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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0

       “갖고 싶냐?”

       ​

       “……가, 갖고 싶어.”

       ​

       레이븐이 처음으로 말을 더듬었다.

       처음에는 무덤덤했고, 여기 와서 반짝반짝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였고, 이젠 말을 더듬기 시작한 것이다. 그만큼 차원 줄기 미끼가 잘 먹혀들었다는 것일 타.

       ​

       녀석은 마법사다.

       특출나게 호기심이 많다.

       그리고 이곳 환경과 세계수의 줄기, 열매 등등 전부 흥미를 가진 것 같았다.

       ​

       이걸 이용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녀석을 여기 정착시키는 것 말이다.

       지배자급 전력이니 가능하면 능동적인 전력으로 써먹을 생각이다.

       ​

       고로.

       ​

       “공짜로?”

       ​

       녀석에게 직접 대답을 들어야지.

       레이븐은 머뭇거리다 답했다.

       ​

       “……난 이미 원하는 건 모두 들어주겠다고 했어. 엘프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고… 여기서 더 바라는 게 있어?“

       ​

       “많지. 내가 원하는 건 잠깐 머물다 끝나는 관계가 아니라서 말이야.”

       ​

       “…그럼?”

       ​

       “좀 더 깊은 관계가 되는 거지.”

       ​

       “깊은 관계?… 이상한 짓을 벌일 생각?”

       ​

       살짝 경계하는 눈빛이 되었다.

       괘념치 않고 마저 설명했다.

       ​

       “이상한 건 아니고. 우선 1년으로 하자. 1년 동안 이곳에 머무는 게 조건이야.”

       ​

       “………?”

       ​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한 눈빛.

       경계하던 눈빛이 사라지고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멀뚱히 바라본다.

       ​

       재차 설명했다.

       ​

       “여기서 1년 동안 일하라고. 말했다시피 엘프를 가르치고, 만약 필요한 게 있으면 추가로 일을 시킬 수도 있어. 물론, 그만큼 네가 원하는 요구를 들어줄 수도 있고.”

       ​

       “……아.”

       ​

       “그 반응은 뭐냐. 뭘 상상했길래.”

       ​

       슥.

       ​

       녀석이 고개를 살짝 돌렸다.

       수치스러운 듯 볼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

       “그냥… 탑에는 더러운 자들이 많으니까. 잠깐 오해했어. 사과할게.”

       ​

       요컨대, 날 이상한 놈으로 봤다는 거군.

       표정의 90%가 담담하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원.

       ​

       “그건 됐고. 어쩔 거야. 여기서 1년 동안 머물면 이걸 줄 수 있다고. 그뿐만 아니라 원하는 지원도 아끼지 않을 생각이지.”

       ​

       슥슥.

       ​

       다시 차원 줄기를 흔들어 보였다.

       녀석은 리듬에 맞춰 고개를 흔들다가 퍼뜩 깨어나서 고민 모드에 들어갔다,

       ​

       그리고 잠시 후.

       ​

       “…조건은 방금 말한 게 끝?”

       ​

       “일단 그래. 기간을 연장할지 말지는 더 보고 정해야지.”

       ​

       “……정말 그게 전부?”

       ​

       “또 같은 질문 반복하네.”

       ​

       맘 같아선 바로 다크레아의 마법사가 되어 활약해라! 라고 하고 싶지만, 그래서야 수동적으로 움직일 게 뻔하고, 이번 아칸벨리처럼 쉽게 우리를 배신할 게 틀림없다.

       ​

       천천히 구워삶아야 한다.

       녀석이 이곳에 적응되도록.

       이곳이 아니면 안 되는 몸으로.

       그렇게 길들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다크레아를 위해 움직이게 될 거다. 먹을 거에 길들여져 정신 못 차리는 폐기장의 미야처럼 말이다.

       ​

       이 녀석도 다르지 않다.

       난이도가 조금 더 높을 뿐, 반응을 보면 충분히 구워삶을 수 있다. 연구를 좋아하는 마법사라 쓸모도 많을 테고.

       ​

       게다가 1년이면 충분하지.

       레이븐이 이곳에 적응하고 엘프 마법 병단이 탄생하는 건.

       ​

       뭐가 됐든 이쪽이 손해 볼 건 없다.

       그러니 한번 구워삶아 보자고.

       ​

       우릴 위해 충성할 지배자를.

       ​

       ​

       ​

       *

       ​

       ​

       ‘뭐야. 이 엘프….’

       ​

       레이븐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애초부터 1년은 머물 생각이었다.

       잠깐 가늠한 것으로 연구할 게 넘쳐났고, 이곳에서 수련하면 경지를 높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바보인가… 이걸 알려 줘야 하나?…….’

       ​

       너무나 후한 조건.

       강요하는 게 일절 없었다.

       다른 세력이었다면, 압박하거나 원하는 연구를 강압했을 텐데.

       ​

       여긴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엘프에게 한두시간 뺏기는 게 고작이다.

       척 봐도 놀라운 영약을 서슴없이 주고, 어디서도 구하기 힘든 특별한 지팡이를 주겠단다.

       ​

       레이븐은 감정 능력도 높다.

       웬만한 물건의 가치는 바로 알 수 있다.

       무찬이 주었던 생명과나 저렇게 흔들고 있는 차원 줄기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마법사인 그녀가 모를 리가 없었다.

       ​

       ‘……호구인가!’

       ​

       번뜩 땡잡았다고 생각했다.

       그저 멀뚱히 무찬을 바라보다가.

       ​

       끄덕.

       ​

       “그렇게 할게.”

       ​

       거래를 승낙했다.

       ​

       ​

       ​

       *

       ​

       ​

       ​

       “연구할 거야. 세계수의 비밀을 밝힐 거야.”

       ​

       “의욕 높은 건 좋은데, 그렇다고 시킨 일은 소홀히 하진 마.”

       ​

       “응. 최선을 다할게.”

       ​

       거래는 성사되었다.

       녀석은 앞으로 1년간 다크레아에 머문다.

       솔직히 인질로 잡아 온 시점에 강제로 시켜도 되겠지만, 죄질이 약하고 그렇게 부려 먹으면 이상한 짓을 할지도 모른다.

       ​

       잘 통제해줘야겠지.

       저래 보여도 지배자 전력이니까.

       물론, 혹시 모르니 시리안에게도 잘 감시하라고 전해놓을 생각이다.

       ​

       하지만 걱정은 필요 없을 것이다.

       ​

       “이건 세계수에서 자란 거야?”

       ​

       톡톡.

       파다닥!

       ​

       차원 줄기를 받아든 레이븐이 순수한 호기심으로 지팡이를 이리저리 흔들고 있다. 처음부터 싸움을 피하려 했던 녀석인 만큼, 굳이 해가 될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

       “맞아.”

       ​

       “너는 누군데 세계수를 마음대로 관리하고 다루는 거야?”

       ​

       “알려줘?”

       ​

       “응.”

       ​

       “그럼 3년 계약 연장이야.”

       ​

       “…그건 싫어…….”

       ​

       “농담이야. 우선 직접 알아내 봐. 스스로 파헤쳐 보는 게 재밌을 거 아냐. 정 궁금하면 3개월 연장으로 알려줄게.”

       ​

       “음… 직접 알아볼게. 우선 이것부터.”

       ​

       툭툭.

       휘익~

       ​

       녀석은 대화하면서도 차원 줄기를 멈추지 않고 만지작거렸다. 물건을 검사하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는 것 같았다.

       ​

       바닥을 두들기고.

       높이 들어 올려 자세히 관찰하고.

       ​

       그러다가도.

       ​

       “평범함과는 차원이 다른 힘이 느껴져. 이거 분해해 봐도 돼?”

       ​

       “분해?”

       ​

       차원 줄기를 분해하고 싶단다.

       그건 나도 궁금한 부분이다.

       ​

       “할 수 있으면 해봐.”

       ​

       차원 줄기는 가장 단단한 줄기다.

       차원 압력을 버티도록 설계된 거니까.

       이때껏 차원 줄기가 물리적으로 부서진 걸 본 적이 없다. 과연 녀석이 차원 줄기를 부술 수 있을지 나도 알고 싶다.

       ​

       어쩌면 모르지.

       나도 모르는 비밀을 밝혀낼지도.

       나도 내 몸의 객관적인 부분이 궁금하거든.

       저 정도 되는 녀석이라면 혹시 모른다. 

       획기적인 비밀을 밝혀낼지도?

        가능하면 지원해주자.

       ​

       “그것 말고도 필요한 자원이 있으면 말해. 어차피 연구 성과를 공유한다면, 나도 널 지원해서 나쁠 게 없으니.”

       ​

       “내가 원하는 것만 연구해도 돼?”

       ​

       “엘프만 잘 가르친다면야. 나머지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

       “호구….”

       ​

       “응?”

       ​

       “아, 아니야….”

       ​

       “어쨌든. 있다 엘프를 보내줄게. 집은 네가 원하는 대로 엘프가 꾸며줄 거야. 필요한 게 있으면 1층으로 와서 내게 말하고.”

       ​

       “………그렇게까지 해주는 이유가 뭐야?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

       “아까 말했잖아. 엘프들 가르치라고.”

       ​

       “정말 그게 전부?….”

       ​

       “그 말만 오늘 몇번째인지 알고 있냐? 난 이만 갈 테니 쉬고 있어.”

       ​

       휙.

       ​

       뒤돌아 집을 나섰다.

       너무 간섭해도 좋진 않을 테니, 우선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 줄 심산이다.

       ​

       빠안-

       ​

       녀석은 내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굳이 관심주지 않고 집을 나섰다.

       ​

       알아서 적응하겠지.

       ​

       ​

       ​

       *

       ​

       ​

       ​

       “후우~ 어찌 급한 건 다 마무리했네.”

       ​

       시리안의 진화.

       본체 육신의 진화.

       드워프 왕국의 침략 방어.

       아칸벨리 잔당 처치 및 레이븐 합류.

       레이븐과 거래로 연구 지원 및 집 지어주기.

       이전에 세오른과 거래하고 샤엘라와 다크레아로 등반한 것까지.

       ​

       생각보다 바쁜 시간이었다.

       그저 샤엘라와 함께 등반할 생각뿐이었는데,뭐이리 일이 생기는 건지.

       ​

       대신 얻은 것도 많다.

       ​

       강력한 부하들.

       강력해진 본체 육신.

       굴러들어온 지배자 전력.

       어느새 왕국은 지배자 여럿을 상대할만한 전력을 갖췄다. 이대로 성장한다면, 고층에서 활약할 국가 레벨이 될지도 모르겠지.

       ​

       “고생했어. 쉬어쉬어~”

       ​

       팍팍~

       ​

       샤엘라가 등을 두드려준다.

       참고로 우리는 한 침대에 걸터앉아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

       그렇게 잠시 쉬고 있으려면.

       ​

       “레이븐 녀석은 뭐 하고 있냐?”

       ​

       샤엘라가 궁금증을 표출했다.

       2층에 혼자 내버려 둔 녀석이 뭐 하고 있나 궁금한 듯했다.

       ​

       싸악~

       ​

       잠시 식물의 시야로 살폈다.

       엿보는 것만큼 재밌는 게 없거든.

       ​

       현재 레이븐은.

       ​

       머엉~

       ​

       멍때리고 있다.

       집 밖에 나와 2층 난간에서 다크레아 왕국 풍경을 가만 바라보고 있었다.

       ​

       “엘프의 낙원….”

       ​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텁~ 난간에 걸터앉았다.

       녀석의 두 손에는 내가 준 차원 줄기 지팡이가 소중히 들려 있었다. 그런 모습을 샤엘라에게 고스란히 알려주었다.

       ​

       “여기가 신기한 모양이야. 2층에서 왕국을 가만 구경하고 있어.

       ​

       “귀여운 구석이 있네.”

       ​

       “맞아. 4차원적인 매력이라고 해야 할지. 처음부터 남다르긴 했지.”

       ​

       “뭐? 매력적이라고?”

       ​

       “응?”

       ​

       “나보다?”

       ​

       “………?”

       ​

       뜬금없는 비교 질문.

       샤엘라가 게슴츠레하게 바라본다. 명백히 원하는 답이 있는 것 같았다.

       ​

       “넌… 특별하지.”

       ​

       “특별? 그건 무슨 의미야?”

       ​

       “한 번 보면 시선을 돌리기 어렵거든. 매력을 뛰어넘은 무언가가 있어.”

       ​

       “흐음?”

       ​

       “매일 네 생각을 할 정도로.”

       ​

       “뭐, 뭐야… 무차아앙~”

       ​

       톡톡.

       푹~

       ​

       녀석이 어깨를 두 번 치고 밀착한다.

       오랜만에 보는 느끼한 샤엘라 모드다.

       익숙해지고 적응하고 나니, 왜인지 이 모습이 기분 좋은 듯한….

       ​

       뭐튼 좋다.

       둘만의 휴식을 만끽했다.

       하지만 마음은 그리 편치 않다. 일이 완전히 마무리된 건 아니니까.

       ​

       ‘분명 또 침략이 올 거란 말이지….’

       ​

       아칸벨리의 침공.

       한 번으로 끝나 리가 없다.

       여력이 없더라도 다른 세력에게 정보를 팔아 재침공할 가능성이 높다. 정보를 팔기 전에 먼저 제지해야 한다.

       ​

       하지만 가능한 일일까.

       전력의 무려 7할을 동원한 침략이었으니 정보가 이미 어딘가로 새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결국, 시간 벌기밖에 되지 않는다. 

       ​

       그럼에도.

       ​

       ‘그 시간이 매우 필요하겠지.’

       ​

       도시 이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때 아칸벨리를 부수면 작정하고 정보를 퍼트릴 순 없을 테니, 시간을 벌거나 더 많은 세력의 개입을 줄일 수 있다.

       ​

       과한 참견이 아니다.

       이건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다.

       일전에 시리안의 보고로 듣기를, 벨칸국은 원래 더 발전된 문명이었다.

       ​

       하지만 지금은 기술력이 크게 소실됐다.

       그들 정도 문명이면 기술을 받쳐줄 시설이 필수적인데, 그걸 몽땅 잃고 처음부터 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주하면서 유능한 기술자들도 많이 납치당했을 테고.

       ​

       그걸 막아야 한다.

       최소한의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래야 다크레아가 온전히 벨칸 왕국의 기술력을 흡수할 수 있다.

       ​

       그리고 한 가지 더.

       사실 이게 본심이다.

       세리아스 기억에서 엿보기를.

       ​

       ‘아칸벨리에는 히페리온 동력원이 있다.’

       ​

       히페리온 동력원.

       매우 뛰어난 에너지 구체다.

       주로 비공정이나, 거대 함선을 움직일 때 사용하며,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수백에서 수억 포인트까지도 거래된다.

       ​

       그리고 아칸벨리 것은 중상급.

       최소 1억 가까이하는 보물이다.

       ​

       ‘내가 이때껏 벌어들인 돈보다 비싸다니… 이런 걸 가지고 있었단 말이지.’

       ​

       탐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저거라면 비공정을 만들 수 있을 터.

       ​

       비공정이란.

       하늘을 지배하는 배.

       마법과 첨단 기술 두 가지를 조화로이 섞은 기술의 절정체로  빠른 기동성을 갖춘 강력한 이동 수단이다. 웬만한 모든 세력이 뛰어난 비공정을 가지려고 노력하며, 세력 전쟁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곤 한다.

       ​

       어쩌면 아칸벨리는 비공정을 만들기 위해 드워프를 침략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억에 따르면 설계도도 구비해놓은 것 같았거든.

       ​

       나는 그걸 취할 생각이다.

       동력원과 설계도를 가져와 이곳에서 기깔나는 비공정을 만들 생각이다.

       ​

       다크레아는 충분히 가능하다.

       첨단 기술을 가진 드워프가 있다.

       지배자급의 뛰어난 마법사 레이븐도 있다.

       그들이라면 설계도를 더욱 보완한 이동 수단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하지만 어떻게 처들어 가지?

       ​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적은 101층에 기거하고 있으니까.

       어떻게 침략해 어떻게 강탈할 것인가.

       ​

       뭐, 혼자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

       “어떡할까.”

       ​

       “응?”

       ​

       샤엘라를 돌아보며 말했다.

       함께 의논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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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roken Goddess Tries to Raise Me

The Broken Goddess Tries to Raise Me

망가진 여신이 나를 키우려 한다.
Score 8
Status: Ongoing Author:
I have become the World Tree that the goddess is obsessed with. I ended up taking care of the broken goddess, and at some point, she started exerting her strength to raise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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