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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83

    ***

    우우웅ㅡ!

    묵직한 엔진음과 함께 페라리가 도심을 시원하게 질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페라리에 탑승하고 있던 두 여성은 상반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미안. 수아야.”

    세린이 힐끗 수아의 눈치를 보듯 말을 건네자, 운전하고 있던 수아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언니, 정말 미안하기는 해요?”

    “그, 그럼. 내가 얼마나 미안한데.”

    “저는 이해해요. 같은 스트리머고, 언니가 이번 주에 얼마나 큰 부담을 느꼈을지 상상은 가니까…… 그래도 약속은 약속인데, 조금 서운하긴 해요.”

    “진짜 미안. 앞으론 이런 일 없도록 할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 무리했나 봐.”

    세린이 면목 없다는 듯 연신 말을 건네자, 수아도 조금은 삐딱한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 살며시 차창에 팔을 기댄 채 세린을 힐끔 바라봤다.

    다급히 꾸민 티가 역력하다.

    당장 메이크업도, 머리칼 정리도 다 혼잡한 느낌.

    그것만으로 세린이 얼마나 바쁘게 준비했는지 곳곳에서 다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도착하면, 다른 두 언니한테는 다시 사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제 전 괜찮아도 두 언니도 조금은 서운해할지 모르잖아요.”

    “그, 그렇게 할게.”

    다급히 고갤 끄덕이는 세린이 뭔가 귀엽다고 생각한 수아는 픽 웃으며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도 진짜 중증이라니까.’

    새삼 자각했다.

    내가 얼마나 세린 언니를 좋아하는지.

    지금 이 상황은 분명 화를 낼 만한 상황이 맞다. 그리고 실제로 나도 언니에게 화가 났음에도 그게 거짓말처럼 풀린다.

    이게 그저 연애 초기라서 그럴까.

    저렇게 흐트러진 세린 언니의 모습조차 그냥 바라보면 화가 사라져간다.

    스르륵.

    신호에 맞춰 서서히 차를 멈춰 세운 수아는 자연스레 세린에게 시선이 갔다. 부드럽게 차를 운전해 가면서도 역시 주말은 꽤 막힌다고 생각했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길이 좀 막히네요.”

    “…그러게.”

    “너무 그렇게 기죽어 있지 마요. 저 언니 탓하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정말 차가 막혀서 그런 거니까. 아무튼, 느낌은 어땠어요?”

    “느낌?”

    “이번 주에 처음으로 캠방하셨잖아요. 세린 언니 소감을 한 번 직접 듣고 싶어서요.”

    싱긋 웃으면서도 솔직히 정말 궁금하기도 했다.

    실시간 시청자 수가 무려 100만 명 돌파했다.

    월요일 첫 캠방 당시 내가 본 기억으론 140만 명까지 시청자 수를 찍을 뻔하다, 아슬하게 138만 명이란 최고 시청자 수를 기록하고 방송이 끝난 걸로 안다.

    ‘언니가 조금만 더 방송했으면, 무조건 140만 명을 찍었을 텐데.’

    정말 언니 방송이 내 방송도 아닌데, 난 그때 굉장히 아쉬웠던 기억이 있었다.

    월요일 당시, 마치 역사의 한순간을 내 눈으로 바라본 듯한 기분마저 들었으니까.

    “……글쎄, 나는 월요일 당시엔 그냥 얼떨떨했어. 방송 초반에는 정말 크게 당황해서 얼타기도 했고. 그 후에 은하 씨 후원에 정신을 좀 차렸고, 네 후원도 꽤 도움이 됐어. 생각하면 끝에서 유정 씨마저 거액의 후원을 하실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그때 저도 방송 보면서 정말 걱정했다고요. 언니가 막 방송 사고 터트리는 건 아닌가 싶었어요.”

    “에이…… 그래도, 나 중간부턴 제대로 정신 차렸어.”

    스륵.

    바뀐 신호에 다시 차를 몰아가면서도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서 이제 언니, 캠방은 다 적응했어요?”

    “아니, 아직은 좀 묘해. 적응했다기엔 어제도 방송 진행하다 중간에 멈칫하기도 했으니까.”

    조심스러운 언니의 말에 나도 공감은 갔다.

    내가 아무리 가면을 쓰고, 시청자들을 대하는 방송 태도가 있다지만. 처음 캠을 켜고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게 마냥 쉽진 않았으니까.

    “저 그래도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언니 조명이라던가 캠 세팅마저 다 본격적으로 하신 거 보고 좀 놀랐어요. 솔직히 전 언니 캠이 무조건 실물보다 못할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아니, 수아야. 그거야 어려울 게 있어? 전에 네가 전에 나랑 합방할 때 캠 세팅조차 다 해주고 갔잖아. 나야 조명만 따로 켰으니까, 캠 설정조차 건드릴 게 없었어.”

    “아, 맞다 그랬었죠? 생각하면 전에 합방했었으니까, 으응. 맞네요. 그랬겠네요.”

    긴가민가한 사실을 떠올려 가면서도 이따금 언니에게 시선이 갔다.

    딸깍.

    무심코 자율 주행 모드를 켜게 될 만큼, 자꾸만 언니에게 시선이 갔다.

    ‘진짜 이 언니는 왜 만날 때마다 더 예뻐지는 건지 모르겠어.’

    이미 오늘 늦잠에 대한 화는 다 풀린 건 물론이거니와 그저 세린 언니에 관한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왜 그렇게 봐?”

    “……그냥, 새삼 유전자가 사기다 싶어서요. 메이크업도, 헤어 스타일링도 대충했는데 뭐가 그렇게 예뻐요?”

    “아니, 갑자기 그런 말을 해?”

    실소하는 세린 언니를 보며, 나는 이상하리만큼 진심이었다.

    “예쁜 걸 어떡해요. 그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자꾸 더 예뻐 보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주는 세린 언니랑 단 한 번도 데이트하지 못한 만큼 더 시선이 갔다.

    “그래서 언니들 만나면 무슨 얘기 할 거예요?”

    “글쎄, 이번 주는 나 때문에 다 만나지 못했으니까, 서로의 근황 얘기나 하며 같이 영화 정도 보지 않을까 싶은데.”

    “그것도 그렇겠네요. 아무튼, 이렇게 오랜만에 언니 보니까 되게 좋네요.”

    “내 방송 봤다며, 그럼 얼굴은 매일 봤을 거 같은데.”

    “방송으로 보는 거랑 실제로 보는 게 어떻게 같아요. 언니도 참…….”

    되도 않는 소리에 웃으면서도, 불현듯 시선이 갔다.

    ‘언니도 요즘 되게 정신이 없긴 한가 보구나.’

    아무래도 자기가 늦잠 잤다는 사실이 정말 미안한 건지, 연신 양손을 맞잡은 채 꼼지락거리는 데 그런 언니 모습이 나는 괜히 신기해 보였다.

    뭔가 내가 아는 평소의 언니랑 좀 다르게 보인다고.

    ***

    두근.

    두근.

    오늘 약속 장소인 은하 씨의 오피스텔로 향하는 내내, 세린의 가슴은 크게 두근거렸다.

    ‘오늘 말해야…… 하지 않을까.’

    자꾸만 내 마음이.

    그리고 내 생각이.

    현실 도피하려 한다고.

    안 그래도 늦잠을 자서 약속 시간마저 어겨버린 내가, 세 사람에게 유화와 관해서 설명하는 건 무리라고, 그러니까 유화와 관한 건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 마음을 추스르는 게 어떻겠냐고.

    마치 악마가 내게 그리 속삭이는 듯했다.

    “…….”

    꼼지락꼼지락.

    연신 제 손을 만지작대면서도 마음은 자꾸 혼란스러웠다.

    이미 유화에 대한 내 마음은 다 결정해놓고, 정작 세 사람에게 알려줘야 할 거대한 폭탄의 시간제한을 어떻게든 늘려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그건 그 자체로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행동이고, 세 사람을 속이는 일과 같다.

    그리고 그걸 아는데.

    정작 사실을 밝히는 것도 너무 무서웠다.

    “……세린 언니.”

    “으, 응?”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요? 오늘따라 언니 모습이 좀 전이랑 달라 보이는데, 뭔가 불안해 보여서요.”

    그러다 수아가 조심스레 묻는데, 나는 다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래요? 혹시라도 고민 있으면 편하게 말해요. 제가 뭐든 들어줄 테니까요.”

    싱긋 웃는 수아는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답고 또 귀여웠다.

    그리고 날 생각해서 저렇게 말해주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수아가…… 가장 크게 화낼 것 같은데.’

    유화에 관해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상황이 어떤지 밝히면 가장 크게 낼 사람이 역설적으로 수아로 느껴져서 더 마음이 심란했다.

    “고마워, 수아야.”

    그런데도 내 마음과 달리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에이, 언니 연인이니까. 이런 걸로 고마워하지 마요. 전 언제나 언니가 최우선이니까요.”

    “으, 응…….”

    대답하면서도 순간 깨달았다.

    내가 지금 무슨 어떠한 상황인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관계를 맺으려 하는지도.

    ‘이거 그냥…….’

    바람피우는 거 아닌가?

    애초에 세 사람과 동시에 사귄다는 것부터 너무 터무니없는 현실을 내 멋대로 만들어놓은 건데.

    여기서 천류화와 더 관계를 늘리면, 그것도 아직 밝히지 않은 상황인 걸 감안하면 나는 굉장히 해선 안 될 짓을 하고 있었다.

    세 사람에게 집중해도 과분한 사랑을 받는데.

    그걸로 모자라 또 여자를 늘리는 거니까.

    꿀꺽.

    침을 삼켜가면서도, 마음에 쇳덩어리가 놓인 것처럼 무거웠다.

    여전히 악마는 내게 유화와의 관계는 그냥 비밀로 하라고 속삭이고 있었고,

    내 마음은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뭐가 옳은 거고,

    뭐가 나은 걸까.

    유화와 내 사이에 대한 진실을 밝혀도, 그리고 그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 내 마음이 심란한 건 매한가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익숙한 오피스텔의 지하 주차장에 들어서게 됐다.

    바로 은하 씨가 머문 오피스텔의 지하에.

    착.

    그렇게 차를 멈춰 세운 수아를 보며, 나도 자연스레 안전벨트를 풀었다.

    “세린 언니.”

    “……어, 수아야.”

    차를 내리려던 차 불현듯 들려온 소리에 고갤 돌렸다. 그곳엔 날 강렬하게 응시하는 수아가 보였다.

    그 시선에 내가 흠칫하자, 수아는 자연스레 내게 몸을 기울여왔다.

    “수아야……?”

    “언니는 가만히 있어요.”

    야릇하게 속삭인 수아가, 단숨에 내 얼굴을 붙잡고 키스해오는데 나는 순간 거절할 수 없었다.

    “우읍……!”

    마음이 심란해서 그럴까. 본래라면 태연하게 키스를 받아들였을 텐데도, 오늘은 수아에게 마치 덮쳐지듯 키스당하고 있었다.

    “……?”

    키스하는 수아의 눈이 일순 의문을 품었지만, 내가 뒤늦게나마 키스를 호응해가자 이내 그 의문은 사라졌다.

    쪼옥…… 쪽…….

    얽히는 서로의 혀와 타액. 그리고 끈적한 키스의 소리가 차 내부를 울리는 것도 잠시, 수아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살며시 내게서 멀어져갔다.

    “히히.”

    그리고 행복하다는 듯 헤실헤실 웃는데, 나는 입술을 훔치면서도 조금 멍했다.

    “수아야, 너…….”

    “에이, 올라가면 제가 언니랑 언제 키스해요. 이럴 때 키스해야죠. 그리고 조금 짜릿한 거 있죠? 지금 두 언니 모르게 저만 언니를 독점한다는 거.”

    새침하게 내게 말하는 수아를 보며, 나는 순간 답이 보였다.

    ‘이건…….’

    머리가 복잡할 땐.

    몸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유화와 관련해서도 답은 그렇다고 생각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나는 그냥 인간 최저의 쓰레기밖에 안 된다고…….

    그리고 나조차 나를 이미 쓰레기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하자.’

    내가 더 쓰레기가 되더라도, 아예 욕심을 부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 가질 거라면, 차라리 당당하게 다 가지라고.

    유화까지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은 지금, 내가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순간 우리 관계는 더 파탄 날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중간한 쓰레기가 될 거라면…

    희대의 악녀가 되는 것입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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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살육에 미친 스트리머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being trapped in the game world for several years, I was transported back to real world. However, my appearance was exactly like that of the character in the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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