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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6

       [전부 말할게. 살려줘. 지금 죽기엔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아.]

       ​

       드워프 왕국의 침략자.

       보라 머리의 여성은 살려달라는 말을 무덤덤하게 애원했다. 따르지 않으면 고문하고 정보를 캐낼 생각이었는데, 저렇게 솔직담백하게 얘기하니 이쪽이 당황스러울 정도다.

       ​

       여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마법으로 균형을 잡은 건지, 무릎 꿇은 그대로나를 올려보며 설득했다.

       ​

       [날 죽이면 세상의 진리를 탐구할 귀중한 인재를 아깝게 버리는 짓이야. 그런 짓은 하면 안 돼. 나를 살리고 공간을 열었던 그 지팡이를 연구할 수 있게 해줘.]

       ​

       뭘까.

       이 뻔뻔함은.

       난생처음 보는 케릭터다.

       호기심 많은 마법사 같은데… 성격이 너무 제멋대로인 거 아니냐고.

       ​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아니면 속이려고?

       ​

       잠깐 생각하고 있으려니, 샤엘라가 대신 가려운 질문을 해줬다.

       ​

       [야. 너 뭐냐? 침략해놓고 뻔뻔하게 살려달라 비는 것도 모자라 연구하게 해달라고? 설마 그게 통하리라고 생각하는 거냐?]

       ​

       [용서를 빌어서 통한다면 안 싸워도 되잖아. 시도해서 나쁠 건 없어.]

       ​

       [응?….]

       ​

       [용서가 모자란거면, 다시 빌게.]

       ​

       [뭣.]

       ​

       훅.

       ​

       여성이 그대로 엎드렸다.

       땅바닥이 있었다면, 그대로 머리를 바닥에 찧었을 기세였다.

       ​

       [죽을 죄를 지었지만, 용서해줘. 무얼 시키든 좋아. 내 천재성이라면 어떤 일이든 금방 끝낼 수 있을 테니까.]

       ​

       [뭐, 뭐야 이녀석….]

       ​

       천하의 샤엘라도 질린 듯 나를 돌아봤다.

       이거 대체 뭐하는 놈이냐고 눈빛으로 내게 묻는 것 같았다.

       ​

       나야말로 궁금하다.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거늘.

       침착한 걸 떠나서 저리 뻔뻔하게 살려달라고 할줄 알았겠냐고.

       ​

       게다가 무작정 용서를 비는 게 아니다.

       저리 엎드리고 있는데 틈이 보이지 않는다.

       우선 빌어보고 안 통하면 언제든 공격을 맞받아칠 수 있도록 경계 중이다. 듣고보니 꽤 나쁘지 않은 대처 같은….

       ​

       성공하면 그냥 넘어가고.

       실패하면 예정된 대로 싸운다.

       상황을 편견없이 바라볼 수 있고 자존심이 없어야만 가능한 전략인 셈.

       ​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협조적으로 나와준다면야, 굳이 싸워서 죽이기보단 써먹는 게 낫겠지.

       ​

       다시 내가 나섰다.

       ​

       [지금부터 내 질문부터 대답해. 어떻게 드워프 왕국 위치를 알아내고, 무슨 목적으로 침입한 거지? 너희가 뭐하는 녀석들인지 정체까지 전부 말해. 만약 말하지 않거나 거짓말인 게 들통나면 바로 죽을 거다.]

       ​

       슥.

       ​

       여성이 고개만 살짝 들었다.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으로 긍정을 표했다.

       ​

       [그걸 알려주면 살려줄 거야?]

       ​

       [네가 우릴 적대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굳이 널 죽이진 않을 거야.]

       ​

       [알았어. 어렵지 않은 요구. 전부 알려줄게. 대신 날 꼭 살려줘.]

       ​

       [혹시 저녀석들도 살려줘야 하나?]

       ​

       너는 녀석의 뒤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살아남은 몇몇 인원이 이곳을 경계하고 있었다.

       ​

       도리도리.

       ​

       [나와 관계 없는 자들. 죽여도 돼. 아니면, 내가 죽일 수도 있어.]

       ​

       […그냥 너에 대해 말해 봐.]

       ​

       [나는-]

       ​

       녀석은 술술 정보를 불었다.

       ​

       여성의 이름은 레이븐.

       700레벨 후반의 마법사다.

       그녀는 아칸벨리 소속이며, 아칸벨리는 만들어진지 1년도 되지 않은 신생 세력이다.

       ​

       레이븐은 세달 전 아칸벨리에 가입.

       연구비를 전부 밀어준다는 조건 하에 들어가서 실컷 연구했단다. 정말로 능력은 좋았는지, 그녀의 성과에 아칸벨리는 많은 투자를 해줬고, 어느날 아칸벨리 간부 회외에서 드워프 왕국 침략 얘기가 나왔단다.

       ​

       매우 뛰어난 기술과 지식.

       그 하나의 생각으로 호기심이 미친 레이븐은 원정에 참여했고, 포탈에 매료되어 가장 먼저 뛰어들었다가 지금이 되었단다.

       ​

       딱히 거짓말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전부 털어놓았다.

       ​

       [그렇게 다 까발려도 되는 거야?]

       ​

       [응. 내 목숨이 더 소중해. 그리고 아칸벨리는 원래부터 맘에 들지 않아. 자꾸 참견하고 이상한 짓하는 자들이 많거든. 투자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나갔을 거야.]

       ​

       한치의 망설임 없는 대답.

       쉽게 말해 그녀는 아칸벨리를 배신했다.

       저 말들이 사실이라면, 애초부터 세력에 충성심이 없는 것 같았다. 돈과 연구로 묶인 관계니, 사무적이었겠지.

       ​

       [혹시 거짓말은 없었지?]

       ​

       째릿!

       ​

       [나는 의심받는 게 싫어. 왜 진실을 말했는 데 증명까지 해야하는 거야?]

       ​

       [거짓말이면 죽여야 하니까.]

       ​

       [……기억 공유 마법을 걸게. 증명할테니까, 날 죽이지 말아줘.]

       ​

       [………?]

       ​

       성질내는 듯하다가도 잠깐 위협한 것으로 고분고분해졌다. 성격이 이상하긴해도, 불필요한 싸움은 싫어하는 타입 같았다.

       ​

       우선 죽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인질로 데려가는 게 좋겠지.

       ​

       [살려줄게. 하지만 그전에 몇가지 더 물어볼게. 잘 대답할 수 있겠지?]

       ​

       [계속 그러고 있었어. 뭐든 물어봐.]

       ​

       이후로도 몇가지 질문했다.

       ​

       다른 지배자들은 누구인지.

       아칸벨리가 어떤 곳인지.

       탑 고층에서 무얼했는지.

       드워프 왕국이 드러난 배경.

       드워프 기술을 얻으려는 목적.

       ​

       등등.

       나는 당장 필요한 정보를 얻은 뒤, 다크레아로 향하는 포탈을 열어주었다. 계속 여기 놔둘 순 없는 노릇이니까.

       ​

       [와. 이건 무엇? 어떻게 한 거야? 다시 보여줄 수 있어?]

       ​

       […시끄러우니까 일단 넘어가. 넘어가서 가만히 있으면 나중에 알려줄게.]

       ​

       [약속할 수 있어?]

       ​

       레이븐은 공간 문이 신기한지 눈을 번뜩이며 그리 물었다.

       ​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

       [알겠으니까 들어 가. 만약 다른 곳으로 도망치면 죽일거니까 잠자코 있어.]

       ​

       [어렵지 않은 일. 그렇게 할게.]

       ​

       사륵~

       ​

       레이븐이 다크레아로 넘어갔다.

       녀석이 들어선 곳은 다크레아 세계수 집 안으로, 현재 아무도 없는 곳이다.

       ​

       이건 일종의 시험이다. 

       가만히 있으면 살 것이고.

       도망치려 하면 죽게 될 것이다.

       녀석의 운명은 내가 돌아올 때까지 가만히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된다.

       ​

       집을 나가면 바로 알 수 있거든.

       대충 이정도면 충분하겠지.

       ​

       [정말 이상한 녀석이었네.]

       ​

       [하지만 혹시 모르지. 녀석이 다크레아의 좋은 전력이 될지.]

       ​

       주륵!

       ​

       샤엘라의 말에 답하며 주변에 떠있는 시체들을 줄기로 잡아 끌어당겼다.

       ​

       추우웁!!

       ​

       그대로 줄기로 뒤덮고 분해.

       그 줄기는 압축되어 내게 흡수되었고, 시체는 흔적도 없이 분해되었다.

       ​

       촤르르륵!!

       ​

       근처에 살아남은 자들도 마찬가지.

       굳이 살려둘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격음도 쓰지 못해서 대화할 수도 없으며, 아까부터 날 경계하고 있었다. 레이븐과 달리 적의가 느껴지기도 하고. 

       ​

       모두 흡수하자.

       ​

       훅!!

       화아악!!-

       ​

       줄기를 사방으로 뻗었다.

       놈들이 저항했지만, 소용 없다.

       이곳에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지라, 간단히 공격을 피하고 줄기로 꽁꽁 묶어 백린독으로 모조리 녹였다.

       ​

       오래 걸리지 않았다.

       ​

       [다 먹었었냐?]

       ​

       [나쁘진 않은 맛이네.]

       ​

       [그럼 넘어가자. 아직 먹을 게 많이 남았잖아? 어서 먹으로 가야지!]

       ​

       [네가 먹는 것도 아닌데, 왜그리 의욕적이냐.]

       ​

       [네가 잘 먹어야 열매도 잘 만들 거 아냐.]

       ​

       팟~

       ​

       녀석의 손에 신성과가 소환되었다.

       아꼈다가 비상 시에 먹으려는건지 어딘가에 숨겨다니는 모양이다. 마치 내가 샤엘라의 단약을 품에 숨기고 다녔듯.

       ​

       참 오묘한 기분이군.

       ​

       [가자.]

       ​

       스륵~

       ​

       공간을 일그러트렸다.

       샤엘라 말대로 먹을 게 많이 남았다.

       남은 지배자 전력과 부하들까지 모조리 처리해야겠지.

       ​

       슈화아!~

       ​

       차원문을 열었다.

       그곳으로 발을 들였다.

       ​

       ​

       ​

       *

       ​

       ​

       ​

       차원 틈새.

       무한히 어두운 공간.

       ​

       ‘…차갑고 붕 떠 있는 기분.’

       ​

       드워프 왕국 원정의 지휘관.

       세리아스의 표정이 잔뜩 구겨졌다.

       ​

       답답했다.

       시리도록 화가 났다.

       고작 저층 놈들을 상대하러 온 것인데, 제대로 부딪치기도 전에 이상한 함정에 걸렸고, 빠져나올 수 없었다.

       ​

       신생 소규모 세력 아칸벨리.

       세리아스는 이인자의 직위를 가졌으나, 책략이 뛰어나진 못했다. 그저 날카로운 성정과 힘으로 얻은 지위였다.

       ​

       그래서 더 답답했다.

       잘못된 선택 한 번으로 모든 부하를 위험에 빠드린 것이 억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허나.

       ​

       ‘고작 저층 놈들이 어떻게 차원 포탈을 열 수 있는 건데!!’

       ​

       자신을 탓하진 않았다.

       이상한건 저 드워프들이다.

       아무렇지 않게 기습하고 차원 포탈로 유도한다니. 대체 기술력이 얼마나 좋길래 이런 작전을 펼친단 말인가.

       ​

       무엇보다.

       ​

       ‘저층에 있을 놈이 아니었잖아!! 심지어 귀가 뾰족한 엘프였다고!!“

       ​

       그녀는 무찬의 얼굴을 떠올렸다.

       잠깐이지만, 드워프가 아닌 엘프의 등장은 머릿속에 새겨지기엔 충분한 임팩트였다. 게다가 가볍게 쏘아낸 공격으로 부하들을 쉽게 휩쓸기까지 했으니, 각인되지 않을 수가.

       ​

       모든 게 예상 밖이다.

       ​

       믿기 힘든 기술력.

       상상도 못한 엘프의 등장.

       정체 불명의 공간으로 통하는 차원 포탈.

       도시 침략에 지배자급 전력이 하나 둘 정돈 있을지도 모른다고 예상은 했지만, 이건 예상을 한참 뛰어넘었다.

       ​

       싸워보지도 못하고 끝났다.

       성질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슥.

       ​

       주변을 줄러보았다.

       어두컴컴한 주변에 함께 포탈을 넘었던 부하들이 각자 몸을 지키려고 각자 힘을 끌어올려 버티고 있다. 하지만 빠져나가지 못하면, 결국 전부 죽게될 것이다.

       ​

       이미 7할 이상은 죽었다.

       육신의 한계를 어느정도 뛰어넘은 지배자의 근접한 자들이 아니고서야, 공기와 발 디딜곳도 없는 세상 속에서 살아남는 건 힘들다.

       ​

       게다가.

       ​

       ‘…대체 어디 있는 거야.’

       ​

       다른 포탈로 이용했던 레이븐은 다른 곳으로 이동됐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

       가능하면 합류해야 한다.

       사이는 안 좋아도 실력은 진짜니까.

       그녀라면 마법으로 빠져나갈 해법을 찾아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한한 차원틈새에서 따로 떨어진 자들이 차원 능력 없이 마주치는 건 사실 상 불가능하다.

       ​

       세리아스도 그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결국, 계속 여기 있어야 한다는 건데….

       ​

       ‘이제 저희는 어떡해야 합니까!?“

       ​

       부하 한 놈이 그런 눈으로 쳐다본다.

       애석하게도 여긴 티끝의 공기도 없어 대화할 수도 없다.

       ​

       그저 하염없이 기다릴 뿐.

       그런 고충을 알아줬을까.

       ​

       스륵.

       스르륵.

       ​

       ‘응?….’

       ​

       돌연 공간이 일그러졌다.

       세리아스는 공간의 일그러짐 속에서 누군가가 넘어오고 있음을 눈치챘다. 

       ​

       번뜩.

       ​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가 넘어오든 중요하지 않다.

       지금 해야할 일은 포탈이 활성화 되는 순간 달려들어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

       멈칫.

       ​

       세리아스는 곧장 행동을 멈췄다.

       ‘네놈이 날 가둔 놈이냐!!’ 라는 듯한 분위기로 한 놈이 먼저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

       그의 레벨은 500 초반.

       꾸준히 더 성장한다면 지배자 타이틀을 손에 쥘지도 모르는 유능한 자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하게도, 공간 속에서 나온 누군가의 주먹에 카운터를 맞고 얼굴이 찌그러졌다. 

       ​

       끼리릭.

       ‘큭!!?….’

       ​

       공기가 없이 직접적인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무지막지한 괴력에 남자의 신음에서 나온 약간의 공기가 퍼져 귓가를 스쳤다.

       ​

       ‘누구지?….’

       ​

       세리아스는 일그러진 공간을 바라보았다.

       ​

       매우 가벼운 대응.

       그러니 믿기 힘든 괴력.

       ​

       그 정체는.

       ​

       

       ​

       [왠지 이럴 것 같았지.]

       ​

       검은 머리 엘프, 무찬이었다.

       무찬은 이미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부하의 멱살을 잡고 뒤로 휙 넘겼다.

       ​

       [그렇게 가고 싶으면 가라. 거기도 여기랑 똑같은 곳이니까.]

       ​

       ‘안!!-’

       ​

       사륵~

       ​

       그대로 공간문이 닫혔다.

       예상치 못한 카운터에 정신 못차린 부하는 그대로 차원문을 넘어 사라졌다. 한 마디도 완성하지 못한 허무한 퇴장이었다.

       ​

       …꿀꺽.

       ​

       세리아스는 목숨을 아꼈다.

       방금 무찬의 말로 저곳에 뛰어들어봐야 달라질 것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살아남아 기회를 노리던 부하들도 마찬가지로 무찬의 말에 흉흉한 기세가 팍 죽었다.

       ​

       무엇보다.

       ​

       ‘저놈은 아까 그…’

       ​

       아까 세리아스와 한 번 부딪쳤던 강자의 등장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상대는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

       [무찬. 방금 그건 흡수 안해도 돼?]

       ​

       [한 마리 정도야. 여기 먹을 게 널렸는데, 강 버리지 뭐.]

       ​

       무찬과 샤엘라.

       둘은 여유롭게 대화하며 자신들 앞에 나타났고, 당연 세리아스를 포함한 모든 세력원의 모든 이목이 집중되었다. 

       ​

       무찬은 괘념치 않고 시선을 한곳에 고정했다.

       정확히 세리아스가 있는 곳이었다.

       ​

       [자, 난 네게도 기회를 줄 거야. 왜 침략했는지부터 너희가 누구인지 전부 나에게 말하는 게 첫 번째 조건이지.]

       ​

       갑작스런 등장과 제안.

       무찬은 그녀에게 양분인지, 레이븐처럼 스스로 항복할 건지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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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roken Goddess Tries to Raise Me

The Broken Goddess Tries to Raise Me

망가진 여신이 나를 키우려 한다.
Score 8
Status: Ongoing Author:
I have become the World Tree that the goddess is obsessed with. I ended up taking care of the broken goddess, and at some point, she started exerting her strength to raise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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