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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

       

       

       

       

       

       53화. 황제 ( 2 )

       

       

       

       

       

       카이사르는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모닥불을 배경삼아, 이 정체 모를 공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잘 차려진 음식들을 괜스레 뒤적거리고, 생전 처음 맥주도 마셔봤다.

       얇은 창문을 두들기고, 2층에도 올라가 보았다. 부엌으로 추정되는 공간도 탐색했다.

       

       그리하여 내려진 결론. 

       

       

       “이곳은 천계인가? 도대체 이게 무슨…”

       

       

       모닥불의 장작은 끊임없이 타오르며 꺼지지 않는다. 식탁 위의 음식들은 먹어도 사라지지 않고, 깨진 그릇은 다시 생겨난다. 

       

       카이사르는 맥이 풀려서 나무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곳은 현실도 아니었고, 심지어 그를 불러 온 이는 신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카이사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기다리는 것뿐. 

       그래서 카이사르는 멍하니 기다렸다.

       

       배고프면 차려진 음식을 먹고, 졸리면 벽난로 소리를 자장가 삼아서 잤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하루? 어쩌면 일주일? 이 기묘한 공간에서는 모든 것이 일정한 현상을 유지하며 사람의 시간 감각을 뒤틀었다. 

       끊임없는 기다림에 카이사르는 점차 지쳐갔다. 

       

       신은 도대체 왜 자신에게 기다려야 한다고 한 것일까?

       그에게 뭔가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였나?

       

       카이사르는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신이 그에게 기다리라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 마른 장작이 불을 머금고 갈라지는 소리가 카이사르의 상념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

       

       

       카이사르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신이 자신에게 기다리라고 한 이유는, 필시 그가 스스로 깨닫기를 바랬기 때문일 것이다. 

       현명한 부모는 아이에게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 준다. 이는 아이가 스스로 성장하기를 바람이요, 무조건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신 또한 어버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터이니.

       카이사르는 고민하고 또 고민하였다.

       

       … 그렇게 시간이 흘러도 카이사르는 신이 자신에게 기다리라고 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신이 카이사르를 찾아왔다.

       

       

       “으읏!”

       

       

       피부를 통해, 어쩌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강렬한 시선. 그의 영혼 깊은 곳을 꿰뚫어 보는 시선이 저 하늘에서 느껴졌다. 카이사르는 떨리는 눈으로 천장, 그 너머를 올려다보았다.

       카이사르는 신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외쳤다.

       

       

       “신이시여, 전능하신 신이시여. 어리석은 인간이 별처럼 빛나는 당신의 지혜를 빌려 정답을 구하고자 합니다.”

       

       인간이 신에게 질문을 하는 당돌한 상황. 하지만 카이사르는 뻔뻔하게 밀고 나갔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해야지, 그럼 어떡하겠는가? 

       질문 좀 했다고 천벌이 떨어지겠냐는 생각이었다.

       

       그의 질문에 신이 말했다.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도리어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는 행동을 부끄러워해야 함이니.》

       

       《그대는 나에게서 무엇을 알고자 하는가?》

       

       

       카이사르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질문 하나에 벼락이 떨어질 만큼 속 좁은 신은 아닌 모양. 

       

       

       “신이시여, 저는 모르겠습니다. 우둔한 머리로 깊이 생각해보았지만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기다림을 통해 무엇을 깨우쳐주려고 하셨습니까? 긴 기다림을 통해 저는 무엇을 배워야 했습니까?”

       

       《…》

       

       

       하늘에서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카이사르는 괜스레 마른침을 삼켰다. 너무 건방지게 굴었나? 기다리게 했다고 따지는 것처럼 보였나?

       당장에라도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질 것 같았다.

       

       다행히 하늘에서는 벼락 대신 우레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 안에는 저울이 있도다. 한쪽에는 천 년을 이어온 제국이고, 다른 한쪽에는 어린 아들이 있구나.》

       

       《둘 모두 소중하여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음이니, 그대에게 묻겠다.》

       

       《그대는 황제인가? 아니면, 어린 아들의 아비인가?》

       

       

       카이사르의 움직임이 덜컥 멈췄다.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리며 그의 심정을 나타냈다. 

       그는, 황제인가? 아버지인가?

       

       

       《그대는 나라를 위해 아들을 죽일 수 있는가?》

       

       “…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아들을 위해 나라를 버릴 수 있는가?》

       

       “… 그럴 수 없습니다.”

       

       《모두 손에 담고 가기에는 그대의 손이 너무 작음이니, 결국 모두 잃을 것이라. 그대는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이냐? 무엇을 버리고 갈 것이냐?》

       

       

       황제냐, 아버지냐.

       

       카이사르는 고개를 깊게 숙였다. 

       

       그의 등 위에는 제국이 있었다. 긴 시간을 이어서,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그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이어져 온 제국이 있었다. 수많은 목숨과 긴 역사가 있어 한없이 무거운 제국이었다.

       그의 어깨에는 아들이 있었다. 태어난 지 7년이 갓 지난 어린 아들이었다. 그의 아들은 너무나 작고, 가벼워서 어깨에 올리면 당장에라도 날아갈 듯했다.

       

       오랫동안 고민했다. 긴 시간을 고심하고 괴로워했다.

       

       

       “나는… 나는…”

       

       

       카이사르의 눈동자가 점차 밝아졌다.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었다.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는, 무엇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모두 가지고 갈 것이다.

       

       “저는 무엇 하나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제국과 아들, 둘 모두 저의 심장과도 같은 것들이니! 하나를 포기한다면 저는 이미 죽은 목숨과 같을 것입니다!”

       

       

       카이사르의 눈동자가 올곧게 하늘을 바라봤다.

       

       

       “저의 마음속에 저울이 있다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저의 마음속에는 넓은 땅이 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땅에, 아들을 품고 제국을 품고, 소중한 이들을 품을 것입니다!”

       

       “저는 욕심쟁이에 무엇 하나 놓을 줄 모르는 미련한 자이니, 손이 작아서 안 된다면 발을 사용해서. 발로도 안 된다면 입으로 물어서라도 모두 가져갈 것입니다.”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저는, 모두 품을 것입니다. 무엇 하나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카이사르는 거친 숨을 헉헉 거렸다. 아무것도 버릴 수 없다. 아무것도 포기할 수 없다. 

       황제와 아버지, 모두 카이사르 자신이였다. 어떻게 자신을 조각내서 버리고 가겠는가?

       

       

       《…》

       

       

       신은 침묵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느껴졌다. 카이사르의 눈동자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올곧게 하늘을 바라봤다.

       

       

       《우둔하고, 미련하고 우매한 자로다.》

       

       

       카이사르는 고개를 푹 숙였다. 

       

       

       《허나ㅡ》

       

       《그리하여 그대는 진실로 인간이구나.》

       

       《참으로 그렇다. 어찌 자신을 조각내서 길에 버리고 가겠느냐?》

       

       《그대는 참으로 인간됨이구나.》

       

       

       ㅡ사아아앗

       

       

       하늘을 바라보는 카이사르의 앞에, 밝은 별들이 이리저리 뭉치며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갔다. 

       

       

       《누구보다 인간다운 군주이자 아비인 그대에게, 한 가지 사명을 내림이니.》

       

       ㅡ촤아앗!

       

       

       밝은 빛으로 이루어진 형상이 카이사르의 앞으로 다가왔다. 홀린 듯이 빛나는 형상을 붙잡는 카이사르.

       따뜻한 별빛이 손을 통해 맥동치듯 느껴졌다.

       

       

       《그대의 선언대로, 군주로서 아비로서. 모두 지켜보일지어다.》

       

       《그대의 안에는 끝을 모르는 땅이 있음이라. 그 한계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무엇 하나 버리고 포기하지 말지어다. 이것이 그대의 사명이라.》

       

       ‘품고자 한 것을 모두 지켜라.’

       

       

       카이사르는 그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너무나 쉬운 일이다.

       

       

       “지금까지 제가 해온 일 아니겠습니까.”

       

       

       황제로서, 아버지로서.

       

       그는 모두 가지고 갈 것이다. 무엇 하나 잃지 않고 지켜낼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제, 그대가 있어야 할 곳으로 가야함이다.》

       

       “…예?”

       

       《가서 품고자 한 것을 모두 지켜보아라.》

       

       

       카이사르의 주변에 밝은 빛무리가 생겨나며 그를 휘감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시 당황한 카이사르였지만, 이제 침착하게 별빛에 몸을 맡겼다.

       손에 들린 묵직한 무게에 새삼 실감이 났다. 

       

       밝은 빛이 시야를 모두 가리기 직전에, 카이사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전능하고 전지한 신. 

       그는 과연, 자신에게 무슨 대답을 바랬을까?

       

       

       ㅡ화아악!

       

       

       이윽고 밝은 빛이 눈앞을 하얗게 비추었고, 카이사르는 눈을 감았다.

       

       

       

       

       ————

       

       

       

       

       “ㅡ하! 폐ㅡ! 정신ㅡ 드십니ㅡ?”

       

       “당장 가서ㅡ사제ㅡ!”

       

       

       밝은 빛에 눈을 움찔렸다. 주변에서 시끄럽게 외쳐 대는 탓에, 머리가 욱신거렸다. 중간중간 말소리도 끊겨서 들려왔다.

       

       

       ‘머리가 아프구나…’

       

       

       카이사르는 머리를 부여잡고 말했다.

       

       

       “물… 물을 가져오거라.”

       

       

       자연스럽게 뻗어진 손에 시원한 물이 가득 담긴 컵이 잡혔다. 거침없이 물을 마시자, 한결 살 것 같았다.

       

       

       “윽… 너무 시끄럽구나.”

       

       

       카이사르가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침상을 가득 채운 이들이 보였다.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재상과 성도에서 온 루엘 사제, 황실 주치의와 여럿 하인들.

       헌데 그들의 얼굴은 며칠 동안 씻지 못한 사람처럼 꼬질하기 그지없었다.

       

       재상은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오열하며 무릎을 꿇었다.

       

       

       “폐하, 폐하!! 일어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우, 울지 마세요… 폐하께서는 지금 안정이 필요하세요.”

       

       

       무슨 연유인지 펑펑 우는 재상. 루엘 사제가 바닥에 엎드려 우는 재상을 달랬다. 카이사르는 거지 같은 몰골의 이들을 바라봤다.

       땟자국이 가득하고, 누군가는 핏자국이 묻은 붕대를 두르고 있다. 이 꼴은 마치… 마치…

       

       

       ‘전쟁 중인 이들의 꼴 아닌가?’

       

       

       카이사르가 재상에게 물었다.

       

       

       “재상, 내가 얼마나… 아니 내가 누워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지?”

       

       “꺼흡ㅡ 폐하… 폐하께서 누워계시는 동안ㅡ”

       

       

       재상은 중간중간 울먹이며 그동안의 일을 설명했다. 카이사르의 눈동자가 거칠게 떨렸다.

       

       

       “뭐라? 수도가 공격받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사흘째 쥐들의 습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 수가 바다와도 같아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습니다…”

       

       “이런 더러운 마귀들이…!”

       

       

       카이사르에게서 빠드득ㅡ하고 이를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감히 역겨운 마귀들이 천 년의 수도를 더럽히는가? 이는 제국에 대한 모욕이요,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당장 내 눈으로 봐야겠다, 어서 안내해라ㅡ!”

       

       “어,어? 벌써 일어나시면…”

       

       

       카이사르가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루엘의 걱정어린 말이 무색하게, 그는 멀쩡하게 발을 디뎠다. 

       서둘러 카이사르를 안내하려던 재상이 말했다.

       

       

       “… 폐하, 손에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음?”

       

       “어, 어어? 그거 신,신성력이? 어?”

       

       

       루엘의 당황한 듯한 음성.

       그제야 손의 묵직한 감각을 느낀 카이사르가 손에 들린 것을 슥 들어 올렸다.

       차갑고 묵직한 감각. 

       

       그 감각이 못내 반가운 카이사르가 씩 웃었다.

       

       

       “이건 내 사명이다.”

       

       

       황제이자, 아버지로서의 사명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ㄴㅇ0ㅇㄱ!!! 아닛 이게 무슨 일입니까!!!

    – ‘노인정휠체어도둑’ 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언제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악!!! 저도 싸랑합니다 독자님!!! 악!!!!! 4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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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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