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이이이이!!!~
시원한 추락.
이걸로 일곱 번째다.
일곱 번이나 공간을 열고 높은 상공에서 추락하길 반복한 셈이다.
다행히 피로하진 않다.
본체는 분신체와 결이 다르다.
게다가 차원을 넘기보단 살짝 튀어 올랐다 다이빙한 형식이라 에너지 소모도 적다. 나는 아직 1할의 힘도 사용하지 못했다.
‘본의 아니게 내 힘이 체감되는군.’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힘의 용량.
망망대해가 속에 들어찬 기분이다.
따라서 탐색은 문제없다.
추락하고 공간 이동하길 반복하며 기억 속 지형을 찾으려 노력했다. 식물의 감각이면 지형을 분별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단순히 보는 것 이상으로 느껴지는 게 있다.
그렇게 약 12번째 추락하던 차.
‘발견.’
익숙한 지형을 찾았다.
도시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찾으니 의외로 금방이다. 세리아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마이낙스 도시와 주변 지형이 일치하는 곳을 찾았다. 저곳에서 서쪽으로 가면 마법으로 꼭꼭 숨겨진 아칸벨리 본거지가 나올 것이다.
굳이 도시에 들릴 이유 없다.
마법으로 아칸벨리 본거지가 있는 곳을 향해 가속했다.
휘이이익!!!
빠르게 다가오는 지상.
이대로면 운석처럼 폭발이 일어날 수 있으니, 적당한 시점에 속도를 늦췄다.
휘릭~
톡.
공중제비 후 가볍게 착지.
호수였다면 잔잔한 물결이 퍼질 듯 가벼운 착지였다. 지금은 그런 미세한 영역까지 힘을 조절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을 바라보면.
“이곳이 입구인가.”
숲솦 어딘가.
신기하게 생긴 돌탑.
이곳을 특정한 방식으로 지나면 아칸벨리의 성으로 가는 길이 나타난다. 말만 성이지, 조금 거대하고 뾰족한 저택과 몇몇 개의 집이 있는 정도가 끝인 곳이다.
하지만 길 찾는 건 매우 복잡하다.
숨는 것을 목적으로 만든 곳이거든.
“기억을 흡수하지 않았으면 피곤했겠군.”
몰랐다면 아마 여기 오지 못했을 것이다.
세리아스 기억에 의하면 마이낙스 도시에 가짜 본거지가 있기 때문이다. 어찌 수소문해서 왔더라도 가짜를 처리하고 끝났을 터. 레이븐에게 자세히 묻고 왔으면 또 모르겠다만, 이렇게 수월히 찾아 들어가긴 힘들었을 거다.
어쨌든 이젠 상관없다.
나는 진짜 본거지를 아니까.
세력의 수장은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상당히 쪼들리는 짓을 많이 했기 때문인지 여기서 잘 나오지 않는다. 덕분에 몰래 들어가서 박살 내면 끝이니 나도 편하다.
하지만 어떻게 박살 내느냐가 문제.
전력을 대거 잃은 작은 세력이라지만, 그럼에도 무시할 순 없다.
적은 강자다.
나는 내 힘을 잘 모른다.
옆에는 든든한 샤엘라도 없다.
여기부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혼자 싸워야 한다.
고로.
스르륵.
두드드득.
육체를 변형시켰다.
본체에 저장된 생명 정보를 불러들였다.
흡수했던 생명체를 복제하듯, 내 본체에 그대로 구현시켰다. 신성 자체가 물질로 구성된 본체는 평범한 피부가 아니다. 그냥 새로운 물질이라 봐도 무방하다.
애초에 내 본체는 어떠한 물질로도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인 힘 그 자체였다.
빛나는 구슬 같았던 본체.
그것을 육신으로 만든 결과가 이거다.
생명을 만들고 복제하고 강화하고 개조하던 본체의 능력. 그 힘의 종합체인 내가 변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기에.
파르릇!~
초록빛 신성이 퍼지고.
그 빛무리에 나타난 나는.
“아- 나쁘지 않네.”
일전에 내가 죽였던 세리아스의 모습이었다.
[히이에에엑!!!!]
[미야아아앗!!?!]
샤엘라와 챠니가 놀란듯했으나, 가볍게 무시하고 몸을 내려봤다.
본체는 흡수율이 매우 높다.
세리아스의 정보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한 세리아스의 모습을 구현했고, 몸에 약간의 한기마저 감돌았다.
‘얼음 능력을 쓰던 놈이었던가.’
그 힘도 흉내 낼 수 있다.
완벽히는 아니어도 남을 속일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보아라.
쩌적!!
쯔으윽.
한 손에 주먹만 한 얼음 결정이 생겼다.
결정은 내 의지대로 형태를 바꿔 사방으로 뾰족한 가시를 솟구쳤다.
원래라면 쓰지 못하는 힘이다.
배우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거다.
마법으로 흉내 내더라도 이렇게 쉽고 빠르게 얼음을 다스리진 못할진대, 그런 힘을 이리 쉽게 구현해냈다.
물론, 제약이 없진 않다.
내가 이놈을 얼마나 이해했느냐.
그 힘을 제 것처럼 다뤄낼 수 있느냐.
얼마나 정확히 생체 정보를 파악했느냐.
대상의 특정한 고유 기운을 다룰 수 있느냐.
등등, 이러한 조건을 전부 만족시키지 않는 한 완벽하게 따라 할 순 없다.
하지만 다행히 세리아스는 고유의 힘이 아닌, 특정한 음의 기운을 띄는 마나 회로를 사용하는 녀석이었고, 몸 구조를 바꿔 근접한 힘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신성 같은 고유의 기운이 필요한 힘이라면 흉내 내기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충분한 성과다.
웬만한 지배자급까지는 온전히 흡수해 힘을 흉내 낼 수 있다는 거니까.
더 많이 흡수할수록.
더 많은 생체 정보가 쌓일수록.
이러한 빅데이터는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또한 이런 정보와 강화된 본체 감각으로 작정하고 엘프를 강화하면, 훨씬 강한 생명체로 진화시킬 수 있을 거다.
[무찬… 그 몸으로 잠입하려는 거냐?]
찬란한 미래를 꿈꾸던 차.
샤엘라가 뭔가 불만족스러운 듯한 느낌으로 텔레파시를 보냈다.
나는 잠시 작전을 설명했다.
[이게 가장 쉬운 잠입 법이니까. 재밌게도 세리아스는 아칸벨리 수장의 연인이거든. 이 몸이라면 속이기 쉬울 거야.]
[끄응….]
[왜?]
[그몸. 여자잖아.]
[잠시 사용하는 것뿐이야. 이거라면 기습하기 좋을 거 아냐. 그때까지뿐이야.]
[그럼 이상한 짓 하지 마.]
[이상한 짓?]
[혹시 모르잖아. 네가 갑자기 남자한테 관심이 생겨서 들이댄다거나-.]
[하겠냐!?]
거참, 별걸 다 걱정하네.
이상한 상상으로 장르를 바꾸지 말라고.
난 이미 생명체를 만들면서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어떤 구조인지부터 어떻게 생겼고 어떤 작용을 하는지 전부 꿰뚫고 봐왔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그런 짓을 할 리가….
잠깐.
할 수 있을지도?
왜냐하면 세리아스는 아칸의 연인이니까.
나는 세리아스로 아칸벨리에 잠입해 기습할 생각이고, 어쩌면 그 과정에서 약간의 대화로 꾀어내야 할 수도 있다.
뭐, 그 정도는 괜찮겠지.
[샤엘라. 이상한 걱정 말고 지켜보고 있어. 어차피 날 계속 구경하고 있을 거잖아? 이상한 짓 한다 싶으면 네가 말리면 되는 거고.]
일단 모른척하자.
설명하기 귀찮으니.
알아서 이해해줄 거다.
샤엘라는 다시 의심스럽게 물었다.
[흐음~ 혹시 그냥 이성에 관심이 없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그냥 이참에 확실히 말해둘게.]
[응?]
[난 너 아니면 관심 없어.]
[으엣?…….]
샤엘라가 조용해졌다.
필시 볼이 붉어졌겠지.
그 반응을 상상하니 보지도 않았는데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런 건 얼굴 보면서 얘기해.]
바로 앞에 없어서일까.
녀석이 꽤 대담하다.
[그래그래.]
보다시피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나는 녀석이 아니면 관심이 없다. 진심으로 녀석이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일에 집중하자.
자, 그럼.
사박.
안으로 나아갔다.
오늘 안에 끝내야 하니.
하지만 예상과 달리 곧장 문제가 생겼다.
출렁~
“…여자 가슴은 다 이리 큰 건가?”
몇 걸음 걷다가 멈춰서 아래를 내려봤다.
하반신을 가리는 거대한 무언가가 불편하게 볼록 솟아 있었다.
툭툭.
그 윗부분을 잠깐 건드렸다.
탄력 있고 부드러운-
[뭐, 뭐 하는 짓이야!!?]
곧장 샤엘라가 태클을 걸었다.
[아니… 좀 커서.]
[그!!… 크, 크고 추악한 건 좋지 않아!]
[추악?…… 거추장스럽긴 하네. 싸울 때 많이 거슬릴 것 같거든.]
[그래. 별로야! 뭐든 적당한 게 딱이지.]
[………?]
이 녀석 뭐지.
왜 뭔갈 변호하는 느낌이지?
약간 말의 핀트가 어긋나지 않았나?
나는 거동이 불편하다고 했는데, 녀석은 무작정 안 좋다고….
커흠.
모른 척 넘어가자.
예민한 문제일 테니.
그러니.
[샤엘라. 나도 적당한 게 좋아.]
그말을 남기고 다시 앞을 향했다.
그러면 샤엘라는 작게 화답했다.
[큼… 다, 당연하지.]
살짝 만족한 대답이었다.
*
아칸벨리 성.
수장의 집무실.
“볼카누스의 후예들이라….”
주물주물~
회색 머리 남성이 책상에 앉아 드워프에 대한 정보를 읽고 있었고, 뒤에는 여성 노예가 어깨와 등을 마사지하고 있다.
회색 머리 남성의 이름은 아칸.
아칸벨리의 주인이자 반신 격의 강자다.
세리아스와 몇몇 지배자를 섭외해 세력을 일으켰고, 규모를 확장하고자 이리저리 물불 가리지 않고 포인트를 벌고 세력원을 닥치는 대로 받아들여 키우고 있다.
충성심 적은 부하.
나쁜 평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세력이 커지면 쏙 들어갈 얘기다. 누구든 굽히게 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세력이 커지기 위한 첫 번째 키.
세력을 단숨에 도약시켜줄 해법.
슥.
서류 한 장을 들어 올렸다.
[불카누스 세력.]
┗︎드워프 문명 중 압도적인 기술력을 가졌다. 고층에 중간급 세력을 만들었지만, 에스텔라의 침략으로 무너져 흩어졌다.
┗︎많은 이들이 그들의 기술력을 노리고 불카누스 드워프를 쫓았다. 허나, 기반을 잃고 뛰어난 기술자는 에스텔라에 납치되어 불카누스는 상당한 기술력이 소실됐다.
┗︎그럼에도 뛰어난 기술력을 가져 많은 세력이 그들을 호시탐탐 노렸으나, 한 드워프가 불카누스의 신기를 휘둘러 뒤쫓던 모든 이들을 고열의 지옥 공간으로 끌어내렸다.
┗︎그는 드워프 지도자를 자처해 흩어진 동포를 규합하고 탑 어딘가에 잠적했다.
볼카누스 문명의 정보.
딱히 숨겨진 내용은 아니지만, 상당한 값을 치르고 구입한 정보였다.
“이 내용이 맞다면… 현재 우리에게 가장 도움 될만한 곳이겠지.”
아칸벨리는 신생 세력이다.
이렇다 할 기술력이 없다.
마법사 레이븐을 어찌 설득하고 끌어들여 마법 상품 몇몇개 만들어 팔았지만, 그 정도로는 아직 한참 부족하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돈.
그리고 기술은 좋은 상품이 된다.
그 돈으로 다시 기술에 투자해 더 강력한 무구를 만들거나 발전시킬 수 있다. 어쩌면 계획도시를 지을 수 있을지도.
“슬슬 우리도 도시를 하나 가질 때가 됐지.”
피식.
남성은 기분 좋게 웃었다.
곧, 세리아스가 성공을 알려올 테니까.
라고 생각한 순간.
쿠구구구.
아래층에서 진동이 울렸다.
튼튼하게 지어진 성 꼭대기까지 울릴 정도의 충격이었다.
“뭐지?…”
쿠구구….
쿠웅!~
소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밑에서 누가 성을 때려 부수려는 게 아닌가 싶은 진동에 결국, 아칸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칸님!!”
문을 열자 마침 성에 잡아들여 키운 노예 하나가 헐레벌떡 다가왔다.
“무슨 일이냐.”
“세리아스님이 복귀하셨습니다!”
“세리아스가? 그래서 어떻게 된 거지?”
“지배자 메리안님과 지하로 가는 걸 보았는데, 갑자기 이리 진동이….”
“지하? 혹시 세리아스가 메리안과 싸우고 있는 건가?”
“잘 모르겠습니다.”
“둘이 싸우는 게 아니라면 이런 진동이 울리진 않겠지. 우열을 가릴 때가 됐으니 그러려니 한다만, 복귀하자마자 내게 보고하지 않고 지하에서 서로 싸우는 건…….”
솔직히 둘이 싸우는 건 상관없다.
하지만 벌써 복귀해서 지하에서 싸움 벌이는 세리아스의 의도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굳이 지하에서?
이런 시점에 갑자기?
불길한 예감.
슥.
그는 마저 걸음을 옮겼다.
노예를 스쳐 지나 아래로 이동했다.
“직접 확인해봐야겠지.”
주요 인물 정리용 공지를 올렸습니다.
기억 나지 않는 케릭터가 있으면 종종 들러주시기를!
또한 대부분 작품에 등장하지 않은 삽화가 있으니, 바쁘지 않다면 한 번 감상하는 걸 추천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