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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8

       [응? 갑자기 무슨 소리야?]

       ​

       [기억이 엿보이기 시작했어.]

       ​

       나의 새로운 능력.

       많아서 다 설명하기도 힘들지만, 이것만큼은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

       ​

       흡수한 생명체의 기억을 엿보는 것.

       ​

       싸아~

       ​

       머릿속에 기억이 스친다.

       푸른 머리의 지배자 세리아스.

       이 녀석이 어떤 고초를 겪고 성장했는지와, 아칸벨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까지. 사념이 얽힌 굵직한 기억이 느껴진다. 덕분에 아칸벨리의 대략적인 정보를 알아냈다.

       ​

       [아칸벨리는 101층에 본거지를 두고 있어. 다행히 드워프 왕국의 정보를 다른 곳에 퍼트린 것 같진 않네.]

       ​

       [뭔… 설마 흡수한 녀석의 기억을 읽은 거야? 그렇게 쉽게?]

       ​

       [계승과 원리가 비슷하거든. 큼지막한 사건을 엿보는 것 정도지만, 이것만 해도 필요한 정보는 충분히 얻을 수 있지.]

       ​

       세리아스의 기억을 쭉 살펴보았다.

       옛날에도 흡수했던 생명체의 강한 사념을 엿보았던 적이 있지만, 아주 찰나에 불과하며, 지금은 의도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

       심지어 범위가 다르다.

       단순히 엿보는 게 아니다.

       ​

       계승이라고 할까.

       감정까지 알 수 있다.

       살펴보는 걸 넘어 체험할 수 있다.

       완벽하게 기억을 파헤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녀석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건들은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

       굉장한 능력이다.

       이제 정보를 캐내겠다고 누군가를 고문할 이유도 없다. 죽이고 흡수하면 그만이니까.

       따라서 세리아스 뿐만 아니라, 방금 흡수한 자들의 기억까지 잠깐 살펴보았다.

       ​

       아칸벨리가 뭐 하는 곳인지 알겠다.

       대충 야망 넘치는 신생 세력이다.

       흡수한 자들의 기억을 보니 대체로 질 나쁜 놈들이 많은 듯하다.

       ​

       사람을 모으고.

       크게 한탕하고.

       몫을 조금 배분하고.

       만약 사건이 터지면 책임을 떠넘기고 세력은 모른척한다.

       ​

       뭐 이런 얍삽한 세력이 다 있지.

       ​

       다만.

       ​

       […조금 두통이 오네.]

       ​

       너무 방대한 정보.

       기억에 담긴 감정.

       계승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기 때문인지, 단순히 엿보는 것만으로 내게 큰 영향이 온다.

       ​

       [야. 괜찮냐? 안색이 조금 별론데?]

       ​

       [잠깐 부작용이야. 기억을 엿보면서 많은 놈들의 감정을 단번에 체험했거든.]

       ​

       [흐음?… 그거 위험한 거 아냐?]

       ​

       [방금처럼 막 쓰지만 않으면 돼.]

       ​

       가능하면 텀을 두고 써야겠다.

       방대하게 남의 기억을 엿보면 내가 이상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잘만 응용하면… 꽤 재밌는 일을 할 수 있을지도.

       ​

       우선.

       ​

       [돌아가자. 정보도 전부 알아냈으니, 시리안이랑 벨칸에게도 알려야지.]

       ​

       [그래그래. 혹시 모르니 조심하고.]

       ​

       [물론.]

       ​

       일렁일렁~

       ​

       한 손을 뻗었다.

       공간문이 열렸다.

       ​

       그만 돌아가자.

       ​

       ​

       ​

       *

       ​

       ​

       ​

       스르륵.

       슈화아아!~

       ​

       전쟁은 끝.

       나는 샤엘라와 함께 차원 틈새를 벗어나 드워프 왕국으로 복귀했다.

       ​

       “제가 모시겠습니다.”

       ​

       한 드워프가 다가왔다.

       우리는 다크레아와 이어진 드워프 왕궁 포탈로 이동했기에, 벨칸을 만나려면 다시 위층으로 찾아 올라가야 했다. 그걸 알기 때문인지, 벨칸도 미리 부하를 대기시킨 듯했다.

       ​

       터벅~

       ​

       “감사합니다. 고귀한 엘프시여. 당신이 아니었다면, 우리 가족이 위험했을 겁니다.”

       ​

       안내인 드워프는 걸으며 감사를 표했다.

       우리의 활약이 벌써 전해졌는지, 정말로 존경이 담겨 있었다.

       ​

       “별것 없어. 그보다 궁금한 게 있는데.”

       ​

       대충 드워프 상황을 물었다.

       들어보니 소집된 군대는 이미 해체되었고, 벨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단다. 지체할 것 없이 벨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오오! 왔는가.”

       “오셨습니까. 신목님, 여신님.”

       ​

       예전에 대화 나눴던 응접실.

       그곳에 벨칸과 시리안이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지 차가 끓여져 있었다. 내가 시킨 대로 둘이서 양국 동맹과 미래 방향성에 대해 얘기 나누고 있었던 듯하다.

       ​

       리키아드는 어디 가둬둔 모양.

       대충 일 처리는 다 끝난 듯하다.

       ​

       “이제 다 같이 얘기나 나눌까.”

       ​

       “물론이지. 어서 앉으시게나.”

       ​

       나와 샤엘라는 시리안 옆에 앉았고, 벨칸과 테이블을 두고 마주 보았다. 잡다한 건 시리안이 알아서 할 테니, 나는 아칸벨리에 대해 알아낸 것부터 바로 얘기했다.

       ​

       “적을 심문해보니 이곳을 침략한 건 아칸벨리라는 세력이더군. 규모가 크진 않아서 아마 다시 침략할 여력은 없을 거야.”

       ​

       “아칸벨리라… 혹시 그들이 어떻게 이곳을 알아냈는지는 아는가.”

       ​

       “너희 드워프 중 하나가 고문당한 것 같아. 정확한 건 나도 모르고.”

       ​

       “……그렇군. 바깥에선 그리 조심하라 가르쳤거늘. 누군가 모진 고문이라도 당했나 보군. 하지만 복수할 여력도 없어 분하구나. 내게 볼카누스님의 망치만 있었더라도….”

       ​

       “망치? 그게 있으면 좀 달라지나?“

       ​

       “혁명이 일어날 걸세!… 하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군.”

       ​

       “혹시 대응책이 있나?”

       ​

       “모르겠구려. 적들이 침략할 여력이 없다지만, 그게 더 큰 문제일세. 다른 곳에 정보를 팔면 더 강한 세력이 침략해올 테니.”

       ​

       당장의 전쟁은 승리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다.

       우리는 격퇴한 것이지, 적들의 본거지를 끝장낸 것이 아니다. 분명 다시 공격하거나, 정보를 팔아넘길 것이다.

       ​

       세리아스의 기억도 그랬다.

       마지막에 정보를 팔 속셈이었다.

       아무런 대처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결국 누군가 또 침략 오겠지.

       ​

       남 일 같지 않다.

       이건 나도 당해본 일이다.

       폐기장에서도 맨 처음 노예 사냥꾼을 잡았다가 이후 카르델피온이 왔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초기 대응이 제일 중요하다.

       ​

       고로.

       ​

       “일단 아는 정보를 전부 말해줄게.”

       ​

       벨칸과 시리안에게 정보를 전부 알려줬다.

       대응책도 뭘 알아야 세울 수 있는 거니.

       ​

       “이곳을 침략한 지배자는 셋이었어.”

       ​

       리키아드.

       세리아스.

       레이븐.

       세 명의 지배자와 500명의 인원은 아칸벨리의 약 7할에 해당하는 전력이며, 101층 본거지를 둔 세력이다. 그리고 아칸벨리 본거지는 또 2명의 지배자가 있고, 거기에 더해 반신급에 해당하는 세력 수장이 있다.

       ​

       여기서 문제는 적의 본거지 위치다.

       당장 101층에 갈 방법이 없어 이쪽은 쳐들어갈 수도 없다. 당연히 나와 다크레아의 활동 범위는 고작 20층 초반에 불과하다.

       ​

       그건 드워프 왕국도 마찬가지.

       ​

       “허어… 이건 또 어찌해야 할지.”

       ​

       고심 깊은 벨칸의 목소리.

       시리안이 기죽지 말라며 위로하곤 있으나, 상당히 절망적인 모습이다.

       ​

       그래도 벌써 기죽을 것 없다.

       이쪽은 드워프를 포기할 생각이 없으니.

       ​

       “너무 걱정하진 마. 다크레아 숲은 이곳 도시보다 넓으니까. 정 안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너희 모두 수용해줄 수 있어.”

       ​

       “허허… 그나마 위안이 되는 소리군. 백성이 비참한 일을 겪진 않을 테니.”

       ​

       찜찜한 미지의 적들.

       달콤할 수 없는 승리다.

       벨칸으로선 착잡할 수밖에 없겠지.

       사실 세오른에 도움을 청하는 방법도 있지만… 아직 확실하진 않으므로 말하진 않았다. 리리스가 거절하거나 손댈 수 없다고 판단하면 더 큰 절망이 될 테니까.

       ​

       아니, 아칸벨리를 처리해도 문제다.

       세력원 7할이나 동원한 원정이었다. 세력원의 충성도가 높진 않았으니, 원정이 시작된 순간 정보가 어딘가로 새어 나갔을 수 있다.

       ​

       벨칸도 그걸 생각한 걸까.

       녀석이 휙 고개를 들었다.

       ​

       “혹시 당장 이주해도 되겠는가.”

       ​

       “응?”

       ​

       “애초에 이 도시도 본래 세계를 버리고 숨어든 곳이라네. 두 번 못할 것 없지.”

       ​

       “그 말은….”

       ​

       “이번에는 그 장소가 다크레아일 뿐이네. 그대가 허락해준다면, 우린 그곳으로 이주할 준비를 할 걸세. 만일이 사태가 터져도 언제든 도망칠 수 있도록. 아니, 가능하면 일이 터지기 전에 이주를 마치는 게 좋겠지.”

       ​

       “그렇게 갑작스럽게 정해도 괜찮겠어? 이렇게 잘 발전된 도시를 버리고 오겠다고?”

       ​

       “내 백성의 목숨보단 소중하진 않네. 가능하다면 지금부터 준비하고 싶군. 그대들에게도 꼭 나쁘진 않을 거야.”

       ​

       정말 과감한 결단이다.

       생각해보면 매번 볼 때마다 판단이 기가 막히도록 빠른 녀석이었다.

       ​

       날 처음 만났을 때도.

       이번 침략에 도움을 청한 것도.

       다크레아와 깊은 동맹을 맺은 것도.

       그리고 도시를 버리고 다크레아로 이주하겠다는 것까지.

       ​

       뛰어난 예측과 과감한 결단력.

       이건 시리안보다 한 수 위인 듯하다.

       과연 일국의 왕이 가진 짬은 무시할 수 없군.

       ​

       나야 나쁜 것 없다.

       그만큼 다크레아의 기술 발전은 무지막지하게 빨라질 테니까. 문제는 도시를 버리는 드워프들의 가슴 아픈 심정이겠지.

       ​

       “정말 괜찮은 거 맞지?

       ​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함이네. 불만 가질 백성은 아마 없을 걸세. 차차 시간 들여 직접 모두를 설득할 생각이니. 그대만 괜찮다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즉시 옮길까 하네.”

       ​

       “그럼 시리안과 대화 나눠 봐. 가능한 원조는 다 해줄 테니.”

       ​

       잠시 시리안과 눈을 마주쳤다.

       녀석은 알아서 해결하겠다는 듯 미소와 함께 꾸벅 고개를 숙였다.

       ​

       “네. 저와 대화 나누시지요.”

       ​

       “허허허. 정말 고맙네.”

       ​

       슥.

       ​

       “대충 용건은 끝났네. 난 이만 가 본다.”

       ​

       “오늘 일은 절대 잊지 않을 걸세.”

       “나중에 보고드리겠습니다.”

       ​

       둘의 배웅과 함께 일어섰다.

       왕국 간의 협정 이야기는 머리 아픈데다가, 내가 끼어들 일도 별로 없으니까.

       ​

       이제 다시 복귀할 시간.

       ​

       “샤엘라. 그만 갈까?”

       ​

       “흐흐흐.”

       ​

       “…왜 웃고 있냐.”

       ​

       “너무 훅 커버려서.”

       ​

       “…?”

       ​

       “가자~”

       ​

       다시 공간 문을 열었다.

       우리는 만능 시리안에게 뒤처리를 맡기고 다크레아로 복귀했다.

       ​

       ​

       ​

       *

       ​

       ​

       ​

       사르륵.

       ​

       다크레아 세계수 집.

       공간 문을 타고 복귀하자 다소 예상치 못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

       “…뭐 하냐…….”

       ​

       “응웃?”

       ​

       레이븐이라고 했던가.

       보라색 머리의 마법사가 집구석에서 내 줄기 일부를 뜯어내 오징어 다리를 먹듯이 뜯고 씹고 맛보며 즐기고 있었다.

       ​

       질겅질겅.

       꿀걱.

       ​

       “…깨끗한 마나가 맛있어. 이렇게 정순한 마나는 흔치 않아. 보약 같은 기운도 느껴져.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해.”

       ​

       “……내 몸을?”

       ​

       “………?”

       ​

       녀석이 문제 있냐는 듯 고개를 갸웃한다.

       다른 지배자들은 험악했는데, 이놈은 혼자 다른 세상을 사는 것 같았다. 

       ​

       다만.

       ​

       “흠… 무찬의 줄기도 나름 괜찮았지. 옛날엔 보약처럼 먹었으니.”

       ​

       샤엘라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넌 왜 수긍하고 있는 건데….

       ​

       하아~

       ​

       잠깐 한숨 후 레이븐에게 물었다.

       ​

       “지금 네 처지는 알고 있지?”

       ​

       끄덕.

       ​

       “전부 이해하고 있어. 나는 아칸벨리가 너희를 침략하는 데 일조했고, 혼자 목숨을 구걸하고 살아남은 상태야.”

       ​

       “…그래. 알면서도 도망치진 않았네.”

       ​

       “난 약속을 지켜. 그리고 날 가만히 방치할 리가 없었을 거야. 분명 내가 도망치지 못하게 무슨 장치가 있겠지. 아쉽게도 뭐가 있는지 알아낼 수 없었지만.”

       ​

       “마법사라 그런가. 예리한데?”

       ​

       “알려줄 수 있어? 궁금해. 호기심에 나가 보고 싶은 걸 계속 참고 있었어.”

       ​

       “뭔… 호기심을 참았다고?… 보통은 도망가고 싶어서 나가려 하지 않나?…….”

       ​

       “참았으니까 알려줘.”

       ​

       “참 이상한 놈이네… 별거 없어. 분리된 차원이라 어디로든 도망칠 수 없거든. 그리고 이 집을 벗어난 순간 내가 알아차렸을 테고.”

       ​

       “분리된 차원?…….”

       ​

       “그런 게 있어. 그것보단 네 걱정이나 하지? 내가 이제 널 어떻게 할지 모르잖아?”

       ​

       “아… 이제 날 어쩔 생각? 살려준다면 원하는 것 뭐든 해줄 수 있어.”

       ​

       “솔직히 뭘 생각하진 않았어.”

       ​

       “그럼 날 여기 머무르게 해줘.”

       ​

       “응?”

       ​

       잘못 들은 걸까.

       보통 이런 상황에선 내보내 달라고 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

       그런 내 생각을 부정하듯.

       레이븐은 다시 한번 말했다.

       ​

       “이곳을 연구하고 싶어.”

       

       그러면서 녀석은 집에서 뜯어낸 줄기 조각을 입에 쏙 밀어 넣었다. 나와 대화하는 짧은 시간에 벌써 4번째 반복된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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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roken Goddess Tries to Raise Me

The Broken Goddess Tries to Raise Me

망가진 여신이 나를 키우려 한다.
Score 8
Status: Ongoing Author:
I have become the World Tree that the goddess is obsessed with. I ended up taking care of the broken goddess, and at some point, she started exerting her strength to raise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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