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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85

    ***

    “아뇨. 저는…… 유화에 대해 세 분을 설득하고자 이 자리에 있는 거니까요.”

    진심으로 설득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말을 꺼낸 나조차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이미 충격받은 은하 씨의 표정도 보이는 데다, 내 말에 설마 하는 표정을 짓는 수아도 보인다.

    유정 씨 역시 어안이 벙벙한 듯 순간 입술을 뻥긋거린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알았다.

    진심이든, 아니든 간에.

    이건 연인에게 할 짓이 아니라고.

    그런데…….

    ‘어쩔 수가 없어.’

    거짓으로 세 사람을 속이고 유화에 관한 관계를 말하지 않는 건 더 힘들어서 내가 택할 수 없었다.

    좋아하니까.

    지금 이렇게 세 사람을 마주하며, 내가 얼마나 세 사람을 좋아하는지 더 확실히 느껴지니까.

    그래서 역설적으로 숨길 수 없었다.

    내 마음도.

    내 상황도 이해를 바랄 수 없다.

    누가 나 같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천류화를 내가 외면하고, 그녀의 마음을 거절하기엔 나는 앞으로 계속 후회할 것 같았다.

    날 위해서 이 세상으로 온 두 사람.

    아리는 내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의 마음을 그저 내 곁에 있는 것으로 접어두었다.

    유화는 아리와 달리 자신의 마음을 절대 억누를 생각도,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녀는 오직 날 보기 위해 세상마저 넘어서 온 거니까.

    “……세린 언니.”

    “세린 씨.”

    수아와 유정 씨가 동시에 나를 불렀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 양옆에 있는 두 사람과 시선을 교류하면서도 조심스레 웃었다.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나도 알아요. 나도 계속 고민하고 번민했어요. 사실 지난 이틀간 저도 계속 잠을 못 이룰 만큼 유화에게 들은 고백에 대한 충격이 컸으니까요.”

    “그럼. 그냥…… 거절하면 되는 거잖아요. 세린 언니, 대체 뭐가 어려워요? 뭐가 그렇게 어려워서 고민까지 하는 거예요?”

    내게 다그쳐 묻는 수아의 눈은 더없이 차가웠다.

    “세린 씨. 저 진짜 세린 사랑하고 좋아해요.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저희 셋이서 세린 씨를 공유하더라도, 그거조차 이해했어요. 그런데 수를 늘리겠다는 건 저도…….”

    그에 반해 유정 씨는 내게 호소하듯,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왔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마음 모두 이해가 됐다.

    어제조차 오늘 아침까지 계속 고민했을 만큼, 나도 수없이 고민했기에 알았다.

    그만큼 내 상황이 비정상적이란 걸.

    그리고 그런 두 사람에 비해 아무런 말 없이 날 바라보는 은하 씨의 두 눈도 내 눈엔 보였다.

    충격을 받은 듯, 그런데 마치 날 이해한다는 듯 아무런 말조차 잇지 못하는 은하 씨가…….

    “…….”

    나도 쉽사리 말을 잇기 힘들었다.

    돌을 던졌고, 그걸 회수할 마음도 없다.

    그러면 더 밀고 나가야 하는데. 그게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우스우니까.

    내가 세 사람을 바라보며 내 마음만 내세우려는 게 그저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나조차 이해하기 힘드니까.

    그런데.

    나는 해야 했다.

    “저도 제 입장만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게 면목 없어요. 이미 이렇게 비정상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더 무리를 요구하는 거니까요.”

    애써 말을 이으면서도, 마음이 힘들었다.

    상황이 쉽고 어려운 걸 넘어서 여러 부하가 느껴질 정도였다.

    ‘하아…….’

    사랑이라는 게 이런 거였을까.

    “그래서 세린 언니. 지금 하고 싶은 말이 그 천류화라는 사람을 우리가……받아줘야 한다는 말이에요?”

    차가운 수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가로젓지도 못했다.

    “세린 씨, 저희가 대체 어떤 마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 함께 모였는지 아시잖아요. 아니, 애초에 저희가 사귀기 시작한 지 이제 얼마나 지났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리고 날 다그치는 게 아닌, 조심스러운 유정 씨의 물음에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답이 없는 문제였다.

    그런데, 현실이 그랬다.

    답이 없는 문제를 이 현실이 내게 답을 구하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

    시야가 좀 어지러웠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멍하니 누르면서도, 미미하게 숨을 내쉬었다.

    ‘내 마음이 모순인 거겠지.’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사랑은 더더욱 그런 거라 생각했다. 서로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힘든 거라고.

    그런데 난 그걸 완전히 무시했다.

    나만의 사랑을 세 사람에게 강요했고, 그로 인해 지금과 같은 관계를 구축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내 마음을 또 강요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걸 어떻게 말할까.’

    내 입장에서야 유화는 내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주었고, 날 위해 자기가 가진 모든 것마저 포기하고 이 세상으로 온 사람이었다.

    심지어 내가 블랙 아크라는 세상에서 보낸 시간을 유일하게 증명해주는 존재였다.

    유화의 특별함을, 세 사람에게 이해시킬 순 없는 거였다.

    그건 내 상황이니까.

    그러니까…….

    더없이 약해지려는 마음을 억지로 뒤집었다.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잘 알아요.”

    나는 더 뻔뻔해져야 했다.

    흔들리는 눈빛을 굳혀가면서, 말하는 것에도 힘을 담는다.

    그리고 세 사람을 다시금 찬찬히 마주쳐가며 단호하게 마음을 굳혀나갔다.

    ‘할 거면, 확실하게 해.’

    미안해하지도 말고, 세 사람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생각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기적으로 행동해놓고, 미안해하는 게 뭐 하자는 걸까.

    “그러니까, 나는 유화를 더 포기하지 못하겠어요. 나한텐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세 사람만큼. 유화도 소중해요. 내가 동정이나 연민으로 유화를 좋아하거나, 받아들이려 하는 거라면 나도 이러지 않았겠죠.”

    “세린 언니!”

    “세린 씨…….”

    소리친 수아의 음성과 힘이 빠진 유정 씨의 음성에 오히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두 사람도 나 알잖아요? 그리고 지금 말이 없는 은하 씨도 잘 알 거예요. 내가 얼마나 막무가내인 사람인지, 그리고 자기감정을 우선시하는 사람인지. 그런데 나 하나만 보기 위해서 살아가려는 유화를, 내가 내 손으로 뿌리치질 못하겠어요.”

    “그럼 진짜…… 같이 사귀자고요? 그 천류화라는 사람도 우리 관계에 넣겠다는 거네요?”

    “맞아. 수아야, 나 그러려고 해.”

    “하. 그럼 나중에 가선 또 다른 여자를 넣겠네요? 이젠 또 누가 마음에 든다. 또 누구를 포기하지 못하겠다는 말로 지금 이 비정상적인 관계에 다른 여자를 또 추가하면 되겠네요. 그것도 모두 세린 언니 마음이니까요.”

    뼈를 쑤시는 듯한 차가운 말로 날 노려본다.

    그리고 나는 독기 어린 수아의 눈을 마주하며 다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웃으면 안 되는데.

    이상하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해, 지금 내 행동이 그렇게 보일 테니까.”

    질끈.

    내 말에 입술을 깨무는 수아를 보며,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게 나니까.

    그리고 나는 약속을 깨트렸다.

    내가 세 사람과의 관계에서 약속을 깨트리고, 내 멋대로 유화를 받아들이려 하는 거니까.

    “……그렇게까지 유화라는 사람이 소중한 거예요?”

    유정 씨가 체념한 듯 묻자, 나는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지금 어떻게 설명하더라도, 저와 유화의 관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그런데 하나만큼은 말씀해주고 싶어요. 유화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

    “……그런.”

    멈칫하는 유정 씨를 보다, 나는 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누가 보면 실성한 것처럼.

    그리고 그때야 나는 ‘한 가지 답’이 떠올랐다.

    이 억지 관계.

    그러니 나와 유화의 관계를 어떻게든 세 사람이 받아들이게 할 단 하나의 방법이.

    “……수아야. 너라면 알지.”

    “아뇨. 전 세린 언니를 이젠 하나도 모르겠어요.”

    완전히 내게 마음이 상했다는 듯한 수아를 보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수아 너라면 내 과거 진료 기록에 대해서 잘 알잖아.”

    흠칫!

    순간 완전히 날 외면했던 수아가 크게 놀라 나를 바라봤다.

    “세, 세린 언니?”

    설마 그걸 말할 줄 몰랐다는 듯한 눈치인데, 나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이제 거의 완치.

    그 누구에게 알려줄 필요 없는 과거를, 내 손으로 끄집어내는 거니까.

    “진료 기록이라니요?”

    “세린 씨,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유정 씨 역시 크게 놀랐고, 그간 말이 없던 은하 씨도 이번만큼은 내게 다급히 물어왔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적어도 같은 무게로는 볼 수 있겠지.’

    천류화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이 세상에 없다고 나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내 진료 기록을 보여주는 건, 내가 그녀들에게 보일 수 있는 마지막 설득이었다.

    본래라면 날 절대 이해하지 못할 세 사람이.

    유화의 존재를 받아들일 단 하나의 이유로서.

    “…….”

    살며시 폰을 들어, 전에 확인했던 진료 기록을 볼 수 있던 앱을 다시 켰다.

    그리고 간단한 인증 절차 끝에 진료 기록이 나타나자, 테이블의 중앙에 폰을 툭 하니 내려놓았다.

    “사실, 저도 이것만큼은 밝히고 싶지 않았어요. 저도 유화와 그런 관계가 되리라곤 생각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세 사람에겐 밝혀야 할 것 같아요. 이렇게라도 설득하지 않으면 유화를 받아들이기 힘들 테니까요.”

    내 말에 멍하니 폰으로 시선을 주는 두 사람이 보였다.

    수아는 지금 내 행동에 그저 크게 놀란 듯, 아무런 말조차 잇지 못하고 있었다.

    “이 진료 기록들은 대체…….”

    “세린 씨, 이 진료 기록들이 대체 다…… 뭐예요?”

    “제가 작년 초까지만 해도 겪었던 수많은 병의 이력이죠. 그리고 그 기간동안 유화가 제 곁에 있었기에 전 견딜 수 있었어요.”

    거짓이었다.

    그런데 유화의 존재를 설명하려면 나는,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스륵.

    스르륵.

    멍하니 내 폰을 들고 진료 기록을 확인해가는 은하 씨와 유정 씨가 보였다. 도중에 손까지 바르르 떨며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선 다시금 수많은 진료 기록을 확인하듯 스크롤을 내려가는데.

    ……그걸 보는 나도 마음이 불편했다.

    유화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내 치부를 드러내는 거니까.

    그리고 괜히 두 사람에게 나에 대해 걱정하게 만드는 것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세 사람과의 관계가 파탄 날 거라면.’

    나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걸 막을 것이다.

    유화도 포기할 수 없고.

    세 사람과의 관계는 내게 더더욱 포기할 수 없다.

    그럼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야 했다.

    그녀들이 유화를 받아들일 계기를 거짓으로라도 만들어 보여줄 수밖에 없다.

    “……세린 언니. 그게 정말이에요?”

    “정말이야 수아야. 나는 유화가 날 필요로 하면, 내가 유화를 도저히 내칠 수가 없단 말이야.”

    “왜, 왜…… 그럼 저한테 먼저 말 안 했어요? 이런 사정이 있었더라면…….”

    내 과거 진료도 사람과 달리 멍하니 내게 묻는 수아를 보며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거야 나도 몰랐으니까.’

    유화가 나한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줄.

    그래서 더 말해줄 수 없었다.

    유화와의 나 사이의 진실된 비밀을 말하기보다, 그에 준하는 또 다른 비밀을 말함으로써 유화의 관계를 대신해야 할 만큼.

    그만큼 유화는 특별했다.

    그녀가 이 세상에 있는 지금, 그 마음을 거절하는 순간 나는 앞으로 분명 계속 후회할 테니까.

    “……세린 씨, 이 진료 기록들이 전부 다 사실이란 말이에요?”

    “작년 초까지 유화가 제 곁에 있었기에 겨우 약을 끊을 수 있었어요.”

    “왜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으신 거예요?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었으면.”

    “이제 제가 앓았던 병들은 모두 나았으니까요. 완전히 약을 끊었고, 최근에서야 평탄한 삶을 살 수 있게 됐는데…… 스스로 제 치부를 알려드리고 싶진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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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살육에 미친 스트리머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being trapped in the game world for several years, I was transported back to real world. However, my appearance was exactly like that of the character in the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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