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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

       

       

       

       

       

       54화. 황제 ( 3 )

       

       

       

       

       

       카이사르는 거침없이 나아갔다.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그의 뒤를 수많은 이들이 뒤따랐다.

       

       황제는 사람들을 이끄는 자였고, 방향을 지시하는 자였다.

       

       쌓여있는 서류를 훑어보고, 발 빠르게 돌아다니며 제국의 현 상황을 파악한 카이사르.

       곧이어 빠르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검은 망치 기사단은 서쪽 성벽의 수비를 담당하라. 오늘 새벽에 서쪽 성벽에서 대대적인 전투가 있었다는 보고가 있구나. 아군의 피해가 막심하니, 전력의 손실을 보충하라.”

       

       “알겠습니다!”  

       

       “역병쥐에 감염된 환자들은 한곳에 모아두고 관리하라. 수도의 모든 의원을 모아서 환자들을 치료하게 해야 한다. 돈은 얼마든지 써도 상관없으니, 환자들을 살려라.”

       

       “예, 예!”

       

       “그리고 기사들 중에서 인원을 모아서 하수도를 탐색하게 하라. 끝도 모르고 솟아나는 마귀들의 둥지가 있을 것이다. 이를 파괴하거나, 봉인해야 한다. 이대로 장기전으로 가면 좋을 것이 없다.”

       

       “마귀들의 둥지 탐색… 알겠습니다.”

       

       “… 그리고 율리우스는 지금 어떤가.”

       

       “황태자께서는 현재 병상에 누워계십니다. 루엘 사제님이 힘써서 치료하고 계십니다.”

       

       “그런가…”

       

       

       카이사르의 안색이 잠시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러한 기색을 재빨리 지우고, 다시금 명령을 내렸다.

       

       삐걱거리던 제국이 황제의 귀환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수한 톱니바퀴들의 움직임처럼, 황제라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움직이자 제국이 움직인다.

       

       

       ㅡ쾅!

       

       

       닫혀있던 문을 박차고 누군가 들어왔다. 

       

       

       “하수도는 안 가봐도 괜찮을걸?”

       

       

       검은 머리카락에서 흘러내린 검붉은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져 내렸다. 몸 곳곳에 묻은 오물과 썩은 고깃덩어리가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근처에 있던 하녀들이 꺄악ㅡ하고 새된 비명을 지르며 코를 막을 정도의 악취.

       

       손에 들고 있는 거대한 도끼에는 뭔지 모를 생물의 눈동자와 핏줄이 덜렁거렸다. 

       그 꼴만 보면 지옥에서 올라온 살인귀, 그 자체였지만…

       

       

       “그대는… 프리가?”

       

       “그래, 맞아. 하수도는 내가 먼저 다녀왔거든.”

       

       

       문을 박차고 들어온 이는 프리가였다.

       역병쥐들의 습격이 시작된 사흘 전, 돌연 사라진 그녀가 지금 모습을 드러냈다.

       

       

       “잠깐만… 어우, 목말라서 죽는 줄 알았네.”

       

       

       성큼성큼 방으로 들어온 그녀는 탁상 위의 물병을 덥석 집어 마시기 시작했다.

       꿀꺽꿀꺽 한 병을 통째로 비운 그녀는 캬아ㅡ하는 탄성을 질렀다.

       

       

       “크ㅡ 진짜 물 한 병이 얼마나 그리웠나 몰라.”

       

       “프리가 공녀, 그대 지금 뭐라고 했는가? 어디를 다녀왔다고? 하수도?”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프리가에게 쏠렸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잠시 묻혔지만, 그녀가 지금 어디를 다녀왔다고 하지 않았나?

       하수도를 다녀와?

       

       

       “엉, 하수도. 쥐새끼들 막 터져 나오는 거 보니까 느낌이 딱 오더라고. 아, 이거 북부에 있는 마수 새끼들 습격이랑 비슷하다ㅡ 싶었지.”

       

       

       탁상에 놓인 과일 꾸러미를 뒤적거리며 며칠 굶은 사람처럼 먹어 치우며 말하는 프리가. 

       그녀의 무례한 태도에 뭐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모두가 집중했다.

       

       

       “그래서 반나절 정도 대충 보니까 견적 나오더라고. 나 혼자서 하수도 들어갈 만하겠다 싶더라고. 그래서 다녀왔지.”

       

       “그 안에는… 뭐가 있었지?”

       

       “뭐ㅡ 별거 있나. 쥐새끼들이랑 쥐똥이 있었지.”

       

       “프리가 공녀, 지금 장난칠 시간이 없네. 어서 말해주게. 녀석들의 둥지를 찾았나? 어디에 있지? 규모는? 모체는 있었나?”

       

       “일단 둥지를 찾긴 찾았어. 찾았는데… 모체가 좀 크더라고?”

       

       “크다? 얼마나 크길래 그러는가?”

       

       “어ㅡ 이 방보다 더 컸을걸?”

       

       “허…”

       

       “좀 많이 크더라. 거짓말 좀 보태서 내가 북부에서 본 고룡의 허벅지 뼈 정도? 저거 나 혼자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나왔지.”

       

       “가지가지 하는군 정말.”

       

       

       절로 터져 나오는 탄식. 지금 있는 방이 제일 큰 집무실인데, 이보다 크다고?

       보통 거대한 쥐가 아니다.

       

       그래도, 덩치만 커다란 쥐라면 기사단과 사도들이 힘을 합쳐 잡을 수 있는 수준일 것이다.

       카이사르의 머릿속에 얼추 계산이 그려졌다.

       

       기사들과 병사들을 동원해 지상에 나온 쥐들을 상대하고, 사도들과 황제 친위 기사단까지 동원해서 하수도로 간다면… 

       그곳에서 모체를 잡는 것은 최선의 방법이다. 정 안된다면 하수도를 봉인해야 하리라.

       

       

       ‘최선은 모체를 잡고, 쥐들을 모조리 소탕하는 것.’

       

       

       대충 견적이 나왔다. 카이사르는 벌떡 일어나서 집무실을 나섰다.

       

       

       “데모닉경, 데모닉경은 어디 있느냐?”

       

       “지금 대로의 광장에 계십니다. 제가 불러오겠습니다.”

       

       “아니다, 전투 중인 사람들 어찌 오라 가라 하겠느냐? 직접 가겠다.”

       

       

       카이사르는 뒤에 사람을 줄줄이 매달고 황실 밖으로 나섰다. 어느새 모여든 황실 친위 기사단이 카이사르를 호위했다.

       

       대로의 풍경은 처참했다.

       거리의 곳곳이 격렬한 전투의 흔적으로 파이고, 부서졌다. 피가 고여 웅덩이를 만들고, 썩어가는 쥐의 사체에는 구더기와 파리가 맴돌았다.

       시체들을 놔두면 또 다른 병의 원인이 되지만, 이를 치울 여유조차 없었던 모양.

       

       

       ㅡ찌이익!! 찍!

       

       – “죽여라! 녀석들을 죽여!”

       

       – “물러서지 마라! 너희들의 뒤에는 가족과 전우가 있다!! 뒤로 물러서지 마!!”

       

       

       저 멀리서 전투의 소리가 들려왔다. 황실 친위 기사단이 발 빠르게 카이사르의 앞을 가로막았다. 

       카이사르는 친위대를 무르고, 앞으로 향했다. 다가갈수록 선명해지는 비명과 고함소리.

       

       약간 높은 고지대로 향하자, 대로에서 벌어지는 전투가 한 눈에 들어왔다.

       새까만 물결들을 막고 있는 얇은 인간들의 벽. 쥐들을 그야말로 파도처럼 들이닥쳤다.

       

       

       ㅡ찌익!! 찌직!!

       

       – “백인장님! 쥐새끼들이 몰려옵니다!”

       

       – “뒤로 빠져!! 모두 천천히 뒤로 물러서라!!”

       

       

       병사들이 한 차례 파도를 막아내자, 뒤에서 더 큰 물결이 까맣게 들이닥치는 것이 보였다. 일촉즉발의 상황.

       카이사르가 저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들어 올리려 할 때ㅡ

       

       

       “케니스, 지금이다!!”

       

       “예ㅡ!!”

       

       

       ㅡ콰아아앙!!!

       

       

       거대한 빛의 폭발이 새까만 물결의 한 가운데에서 터져 올랐다. 그야말로 지상에 임한 태양과도 같은 모습.

       빛의 태양이 임한 자리에는, 한 소녀가 있었다. 

       보랏빛의 거대한 신검을 들고 고고하게 서 있는 소녀.

       

       

       용사, 케니스였다.

       

       

       ㅡ찌직?! 찌이익!!

       

       

       쥐 떼의 가운데에 구멍이 뚫리자, 역병쥐들은 눈에 띄게 동요하였다. 

       이윽고, 사사삭ㅡ하는 소리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지는 역병쥐들. 

       

       빛에 놀란 바퀴벌레가 사라지듯, 쥐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카이사르는 서둘러 전투가 있었던 대로를 향해 내려갔다.

       

       

       “데모닉경!”

       

       “폐하? 언제 일어나신…”

       

       “데모닉경, 괜찮은가? 아니 그보다 방금 그 폭발은?”

       

       “전 괜찮습니다. 별거 아닌 잔챙이들이 수가 많을 뿐입니다. 방금 그 폭발은…”

       

       

       데모닉의 시선이 저 멀리에 있는 케니스를 향했다. 가볍게 숨을 고르며 신검에 기대어 서있는 소녀.

       

       

       “저 신검의 힘입니다. 케니스의 말로는, 한 달에 한 번 쓸 수 있는 힘이라고 하더군요.”

       

       “과연 신검이…”

       

       “그보다 폐하, 무사히 일어나셔서 다행입니다. 오랫동안 일어나지 않아 걱정이 많던 참이었는데…”

       

       

       데모닉이 말을 흐리며 카이사르의 손으로 향했다. 황제의 손에 들린 강렬한 신성력의 무구.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신의 무기다.

       

       

       “신을 만나 뵙고 오셨습니까?”

       

       “그렇네. 사명도 주시더군.”

       

       “사명까지 말입니까?”

       

       

       데모닉의 눈이 한순간 번뜩였다. 데모닉의 입이 벌어지려는 찰나, 카이사르가 선수를 쳤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만신전에 귀의하거나 그러지는 않을 거지만. 애초에 내 사명도 황제와 아비로서의 사명이네.”

       

       “… 저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뻔하지 않겠나.”

       

       “…”

       

       

       입을 꾹 다문 데모닉. 카이사르는 피식 웃으며, 본격적인 용건을 말했다. 

       프리가가 하수도에서 발견한 역병쥐들의 둥지와 거대한 모체, 그리고 그의 계획까지.

       

       데모닉은 진지하게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프리가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사도님들과 저만 가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것도 그렇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지 않겠나. 그리고… 제국에서 일어난 일을 손님들에게 전부 맡기면 제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지.”

       

       “음… 알겠습니다.”

       

       

       데모닉은 나지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나쁠 것은 없다. 

       준비는 지나칠수록 좋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자세한 내용은 기사단장들과 이야기를ㅡ”

       

       

       ㅡ투두두두

       

       

       카이사르의 말을 끊고 들려오는 땅울림.

       주변의 땅이 가볍게 떨리며 무수한 숫자의 무언가가 이곳으로 오고 있음을 알렸다.

       주변의 황실 친위 기사단이 서둘러 카이사르의 주변을 감쌌다.

       

       

       ㅡ찌이이익!!

       

       

       저 멀리서 역병쥐들이 까맣게 파도를 이루어 달려오고 있었다.

       

       

       “팔라딘님! 녀석들이 또 몰려옵니다!”

       

       “이런, 빌어먹을 마귀 새끼들이! 폐하 이곳은 위험합니다! 어서 뒤로 피하십시오!”

       

       “… 피하라고?”

       

       

       카이사르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제국의 땅이다. 

       물러서지 않는다. 피하지도 않는다.

       

       제국의 땅에서 황제가 적들을 피해 도망친다는 것은 언어도단.

       

       도리어 적들이 황제를 피해야 마땅함이다.

       

       카이사르는 손에 들고 있는 것을 천천히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것은 거대한 지팡이였다.

       

       거대한 왕홀이 햇빛을 반사하며 눈부시게 빛났다. 신성한 은백색의 지팡이가 그 몸태를 자랑했고, 왕홀의 꼭대기에는 두 마리의 사자가 하나의 보석을 물고 있었다.

       

       작은 태양처럼 생긴 보석이 찬란한 빛을 발했다. 신성한 빛을 잔뜩 머금고 있는 태양의 보석.

       

       

       “이곳은ㅡ!”

       

       쾅ㅡ!

       

       

       왕홀로 힘차게 바닥을 내리찍었다. 

       

       

       “제국의 땅이다!”

       

       

       이곳은 천년의 역사를 지켜온 땅. 한 뼘의 땅도 내줄 수 없고, 내주지 않는다.

       

       

       “그대들이여! 일어나서 싸워라!”

       

       

       카이사르의 외침에 호응하듯, 왕홀의 끝에 달린 태양의 보석에서 눈부신 황금빛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하늘 높게 올라간 황금빛은 구체의 형태를 그리며, 거대한 반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작은 황금빛들이 별빛처럼 내려와 사람들에게 스며들었다.

       

       

       “그대들은 자랑스러운 제국의 아들이요, 우리는 제국의 자식들이니!”

       

       

       누워있던 병사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피를 흘리던 기사들은 칼을 고쳐 쥐고, 방패를 붙잡았다.

       황금빛이 그들에게 스며들며 몸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들의 무기마저 옅은 금빛으로 빛났다.

       

       

       “여기가 어디인가ㅡ!”

       

       “”제국의 땅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라! 여기가 어디인가ㅡ!”

       

       “”천년의 제국입니다!!””

       

       

       그래, 이곳은 제국의 땅이다.

       

       감히 쥐새끼들에게 등을 보이고 도망치라고? 카이사르는 그럴 수 없었다.

       

       

       “전군ㅡ!”

       

       

       제국은, 결코 물러서지 않음이니. 

       

       

       “돌격하라ㅡ!”

       

       

       황제 또한, 결코 물러서지 않음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왕홀 혹은 셉터라고도 하죠! 이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지팡이나 막대를 의미합니다!!!

    ㄴㅇ0ㅇㄱ!! 아닛 이게 무슨 일입니까!!!

    – ‘노인정휠체어도둑’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으아악!! 저는 독자님들이 재밌게 봐주시는면 충분합니다!!! 부족한 글을 항상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악!!! 사랑합니다!!!!! 3000만큼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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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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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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