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서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어.”
“히에에엑!!?”
녀석이 질겁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아마 뭔 소린가 싶을 거다. 아니, 내가 미친놈처럼 보일지도.
하지만 난 당당하다.
“넌 나한테 냄새가 난다면서. 이것도 비슷해. 난 네 맛이 느껴져.”
“아니!!… 그건 명백히 이상하잖아!!?”
“느껴지는 걸 어떡해.”
“으엑…… 무찬. 나한테 가까이 오지 마.”
“그렇게까지 반응한다고?….”
샤엘라가 팔을 X자로 크로스해 양어깨를 움켜쥐었다.
경멸하는 표정.
생각보다 볼만한….
아니, 나는 그런 취향이 아니다.
게다가 장난인 거 다 안다.
살짝 히죽이는 거 다 보인다고.
처음엔 진짜 놀랐을지 몰라도, 지금은 날 놀리려고 머릴 굴리고 있겠지. 언제나 놀리는 건 진심인 놈이니까.
그럴 바엔 내가 먼저 한다.
출격하라, 내 혓바닥이여.
츄릅.
“흐익!?”
츄베뤠레레레렑!!
“끼히이이이익!!!?”
얼굴을 들이대며 혓바닥을 가져다 대자 녀석이 정말 질겁하여 뒤로 휙 사라졌다.
정말 빠른 속도다.
눈앞에서 기척을 놓쳤다.
어느새 저 멀리 도망가 있었다.
슥.
다시 녀석을 바라보면.
심장이 벌렁거리는 듯.
천하에 샤엘라가 저리 떨고 있다.
솔직히 한 대 맞을 각오로 한 건데, 저리 도망갈 줄은….
“우으으…”
어느새 경멸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가짜가 아닌 찐이었다.
“그렇게 도망갈 정도였냐?”
“그럼 넌 내가 혓바닥 냘름냘름 거리면서 다가오면 가만히 있을 거냐!?”
“……괜찮을지도?”
“갸아아앍!!!”
“…농담이니까 그만 도망가.”
“너, 너 또 그러진 마라? 그으… 그런 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단 말이야.”
“마음의 준비?….”
어?
받아줄 마음은 있다는 건가?
…못 들은 걸로 하자.
툭.
슬슬 진정됐을까.
녀석이 다시 거리를 좁혔다.
후우~
가벼운 한숨과 함께 다시 마주 봤다.
맛 얘기로 주제를 벗어나긴 했지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나저나 나한테 뭘 했던 거야?”
나는 샤엘라의 힘으로 101층에 올라가기 위해 온 상황이다. 그러자 녀석은 날 쓰다듬으며 신성을 내뿜었었고.
나는 그 이유를 물었다.
샤엘라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별거 아냐~ 네 시야를 엿보려고 사도처럼 내 힘을 심은 거니까.”
“힘을 심어?”
“심었다기보단 일깨웠다고 해야 하나. 일전에 내 피를 먹었잖아.”
“저번에 준 그 단약?”
“응. 그걸로 너는 내게 이어졌어. 네가 날 생각하면 나도 널 볼 수 있지.”
“그런 효과가 있다곤 안 말해줬잖아.”
“안 물어봤잖아. 좋다고 가져가서 더 만들어달라고 할 땐 언제고. 어쨌든 싫다고 멋대로 내 기운 떨쳐내진 마라? 그땐 도망친 걸로 간주하고 나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뭐지, 이 강매꾼은.
처음부터 그게 목적이었던 건가.
어쩐지 순순히 혼자 보내준다 했건만, 이런 걸 숨기고 있을 줄이야.
딱히 불편한 건 아니다.
내가 엘프를 보는 것과 비슷하겠지.
어찌 보면 엘프는 내 사도와 같으니까.
샤엘라도 나를 자신의 신성으로 연결한 것과 다름없다. 풍요롭게 청량한 맛이 나는지라, 나쁘지도 않고.
그러니 거부할 이유는 없다.
애초에 나도 샤엘라를 많이 훔쳐봤었으니. 내 죄질에 비하면 한참 약과지. 떨어져 있는 동안 지켜보게 해주자.
자, 그럼.
“이제 날 보내줘. 빨리 끝내고 오게.”
“알았어. 차원 줄기나 내놔. 가능하면 네 신성을 듬뿍 담아서 말이야.”
“내 신성?”
“그래야 내가 편해.”
“그렇다면야.”
쉬이익!~
차원 줄기 2개를 내 몸에서 꺼냈다.
아까 전 왕궁에서 돌아온 뒤, 차원 줄기를 모조리 몸속에 넣어놨었다. 현재 내 몸속에는 1개의 차원 줄기가 더 있다.
공간을 이용한 보관법.
손바닥에 아공간을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아니, 아공간 마법보다 더 진화된 개념으로, 이제 일일이 소환하거나 가지러 갈 필요가 없다.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지, 나는 무한한 배낭을 언제든 만들 수 있다.
“오호? 새로운 재주를 익혔네.”
샤엘라의 칭찬에 우쭐해졌다.
길게 끌 것 없이 초록빛 신성을 끌어올려 차원 줄기에 불어넣었다.
툭.
바톤 터치.
샤엘라에게 내밀었다.
차원 줄기를 받아든 샤엘라는 이번엔 자기 신성을 끌어올렸다.
파아아~
언제나 아름다운 황금빛.
그 빛은 차원 줄기를 감싸더니 이내 차원 줄기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샤르르륵~
재처럼 사라지는 1개의 차원 줄기.
그 일련의 과정에서 가늠할 수 없는 초월적인 힘이 느껴졌다.
신성끼리 반발은 없었다.
샤엘라의 말을 듣도록 제어했으니까.
신성이란 존재의 힘과 같다. 육신을 떠나더라도 나의 몸처럼 쓸 수 있는 힘이다. 따라서 최대한 녀석의 의지에 따르게 하였다.
그랬을 뿐이거늘.
차원 줄기가 저리 녹아들었다.
“이야~ 상성이 좋네. 대가가 거의 없어. 다른 것도 가능하겠는데?”
“잘 된 거야?”
“물론. 준비 다한 거 맞지? 당장 보낸다?”
“빨라서 좋네. 혹시 바로 아칸벨리 본거지로 이동되는 건가?”
“그건 귀찮고 힘들어. 알아서 해.”
“그럼 어디로 도착해?”
“몰라~”
“응?….”
“잘 다녀와!”
“야!?”
파아앗!!
일순간 샤엘라의 손에서 분해된 차원 줄기 가루가 나를 뒤덮은 기분이었다.
뭐라 말할 틈은 없었다.
눈을 깜빡이면 다른 곳이었다.
*
“…여긴 어디?”
웬 사막지대가 보인다.
옆에는 기둥형 게이트가 있었다.
[101층. 네트리 게이트.]
101층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딱히 돌아갈 것도 없이 전부 스킵하고 101층에 온 것이다.
감탄 밖에 안 나온다.
샤엘라의 능력은.
그나저나….
“어디로 가야 하지?”
우선 천천히 생각하자.
먼저 게이트를 돌아봤다.
“네트리 게이트….”
당연히 모르는 장소다.
어쩌면 미래의 내가 101층에 등반했을 때 이용하는 게이트가 아닐까 싶었다.
“…등록하면 어떻게 되지?”
잠시 고민했다.
현재 본체는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게이트에 등록하면 101층의 자격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거 아닌가?
툭.
생각과 동시에 게이트에 손을 짚었다.
예상대로 시스템은 날 인지했다.
다만.
◎︎ 등록되지 않은 사용자.
◎︎ 비정상 루트 등반자로 판정.
◎︎ 식별 불가. 중층부터는 탑 주민의 식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식별을 위해선 게이트 관리자와 상의하십시오.
식별이 불가능했다.
살짝 아쉬운 맘이 든다.
이런 편법을 막아놨을 줄이야.
사실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고층에서 태어난 존재는 강함과 관계없이 높은 자격을 갖는 셈이니까. 즉, 고층 탑 주민은 마음대로 층 이동을 할 수 없고, 해당 층에서 살거나 관리자를 만나 해결해야 하는 듯했다.
대충 이곳 생태가 예상된다.
이곳에서 태어난 힘없는 고층 탑 주민은 노예처럼 마구 부려질 것이다.
여기도 폐기장과 다르지 않다.
아니, 폐기장이 고층의 축소판이었을 터.
꼼짝없이 갇힌 약자를 부려 먹고 관리자급 이상의 강자나 등반자만이 특권을 누릴 것이다.
“…곤란하네.”
고층 생태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만, 게이트가 통제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정말 곤란하다.
시스템을 못 쓰니까.
다시 말해 길을 찾을 수 없다.
아칸벨리로 가는 길을 알려면 우선 정보 길드에 들릴 필요가 있는데, 포인트를 지불할 수 없으니 거래할 수도 없다.
물론, 방법이 없지는 않다.
아무 도시에 들러 누군가를 흡수해 정보를 알아내면 된다. 다만, 그런 사소한 정보는 파헤치기 힘들며, 제대로 된 길을 아는 자를 찾기까지 모르는 이들을 계속 죽여야 한다.
기각.
난 그렇게 쓰레기가 아니다.
길 찾겠다고 아무나 죽일 순 없지.
슬슬 걱정된다.
“하루 만에… 끝낼 수 있겠지?”
[파이팅~ 힘내라. 무차무찬!~]
[먀앗, 먀!!]
속에서 샤엘라의 응원이 들린다.
어째 챠니도 함께 응원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내가 샤엘라의 출정을 구경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정반대다. 녀석은 나를 관찰하며 집에서 과자를 먹고 있었다.
팔자 좋기는.
어서 끝내자.
탓!!
슈후우욱!!~
하늘로 도약했다.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
하늘을 비행하며 길을 찾았다.
*
툭.
사막 어딘가.
비행 도중 지상에 내려섰다.
도시를 찾으려 30분 정도 비행했으나, 아쉽게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내겐 세리아스의 기억이 있으니까.
그녀의 기억에 따르면, 아칸벨리 본거지는 마법으로 숨겨진 작은 성이며, 마이낙스라는 도시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우선 마이낙스 도시를 찾으면 된다.
그다음의 길은 내 머릿속에 들어있다.
만약 이 사실을 몰랐다면, 정보 길드를 뒤져도 아칸벨리를 못 찾았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도시가 어딘지 모른다는 것.
결국, 그 정보조차 정보 길드에 들러 알아내야 하는데… 내겐 불가능한 방법이다.
무작정 돌아다녀야 하는 상황.
운 없으면 하루 만에 못 끝낼 수도 있다.
별수 없군.
“이 방법만은 쓰지 않으려 했는데.”
스륵!
사르륵!!
공간이 일그러트렸다.
그 공간은 나를 집어삼켜 101층 어딘가로 날 전이시켰다.
누군가와 마주칠 걱정은 없다.
나는 지상에 나타나지 않을 거니까.
*
후우우욱!!-
휘이이이익!!!
굉장히 높은 상공.
거대하고 동그란 행성으로 추락했다.
여긴 드높은 대기권.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면 우주가 보이고 정면을 보면 101층이라는 이름의 행성이 보인다.
보다시피 나는 높은 하늘로 이동했다.
이러면 누군가와 마주칠 걱정도 없다.
차원 줄기를 피뢰침 삼지 않더라도, 이렇게 무작정 멀리 이동하는 건 어렵지 않다.
휘유우욱!!-
거센 바람을 느끼며 지상을 내려봤다.
이대로 목적지를 찾을 셈이었다.
다만.
‘뭐 이리 행성이 못생겼어.’
지구는 푸르렀었는데.
하지만 이곳은 제멋대로다.
다른 세계의 땅들을 억지로 붙였기 때문인지, 구역마다 풍경이 전부 달라서 한눈에 조화되지 않고 어색했다.
[크~ 재밌는 풍경이네.]
[먀아앙~]
이건 뭐 백그라운드 재생인가.
자꾸 둘의 텔레파시가 들린다.
딱히 신경 쓸 건 아니다.
지금 내가 할 일은 도시를 찾는 건.
지상에선 매우 힘들었지만, 우주라고 해도 될 정도로 높은 대기에서 내려보면 못 찾을 것도 없다. 적당히 높게 비행한 것과는 보이는 시야가 차원이 다르거든.
휘이이익!!
치이이!!
전신이 뜨겁게 달궈지지만, 육체에 흠집도 나지 않는다. 생체 운석이 되어 지상으로 쭉 추락하며 행성을 훑었다.
‘자, 어디냐.’
빠르게 세계를 훑었다.
세리아스의 기억 속에 마이낙스 도시가 어떻게 생겼는지와, 근처에 눈에 띌만한 지형 정보까지 들어 있었기에 잘만 집중하면 아칸벨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도시가 너무 많다.
또한 너무 멀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구름에 가려진 곳도 많아서 위치를 특정하는 게 매우 까다롭다.
‘그래도 얼추 보이네.’
다행히 본체 감각은 평범하지 않다.
나는 전신으로 사방을 모두 볼 수 있으며, 눈으로 보는 것과 달리 안개나 구름을 무시하고 선명한 시야를 느낄 수 있다.
나의 감각이라면 가능하다.
지상을 자세히 살필 수 있다.
멀리서 목표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심지어 가까이 있는 것이라면 만지고 있는 것처럼 대상을 느낄 수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내가 바라보는 곳의 숲이나 식물들과 교감하여 시야를 빌릴 수 있다. 일전과 달리 매우 넓어진 교감 범위였다.
이거라면 찾을 수 있다.
침착하게 차근차근 지상을 훑었다.
그러던 도중 마을이 따닥따닥 붙은 듯한 거대 도시가 내 시선을 강탈했다. 수천만 명은 살듯한 미친 규모의 도시로, 워낙 크다 보니 맨눈으로도 훤히 들어온다.
저건… 보기만 해도 무섭네.
어떤 강자들이 머물고 있을지.
싸악~
본체 감각에 더 집중했다.
추락하면서 계속 지상을 관찰했다.
후우우웅!!~
시야가 좁아진다.
지상이 점점 다가온다.
아쉽게도 마이낙스로 추정되는 도시는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시야가 좋더라도 한 번에 찾을 수 있으리라곤 나도 생각 안 했다.
고로.
스르륵!~
지상에 추락하기 전.
저 앞에 추락 지점 공간을 일그러트렸고, 나는 그곳으로 낙하했다.
쏙!~
우선 계속 살펴보자고.
찾을 수 있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