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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95

     

     

     

    ***

     

     

     

    스륵. 스르륵.

     

    이불을 스치는 살의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리고 곧 내 곁에 자리하는 은하 씨가 보였다. 뜨거운 밤이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열중해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

     

    말없이 날 응시하는 그녀를, 나도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렇게 서로가 시선을 교차하던 차, 누군가가 웃었다. 그게 나였는지 아니면 은하 씨가 먼저 웃음을 지은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확실한 건 서로가 서로를 보며 웃고 있다는 거였다.

     

    “좋았어요. 은하 씨.”

     

    그래서 내가 먼저 말했다.

     

    이미 몇 번이나 말했지만, 너무 좋았다고.

     

    “……저도 이렇게 좋을 줄 몰랐어요.”

     

    “그래요?”

     

    “네, 솔직히 관계에 대해 전 큰 느낌이 없었거든요. 사실 제가 다른 사람에 비해 그런 감각으론 잘 느끼지 못하는 건가 싶어, 내심 많이 긴장했었어요.”

     

    “전 전혀 그렇게 생각지 못했는데.”

     

    “그러게요. 저도 제가 이럴 줄 몰랐던 것 같아요.”

     

    순순히 수긍하는 은하 씨가 살며시 내게 더 다가오자, 나는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사르륵.

     

    살며시 내 몸에 기대어 오는 은하 씨는 분위기가 달랐다.

    단정하고 차분한 느낌에서, 관계를 맺고 나니 확연히 무언가를 내려놓은 것 같았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지금은 스스럼없이 보이곤 하니까.

     

    “이렇게 세린 씨 품에 기대고 있으니까, 더 바랄 게 없어지는 것 같아요.”

     

    “어라, 그러면 안 되는데.”

     

    “왜요?”

     

    멍하니 날 올려다보는 그녀를 보며 나는 천천히 그녀의 몸을 어루만졌다.

     

    그저 부드러우면서도 매끈했다. 그래서 이상하게 자꾸 손이 갔다.

     

    “……저 오늘 조금 약하게 한 건데.”

     

    씨익 웃으며 말하자, 은하 씨가 멍하니 눈을 깜박이다 놀란 듯했다.

     

    “이게 약하게…… 라고요? 저희 3시간도 넘게 관계했는걸요? 일반적인 관계는 보통 이렇게 오래가지는 않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제가 좀 다른가 봐요. 저 충분히 만족했지만, 지금보다 더하고 싶은 날도 분명 있을 거예요. 제가 은하 씨를 미친 듯이 갈구하는 날이 더 있을 테니까, 지금으로 만족하면 안 돼요.”

     

    조금은 장난스레, 하지만 진심도 담아서 말한다.

     

    오늘 정말 너무 좋았지만.

    그런 오늘보다 다음이 더 좋을 거라고.

     

    “저, 저도 그럼 더 잘할게요.”

     

    은하 씨가 멈칫하며 바로 내게 답하는데, 그게 너무 귀여워서 그만 고갤 숙였다.

     

    쪽.

     

    그리고 살며시 이마에 입을 맞추곤 살며시 입술을 비볐다.

     

    “…세린 씨.”

     

    그런 제 애정에 금세 쑥스러워한다. 그러면서 내게서 몸을 떨어트리려 하진 않는다. 그게 마치 몸으로 말하는 듯했다.

     

    내게 표현하고 싶은데, 그게 익숙지 않다고.

     

    “진짜 왜 이렇게 귀여워요? 평소에도 이런 모습 보여주면 좋을 텐데.”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새어 나왔다.

     

    은하 씨에겐 정말 여러 매력이 있었다.

     

    왜 프로게이머임에도 톱스타와 비견될만한 인기를 얻었는가, 그건 그녀가 프로게이머로서 보여주는 무결함.

     

    압도적인 실력, 그리고 불가능하다고 보이는 여러 상황에서 사람의 기대를 뛰어넘는 플레이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건 프로로서의 인기였다.

     

    차분함과 단정한 태도, 그러면서 수년간의 프로 생활 내내 구설수 하나 없는 은하 씨는 좋은 평가도 있지만, 반대로 차갑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 표정 변화가 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세린 씨가, 그렇게 말하면 저도 조금 변해볼게요.”

     

    내 말에 쑥스러워하면서도, 내 애정에 크게 기뻐하는 그녀가 보였다.

     

    표정 변화가 없다거나, 차갑다는 말도 내 앞에선 모두 거짓말 같았다. 이렇게 붉게 상기된 얼굴로, 내게 사랑을 표현하는 그녀가 있는데.

     

    “너무 제 말을 의식하지 마요. 전 평소의 은하 씨가 좋은 거니까, 지금 이런 모습도 모두 좋은 거니까.”

     

    “……예.”

     

    다소곳하게 답한 은하 씨가 살며시 내게 더 몸을 밀착해오자, 나는 천천히 받아들였다.

     

    뭉클.

     

    그렇게 맞닿는 몸과 몸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그리고 우습게 나는 은하 씨의 몸도 생각하며, 내 몸 또한 느끼게 됐다.

     

    이렇게 부드럽고, 조금은 탄탄한 은하 씨의 몸을 받아들이는 내 몸도 굉장히 부드럽다는 걸, 그래서 평소 운동한 게 조금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세린 씨.”

     

    “네, 은하 씨.”

     

    “……평소 몸 관리는 언제 하시는 거예요? 저야 따로 케어 프로그램이 있어서 몸 관리하는데, 세린 씨는 보면 신기해요.”

     

    눈을 깜박이는 은하 씨가, 이젠 스스럼없이 내 몸을 훑는데 그 손길을 느껴가면서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할 것 같아서, 저 혼자서 홈트레이닝은 꽤 오래 했어요.”

     

    “아.”

     

    순간 멈칫하는 은하 씨를 보며, 그냥 나는 숨길 것도 없었다.

     

    내 몸이 건강해야 정신이 건강해진다.

     

    일견 쉬운 말 같지만, 인생에 있어 난 이 말만큼 진리에 가까운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저 괜찮은 거 이제 아시잖아요.”

     

    “그래도…… 조금 신경 쓰여요. 과거 세린 씨가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게 아직도 잘 믿기지 않아서…….”

     

    애틋하게 날 바라보는 은하 씨를 보며, 나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곤 조금 흐트러진 그녀의 머리칼을 정리해주며 뺨을 어루만졌다.

     

    “저,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네, 언제든…… 솔직하게 해주세요.”

     

    “저한테 그런 치부는 다시 없을 거예요. 그래서 유화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전 그 증상들이 완치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말조차 안 꺼냈을 거예요.”

     

    이 순간의 무드를 생각하면, 다른 여자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게 얼마나 별로인지 나도 안다.

     

    ……그런데 알게 모르게 내 과거에 대해 신경 쓰는 은하 씨에겐 더 확실히 전하고 싶었다.

     

    “그럼 정말 조금도 후유증 같은 게 없는 건가요?”

     

    “네, 이젠 없어요.”

     

    단언하듯 답하며 별처럼 깊은 은하 씨의 눈을 직시한다.

     

    날 걱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와 있을 땐 그저 사랑하고 행복한 시간을 나눴으면 하니까.

     

    “…믿을게요.”

     

    조심스레 답하는 은하 씨의 모습에 다시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은하 씨가 저 완전히 믿을 수 있도록 저도 더 좋게 행동할게요.”

     

    “……아뇨, 제가 더 세린 씨 믿을래요.”

     

    조금 힘을 주어 말하는 은하 씨가 사랑스러워, 그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와락!

     

    “……!”

     

    순간 커진 은하 씨의 두 눈을 마주쳐가며 온몸으로 와닿는 은하 씨의 부드러움을 만끽했다.

     

    “진작에 관계할 걸 그랬어요…… 정말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말이에요.”

     

    육체적 쾌락도 쾌락이지만.

    나는 지금 그 후에 느낄 수 있는 이 여운이 너무 좋았다.

     

    서로 진심으로, 그리고 더없이 온기를 느끼며 더 깊은 말을 나눈다.

     

    이전까지와는 전혀 달랐다.

     

    스륵.

     

    그리고 은하 씨가 이내 날 마주 안아오자, 나는 전신 가득 만족감이 차올랐다.

     

    “…앞으로 많이 할 수 있잖아요.”

     

    내 귓가에 조심스레 속삭이는 은하 씨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또 그 떨림이 이상하리만큼 야릇하게 다가왔다.

     

    “그래요. 저 이제 안 멈출 거니까.”

     

    계속 관계하지 않았다면 난 더 참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만한 인내심은 갖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이젠 안 될 것 같았다.

     

    스르륵.

     

    살며시 등을 훑어가면서도, 내 손길에 다시 몸을 부르르 떠는 은하 씨의 몸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맞닿은 가슴.

    얽히는 다리.

     

    자연스레 서로를 갈구하듯 몸을 밀착시켜가면서도, 온몸엔 열기가 맴돈다.

     

    그리고 이 열기는 가히…… 파멸적이라고 생각했다.

     

    ‘만족하는데…….’

     

    만족이 안 되는 모순.

     

    더 갈망하고, 더 원하게 된다.

     

    “세린 씨.”

     

    애틋한 그녀의 음성에도 살며시 그녀의 몸을 어루만져가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중독이었다.

     

    오늘 처음이었음에도, 은하 씨의 몸이 계속 날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

     

    “……네.”

     

    그래서 대답이 늦었다.

     

    “다른 분들께도 이렇게 사랑해주셔야 해요.”

     

    멈칫.

     

    내게 속삭이는 음성에, 순간 그녀의 몸을 훑던 내 손길이 멈췄다.

     

    예상조차 못했다.

     

    ……은하 씨 입에서 다른 여자에 관한 말이 나올 거라는 건.

     

    “오늘 세린 씨랑 있으면서 느꼈어요. 제가 조금 더, 아니면 더 많이 세린 씨와 만나거나 자주 몸을 섞으면…… 되게 위험할 것 같아요.”

     

    “왜 위험……해요?”

     

    “더 좋아지니까요. 그리고 더 사랑하게 되는 게 저 스스로도 느껴져요.”

     

    담담하면서도 애정이 가득 담긴 음성이 연신 귓가를 간지럽혔다.

     

    스르륵.

     

    동시에 살며시 날 더 강하게 껴안아 오는 몸짓도 느껴졌다.

     

    “그래서 지금처럼만 만나고 싶어요. 제가 세린 씨를 사랑하는데도, 제 일상도 유지할 수 있는 이 시간처럼.”

     

    “나도 노력……해볼게요.”

     

    그런데 내 마음엔 이미 불이 붙어버린 상태였다.

     

    지금 내 품에 안겨있는 이 여자가, 내 여자라는 게.

    그래서 더 사랑을 나누고 싶은 욕망을 앞으론 참기 힘들 거라는 것도.

     

    “네, 노력해서 다른 분들도 더 사랑해주세요. 제가 지금 느끼는 행복을…… 다른 분들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행복하다는 듯한 그녀의 음성에, 나는 복잡한 마음이 들면서도 고마웠다.

     

    …어쩌면 은하 씨였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그 무리한 관계가, 처음에 이질감 없이 존재하게 된 이유.

     

    처음 세 사람과 사귀겠다고 말한 당시.

     

    물론 수아나 유정 씨도 날 수긍하려 했지만…….

     

    그 당시 은하 씨가 보였던 특유의 차분함이 다른 두 사람에게 분명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것도.

     

    “…은하 씨.”

     

    “네, 세린 씨.”

     

    “저 은하 씨. 평생 안 놓아줄 거예요.”

     

    그런데도 이말은 꼭 전하고 싶었다.

     

    그녀가 날 좋아하는 것만큼, 나도 더 그녀를 좋아하게 될 거라고.

     

    “……저도 그럴 건데.”

     

    내게 살며시 말을 놓는 은하 씨의 음성에 픽 웃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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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살육에 미친 스트리머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being trapped in the game world for several years, I was transported back to real world. However, my appearance was exactly like that of the character in the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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