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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92

     

     

     

    ***

     

     

     

    ㅡ첫날밤.

     

    하나의 단어가 주는 야릇함과 묘한 설렘은, 다른 그 어떤 단어에 비교해도 크다고 생각했다.

     

    “……후우.”

     

    짙은 숨을 따라 새하얀 입김이 공간을 아스라이 수놓는다.

     

    방송을 조금 일찍 마치고 밤에 외출하는 지금.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첫날밤’이란 건.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는 말이라고.

     

    사락, 사락.

     

    밤늦게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는 지금, 나는 괜스레 새까만 코트를 만지작거리게 됐다.

     

    새 옷 특유의 뻣뻣한 감촉이 신기하리만큼 손에 와 닿았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연인과 오래 사귀게 되면 자연스레 하게 된다.

    아니, 사귄 기간을 떠나서 그냥 마음이 맞는다면 그리고 서로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관계라는 건 그런 거였다.

    그걸 너무 과하게 의식하고 미룰 게 전혀 아닌데.

     

    “내가 너무 뭉그적거렸던 걸지도 모르지…….”

     

    유화가 밀어붙였다고 놀랄 게 아니라, 왜 다른 세 사람이 유화의 말에 동의했을까가 중요한 부분이었다.

     

    본래 서로가 원하면 자연스레 하게 될 뿐.

    그로 인해 더 행복하고 더 상대를 사랑하게 될 뿐인데…….

     

    그렇게 생각하다 실소가 새어 나왔다.

     

    “…누가 보면 아주 성스러운 일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

     

    왜 이리도 나는 유난인 걸까.

     

    물론 이 현실에서야 나는 처음이라지만, 그 외 다른 공간에선 난 이미 몇 번이나 경험했다.

     

    어찌 보면 ‘한세린’이란 몸과 정신만 처음일 뿐.

     

    다른 공간에선 또 다른 ‘린’이란 이름으로 전혀 다른 여인과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니 색다를 건 없었다.

     

    그 또한 구별하자면 어차피 모두 ‘나’니까.

     

    사락.

     

    지하 주차장에 내려와 자연스레 차 키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주차장 한편에 주차된 차가 보였다.

     

    그러다 무심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차는 좀 다르네.”

     

    나는 그 무엇을 사든 간에 그로 인한 만족감은 일시적일 거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인간은 만족을 모르는 동물이라 뭘 하든 어차피 쉽게 질릴 거라고, 그런데 눈에 비친 차만큼은 좀 달랐다.

     

    세련된 은빛의 차체는 이제 보면 사실 새삼스러운 것도 없는데 기이하게 만족감이 들었다. 내 마음에 드는 디자인, 컬러, 그리고 무언가 나라는 가치의 증명까지 해주는 것 같아서.

     

    그리고 그건 묘하게 연인들이랑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아니, 전혀 다르지만.”

     

    삑!

     

    그렇게 차에 탑승하면서도 자연스레 나는 운전하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은하 씨의 오피스텔.

     

    그리고 이어질 오늘 밤은 아마…….

     

    “쉽게 잊을 수 없겠지.”

     

    툭.

     

    핸들을 가볍게 두드려가며 고개를 까딱였다.

     

    오늘 약속 자체는 술 데이트라고 하지만 서로가 ‘의미’를 다 아는 데이트라서, 이전 데이트와는 그 분위기부터 시작해 정말 모든 게 다를 것이다.

     

     

    …….

     

     

    문 앞에서 조심스레 벨을 눌렀다. 은은히 울린 벨을 들으며 몇 초 지났을까.

     

    “……어서 와요.”

     

    벌컥 문이 열리며 날 맞이하는 은하 씨를 마주할 수 있었다.

     

    “네, 은하 씨. 제가 좀 늦었어요.”

     

    “아뇨, 약속 시간 생각하면 그렇게 늦은 건 아니에요. 들어와요.”

     

    살포시 웃으며 말하자, 미미하게 미소 짓는 은하 씨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 그리고 내 마음은 더 크게 두근거렸다.

     

    힐끗.

     

    지금 내 눈에 비친 은하 씨의 모습은 되게 이질적이었다.

     

    평소의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이 아닌, 은하 씨답지 않게 과감한 노출이 보이는 블라우스 차림.

     

    마치, 옷차림으로 내게 다시 말하는 듯했다.

     

    오늘이 그만큼 나와 특별한 날이라고.

     

    그리고 그건 사실 나도 코트 안의 패션은 평소에 비해 과감한 편이라 다르진 않았다.

     

    “오늘 은하 씨 경기 하이라이트로나마 챙겨봤어요. 개막전부터 정말 너무 잘하시던데요?”

     

    “…아 보셨군요. 최근 TSJ전력이 평균적으로 더 올라오기도 했고, 팀원들 마인드가 굉장히 열정적이기도 해요.”

     

    “작년에 이미 월즈 정상을 찍었는데 더 열정적인 거예요?”

     

    “신기하게도 우승하니까. 다들 커리어에 더 욕심이 나나 봐요.”

     

    살갑게 그녀와 대화를 나눠가면서 나는 거실에 다다라 살며시 짐을 풀어놓았다.

     

    착.

     

    테이블 한편에 와인 꾸러미를 내려놓으면서도 밤에 찾아온 느낌은 꽤 달랐다.

     

    “은하 씨가 좋아하실 줄은 모르겠지만, 직원에게 추천받은 와인을 좀 사 왔어요.”

     

    “그냥 오셔도 되는데.”

     

    조금은 어색하게 웃는 은하 씨를 보며, 나도 괜히 머뭇거리게 됐다.

     

    생각하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단둘이 술을 마시는 자리가.

     

    “그럼 디저트와 잔 좀 준비할게요. 조금 쉬고 계세요.”

     

    “네.”

     

    은하 씨가 거실로 향하자, 나는 괜스레 손을 쥐었다 폈다. 사실 마음이 크게 떨렸다.

     

    나도 이런 느낌이 들 줄 몰랐다.

     

    ‘……왜.’

     

    다 처음 같을까.

     

    분명 처음이라고 따지자면 처음이 맞지만, 그래도 정신적으로 처음이라 느끼면 안 될 거라 여겼다.

     

    그래서 여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저 단둘이 연인과 밤을 보낼 거란 사실에 마음이 이상하리만큼 설레고 있었다.

     

    꿀꺽.

     

    침을 삼켜가며 조심스레 제 옷매무새를 만지작거렸다.

     

    “……나, 나만 처음은 아니니까.”

     

    그리고 긴장을 풀기 위해 내가 내뱉은 답이란, 조금 우스운 답이었다.

     

    분명 은하 씨도 나 못지않게 긴장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야 서로가 처음이니까.

     

     

     

    ***

     

     

     

    짠!

     

    잔과 잔이 마주쳐 울리는 소리.

     

    “뭔가…… 이 순간이 좋네요.”

     

    “그러게요. 저도 이렇게 세린 씨 모처럼 보니까 좋네요.”

     

    그리고 서로를 향해 오가는 담담하지만, 달콤한 소리가 뒤따른다.

     

    스륵.

     

    곧이어 와인을 기울여 목을 축여 가면서도, 은하는 무심코 시선이 갔다.

     

    들어 올린 와인잔이 아니라, 와인잔 너머에 비친 세린의 모습으로…….

     

    ‘일부러 안 입으셨던 거구나.’

     

    평소 세린 씨의 스타일은 모던하면서도 세련된 미가 존재했다. 사실 그녀의 몸매가 무슨 옷이든 다 받쳐줄 만큼 뛰어났기에 그런 거기도 했지만, 꽤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을 더욱 여성스럽게 꾸민 세린 씨의 패션은, 그녀가 얼마나 더 여성적인 매력이 있는지 느끼게 했다.

     

    양어깨가 훤히 드러나 새하얀 피부가 돋보이는 것 하며, 볼륨감 있는 몸매는 저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조금 이상했다.

     

    다른 여자가 얼마나 매력적이든, 풍만한 몸매를 가지고 있든 간에 크게 의식되지도 않는데.

     

    세린 씨의 노출은 이상하리만큼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착.

     

    살며시 와인잔을 내려놓으면서도 입안에 맴도는 쌉싸름한 와인의 맛에 미미하게 눈가가 찌푸려졌다.

     

    그런데 그 흥취가 오늘따라 그저 달콤하게 느껴졌다.

     

    “맛있네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혹시 와인 취향이 다르면 어쩌나 싶었는데.”

     

    “저 그렇게 와인을 가리진 않아요. 크게 향을 음미하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니까, 부담을 느끼진 마세요.”

     

    “아하하…… 그러게요. 제가 괜히 긴장했나 봐요.”

     

    사르륵.

     

    살며시 은발을 쓸어내리는 손길이 오늘따라 잔망스러워 보였다.

     

    무언가 유혹하는 듯한 느낌.

     

    그럼에도 조심스레 고갤 끄덕였다. 세린 씨와 있는 시간은 그저 좋은 시간이지만 오늘따라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번 주부터 리그가 개막하기도 했고, 외부 스케쥴도 생각하면 앞으로 더 바빠질 것 같아요.”

     

    “그렇죠. 아마 이렇게 자주 보긴 힘들겠죠?”

     

    조심스레 답하는 그녀를 보며 살며시 웃음이 났다.

     

    만나기 힘들다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더 시간 내려고 노력할게요.”

     

    “……아, 은하 씨가 그래 주신다면 저야 좋죠.”

     

    멍하니 답하는 세린 씨를 보며, 나는 조금 더 힘을 담아 말했다.

     

    “오늘 이렇게 세린 씨 보니까 알겠어요. 제가 처한 현실이 바쁘든, 그리고 바쁘지 않든 중요한 시간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바쁘면 연애를 못 한다는 건, 나는 거짓말이라 생각했다.

     

    바쁘더라도, 더 좋아하니까 이렇게 만나기 위해 시간을 내게 된다.

     

    내겐 그런 의미의 사랑이었다.

     

    내 시간.

    다른 무언가를 포기하더라도 세린 씨와의 시간이 소중하다고.

     

    “…그럼 저도 시간을 더 내도록 노력할게요.”

     

    그녀가 내 마음에 드는 답을 돌려주자, 도리어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세린 씨는 너무 노력하지 마요. 지금처럼만 있어 줘요. 제가 세린 씨 만나려고 더 노력할 테니까, 그럼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게 서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세린 씨와 나만의 관계였다면 꽤 상황이 달랐겠지만. 지금은 이러한 시간이 좋다고 생각했다.

     

    이 상황만으로 난 행복하다고.

     

    “은하 씨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의외예요?”

     

    “은하 씨라고 해도, 전 독점욕이 좀 있다고 생각했어요. 더 많은 만남, 그리고 더 절 보고 싶다고 말할 줄 알았어요.”

     

    은은히 날 흘겨보는 시선에 부정할 순 없었다.

     

    실제로 내 마음이 겉으론 그렇게 나타나곤 하니까.

     

    그녀의 말에 살며시 그녀의 잔을 채워주곤 잔을 들어 올렸다.

     

    짠!

     

    자연스레 호응하는 세린 씨를 보며, 나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여기서 더 만나면…… 내 생활이 일그러질 것 같아요.”

     

    이상하게,

    만나면 만날수록 세린 씨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니까.

     

    나는 차라리 이 현상 유지를 바라게 됐다.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있는,

    지금이 가장 세린 씨가 날 좋아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그거 나 유혹하는 거죠?”

     

    씨익 웃는 세린 씨의 음성에 나는 긍정의 의미로 살며시 잔을 기울였다.

     

    와인의 맛은 달콤했다.

    그리고…… 묘하게 야릇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밑으론 후원 감사 인사에요.

    ‘black록shooter’님께서 415코인으로 후원을…!
    본편 완결 축하 감사합니다…!
    외전도 기대해주신다는 코멘트 정말 너무 고마워요!

    ‘Silvario’님께서 100코인으로 후원을!
    또 다른 외전을 기대한다는 코멘트…!

    ‘교붕이’님께서 30코인으로 후원을!
    본편 완결을 축하하며 여러 qna를 바라는 코멘트…!
    아마 외전마저 다 완결이 나면 그때 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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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살육에 미친 스트리머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being trapped in the game world for several years, I was transported back to real world. However, my appearance was exactly like that of the character in the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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