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97

       투둑.

       스스스-

       ​

       흙 파편이 떨어진다.

       먼지가 사방으로 퍼진다.

       ​

       푹!

       꾸욱.

       ​

       한 손을 대지에 박았다.

       그대로 위로 끌어올렸다.

       ​

       “……….”

       ​

       투드득.

       ​

       먼지가 휘날린다.

       내 손에는 아칸이 들려 있었다.

       하늘에서 운석처럼 충돌하고, 가속을 더한 용암 구체 주먹과 연이은 브레스 콤보에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

       “야.”

       ​

       “……….”

       ​

       대답은 들리지 않는다.

       반죽음이나 다름없는 상대.

       반신격의 강자였지만, 승부는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본체 육신의 스펙은 상상 이상이었고, 아칸을 어렵지 않게 쓰러트렸다.

       ​

       피식.

       ​

       “싸움이 이렇게 재밌는 거였나.”

       ​

       승리란 짜릿했다.

       항상 눌려 살았기에 더 그랬다.

       폐기장에서 언제나 가지고 살았던 두려움이 스르륵 사라진 것 같았다.

       ​

       언제는 나의 강함을 포기하고 다른 이들을 케어하겠다고 다짐한 적도 있었는데….

       ​

       나도 할 수 있었잖아.

       이길 수 있었잖아.

       지배자 놈들 따위.

       ​

       강해졌고.

       더 강해질 수 있고.

       앞으로도 강해질 거잖아.

       그렇게 스스로 되뇌며, 묘하게 떨려오는 전율을 느꼈다.

       ​

       나는 인간과 식물의 틀을 벗어났다.

       본체 육신이 물리적으로 깨어났다면, 지금은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있다.

       ​

       그것이 느껴진다.

       ​

       파아아-

       ​

       본체 육신에서 약간의 신성이 흐른다.

       육체가 더 강해진 것 같은 기분이다.

       큰 변화는 아니지만, 나의 성장 길이 열린 듯한 느낌이었다.

       ​

       다만.

       ​

       [에휴. 처음부터 그냥 싸웠어도 됐는 걸, 굳이 이상한 짓이나 해서 기습하고.]

       ​

       “……….”

       ​

       샤엘라의 불평이 들려온다.

       원래라면 잘했다고 칭찬해줬을 텐데, 아칸을 기습하고자 세리아스의 모습으로 유혹했던 것의 업보가 돌아왔다.

       ​

       [안 그런다고 해놓고서 대놓고 바로 다른 남자에게 들이대? 어차피 힘으로 때려눕힐 수 있으면서 왜 그랬냐? 앙?]

       ​

       “그, 그건 최대한 유리하게 기습하려고…….”

       ​

       [무찬. 돌아오면 기대해.]

       ​

       “………?”

       ​

       저건 무슨 예고지?

       뭔가 불길한 느낌.

       ​

       절레절레.

       ​

       어쨌든 사건은 끝났다.

       나의 강해진 힘을 체험했다.

       ​

       그리고.

       ​

       ‘더 강해져야 해.’

       ​

       나는 약하고, 더 강해져야 한다.

       그것을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

       주르륵.

       ​

       한 팔에서 줄기를 성장시켰다.

       피부에서 신성을 머금은 줄기가 자라나 손을 타고 아칸을 집어삼킨다.

       ​

       굳이 녹여서 소화할 필요도 없다.

       아칸을 삼킨 줄기 덩어리는 다시 내 손으로 흡수되며 사라졌다. 본체 육신은 공간의 법칙을 무시할 수 있는 녀석이다. 나는 통째로 아칸을 몸속에 집어삼켰다.

       ​

       흡수 효과 또한 이게 더 좋다.

       온전한 육신을 저장하고 꽁꽁 옮아 맨 신성 줄기가 피부를 뚫고 침투해 녀석의 모든 생체 정보를 파헤치고 저장한다. 천천히 몸을 뜯고 분해하여 나의 일부가 된다.

       ​

       팍!!

       ​

       한 손을 뻗었다.

       살짝 굵어진 듯한 팔.

       아칸의 골격을 그대로 복제해 뻗은 것으로, 튼튼하고 강력한 힘이 느껴진다. 얼마나 잘 단련됐는지, 팔의 혈관 하나하나에서 수백 가지의 마나 회로가 뻗은 것 같다.

       ​

       그런 녀석의 성장 데이터를 덮어씌운 거다.

       하지만 본체 육신보단 모자란 듯하다.

       ​

       ‘드래곤 육신은 힘이라도 더 세졌었는데….’

       ​

       흡수는 했지만, 본체를 강화하기에는 다소 아쉬운 맛이다. 차라리 세리아스처럼 능력을 부리는 게 내겐 더 달콤한 먹이다.

       ​

       피식.

       ​

       아직 시험해볼 건 많다.

       벌써 조급할 이유는 없다.

       ​

       이제 정리하자.

       아칸벨리는 끝났으니, 히페리온 동력원을 챙겨서 돌아갈 시간이다.

       ​

       슥.

       ​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대한 크레이터와 갈라진 대지.

       그곳을 넘어가면 다시 숲이 보인다.

       무작정 높은 하늘로 공간을 넘었기에, 당연히 아칸벨리 본거지에서 벗어난 장소였다.

       ​

       “다시 길이나 찾아야겠군.”

       ​

       터벅.

       ​

       숲으로 나아갔다.

       ​

       ​

       ​

       *

       ​

       ​

       ​

       길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원래는 세리아스의 기억에 의존해 특정한 방식으로 숲속에 진입해야 하지만, 애초에 나는 식물의 시야를 가졌다.

       ​

       모든 숲의 시야가 보인다.

       숲의 모든 것이 내게 속삭인다.

       잠깐 교감한 것으로 숲의 시야가 펼쳐져 숨겨진 길이 드러난다.

       ​

       그저 특정 지점을 통과하면.

       ​

       스륵.

       ​

       아칸벨리로 통하는 동굴이 나왔다.

       다시 그곳을 통과해 성으로 향했다.

       ​

       “저… 누구십니까?”

       ​

       세리아스 모습으로 왔을 때 나를 처음 맞이했던 노예가 나타났다. 현재 나는 엘프 본모습인지라 녀석에겐 초면이다.

       ​

       이 녀석은 아칸이 죽은 것을 모를 터.

       잠시 녀석에게 질문했다.

       ​

       “너는 여기 붙잡혀 사는 노예인가?”

       ​

       “네?….”

       ​

       “아님, 여기서 스스로 일하는 건가?”

       ​

       “……부, 붙잡힌 노예입니다.”

       ​

       예상대로의 상황이다.

       잠시 눈을 감고 아칸의 기억을 뒤졌다.

       아칸은 마이낙스 도시에서 노예를 경매로 사들여 이곳에 배치한 듯했다. 

       ​

       기억을 깊게 파고들진 않았다.

       너무 자세히 보면 두통이 오니까.

       ​

       볼 가치도 별로 없고.

       ​

       “너는 어쩌다 노예가 되었지?”

       ​

       “그….”

       ​

       “탑에서 태어났나?”

       ​

       “예.”

       ​

       “처음부터 노예거나 붙잡혀 팔렸겠군.”

       ​

       “……….”

       ​

       “이제 넌 자유다. 스스로 노예를 자처할 정도로 타락하지 않았다면, 이제 너의 삶을 살아. 길은 있다가 열어줄 테니.”

       ​

       “네?….”

       ​

       노예는 원래 여기서 도망칠 수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이곳을 함부로 나갔다간 미로에 갇혀 숲의 미아가 된다. 아칸벨리 세력원이 꺼내주기 전까지 공포에 떨다가 붙잡혀와 다시 노예로 교육된다.

       ​

       그 정도는 해결해줄 생각이다.

       이곳에 들어오기 위한 특정한 행동을 취하게 했던 진법 자체를 깨버리면 되니까.

       ​

       사실 깨고 말 것도 없다.

       동력원을 훔치면 끝난다.

       알아서 진법이 해제될 것이다.

       그냥 선심 쓰듯 말한 것뿐이다. 적어도 자유라는 건 알려줘야지.

       ​

       “……….”

       ​

       허나, 노예는 뻘쭘하게 서 있을 뿐이다.

       섣불리 날 믿지 못하는 눈치다.

       아마 앞으로 마주칠 노예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일 테지. 그들을 굳이 안심시키고 상황을 이해시켜야 할 테고.

       ​

       귀찮지만, 조금은 돕자.

       딱히 손해 보는 행동은 아니고.

       손 한번 내미는 것으로 인생 수백개를 구제할 수 있다면, 투자할 생각이다. 그 정도의 선한 인간성은 남아있거든. 하지만 내가 희생해야 할 게 있었다면 과감히 버려야겠지.

       ​

       그리고 그렇게 귀찮은 일도 아니거든.

       ​

       슥.

       ​

       “친위대. 너희 도움이 필요하다.”

       ​

       한 솓을 뻗었다.

       손가락 하나가 차원 줄기가 포탈을 열 때처럼 일그러져 쭈우욱! 늘어나 펴졌다.

       ​

       처척!!

       ​

       “부르셨습니까.”

       ​

       손가락이 쭉 늘어나 벌어진 포탈.

       그 안에서 열 명의 엘프가 나타났다.

       이들은 시리안이 내게 붙여준 친위대로 내 몸속에 보관하고 있었다.

       ​

       정확히는 아공간에 말이다.

       필요한 물품을 보관하는 건 물론, 나는 생명체도 문제없이 넣을 수 있다. 

       ​

       솔직히 아공간이라는 표현도 모자라다.

       몸속에 아주 작은 세계를 창조했다고 말하는 게 더 옳다. 이 안에는 친위대 집도 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

       작은 농장은 물론.

       생명과와 차원 줄기.

       드워프제 무구와 훈련장.

       친위대만을 위한 작은 세상을 만들어 몸속에 들고 다니고 있다.

       ​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

       크기는 매우 작지만 가능했다.

       본체를 담보 삼아 작정하고 세계를 창조하면 제법 큰 세상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덕분에 친위대를 보관하는 것도 가능했다.

       ​

       그러니 잘 써먹어야지.

       이들을 위해서라도.

       ​

       “지금부터 너흰 아칸벨리의 잔당을 처리하고 노예로 보이는 자들을 구출해 한 데 모아. 위험하다 싶으면 나를 부르고.”

       ​

       “예!!”

       ​

       샤삭!!

       ​

       친위대는 민첩했다.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2개 조로 나뉘어 아칸벨리 성 앞뒤로 향했다. 지배자와 아칸이 없으니 친위대의 힘만으로도 충분할 거다.

       ​

       도착할 때쯤엔 모두 끝나 있겠지.

       ​

       “아아…….”

       ​

       뒤쪽에 노예는 놀란 듯 나를 바라본다.

       방금 본 비현실적인 모습에 당황한 듯했다.

       ​

       선심 쓰듯 말했다.

       ​

       “아칸은 죽었다. 아칸벨리는 끝났어. 진짜인지 아닌지는 알아서 확인해. 있다가 결계가 풀릴 테니 다른 곳으로 떠나라.”

       ​

       “……….”

       ​

       슥.

       ​

       그 말을 끝으로 녀석을 지나쳤다.

       노예는 내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 몰래 조심스럽게 뒤를 따랐다. 경계하는 눈치지만, 굳이 신경 쓸 건 아니다.

       ​

       정말 아칸벨리는 끝났다.

       지배자 메리안과 수장 아칸이 죽었다.

       성의 동력인 히페리온 동력원도 슬쩍하고 떠날 생각이며, 남아 있는 세력원 간부들은 모조리 양분이 될 것이다.

       ​

       이변은 없다.

       왔으면 확실하게.

       ​

       ​

       ​

       *

       ​

       ​

       ​

       “커억!!?”

       “누구…….”

       ​

       촤악!!-

       ​

       잘 쉬고 있던 세력원이 모두 쓰러트렸다.

       친위대는 적들 모르게 다가가 기습했고, 비약을 먹고 신속하게 협력하여 적을 처단했다. 뒤늦게 저항한 자도 있었지만, 친위대의 협동 공격에 처참히 무너졌다.

       ​

       털썩.

       주르륵.

       ​

       유유히 성에 도착한 나는 쓰러진 놈들에게 다가가 줄기로 흡수헸다.

       ​

       애초에 세력원이 많지도 않았다.

       여긴 간부들만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마침 친위대가 지하에 쓰러진 메리안을 들쳐 배달해줘서 녀석도 집어삼켰다. 마안을 쓰던 녀석이었으니, 스왈리오스 인자와 조합하면 재밌는 결과물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

       “잔당을 모두 처리했습니다.”

       “노예를 한데 모으는 중입니다.”

       “숨어 있는 노예가 있어 시간이 살짝 걸릴 것 같습니다.”

       ​

       확실히 유능한 부하는 편리하다.

       혼자라면 길게 끌렸을 일이 척척 해결된다.

       ​

       여유롭게 수십 분 정도 기다렸다.

       ​

       ​

       ​

       *

       ​

       ​

       ​

       ““……….””

       ​

       아칸벨리 성 1층.

       약 60명의 노예가 집합했다.

       그중에는 처음 마주친 노예도 섞여 있었다.

       아칸과 간부를 대접하기에 매우 많은 인원이다. 고작 열 명 남짓을 케어하고자 이만한 수의 노예라니….

       ​

       그들을 쓱 훑어보았다.

       겁에 질려 움츠러들거나.

       양어깨 손을 걸쳐 벌벌 떨거나.

       체념한 표정으로 가만히 대기하거나.

       폐기장처럼 세뇌적으로 교육되진 않았는지, 자신들의 처지를 깨닫고 있다. 때문에 대부분 불안에 떨고 있었다.

       ​

       허나.

       ​

       “흐흐. 쓰레기 자식들. 쌤통이다.”

       ​

       통쾌함을 내비치는 자도 있었다.

       세력원이 죽어 나가는 광경에 겁먹기보다는 기뻐하는 모습. 전신의 화상을 보니 고된 일을 겪었을 게 뻔히 보인다. 

       ​

       고로.

       ​

       “너, 나와.”

       ​

       “넵?….”

       ​

       녀석을 불러들였다.

       놈은 우물쭈물 다가왔다.

       붉은 머리의 여성 노예로, 화상 때문에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다.

       ​

       녀석과 마주 보며 말했다.

       ​

       “네가 대표로 대답해. 너흰 자유다. 이제 마음대로 해. 알아들었겠지?”

       ​

       “…지, 진짜요?”

       ​

       다가오라는 말에 움츠러들었다가, 이어진 내 말에 태도가 돌변했다.

       ​

       “아칸은 이미 죽었다. 이곳에 있던 지배자도 죽었고, 보다시피 너흴 괴롭히던 세력원들도 너희 눈앞에서 죽었다.”

       ​

       “그럼 저흴 풀어주시는 건가요?“

       ​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라. 난 이곳을 떠나 사라질 거니. 이후는 너희 자유야.”

       ​

       이걸로 끝이다.

       이 이상 베풀 필요는 없다.

       대부분은 이곳을 나가 다시 노예가 되거나 비운한 결말을 맞이하겠지만, 적어도 몇몇은 잘 숨어 살 수 있겠지.

       ​

       허나, 이 녀석도 그걸 알고 있는 걸까.

       ​

       “저 그럼!… 차라리 이곳을 다스려 주세요.”

       ​

       뜬금없는 요청을 했다.

       의아하게 바라보자 녀석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

       “저흰 어차피 돌아갈 곳도 가족도 없습니다. 당신은 전 주인보다 훨씬 나을듯한데, 이참의 저희 주인이 되어주시죠!”

       ​

       척!

       ​

       가슴을 짚으며 당당히 외쳤다.

       제법 당황스러운 태도였다.

       

    다음화 보기


           


The Broken Goddess Tries to Raise Me

The Broken Goddess Tries to Raise Me

망가진 여신이 나를 키우려 한다.
Score 8
Status: Ongoing Author:
I have become the World Tree that the goddess is obsessed with. I ended up taking care of the broken goddess, and at some point, she started exerting her strength to raise m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