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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3

       

       

       

       

       

       23화. 성전 ( 1 )

       

       

       

       

       

       ——————!!!

       

       땅속에서 몸을 일으킨 거대한 괴룡은 그야말로 신화시대의 재림. 아름다운 살점은 썩어 문드러져 그 뼈가 드러났고, 하늘을 가르던 찬란한 날개는 넝마처럼 구멍이 잔뜩 뚫렸지만. 

       

       그 위용은 가히 폭력적이었다. 거대한 몸체에서는 짙푸른 사기(死氣)가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흘러내렸고, 차가운 죽음은 닿는 모든 것들의 정신을 뒤흔들었다.

       

       

       “이,이 시발… 도,도대체 저게 뭐야아!!”

       

       “도망쳐도망쳐도망쳐도망쳐!!!”

       

       “아,아아!!! 싫어안돼싫어안돼!! 죽기 싫어어어!!”

       

       “컥, 커흡… 흐읍!”

       

       

       서리고룡의 사기(死氣)에 닿은 성기사와 전사들은 오합지졸처럼 겁에 질렸다. 도망치면서 울부짖는 자, 주저앉아 오줌을 지리고, 무기를 들고 자해를 시도하는 자, 숨이 넘어갈 듯 허덕이는 자.

       

       케니스는 그 혼돈의 한복판에서 용케 제정신을 유지했다.

       

       

       ‘저게 무슨…!’

       

       

       손과 다리가 덜덜 떨리고, 당장에라도 주저앉을 것 같지만. 견뎌 냈다.

       하지만 견디는 게 고작.

       

       그녀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혼자서는 이 혼란을 잠재울 수도 없고, 서리고룡과 맞설 수도 없다.

       

       

       “공녀님…! 단장님!!”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프리가와 단장을 찾았지만, 프리가는 서리고룡의 넘실거리는 사기에 당해 눈동자가 풀린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아…아으…”

       

       “공녀님! 정신 차려요!! 공녀님!!”

       

       ㅡ짝! ㅡ짝!

       

       

       급한 마음에 프리가의 뺨을 강하게 때려보지만, 풀린 눈동자는 돌아올 생각 없이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공포에 질린 듯 잔뜩 수축된 동공.

       

       

       ‘소용없어…’

       

       

       케니스는 잔뜩 떨리는 손을 애써 부여잡으며 신검을 내려다 봤다. 그녀에게 주어진 용사의 업. 더 이상 악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맹세.

       

       케니스는 이를 꽉 깨물고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앞으로 나섰다. 

       

       

       ‘내가 아니면…!’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모두가 죽을 것이다. 벌벌 떨리는 손을 억지로 치켜올리며 한 걸음, 한 걸음 서리고룡을 향해 나아간다.

       

       

       소녀는 검을 빼 들고, 거대한 고룡의 앞에 홀로 섰다.

       

       

       “날ㅡ! 봐라ㅡ!!”

       

       화아악ㅡ!!

       

       

       치켜올린 보랏빛 신검에서 눈부신 빛이 퍼져올랐다. 하늘 끝까지 닿을 듯, 눈부시게 올라가는 빛의 기둥.

       

       

       “나를ㅡ!! 봐라ㅡ!!”

       

       

       신성력에 자극이라도 받았는지, 서리고룡은 케니스를 향해 거대한 괴성을 토했다.

       

       

       ——————!!!

       

       ㅡ후우우웅!

       

       

       케니스의 머리 위로 휘둘러지는 서리고룡의 거대한 앞발. 날카로운 뼈 발톱은 소녀의 살점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겠다는 듯, 공기를 가르며 떨어져 내렸다.

       

       

       ㅡ콰아아아앙!

       

       “크으으읏!!”

       

       

       서리고룡의 일격에 거대한 폭탄이 터진 듯, 땅이 갈라지고 움푹 패였다. 가녀린 소녀가 잔혹한 손짓에 온몸이 터져 나갔음을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강력한 일격.

       

       케니스는 그 폭력적인 힘 앞에서 살아남았다.

       

       

       “크웁,으웩!”

       

       

       검과 발톱이 맞닿는 순간, 검에 별 무리를 둘러 간신히 막아 낸 한 방. 별 무리의 힘으로 대부분의 힘을 상쇄시켰지만, 미처 막지 못한 약간의 충격은 소녀의 장기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으웁!”

       

       

       입에서 주르륵 터져 나오는 시뻘건 장기 조각들.

       

       

       ‘다섯신과 여섯 번째 신이시여…’

       

       

       케니스는 떨리는 눈으로 서리고룡을 바라봤다.

       

       

       ——————!!!

       

       

       서리고룡은 승리의 포효를 하듯, 하늘을 향해 거대한 괴성을 토했다.

       

       

       

       ***

       

       

       

       “아, 마수토벌 돌려야겠다.”

       

       

       이제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일과처럼 돌리는 마수토벌. 영웅은 케니스 한 명밖에 없지만, 벌리는 골드가 제법 짭짤하기에 빼먹지 않고 돌린다.

       

       

       빠밤ㅡ!

       

       

       익숙한 마수토벌을 터치하자 요란하게 팡파레 소리가 울린다.

       

       

       《마수토벌 1스테이지 보스 오픈!》

       

       

       “오, 보스? 이런 것도 있었어?”

       

       

       게임에 빠지면 섭섭한 보스가 해금됐다. 아마 1스테이지를 깨면 다음 마수토벌 스테이지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바로 해 봐야지 이건.”

       

       

       아마 첫 번째 보스 레이드니깐, 그닥 어렵지 않겠지. 그런 안일한 생각하며 보스 스테이지에 진입했다.

       

       

       《! 보스전에서 사망한 모험가는 부활이 불가능합니다 !》

       

       

       “어? 아니, 그걸 시작하고 말해주면 어떡해!”

       

       

       보스전을 로딩하는 화면에 나타난 경고 메시지창. 한번 죽으면 끝이라니. 불안하긴 한데. 1스테이지 보스니까 어렵지 않게 깨겠지…?

       

       

       휘오오오ㅡ

       

       

       화면에 웅장한 설산이 보이고, 거대한 용이 땅을 가르고 나타나 괴성을 지른다.

       

       

       ——————!!!

       

       

       “와씨. 무슨 1스테이지 보스가 용이야?”

       

       

       무섭게 생긴 용 앞에 케니스가 홀로 서 있다. 케니스 혼자 달랑 서 있는 모습이 불안하다. 어쩐지 질 것 같은 느낌.

       

       

       콰아앙ㅡ!

       

       

       “아니, 이런 미친!”

       

       

       용이 앞 발로 케니스를 한 대 내려치니까, 죽기 일보 직전까지 피가 깎였다. 아슬아슬하게 남은 HP. 심지어 스턴까지 걸렸다.

       

       

       “미친 망겜 진짜! 이게 어떻게 1탄 보스야!”

       

       

       1스테이지 보스라고 하면, 귀여운 슬라임킹이나 커다란 쥐. 뭐 이런 게 나와야 되는 거 아닌가? 이 미친개발자들이 도대체 어떡하자고 처음부터 이런 보스를 꺼내둔 거지?

       

       화면에서 스턴에 걸려 움직이지 못 하는 케니스와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고룡이 보였다. 이대로 있다가는, 무조건 진다.

       

       

       “아,씨. 뭐 없나?

       

       

       급한 마음에 이리저리 화면을 터치했다. 여기저기 열심히 두들겨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게임. 

       

       

       “미치겠네 진짜!”

       

       

       이대로 있다가는 하나밖에 없는 영웅급 모험가가 허무하게 날아간다. 뭐 방법이 없나?

       

       

       빠밤ㅡ!

       

       

       조급한 마음을 읽은 것처럼, 화면에 메시지창이 나타났다.

       

       

       《위기에 빠진 모험가에게 도움을 줍시다! 스킬을 사용해서, 다친 모험가를 치유해주세요!》

       

       

       게임 화면이 회색빛으로 멈추고, 깜빡이는 십자가 모양의 버튼이 나타났다.

       

       

       “그래, 이거지! 어쩐지. 너무 세다 싶었어.”

       

       

       다행히도 개발자들이 튜토리얼 보스로 용을 넣은 모양. 그래, 1스테이지 보스로 저렇게 쌔보이는 용이 나오는 건 말도 안 되지.

       

       

       “힐 받아라, 케니스!”

       

       

       십자가 버튼을 눌러 케니스를 치유한다. 텅 비었던 HP 바가 빠르게 올라간다. 이걸로 한시름 돌렸다.

       

       

       “아, 근데 평타가 너무 쌘데.”

       

       

       치유를 해도 계속 스턴에 걸리면 방법이 없다. 내가 케니스를 치유하는 거 말고, 다른 스킬이 필요한데. 치유말고는 다른 스킬을 주지 않았다.

       

       

       “…이 새끼들 혹시?”

       

       

       잠시 보스전을 멈추고, 상점으로 들어간다. 혹시나 싶지만, 돈에 미친 개발자놈들이라면…

       

       

       슥ㅡ슥ㅡ

       

       

       손으로 여기저기 상점 탭을 누르며 리스트를 훑다가, 발견했다. 발견해 버렸다.

       

       

       “와 진짜 돈에 미친놈들. 독하다, 독해.”

       

       

       상점에서 팔고 있는 유저 전용의 보스전 스킬들을 발견해 버렸다. 그 이름도 각양각색이다.

       

       

       “즉사의 일격? 뭐야 이건. 나노머신 주입?”

       

       

       판타지라는 틀을 벗어난 이름의 스킬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강력한 스킬들이 가득하다.

       

       

       “가격이… 와 미친. 10만 9천 원?”

       

       

       좀 쌔보이는 이름이다 싶은 스킬들은 하나 같이 10만원에서 시작하는 살인적인 가격. 개발자들의 돈욕심에 혀를 내둘렀다.

       

       

       

       “좀 싼 거 없나…”

       

       

       리스트를 밑으로 내리면서 천천히 훑어보자, 나름 가성비가 괜찮아 보이는 스킬들이 나타났다. 하나에 9천 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되는 스킬들을 장바구니에 하나둘 골라 넣는다.

       

       

       “번개의 일격, 이것도 넣고. 신성한 보호? 이것도 넣고…”

       

       

       이것저것 골라서 넣으니 가격이 제법 나온다. 약간 부담이 가는 가격대. 눈앞에 케찹과 콩나물이 아른거린다.

       

       

       “음…”

       

       

       머리를 감싸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돈은 다시 벌면 되고, 콩나물과 케찹은 한순간이다. 하지만 내가 애지중지 아껴온 케니스는!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 까짓거 콩나물 좀 먹자!”

       

       

       콩나물은 한순간이지만, 떠나간 내 캐릭터는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결제 버튼을 눌렀다.

       

       

       우우웅ㅡ

       

       핸드폰에 도착한 내 각오의 결과물. 나는 떨리는 눈으로 문자를 확인했다.

       

       

       – [WEB발신] 카드 99,900원 일시불 승인. (09/05)

       

       

       아 씨. 스킬 몇 개는 좀 뺄 껄 그랬나?

       

       

       

       ***

       

       

       

       “쿠웁! 우웨엑!”

       

       

       케니스의 입에서 멈추지 않고 장기조각이 흘러나온다.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공기빠지는 소리의 숨을 내쉬면 아릿하게 통증이 올라온다.

       

       

       ‘다섯 신과 여섯 번째 신이시여…’

       

       

       케니스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고, 서리고룡이 승리를 확신하며 하늘에 포효했다.

       

       그때, 하늘에서 거대한 위압감이 그 일대를 짓눌렀다.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지만. 모든 생물들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초월적인 존재가 이곳을 보고 있다.

       

       

       “죽을 거야! 죽을..!! 어?”

       

       “컥!!커읍… 헛?”

       

       

       서리고룡의 사기(死氣)에 발광하던 사람들에게 거대한 시선이 스쳐 지나가자, 한순간 맑게 깨어난다.

       

       

       ———?! ———!!!

       

       

       신화시대의 지배자이자, 폭력의 화신인 서리고룡이 당황할 정도의 거대한 위압감.

       

       케니스는 그 위압감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아,아아! 여섯 번째 신이시여!’

       

       

        한 줌의 별무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녀를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따뜻한 별 무리에서 어버이처럼 그녀를 아끼는 마음이 느껴진다.

       

       

       ㅡ화아아악

       

       

       별 무리에 감싸진 그녀의 몸이 시간을 돌리는 듯 빠르게 아물어 간다. 신의 기적이 그녀를 감쌌다.

       

       

       “오,오오..!! 여섯 번째 신이 우리를 보우하신다!!”

       

       “저,저게 신이라고…?”

       

       “우리는 신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용사님이 신의 기적으로 다시 살아나셨다!!”

       

       반짝이는 별에 감싸진 케니스를 보며 경외하는 성기사들과 북부 전사들. 

       

       

       꽈악ㅡ

       

       

       케니스는 멀쩡해진 몸을 둘러보며 신검을 굳세게 쥐었다. 여전히 그들을 흉흉하게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서리고룡. 

       

       하지만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신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성전(聖戰)!! 이건 성전(聖戰)이다!!”

       

       

       사기가 가득오른 성기사와 전사들. 그 성전의 이름에 걸맞게ㅡ

       

       

       ㅡ꽈르릉!!

       ㅡ콰광!!

       

       

       눈부신 번개가 서리고룡의 머리를 내리쳤고, 케니스가 검을 빼 들며 달려들었다. 바야흐로ㅡ

       

       

       “여섯 번째 신의 이름으로!!”

       

       

       성전의 개시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태풍으로 전국이 뒤숭숭합니다! 부디 독자분들은 아무런 피해 없이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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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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