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자 메리안.
“커……….”
목이 뒤로 꺾였다.
눈동자가 뒤집어졌다.
코와 입에서 피가 주륵 흘러나왔다.
아마 뇌 속까지 전부 헤집어졌을 거다. 파동은 속부터 파괴하는 능력이니까.
처참한 광경.
아마 죽었으려나?
“커헉!!… 크으으!…….”
웬걸.
녀석이 크게 피를 토했다.
어찌 꺾인 목을 앞으로 되돌렸다.
놀랍게도 공격을 머리에 정통으로 맞았으면서도 살아 있는 듯했다.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하지만.
“넌… 대체… 누구…….”
그런 의문을 겨우 표출했다.
내가 세리아스가 아닌 걸 깨달은 모양.
하지만 대답해 주기도 전에 고개를 숙였다.
슥.
정신 잃은 메리안의 모습.
구속을 풀자 주륵 흘러내럈다.
털썩.
당장 목숨을 앗아가진 않았다.
슬슬 다른 녀석이 오는 게 느껴지거든.
우선 촉수를 회수하고 변형된 팔을 본래 세리아스의 팔로 되돌렸다. 잠시 녀석을 가만히 내려보다가 적당한 시점에 뒤돌았다.
“세리아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회색 머리의 남성.
세력의 수장 아칸이 등판했다.
이렇게 소란 벌였는데, 안 나타날 리가.
원래는 히페리온 동력원부터 훔치고 끝내러 갈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저놈도 끝내고 훔칠 수밖에 없겠지.
어차피 이곳에서 조심할 건 수장 놈과 방금 제압한 메리안이 전부다. 이 둘만 죽이면 아칸벨리는 무너진다. 다른 지배자가 바깥에 있긴 하지만, 그건 일단 논외로 하자.
다행히 메리안은 이미 처리한 상태.
이제 수장 놈만 각개격파 하면 아칸벨리는 오늘 여기서 끝난다. 나머지는 이제 위협적인 수준도 안 되니까.
고로.
“미안~ 메리안이 도발하는 바람에 이참에 우열을 가리려고 한판 벌였어. 죽이진 않았으니, 치료하면 깨어날 거야.”
세리아스를 연기했다.
녀석이 방심하게 만들어야 하니.
아칸은 큰 의심 없이 대화를 받아주었다.
“하아… 세리아스. 바보 같은 짓을 벌였군.”
“계속 기어오르잖아. 어쩔 수 없었다고. 그래도 너는 내 편이지?”
“세리아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막무가내면 곤란해. 그리고 지하에는 왜 온 거지?”
피식.
“너를 놀라게 해줄 만한 게 있었거든. 원한다면 지금 알려줄 수 있는데.”
살짝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그 상태로 녀석에게 다가갔다.
“큼… 뭐…….”
녀석은 제지하지 않았다.
이 몸은 현재 녀석의 연인이니까.
이미 둘은 그렇고 그런 사이인지라, 나에 대한 신뢰가 꽤 있었다.
이 점을 파고들어야겠지.
점점 좁아지는 거리.
녀석 앞에 당도했다.
“잠시 안아도 될까?”
“……….”
세리아스의 행동은 잘 알고 있다.
어떤 식으로 아칸을 구슬려 침대까지 끌고 가는지. 이런 기억까지 엿본 건 미안하지만… 방심을 유도하기엔 이게 최고다.
[갸아아아아아앍!!!!]
[먀아아아아아아!!!!]
샤엘라와 챠니의 괴성은 무시했다.
내면의 양심과 자존심이 내 몸을 천금처럼 무겁게 붙잡아도 상관없다.
툭.
쓰윽~
한 손으로 아칸의 배를 쓸어 올리고.
다른 한 팔로 등허리를 잡으며.
“자, 우리 둘이서 놀자고.”
“흠?….”
사르륵!!
우리 둘은 공간에 삼켜졌다.
내 몸과 딱 붙어 있다면 딜레이 없이 공간을 넘는 것도 가능하거든.
*
휘유우우우욱!!
“뭐, 뭐냐!!?”
매우 높은 상공.
놈을 꼭 붙잡고서.
쩌저적!!
주변을 동결시켰다.
나와 아칸의 몸이 순식간에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되었다.
[세리아스!!!]
녀석이 뭐 하는 짓이냐는 듯 부르지만, 의외로 자기 연인을 사랑한 듯하다. 아직도 내 힘을 거부하지 않고 있다. 설마 깜짝 이벤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럼 더 몰아붙여야지.
후우우욱!!!-
촤아아아아아아아!!!!!-
마법으로 가속했다.
우릴 가둔 얼음이 불타오르며 지상으로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주르륵.
얼음 안쪽에서 아칸의 등허리를 둘렀던 팔을 스왈리오스의 촉수 팔로 변형시켰다. 얼음에 갇혀 시야가 제한되고 오감을 뒤틀었기에, 녀석은 눈치채지 못했다.
[세리아스! 지금 뭘 하려는 거냐!!]
조금 위기감을 느꼈을까.
아직도 제 상황을 깨닫지 못한 아칸이 내게 의도를 묻는다.
별거 아니다.
인간 메테오를 제작 중일 뿐.
시원하게 경치 구경하다가 화끈하게 폭발해 승천할 수 있는 좋은 놀이다.
[걱정 마. 아칸. 아주 재밌는 거니까.]
나는 그리 말하며 속도를 높였다.
지상이 매우 빠르게 다가온다.
이대로 부딪치면 어떤 재앙 같은 충격이 터질지 나도 모르겠다.
다만.
[……세리아스. 언제 격음을 쓰게 된 거지?]
아칸이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생각해보니 세리아스는 차원 틈새에서 격을 쓰지 못해 통역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걸 깜빡하고 있었던 거다.
[이번 원정에서 깨달았지. 그래서 기념으로 아무에게도 해주지 않은 걸 해주는 거야. 나만 믿고 그대로 있어.]
[……아니. 나중에 보고 판단하겠다.]
콰아아앙!!!!
쩌어억!!!
녀석이 힘을 폭발시켰다.
얼음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눈치챈 것 같지만, 이미 늦었다.
“뭐, 뭐냐!! 언제 내 몸이!!”
이미 녀석의 허리 쪽은 촉수에 집어삼켜져 내게 붙들린 상태다. 여기에 뼈대를 만들고 변형시켜 드래곤의 손으로 만들면.
꾸득.
콰드드득!!
“커윽!!!…….”
변형은 순식간이었다.
등허리로부터 내 손이 크게 팽창하여 놈의 몸을 손아귀에 쥐었다.
“크으으윽!!! 지금 뭐 하는 짓이냐아아!!…….”
녀석의 얼굴에 핏줄이 돋아났다.
갑작스러운 압력을 견뎌내려 온 힘을 다했다.
강력한 드래곤의 손에 피부만 스왈리오스의 피부로 대체되었다. 강력한 악력과 구속력에 크게 당황한 눈치였다.
쿠구국!!
피익!~
그것만으로도 잠재된 충격파가 조금씩 새어 나와 바람을 뿜었다.
“힘 좀 쓰네. 세리아스는 바로 터졌는데.”
“큭!?… 네, 네노오옴!!!…….”
나의 귓속말.
이제 자신의 상황을 완전히 깨닫고선 마구 날뛰며 고함쳤다.
“누구냐 넌!! 세리아스를 어떻게 한 것이냐!!”
쿠구국!!!
콰악!!
놈을 붙잡은 드래곤&촉수의 손이 아칸의 괴력에 들썩거렸다.
녀석은 순수 무력으로 반신급에 오른 자다.
온갖 능력을 부리는 자들과 달리 내구와 힘 하나는 특출난다는 얘기. 자칫하면 구속이 풀릴 것 같은 괴력이다.
“크으으으아아아아아!!!!!”
쿠욱!!
콰아앙!!!
파아아아아!!!!
들썩.
부르릅.
녀석이 힘을 응축해 터트렸다.
하지만 구속을 벗어나진 못했다.
탄력 있고 움푹 변형된 촉수 피부는 힘 자체를 흡수해 사방으로 퍼트렸고, 반면 이쪽은 녀석이 움직일 수 없게 꽉 압박했다.
옛날에 줄기로 구속하던 것과는 다르다.
지금은 제대로 붙잡기만 하면, 지배자급의 강자도 쉽게 빠져나갈 수 없었다.
“드워프 왕국을 짓밟을 생각이었으면, 짓밟힐 각오도 되어 있겠지?”
“설마!!….”
스르륵.
몸과 얼굴을 엘프 육신으로 되돌렸다.
양팔만이 드래곤 뼈대를 뒤덮은 촉수로 넓게 퍼져 남자를 구속한 상태.
“놔라아아아아!!!!!”
놈이 거세게 고함쳤다.
허나, 생각보다 저항이 약하다.
아님, 본체의 힘이 더 강한 건가?
대충 알 것도 같다.
스텟이 높아도 끌어올릴 수 있는 한계가 있고, 대부분은 여기에서 막힌다. 하지만 나는 종족을 탈피해 한계를 끌어올릴 수 있다.
아마 나는 기본 스텟이 매우 높을 거다.
여기에 육체 변형으로 높은 스텟을 효율 좋게 활용했고, 덕분에 반신격의 강자를 힘으로 찍어 누르고 있다. 아니, 변형하지 않더라도 내가 밀리지 않을 것 같다.
“좀 더 힘 좀 써봐.”
“크으으윽!!!!”
놈이 연신 들썩거린다.
허나, 버틸 만하다.
후우우웅!!
화르르!!-
어느새 지상이 다가온다.
우리는 푸른 불길에 휩싸였고, 운석 그 자체가 되어 추락했다.
그리고 땅에 닿기 직전.
“이제 풀어줄게.”
촤르륵!!
탓!!
“큭!!”
구속을 풀어냄과 동시에 녀석의 등을 짓밟고 위로 도약했다.
하지만 웬걸.
텁!!
“어딜 가려는 것이냐!!!!”
그 짧은 순간에 아칸이 내 발목을 잡았다.
아니, 애초부터 틈을 노리고 있었던 것 같다.
녀석은 내 지상으로 추락하며 나를 해머처럼 지상으로 내리쳤다.
이런.
쏘오옥!!
쿠국!!-
땅에 함께 추락했다.
찰나의 순간 대지에 금이 갔고.
쿠후우우웅!!!!!
쿠과과과과과과!!!!!!!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
휘유우우우~
거대한 먼지가 위로 솟아올랐다.
강력한 충격파가 터지며 거대한 대지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식물의 시야로 느껴진다.
핵이 터진 듯한 광경이다.
우리가 추락한 지점을 기점으로 거대 버섯구름이 형성되었다.
그 가운데.
푸스스.
스륵.
“후우.”
몸을 일으켰다.
“…재밌네.”
생각보다 멀쩡하다.
굳이 말하자면 조금 따끔했다.
큰 충격이 몸속까지 뒤흔들고, 피부가 살짝 그을렸지만, 벌써 회복되었다. 아칸의 물귀신 작전에 당황했었지만, 생각보다 멀쩡한 나 자신이 더 당황스러을 정도다.
본체 육신.
얼마나 튼튼한 걸까.
솔직히 조금 무서웠었는데.
이리 멀쩡할 줄은….
투둑.
“흠?”
앞을 바라보니 먼지 사이로 웬 숯검댕이가 들썩거리며 일어난다.
“크흐…… 컥!….”
콜록콜록!!
아칸 녀석이다.
놀랍게도 살아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단단한 몸뚱이다.
비록. 내상을 입고 크게 기침하고 있지만, 여전히 눈빛은 살아 있다. 다만, 해머처럼 휘둘러진 내가 더 큰 충격을 받았을 텐데도, 녀석의 상태가 훨씬 심각했다.
“네노옴…….”
“놀랍네. 이 정도면 샤엘라의 주먹도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호오? 한번 맞아볼래?]
흠칫.
샤엘라가 곧장 태클을 걸었다.
아까 전 아칸을 유혹하듯 다가간 것에 괴성 질렀던 주제, 지금은 아주 집중해서 구경하고 있었다. 다만, 걱정 없는 듯한 분위기로 보아 내가 이기리라 예상한 듯했다.
나도 안다.
이쯤 되면 모를 수가 없다.
이 육체의 순수한 스펙은 최소 신급이다.
설마 그 정도는 아니겠지라고 부정했었지만, 이젠 확실히 알았다.
나는 강해졌다.
하지만 자만할 정돈 아니다.
보다시피 샤엘라의 한 대 맞아보겠냐는 말에 쫄 정도인데, 자만할 수 있을 리가. 그걸 감안하면 역시 나는 약한 게 맞다.
계속 신중히 진행하자.
탓!!
아칸이 빠르게 움직였다.
잠깐 생각하던 나의 빈틈을 노린 것이다.
그런 충격을 입고도 놀라운 속도로 내게 주먹을 내질렀다.
“감히 나를 능멸했겠다!!!”
파바바박!!
한 개의 주먹이 백개와도 같다.
그런 표현이 과언이 아니다.
놀라울 정도의 권투.
허나.
샤샤샥!!
보인다.
피했다.
몸이 따라온다.
예전이라면 불가능했을 속도의 움직임을 구현해 잔상을 그렸다.
쿡!!
파아악!!
녀석이 진각을 밟는다.
땅이 기둥처럼 솟아올라 날 공격했다.
콰악!!
파바박!!
팔꿈치로 찍어 가드하는 동시에 한쪽 팔로 녀석의 추가타를 쳐냈다.
정신없는 공격 속도.
그러나 강력한 파워가 실려 막기만 해도 전신이 크게 흔들린다. 다른 이였다는 맞받아치는 것만으로 큰 내상을 입었을 것이다.
파박!!
콰과과광!!
충격을 흘리거나 다른 곳으로 뻗어나갔을 뿐인데도 주변 땅이 폭발했다.
괜히 반신격의 강자가 아니다.
평범한 자는 휩쓸리기만 해도 죽는다.
나도 평범한 인간의 감각이었다면, 대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본체 육신이 아니었다면, 대부분의 공격을 허용했겠지.
허나, 지금은 해볼 만하다.
척.
잠깐 틈을 보였다.
뻐억!!
쿠후우웅!!!
놈의 주먹이 내 얼굴에 꽂혔다.
목이 절로 꺾이고, 거센 충격이 관통한다.
내 몸을 관통한 충격파가 거세게 머리카락을 휘날리게 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꾸드득….
“허?”
일부러 맞아본 공격.
아프지만, 그냥 그런 정도다.
옛날 인간 육신이라면 맞는 순간 치명상 내지 죽음이었을 텐데, 지금은 조금 아픈 게 전부다.
이제 깨달았다.
전투 기술은 모자랄지언정.
감각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나는 녀석을 압도하고 있었다.
꾸우욱!!….
콰득.
목에 힘을 줘 되돌렸다.
녀석의 주먹이 밀려난다.
점점 더 체감된다.
나는.
빠악!!
“커!!-”
강하다.
후우우웅!!!!
카운터가 꽂힌 녀석이 날아갔다.
샤엘라나 리리스처럼 충격을 내면에서 터트리는 기술은 없지만, 순수한 파괴력만으로 얼굴을 찌그러트려 날렸다.
힘으로 밀리지 않았다.
속도로 밀리지 않았다.
별로 맞질 않아서 단정할 순 없지만, 내 몸이 더 단단하다. 전투 기량은 녀석이 앞선 듯했으나, 위의 것들로 커버했다.
그리고 나는 순수 무투파가 아니다.
육체만이 아닌, 여러 수단을 동원한다.
쿠구구구!!
주변 대지가 부서지며 솟아오른다.
흙들이 마법에 의해 솟아올라 내 앞에서 뭉치고 압축되었다.
부글부글.
내 팔은 어느새 검붉게 변했다.
그대로 반경 2m 크기의 흙덩이에 손에 얹자 용암으로 탈피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흙덩이는 단순한 마법이 아닌, 용암 구체가 되어 뜨거운 열기와 김을 모락모락 피워냈다.
쿡!!
용암 구체에 오른팔을 꽂았다.
내 팔은 레나투스의 생체 복제로 완전히 탈바꿈된 상태다. 무뚝찬에게 생체 정보를 받아뒀기에 어려울 것 없었다.
“크아아!!! 어째서 저층에 사는 드워프 놈들에게 너 같은 녀석이 있는 거냐!!”
콰앙!!
콰과곽!!
그쯤 아칸이 저 멀리 일어나 고함쳤다.
분한 듯한 고함과 함께 진각을 내지르니 주변 대지에 금이 갔다.
그대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도약 자세를 취했다.
참고로 무뚝찬이 연구하고 보냈던 생체 정보에는 번개를 쓰는 능력이 있었다. 매우 빠른 속도로 달리던 지배자의 능력. 일직선으로는 폐기장의 미야보다 빨랐던 그 힘.
쿠드득!
두 다리를 즉시 변형시켰다.
번개와 속도에 최적화시켰다.
치직.
탓.
“뭐 하려는-“
남자가 눈치챘을 땐 이미 도달했다.
쿠후우욱!!-
콰아아아앙!!!
지상을 부수는 듯한 굉음과 함께 또 충격파가 퍼진다.
콰과과과!!-
틈을 줄 생각 없다.
폭발에 휘말리는 것을 무시하고 먼지에 가려진 녀석에게 두손 깍지 끼고 내리쳤다.
쿵!!
쿠후우웅!!
대지가 울린다.
허나, 이걸로도 모자라다.
내리친 양손을 그대로 핀 뒤에.
고호호혹!!
파아아아아아아!!!!-
“쿠옯!……….”
브레스를 쏘았다.
솟아오르던 먼지도 함께 휘말린다.
아주 잠깐 비명이 새었으나, 그 뒤로는 들려오지 않았다.
털썩.
누군가 쓰러진 소리.
생각보다 여유로운 승리였다.
반신격의 강자를 상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