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9

       

       

       

       

       

       49화. 너, 이단? ( 2 )

       

       

       

       

       

       깊은 밤의 풀벌레들이 찌르르 울며 조용한 밤공기를 채우고, 새하얀 달이 휘영청 떠오른 깊은 밤. 몇 개의 그림자가 조용히 성도를 나섰다.

       

       누가 볼세라, 사방을 살피며 대로를 따라 말을 재촉하는 이들.

       

       케니스와 프리가, 데모닉, 루엘 그리고 만신전에서 지명한 이단 심문관. 다섯 명은 깊은 밤을 틈타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제국으로의 길을 떠났다.

       도둑처럼 몰래 나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프리가는 연신 투덜거리며 말을 몰았다.

       

       

       “참나,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이렇게 쥐새끼처럼 한밤에 움직이는 건대? 우리 꼴을 봐. 누가 봐도 도둑이잖아.”

       

       

       프리가는 깊게 눌러 쓴 로브를 흔들었다. 옆에서 달리던 데모닉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그녀의 말마따나, 그들의 모습은 잘 봐줘야 도둑 혹은 밀수업자였으니까.

       

       

       “그럼 어떡하겠나. 대사제님이 우리에게 먼저 제국으로, 조용히 가달라고 하셨는데.”

       

       “조용히 가려면 그냥 낮에 갔어도 됐잖아. 이게 뭐야, 이게.”

       

       “하하… 저 때문에 낮에 움직이면 힘들었을 거에요.”

       

       

       뒤따라오던 케니스가 머쓱하게 웃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용사 임명식 이후 성도에서 케니스의 얼굴을 모르면 이단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을 정도로 그 유명세는 나날이 상승 중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고 있노라면, 어느새 신도들이 그녀의 뒤를 따라오며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

       심지어는 그녀가 밟은 길가의 벽돌을 빼서 가져가는 사람도 있었다.

       

       

       – “이 영롱한 벽돌의 자태를 봐…!! 용사님이 밟으신 벽돌이야! 이건 이제부터 우리 집 가보다!!”

       

       – “아악! 늦었다!! 이봐요, 그거 나한테 팔아요!!”

       

       – “어딜 끼어들어요! 내가 비싸게 살게요!!”

       

       

       케니스의 단골 식당에는 몰려드는 사람으로 울타리까지 생겼다.

       

       

       – “다들 만지지 마세요! 용사님이 매일 와서 앉으시던 테이블입니다! 만지면 안 돼요!”

       

       – “저걸 봐! 용사님이 이 식당에서 매일 드시던 메뉴로 ‘용사님의 점심’이라는 음식이 새로 나왔나 봐!!”

       

       – “뭐? 주인장!! 여기 ‘용사님의 점심’ 3개 주쇼!!”

       

       

       사사건건 그녀를 따라다니며 그 행적을 기록하는 사람들까지 생겼으니. 케니스의 혼잣말과 하품 등도 가리지 않고 모두 기록했다.

        한번은 케니스가 길을 가다가 머리를 부딫힌 적이 있었다.

       

       

       – “아얏! 아, 아파라…”

       

       – “모두 적어라! ‘용사님께서 성도의 안전을 위해 순찰하시던 중에, 가게의 표지판에 머리를 부딫히셨다.’

       

       – “으, 창피하게 그런거는 왜 적어요! 좀 빼주면 안 돼요?”

       

       – “음, ‘용사님께서 얼굴을 붉히고 창피해 하시며 기록에서 빼달라고 말씀하셨다…’

       

       – “꺄아아악!!”

       

       

       ‘그때는 참 아찔했는데…’

       

       

       케니스는 아련한 눈으로 성도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그 뒤에서 케니스의 허리춤을 붙잡고 있던 루엘이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뭐에요 케니스? 왜 눈빛이 그렇게 아련해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성도에서 있었던 일 좀 생각하느라.”

       

       “아ㅡ 케니스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죠. 저는 케니스가 용사님이 아니라 유명한 서커스의 인기 단원인 줄 알았다니까요?”

       

       “어… 고마워?”

       

       

       루엘의 칭찬인지 모를 말에 케니스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바람을 뚫고 나지막하게 이야기하며 달리던 일행의 가장 앞에서 달리던 이단 심문관이 입을 열었다. 

       

       얼굴 전체를 덮은 가면에서 목소리가 웅웅 울리며 기괴하게 흘러나왔다.

       

       

       “… 저 앞에 사람이 있습니다.”

       

       

       평소 입던 무장 위에 까만 로브를 두른 일행들과 달리, 스스로의 이름을 “5호”라고 말한 이단 심문관은 원래부터 새까만 갑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을 덮은 까마귀 문양의 가면과 어둠처럼 까만 갑옷. 이단 심문관은 마치 밤을 두르고 달리는 것처럼 보였고, 두꺼운 갑옷과 기괴한 목소리는 5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5호의 말대로다. 저 멀리에 사람들이 있군. 사냥꾼인가? 잠시 피하는 게 좋겠어.”

       

       

       약간 뒤에 있던 데모닉이 심문관의 말을 보충했다. 과연 말을 듣고 눈을 찌푸려 저 앞을 보니, 점처럼 희미한 사람들이 보이는 듯했다. 

       

       잠시 사람을 피해 숲에 숨은 일행. 

       프리가는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케니스의 귓가에 속삭였다.

       

       

       “케니스.”

       

       “흐얏! 공녀님 놀랬잖아요!”

       

       “아, 미안. 궁금한 게 있어서. 저기 5호라는 녀석 말이야, 뭔데 너희 아빠보다 눈이 밝아? 나도 말을 듣고서야 보이던데.”

       

       “어… 글쎄요? 보통 이단 심문관분들은 ‘교화’하시는 일을 주로 하셔서 밤눈이 밝지 않으실 텐데.”

       

       “뭐야, 너도 몰라?”

       

       “저라고 다 아는 건 아니죠. 그렇게 궁금하시면 직접 물어보세요 공녀님.”

       

       “싫어, 저 시커먼 녀석 뭔가 기분 나쁘단 말이야. 갑옷도 그렇고 가면도 그렇고. 목소리도 이상하고.”

       

       “… 죄송합니다, 프리가 사도님. 이 가면은 저희 심문관들의 상징과도 같은 물건인지라.”

       

       “우와씨 깜짝이야!”

       

       

       그림자처럼 다가온 5호가 프리가의 뒤에서 속삭였다. 프리가는 오이를 본 고양이처럼 펄쩍 뛰어올랐다.

       

       

       “… 어서 가시죠. 갈 길이 멉니다.”

       

       “어, 어?”

       

       

       멍한 표정의 프리가를 뒤로 하고, 5호는 제국으로 향하는 길을 재촉했다.

       

       

       

       

       ————

       

       

       

       

       해와 달이 여러 번 떠오르고 지기를 반복했다. 그동안 황제 카이사르와 재상은 눈코 틀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온갖 서류를 뒤적이면서 보기 좋게 요약하고, 두꺼운 장부를 펼쳤다 접으며 수많은 돈의 흐름을 정리했다.

       

       빌어먹을 스툴투스, 죽으려면 곱게 죽을 것이지. 성도에서 천벌을 받을 것은 또 뭐란 말인가. 

       덕분에 성도의 이단 심문관이 제국을 향해 오고 있으니, 불똥을 피하려면 제국의 무고함을 증명해야 했다.

       

       

       “후… 이 정도면 되겠지?”

       

       “틀림없습니다, 폐하. 이 자료를 보면 그 어떤 이단 심문관도 만족하면서 제국의 신앙을 믿어줄 것입니다.”

       

       

       카이사르와 재상은 책상 한가득 쌓인 종이를 뿌듯한 눈으로 바라봤다. 며칠 밤을 새우면서 손으로 하나하나 적으면서 적은 수많은 서류들. 고난의 시간을 증명하듯, 그들의 눈 밑으로는 짙은 다크서클이 뚜렷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이걸로 제국은 성도의 질책을 피할 수 있을 테니까.

       

       그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을 테니까.

       

       

       “고생 많았네, 재상. 그동안 정말 수고했어. 이제 푹 쉬고 내일 보지.”

       

       “예, 폐하.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어두운 밤, 달빛과 함께 각자의 보금자리로 향하는 둘의 얼굴에는 흐뭇함이 가득했다.

       

       … 스툴투스가 악마 신봉자라는 것과, 악마병에 대해 모르는 이상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달이 저물고 밝은 태양이 지상을 비췄다. 카이사르는 그동안 밀린 정무를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만년필을 움직이고 있었다. 자잘한 일들은 대신들이 다 처리하지만, 굵직굵직한 업무들은 카이사르의 책상을 통과해야 했다.

       

       

       “미치겠군, 정말. 며칠이나 손을 놨다고 이렇게 쌓이는 건지.”

       

       

       고급스러운 만년필이 높게 쌓인 서류 위를 바삐 춤추며 유려한 필체를 남겼다. 카이사르가 한참 정무를 처리하고 있자니, 문을 톡톡ㅡ하고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린아이가 문을 가볍게 두들겼을 때 나는 소리, 카이사르의 입가 한가득 미소가 걸렸다.

       

       

       “흠, 들어오거라!”

       

       

       ㅡ끼이익

       

       

       문 양옆에 서 있던 호위병들이 문을 열자, 6살 정도의 사내아이가 오도도 달려왔다. 반짝거리는 금발 머리에 푸른 눈동자. 

       

       카이사르의 하나뿐인 아들, 율리우스 황태자였다.

       

       

       “아바마마! 오늘은 시간이 괜찮으신가요? 같이 사냥놀이 하러 가기로 하셨잖아요!”

       

       “오, 율리우스! 지금 좀 바쁘긴 하지만…”

       

       

       힐끗 율리우스를 내려다보는 카이사르. 율리우스의 푸른빛 눈동자 한가득 그렁그렁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카이사르는 피식 웃으며 율리우스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높이 들어 올렸다. 아비가 되어서 아들과 같이 놀 시간도 만들어 주지 못하겠는가?

       

       

       ‘밀린 일은 나중에 처리하면 되겠지.’

       

       

       드높게 쌓인 서류가 마음을 무겁게 짓눌러왔지만, 카이사르는 애써 모른척하며 율리우스를 더욱 높게 들어 오렸다.

       

       

       “그래, 같이 사냥놀이 하러 가자꾸나. 급한 일도 없으니, 오늘 종일 놀자꾸나.”

       

       “와ㅡ! 약속 하신 거예요? 오늘 하루종일? 와!”

       

       

       높이 들어 올린 율리우스를 빙빙 돌리는 카이사르. 해맑게 웃는 율리우스를 보는 카이사르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갑작스럽게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진 돌림병. 원인도 모르는 돌림병에 걸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름시름 죽어갔던가. 제 하나뿐인 아들도 돌림병에 걸려 점차 죽어갔다. 

       

       스툴투스가 돌림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지 않았다면, 아들을 치료하지 않았다면…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을 것이다.

       

       

       ‘그게 돼지 녀석의 유일한 업적이니…’

       

       

       병에 걸린 많은 사람들을 치료했음에도, 하나뿐인 황태자를 치료했음에도. 스툴투스의 방자함이 도를 넘어서 제국을 흔드는 지경에 다다랐으니. 그렇기에 황제는 제국을 좀먹는 곰팡이를 파낸 것이다.

       

       

       ‘방자함과 멍청함이 조금만 덜 했어도, 귀하게 쓸 수 있는 녀석이었거늘.’

       

       

       죽어가는 병자를 멀쩡하게 치료하는 스툴투스의 의학적 지식은 분명 탐나는 것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제국을 파먹는 것이 컸다.

       

       

       “아바마마! 먼저 말을 준비시켜두겠습니다! 빨리 나오셔야 해요!”

       

       

       그리 좋은지 율리우스가 우다다 달려나갔다. 카이사르는 건강하게 뛰어다니는 율리우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시름시름 앓아가던 아들을 보며 얼마나 무력함을 느꼈던가? 제국을 호령하는 황제면 뭐 하는가, 제 아들의 병도 어찌하지 못하는 무력한 아버지거늘.

       

       카이사르는 주먹을 꽉 쥐며 다짐했다.

       

       

       ‘다시는 너를 잃지 않을 것이다. 율리우스…’

       

       

       아들을 잃을 뻔했던 아버지의 심정은, 한 번으로 충분했다. 카이사르는 복도를 뚜벅뚜벅 걸어가며, 천천히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눈부신 햇빛이 그를 비추며, 제국의 미래를 밝게 비추는 듯했다. 

       

       

       “음?”

       

       

       저 멀리서, 하인 한 명이 다급하게 뛰어오고 있었다. 어찌나 급하게 뛰는지 허둥거리며 넘어졌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폐, 폐하! 폐하!!”

       

       

       땀을 뻘뻘 흘리는 하인이 카이사르의 앞에 다급하게 무릎을 꿇었다. 거칠게 흔들리는 하인의 눈동자, 카이사르는 본능적으로 올 것이 왔음을 직감했다.

       

       

       “서, 성도에서!! 이단 심문관과 사도님들이 찾아오셨습니다!! 지금 응, 응접실에 계십니다!”

       

       

       이단 심문관이 제국을 찾아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뜻하지 않게 휴재가 조금 길어졌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잠시 후 공지로 찾아뵙겠습니다.

    ㄴㅇ0ㅇㄱ 아닛!!! 이게 무슨 일 입니까!!!

    – ‘신선우’님!! 2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못난 작가입니다… 언제나 응원해주셔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 ‘노스엘라’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연참은 커녕 1일 1연재도 못한 작가에게 채찍질을… 휴재가 길어져서 거듭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


           


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