜 이렇게 된 건지 다 모르겠다.

     

    그런데 일은 벌어졌고, 나는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유화를 받아들이면 현재 연애 중인 세 사람과의 마찰도 피할 수 없고, 나도 굉장히 곤란해진다.

     

    거절하면 유화가 뭘 할지 모르고, 내 마음이 유화를 거절하는 걸 굉장히 힘들어한다.

     

    그녀가 얼마나 큰 선택을 하고 날 찾아온 건지 아니까…….

     

    그리고 아리가 우려하는 것처럼, 내가 거절하면 유화가 이후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스륵.

     

    불쑥 상체를 일으키곤 제 뺨을 찰싹 두드렸다.

     

    “……결국 답은 하나네.”

     

    그런데도 답은 보이긴 했다.

     

    내가 뭘 선택해야 옳고, 이후에 후회하지 않을지.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뭘 택해야 옳은 건지.

     

    깊은 고민 사이로 내 마음이 서서히 기운 거였다.

     

    다 고르기 힘든데도.

    그중 내 마음이 향하는 선택지.

     

    “우선 만나자.”

     

    다시 만나서 제대로 얘길 나눠보고 싶었다.

     

    오늘은 오전 시간은 유화랑 어떻게든 만나서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았다.

     

     

    …….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사락.

     

    걸음을 내디디면서도 마음은 긴장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익숙한 복도를 바라보면서도 작은 입김이 새어 나왔다.

     

    “……정말 날 좋아한다면.”

     

    적어도 나와 제대로 대화하려 할 것이다.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내 행동을 받아주려 할 것이다.

     

    스스로를 그렇게 다독이며 걸음을 옮겼다.

     

    사락.

    사락.

     

    그렇게 도착한 천류화의 오피스텔 문 앞.

     

    아침에 만나자고 미리 톡으로 말을 나눴기에 문제는 없지만, 이상하게 떨렸다.

     

    벨을 누르기 위해 손을 올리는데, 자꾸 주저가 된다고 할까.

     

    ‘나는 정말…… 제대로 마음을 굳혔을까.’

     

    천마라는 이름이.

    갑자기 내 마음을 짓누르는 듯했다.

     

    내 말로 그녀와 제대로 된 합의를 볼 수 있을지 아닐지 자신이 서지 않으니까.

     

    그런데 이건 내가 해결해야 했다.

     

    @#$%.

     

    이후 벨이 울리고 머지않아 문은 열렸다.

     

    “어서 와. 세린아.”

     

    “……응.”

     

    “그래도 이렇게 빨리 날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씨익 웃는 유화는 꽤 가벼운 옷차림으로 아무렇지 않게 날 바라봤다.

     

    마치 어제 내게 행동한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태연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여유롭다.

     

    “우선 제대로 말을 나눠보고 싶어서.”

     

    “그것도 좋지.”

     

    그렇게 현관으로 들어서자, 서서히 닫히는 문소리가 내겐 유난히 크게 들렸다.

     

    스륵.

     

    살며시 신고 있던 부츠를 벗어가면서도 마음이 더 크게 두근거렸다.

     

    ‘이제 단둘이야.’

     

    유화가 내게 뭘 하려고 하면, 사실상 지금의 나로선 저항할 수 없다.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처럼, 지금 나는 스스로 호랑이의 굴로 들어간 것과 같다.

     

    유화가 원하는 나를, 직접 그녀 앞에 찾아온 거니까.

     

    “음료는 뭐가 좋아?”

     

    “……과일 주스 아무거나.”

     

    “그래, 거실에 앉아 있어.”

     

    태연하게 말하는 유화에 삐걱대듯 고갤 끄덕이곤 거실 소파에 몸을 앉혔다.

     

    그리고 익숙한 내부를 둘러보면서도, 느낌이 전혀 다르다는 걸 알았다.

     

    ‘전엔 그저…… 편했었는데.’

     

    이젠 이 자리에 있는 게 가시방석에라도 앉은 듯했다.

     

    그런데 지금 제대로 마주하지 않으면, 나는 훗날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찾아왔다.

     

    좋든 싫든, 유화와는 반드시 말을 나눠야 하니까.

     

    “후우.”

     

    긴장을 풀고자 숨을 골라 가면서도 괜스레 제 손을 어루만졌다. 손이 좀 차가웠다. 겨울 날씨도 겨울 날씨인데 내 몸이 경직된 느낌이 더 컸다.

     

    착.

     

    그때 테이블에 트레이가 놓였다.

     

    “자. 여기.”

     

    “고마워…….”

     

    “그래, 천천히 긴장 풀고 말해 봐. 네가 날 먼저 찾아왔으니까, 나도 천천히 말을 들어줄게.”

     

    여유롭게 웃는 천류화는…….

    정말 이질적일 만큼 아름다웠다.

     

    마치 자신 있다는 듯.

     

    내가 자기를 받아들일 거라는 절대적인 자신과 도도함이 보인다.

     

    질끈.

     

    그게 조금 마음에 안 들었다.

     

    ‘난 이렇게 계속 고민하고, 지난 밤사이 조금도 잠을 못 잤는데…….’

     

    그런 나에 비해 유화는 너무 태평한 것처럼 보이니까.

     

    스륵.

     

    하지만 생각과 달리 나는 음료로 목을 한차례 축인 후 아주 조심스레 컵을 내려놓았다.

     

    “유화야. 나는 서로의 입장에 대해 더 제대로 인지해야 한다고 생각해.”

     

    “입장에 대해……?”

     

    “응.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그리고 너도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 말이야.”

     

    “그래, 어디 한번 말해봐. 나는 이미 내 마음을 굳혔으니까. 무슨 말을 해도 내 마음이 바뀌진 않을 거야.”

     

    도도하게 답하는 유화를 보며 눈가가 흐려졌다.

     

    ‘진짜…….’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이상하리만큼 비겁하게 느껴졌다.

     

    유화가 지닌 저 여유로움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모두 주말 잘 보내는 겁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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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살육에 미친 스트리머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being trapped in the game world for several years, I was transported back to real world. However, my appearance was exactly like that of the character in the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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