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할까.”
“응?”
주어를 생략한 질문.
샤엘라가 의문을 표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혼자 고민해서 좋을 건 없다.
이때껏 막히는 일마다 샤엘라와 의논하면 신기하게 쉽게 풀렸었다.
고로.
“이번 드워프 침공. 분명 적은 다시 올 거야. 대책을 세워둘까 해.”
세력 아칸벨리.
그들은 다시 침공하든, 정보를 팔아 다른 세력을 끌어들이든 결국 침략올 것이다. 그들을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가.
가능하면 아칸벨리가 뭔 수작을 부리기 전에 해치우는 게 가장 베스트인데….
샤엘라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굳이 더 도와야 해? 이미 할 만큼 도운 데다가, 드워프들 여기로 이주 온다면서.”
“그 시간이 부족할 거야. 도시 하나를 통째로 옮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
“그래서 시간을 벌어주고 싶다?”
“대충 그런 맥락이지.”
침략과 이주.
다시 일어서기 위한 시간.
그 과정에서 구멍 난 기술력.
그것만 해도 매우 큰 타격이다.
드워프는 이미 그런 일을 한 번 겪었다.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시리안의 보고 속 드워프는 본래 매우 뛰어난 문명이었다.
그런 문명 퇴화를 막아야 한다.
그래야 다크레아도 빨리 클 수 있잫아.
따라서 아칸벨리를 처리해야 한다.
침략군이 복귀하지 않으면 실패로 보고 정보를 적극적으로 팔 테니까.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처리하게? 본거지가 101층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칸벨리 세력의 위치다.
놈들의 본거지는 101층에 있다.
나도 그 해법이 알고 싶어서 샤엘라에게 질문한 거다.
우선 내 생각부터 말했다.
“방법이야 있기야 있지. 두 가지 정도.”
“두 가지?”
“그건….”
1. 본체 힘으로 무리해서 100층을 돌파한다.
지금이라면 가능할지 모른다. 힘의 체계 자체가 달라져 효율이 높아졌고, 전과 비교할 수 없는 에너지를 본체에 품고 있다.
2. 세오른에게 대신 처리해달라고 부탁한다.
빚지기는 싫지만… 승낙해준다면 확실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허나.
“시원한 해결법은 없네. 올라간다고 제대로 해결될지도 의문이고.”
“그건 그래. 과한 부담뿐이긴 하지.”
이것 참 문제다.
역시 손 떼는 게 정답일까.
어차피 내가 101층에 간다고 해서 팍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성공한다 해도 시간을 조금 더 버는 정도가 고작.
이미 도울 만큼 도왔다.
적어도 안전은 보장했다.
단순히 조금 아쉬울 뿐이지, 이쪽은 손해 볼 게 없다. 뿅!하고 101층에 갈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역시 그만두는 게-
“무찬. 그냥 내가 101층에 올려줄까?”
“응?….”
웬걸.
생각하기 무섭게 샤엘라가 그리 말했다.
무슨 소리냐는 눈빛으로 쳐다보니, 녀석은 히죽 웃으며 제안했다.
“하루 정도면 가능한데. 어때?”
이럴 수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
샤엘라의 존재 자체가 변수인 것을 깜빡하고 있었다.
“날 101층에 보낼 수 있어?”
“당연하지. 네가 101층에 가는 건 쉽고 확정된 사실이거든. 적당히 할만해.”
“도대체 네 능력의 한계가 뭐야….”
“후후. 존경스럽냐?”
저 자신감 있는 태도.
역시 녀석과 의논하길 잘했다.
해법을 제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해법을 창조하는 수준이다. 녀석의 말이 사실이면, 당장 아칸벨리로 날아갈 수 있다.
그럼 마다할 이유가 없지.
“샤엘라. 그럼 101층에 가자. 불확실한 위험 요소는 빠르게 처리해두는 게 좋을 것 같으니까. 놈들이 수작 부리기 전에 지금 처리해야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야.”
이참에 내 힘을 시험할 겸, 확실히 처리하고 오도록 하자.
허나, 만능은 아니라고 했던가.
샤엘라는 고개를 내저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됐어~ 내가 함께 가면 그곳에서 능력 쓰기가 피곤해지거든. 널 보내는 것도 조금 피곤한 일이지.”
“…나 혼자 가라고?”
“왜? 내가 없으면 무서워?”
“그건….”
무섭다라.
상당히 쪼들리는 건 맞다.
녀석은 매번 위기 때마다 날 구해줬고, 어느 새부턴가 계속 의지하고 있었으니. 고층에서 혼자 활약하는 건….
이런 내 반응에 샤엘라는 웃어 보였다.
피식.
“무찬~ 괜찮으니 다녀 와. 네 힘을 제대로 느끼고 오라고. 내가 보기엔 너는 네가 어느 정도인지 깨달을 필요가 있거든.”
“말 안 해도 알거든. 나 약한 거.”
“아니… 일단 다녀와 봐.”
“위험할 것 같은데….”
“아 좀! 그냥 다녀와.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복귀시켜줄게.”
“그런 것도 가능하냐?”
“난 불가능한 게 없다니까?”
그럼 역시 거절할 이유가 없다.
애초에 다짐했지 않은가.
강해져서 녀석을 지키겠노라고.
계속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수야 없지.
진화했으니, 자립할 시간이다. 나의 힘을 파악하고 다듬어야 한다.
“좋아. 혼자 다녀올게.”
“그래. 잘 생각했어. 그럼 힘 좀 써야 하니 차원 줄기 좀 줘봐.”
“차원 줄기는 왜?”
“아무리 나라도 힘을 막 쓰는 건 힘들어. 하지만 상황에 맞는 담보가 있으면 인과를 조작하기 쉬워져. 그 정도는 괜찮잖아?”
“차원 줄기를 담보로 쓴다라… 그래도 굉장한 건 틀림없네.”
“많이 주면 더 좋고.”
“알았어. 준비해둘게. 하지만 나도 준비가 필요하니 출발은 있다가 할 거야.”
“그건 알아서 해.”
이것으로 당장 할 일이 정해졌다.
샤엘라의 능력으로 101층에 올라 아칸벨리 세력을 괴멸시킨다. 괴멸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드워프가 다크레아로 이주할 수 있는 준비 기간을 확립해야 한다.
드워프와 엘프가 합작하면 거주 시설을 짓는 데 오래 걸리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며칠 만에 후딱 끝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섞일 시간을 줘야겠지.
그럼 바로 준비하자.
*
계획은 방향성이다.
방향을 안다면 나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가만히 여유 부릴 이유는 없다.
지금 할 일은.
1. 차원 줄기 확보.
2. 시리안의 보고 듣기.
3. 친위대의 문제 결정하기.
4. 그동안 밀린 열매들 생산하기.
5. 아칸벨리에 잠입할 방법 구상하기.
대충 이 정도.
우선 차원 줄기 상황을 살폈다.
현재 다크레아는 17~20층 사이에 차원 줄기로 양분 수급처를 열 군데 넘게 만든 상황이고, 여분으로 5개 정도 남았다.
5개면 여유가 있는 것 같지만, 폐기장과 잇는 걸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고로.
스르륵!!~
부화장에서 차원 줄기를 생산했다.
이제는 양분 수급이 전보다 훨씬 수월하다. 여기에 달라진 본체의 힘을 집중하면.
주륵.
꾸루룩!
하나, 둘, 셋.
다섯, 일곱, 열.
총 10개다.
10개의 차원 줄기를 생산했다.
이때껏 차원 줄기는 막대한 양분과 본체의 초월적인 힘이 투여됐었다. 여기서 말한 초월적인 힘은 사실상 신성이나 다름없었고, 차원 줄기의 근본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본체는 온전한 형태를 빚었다.
매우 효율적인 체계로 직접 힘을 쓸 수 있으며, 약간의 신성을 투여하는 것만으로도 차원 줄기 생산이 놀랍도록 쉬워졌다.
신성의 제약이 풀렸다.
부족하면 양분과 마나로 본체 육신에서 공장처럼 신성을 제조할 수도 있다.
즉, 차원 줄기 양산이 가능해졌다.
양분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제한 없이 수십 개씩 쭉쭉 뽑아낼 수 있다.
“곧이군. 무뚝찬과 만나는 것도.”
조금만 더 있으면 17층부터 1층까지 차원 줄기를 설치해 폐기장과 이을 수 있다. 그때부터 두 엘프의 교류가 가능해지고, 무뚝찬도 마음껏 위로 올라올 수 있게 된다.
아마 녀석이 내 본체를 보면 놀라겠지.
그러고 보니 요즘 좀 잠잠한데… 한창 도시를 개발 중인 듯하다.
스르륵~
다음은 열매를 생산했다.
개조 열매.
생체 무기.
단번에 50개가량 만들었다.
완성된 본체가 있으므로 딱히 개조 육체는 연구하지 않았다. 이젠 흡수만 해도 본체 내부에서 생체 정보가 분석되니까.
이어서 하이 엘프 열매에 양분을 보급하고 포션을 위한 생명과도 100개 더 만들었다. 그렇게 한동안 열중했고.
[신목님이시여. 벨칸국과 동맹에 관한 조율을 마치고 복귀했습니다.]
이쯤 시리안이 돌아왔다.
마침 논의할 사항도 많다.
[그래. 왕성에서 보자.]
드워프 문제.
친위대 문제.
레이븐 문제.
아칸벨리 문제.
빠르게 상의하고 넘어가자.
*
다크레아 왕궁.
“-하여, 다크레아는 드워프 인사를 초청해 도시를 지을 땅을 선별 중이며, 가능한 한 달 내로 모두 이주할 수 있도록 계획도시를 세우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시리안에게 보고를 들었다.
주로 드워프와 동맹 안건 얘기였고, 앞으로의 대처를 설명했다.
나는 가만히 보고를 들었다.
“드워프 왕국은 선발대 지원자를 모집해 다크레아에 넘어오기로 했고, 추가로 내일까지 300명의 기술자를 투입할 것이며, 저희 측은 군대를 동원해 건설 인력으로-”
시리안과 벨칸의 콜라보.
지혜롭고 결단력 좋은 두 존재가 협상한 것으로 일은 척척 진행되었다.
벨칸은 매일 주민과 기술자를 투입해 주거 구역과 행정 시설을 짓고, 일주일 내로 왕정 업무가 가능하도록 하겠단다.
굉장히 빠듯한 시간.
과연 잘 해낼 수 있을는지.
이에 다크레아도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군대 인력과 지원자에게 급여를 지원하는 식으로 인력을 동원해 드워프를 돕기로 했다.
또한.
“차원 줄기로 연결한 18층에 광산에 드워프 일꾼을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가능하면 도시 완성까지 7할의 자원을 무상 배분할 생각입니다.”
가장 부족한 것은 자원.
다크레아는 그 부족한 부분을 긁어줬다.
영역 수색대가 차원 줄기를 이곳저곳에 뿌려뒀기에 다른 곳에서 자원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캐낼 인력이 적었을 뿐이지, 드워프가 투입하면 순식간에 끝날 거다.
드워프는 타고난 광부다.
뛰어난 발굴 장비와 로봇도 많다.
심지어 드워프 왕국은 다크레아와 달리 만명도 넘는 인구를 가졌다.
여기에 더해.
“19층에 단단한 암석 굴을 발견했는데, 벨칸 국에게 필요한 자원이 매장된 것 같아 탐색대가 차원 줄기를 심어놨습니다. 혹시 포탈을 열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새로운 채굴 장소가 발견됐단다.
당연히 드워프들이 맘먹고 자원을 캐기 시작하면 빠르게 해결될 것이다. 한 달 내에 왕국을 옮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만, 그럴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해줘야겠지.
하지만 그전에.
“이제 막 복귀했으면서 그런 건 어떻게 언제 보고 받은 거냐.”
시리안의 능력이 궁금해졌다.
녀석은 밖에 원정 나간 엘프의 동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지시하고 있었으니까.
녀석은 후훗 웃으며 답했다.
“저도 신목님처럼 다른 신목의 엘프와 텔레파시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오호….”
요컨대, 나와 같은 능력을 쓸 수 있다?
그렇다면야, 이건 어떨까.
“좋아. 네가 열어 봐.”
“네?”
나는 한 손을 뻗었다.
사르륵~ 차원 줄기 지팡이가 나타났다.
세계수 집에 있는 여유분인데, 본체 힘으로 쉽게 소환할 수 있었다.
툭!
그 차원 줄기를 던졌다.
시리안은 당황한 듯하면서도 가볍게 차원 줄기를 받아냈다,
“이건 제게 왜….”
“네가 해봐.”
“…제가요?”
갑자기 든 호기심이다.
만약 시리안도 포탈을 열 수 있다면?
녀석은 나와 함께 진화하면서 분신 이상으로 크게 연결되었다. 게다가 시리안은 식물의 감각을 다루고 나처럼 다른 누군가와 동화되는 힘까지 다뤘었다.
그러니 혹시 모른다.
녀석도 차원문을 열 수 있을지.
“네가 차원문을 열어봐. 왜인지 몰라도 너는 내 능력도 어느 정도 쓰는 것 같더라고.”
“……정말 해봐도 되겠습니까.”
시리안은 묘하게 설레는 눈빛과 목소리로 그리 되물었다.
“혹시 해보고 싶었던 거냐?”
“…예.”
수줍게 긍정한다.
뭐지, 이 귀여운 구석은.
어쩌면 이녀석도 레이븐처럼 차원 줄기가 갖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여간.
“진작 말하지 그랬냐.”
“하지만 제가 감히 신목님의 권능을….”
“본래의 넌 나보다 뛰어난 녀석이었어. 너를 깎아내리진 마라. 이젠 반신격이 된 주제에. 내가 무안해진다고.”
“…알겠습니다. 그럼.”
슥.
시리안이 잠시 일어서 집중했다.
양손에 차원 줄기를 짚고 식물의 감각으로 집중하는 듯했다.
대략 1분 정도.
조금 느리지만.
스륵.
스르륵….
공간이 일렁거렸다.
나의 감각으로도 느껴진다.
일렁거리는 공간 속에 다른 공간이 겹치려는 것이.
슈화아아아!!~
차원문이 열렸다.
설마 했는데, 바로 성공했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깨닫고, 차원 능력을 다스린 것이다. 비록, 내 차원 줄기가 필요하지만, 이게 어디랴.
이건 매우 축하할 일이다.
다크레아에 차원술사가 탄생한 순간이니까.
고로.
“그 차원 줄기… 너 가져라.”
차원 줄기를 녀석에게 선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