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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47화. 악마병 ( 2 )

       

       

       

       

       

       일행은 루엘을 따라 바삐 걸음을 옮겼다. 악마병이라? 적어도 케니스는 그런 병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발을 재촉하며 루엘에게 물었다.

       

       

       “루엘, 그런데 악마병이 뭐야? 들어 본 적 있어?”

       

       “헥ㅡ헤엑ㅡ 네? 아뇨, 저도 몰라, 흐엑ㅡ요.”

       

       “딱 보니까 이름처럼 몸이 악마로 변하는 거 아냐? 몸에서 기생충처럼 악마가 자라는 거지.”

       

       

       프리가의 말을 들은 케니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그시 손바닥을 내려다본다. 자신을 집어삼키던 손아귀와 비명들… 자칫하면 악마가 될 뻔했던 순간들…

       

       어두워진 케니스의 얼굴을 본 프리가는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 야, 내가 너를 얘기하려던 건 아닌데 말이야. 이게, 아ㅡ참 미치겠네. 요 입이 방정이지.”

       

       

       프리가는 제 입을 탁탁 두들겼다. 그 모습에 케니스도 작게 미소를 지었다.

       

       

       “… 괜찮아요, 공녀님. 저는 그 순간을 부정할 생각도 없고, 저로 인해 돌아가신 분들도 모른 척 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여기서 제가 죄책감에 발 묶인다면… 오히려 그분들의 희생을 욕 보이는 꼴이 되겠죠.”

       

       저는,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멈추면 안 돼요ㅡ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케니스의 말.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그것은 제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처럼 들렸다.

       

       자신을 위해 흘린 다른 이들의 피를, 기꺼이 짊어지겠다는 읇조림. 케니스의 속삭임에 아무도 입을 열 수 없었다.

       

       무거운 침묵은 안토니오의 방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

       

       

       

       “흠…”

       

       

       안토니오는 심문관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오만방자한 불신자인 줄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이 심각해지고 있다.

       

       

       ‘어찌해야 할꼬…’

       

       

       방 안을 좌우로 거닐며 깊은 생각에 잠긴 안토니오. 깊어지는 상념은 문를 두들기는 작은 소리에 멈췄다.

       

       

       톡ㅡ톡ㅡ

       

       

       두들긴다는 표현보다는 가볍게 톡톡 쳤다는 표현이 어울릴 작은 소리. 그 소리만 들어도 루엘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안토니오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들어오게.”

       

       “네엣, 끄흐읍ㅡ!”

       

       

       문 너머로 잠시 용을 쓰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루엘이 힘겹게 문을 밀며 들어왔다.

       

       

       “흐엑ㅡ 후ㅡ! 안토니오 대사제님! 부탁하신대로 다들 불러왔어요!”

       

       “고마워요, 루엘사제. 고생 많았습니다.”

       

       

       안토니오는 일행을 안쪽의 테이블로 안내했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차가 준비된 테이블. 데모닉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대사제님, 어쩐 일로 저희를 부르셨는지…”

       

       “음… 아까 전에 제국에서 온 불경한 자가 있었습니다. 신을 길가의 개처럼 우습게 여기고, 기적을 봐도 볼 줄 모르는 눈뜬장님같은 자였죠.”

       

       “예?! 아니 어떻게 그런 불경한 자가!”

       

       

       케니스가 분개한 얼굴로 외쳤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데모닉과 루엘도 상당히 불쾌한 얼굴이었다.

       

       

       후룩ㅡ

       

       

       안토니오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자에게 가벼운 ‘교화’ 과정을 진행했습니다. 다행히 아주 협조적으로 ‘교화’ 과정에 협력해주셨고, 이건 약간의 ‘대화’에서 알아낸 사실입니다.”

       

       

       스윽하고 테이블에 내밀어지는 한 장의 종이. 작은 글씨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데모닉이 일행의 대표로 그 종이를 훑어보았다.

       

       

       “이건…”

       

       

       데모닉의 입에서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안토니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의 ‘대화’ 끝에… 우린 그자가 악마와 계약한, 악마 신봉자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계약을 한 줄도 모르더군요.”

       

       “아니, 자기가 악마랑 계약한 것도 모른다고? 그게 말이 돼? 애초에 녀석이 여기까지 어떻게 들어온 거야? 성문에서 검사하는 건 어쩌고.”

       

       

       발을 꼬고 있던 프리가는 의문스러운 듯 말했다. 사전에 악마와 이단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3중 4중으로 검사를 하지 않았던가?

       

       

       “어떻게 계약 사실도 몰랐는지는… 이해할 수 없더군요. 분명 자신의 영혼을 걸고 계약을 했을 텐데, 그걸 어떻게 몰랐는지… 아, 성문에서는 그자가 소란을 피워서 그냥 바로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대사제님, 검문 책임자가 누구입니까?”

       

       

       데모닉의 눈이 번들거렸다. 감히 신성한 성도에 악마 신봉자가 들어오게 하다니? 그것도 뜻깊은 장례식 직전에! 데모닉은 이를 허투루 넘길 생각이 없었다.

       

       안토니오는 한 번 더 차를 후루룩 마시며 말했다.

       

       

       “검문 책임자는 내가 알아서 하겠네. 걱정 말게. 그냥 넘길 생각 없으니.”

       

       “… 알겠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자가 악마와 계약해서 뿌리고 다닌 이 ‘악마병’이라는 겁니다.”

       

       “악마병…”

       

       “이름은 일단 제가 임시로 붙인 이름이긴 합니다. 말이 병이지, 이건 일반적인 병이라고 보기도 힘듭니다.”

       

       

       안토니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쪽을 향해 걸었다. 눈부신 햇빛이 서서히 구름에 가려 땅에 그늘을 만드는 것이 보였다.

       

       

       “악마병은 어떻게 보면, 일종의 저주에 가깝습니다. 악마병은 피해자의 몸에 숨어들어서 그 정기를 빨아먹으면서 자라납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씨앗처럼, 미세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때 피해자는 오히려 건강해진것처럼 보일 겁니다. 씨앗이 정기를 먹고 몸에 악마의 기운을 뿌리기 때문이죠.”

       

       탁ㅡ

       

       

       안토니오는 책상 밑에서 천으로 가려진 상자를 꺼냈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거칠게 발버둥 치며 상자가 들썩거렸다.

       

       

       “그러다 서서히, 서서히 난폭해집니다. 뼈까지 뿌리내린 악마의 기운이 그 성정을 점차 난폭하고, 폭력적으로 바꾸는 거죠. 그러다 최후에는…”

       

       

       안토니오는 무거운 눈으로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천을 촤악 걷어 올렸다.

       

       

       “꺄악!”

       

       “으음…”

       

       

       상자안에 있는 것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울룩불룩 솟아오른 보랏빛 피부에 종양이 부풀다가 터지기를 반복했고, 몸 여러 군데 박힌 입과 눈이 불규칙적으로 꿈틀거렸다.

       

       여러 생물을 녹여서 마구 뭉친 듯한 형태. 몸의 곳곳에 나뭇가지처럼 자라난 앙상한 발톱을 마구 휘두르는 모습은 마귀, 그 자체였다.

       

       

       “최후에는 이렇게 몸이 변해 버립니다. 이건 여러 마리의 쥐로 실험해본겁니다. 쥐들끼리 몸이 합쳐지면서 이렇게 끔찍한 형태가 되더군요.”

       

       “미,미친! 뭐 저딴게 다 있어?”

       

       “… 그래도 사전에 그자를 붙잡아서 다행입니다.”

       

       

       데모닉의 말에 안토니오는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아니라네. 그자는 이미 제국에서 수많은 사람에게 제 능력을 썼다고 말했어. 지금 확인된 것만 해도 그 수가 수십 명을 넘어가네.”

       

       “수십 명이요?”

       

       “말이 좋아서 수십 명이지, 그 수가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 지금 제국에는 걸어 다니는 마수들이 숨어 있는 꼴.”

       

       

       키에에엑!! 끼이이익!! 키이에에엑!!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르면서 미친 듯이 발버둥 치는 상자 안의 괴물. 모두의 눈이 그 괴물을 향했다.

       

       

       “쥐는 크기가 작아서 씨앗이 빠르게 퍼졌지만… 사람은 비교적 커서 조금은 시간이 있겠지. 최대한 빨리, 제국으로 향해야ㅡ”

       

       

       ㅡ꽈르르릉!!!

       

       

       안토니오의 말을 끊으며 천지를 울리는 굉음이 터졌다. 얇은 유리가 바르르 진동하며 몸을 떨었다.

       

       

       ㅡ콰광!!!

       

       

       한순간, 밝은 빛이 창문을 통해 번쩍였다. 세상을 반으로 쪼개는 거대한 벼락이 내리꽂혔다.

       

       

       “꺅!”

       

       

       루엘이 케니스의 품에 파고들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모두 벌떡 일어났다.

       

       데모닉은 반사적으로 검을 움켜잡았다. 적습? 아니면 악마? 어느 쪽이든 그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케니스! 프리가! 이쪽이다!”

       

       

       데모닉은 검을 뽑아 들고 벼락이 떨어진 곳을 향했다. 케니스와 프리가가 그 뒤를 따랐다.

       

       

       ㅡ꽈르르릉!!!

       ㅡ쾅!! 콰광!!

       

       

       연신 거대한 굉음이 울렸다. 하늘을 찢고, 땅을 가르는 거대한 번개가 지상을 향해 내려꽂힌다.

       

       

       “이건…”

       

       

       점차 가까이 다가갈 수록 선명해지는 기운. 데모닉의 걸음이 느려졌다. 이건… 이건 자연현상이나 습격이 아니다. 그보다 더 높고, 비교할 수 없는… 마치 신벌과도 같은.

       

       

       ㅡ콰과광!!!

       

       

       눈부신 번개가 다시 한번 내리쳤다. 데모닉의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새하얀 번개, 그 안에 이치를 뒤트는 막강한 기운이 보였다. 

       

       

       “아…”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그리하였다.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자, 수많은 사람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성도 시민과 외국인, 귀족과 평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머리를 낮췄다.

       

       위대한 존재 앞에서는 모두 한낱 미물일지니, 엎드리고 경배하였다.

       

       

       ㅡ꽈르르릉!! ㅡ쾅!!

       

       

       세상을 울리는 우렛소리. 신의 천벌. 거대한 분노가 연신 땅을 두들긴다. 

       

       하늘에서 땅으로. 신의 분노를 목도한 모든 이들은 깨달았다.

       

       이는 신벌이고, 심판이다.

       

       사악한 자들을 징벌하고 처형하는 신의 형벌이니. 

       

       

       ㅡ꽈릉!!! 쾅!!

       

       

       그 번개는, 마땅히 사악한 자를 향해 내리꽂혔다.

       

       

       “끄아아아아악!!! 크악!! 아아악!!!”

       

       

       거대한 우렛소리와 함께 악인의 비명이 드높게 울려 퍼졌다.

       

       그러한 소란의 한복판에서, 한 남자가 거대한 문을 열고 나왔다.

       

       

       “… 이게 무슨 소란이지?”

       

       

       등에 거대한 방패를 메고.

       

       

       

       

       —

       

       

       

       

       사각ㅡ사각ㅡ

       

       

       매끈한 고급 종이 위를 스치는 만년필의 소리가 조용히 집무실을 채웠다. 고급스러운 금박 장식이 새겨진 만년필이 유려한 흔적을 남기며 종이 위를 누볐다.

       

       

       “폐하. 정말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국의 황제, 카이사르 2세는 만년필을 탁하고 내려놓았다. 벌써 며칠째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정무를 볼 수 없을 지경이다.

       

       

       “재상, 다 잘될 거야. 자네도 그 멍청이를 알지 않나? 그 머저리는 제 주둥이에 모가지가 꺾일꺼야.”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옆에서 불안해하는 재상을 다독였다. 그런데도 재상은 뭔가 마음에 걸리는지 계속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아니, 말이나 해 보게.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안한가?”

       

       “그으, 그것이…”

       

       

       카이사르는 답답한 듯 가슴을 두들겼다. 덩치는 쇠도 구부리게 생긴 양반이 도대체 왜 이렇게 계집아이처럼 구는가?

       

       

       “대체 뭐가 그리 마음에 걸리나? 자, 우리 같이 정리해보지.”

       

       

       만년필로 종이를 콕콕 찍으면서 신경질적으로 말하는 카이사르.

       

       

       “먼저 우린 그 멍청이에게 가짜 칙명서를 줬지. 시간이 지나면 흔적이 사라지는 종류의 약물로 적힌 칙명서를. 우선 그걸로 녀석은 제국의 공식적인 사절이 아니야. 황제의 명령서를 위조한 멍청이지.”

       

       

       한 차례 호흡을 가다듬은 카이사르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뒤따라간 진짜 사절이 있으니, 그 멍청이는 짐의 명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 더욱이 제국에서는 스툴투스에게 역도의 죄를 물어 수배령까지 내린 마당이야. 녀석은 추격을 피해 성도로 숨어드는 멍청한 짓을 범한 셈이지.”

       

       

       카이사르는 만년필을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스툴투스와 제국은 아무런 연관이 없어. 녀석이 수배령을 피해 사절을 위장하여, 성도에 숨어든 거지. 그런데 뭐가 그렇게 불안한가?”

       

       “…”

       

       

       재상은 그런데도 진정된 기색이 아니었다. 카이사르는 다시금 재상을 다독였다.

       

       

       “걱정 말게, 재상. 설사 일이 꼬인다해도 국고를 파먹던 돼지 한 마리보다 더 하겠는가? 스툴투스가 1년 예산의 2할을 한 번에 날려 먹은 걸 떠올리게. 뭘 감당해도 그것보다는 싸게 먹힐 거야.”

       

       

       “… 그렇습니다.”

       

       

       재상은 스툴투스가 연회 한 번에 2할의 국고를 횡령한 것을 되새겼다. 그때는 정말로 황실 전체가 휘청거렸다. 그 뒷감당을 하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ㅡ까드득 

       

       

       재상의 이 가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카이사르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아무리 일이 잘못돼도 그보다 심각하진 않을 것이다.

       

       

       ‘설마 그 멍청이 때문에 천벌이라도 내리겠는가?’

       

       

       아무리 신이 다시금 지상에 도래했다지만, 그 멍청이 하나가 신을 욕했다고 신벌이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신이 그렇게 한가한 것도 아닐 테고.

       

       

       카이사르는 다시금 만년필을 붙잡고 정무에 집중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시간을 따라 조용히 울리다가ㅡ

       

       

       ㅡ쾅!

       

       

       “폐하, 폐하!”

       

       

       문을 박차고 전령이 다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어찌나 급하게 왔는지 땀이 까맣게 늘러붙고 숨을 거세게 내쉬고 있었다.

       

       

       “성도에서, 허읍ㅡ 급보입니다!”

       

       

       성도에서? 카이사르는 섬뜩 불길한 감각이 스치는 걸 느꼈다. 재상이 전령을 재촉했다.

       

       

       “무슨 일이냐! 어서 말해 보아라!”

       

       “허윽ㅡ 후ㅡ 서,성도에서…”

       

       

       전령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스,스툴투스 백작에게 신벌이 내렸습니다!!”

       

       “…뭐?”

       

       

       만년필이 카이사르의 손을 벗어나 툭ㅡ하고 바닥을 굴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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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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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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