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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

       

       

       

       

       

       77화. 출정 ( 2 )

       

       

       

       

       

       한스의 망상은 끝을 모르고 뻗어나갔다.

       

       

       ‘해가 뜨면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소일거리를 하다가, 오후에는 여유롭게 책이나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고ㅡ’

       

       “한스 씨?”

       

       ‘해가 떨어지면 벽난로 앞에서 오순도순ㅡ’

       

       “한스 씨?!”

       

       “헛! 아, 용사님…”

       

       “한스 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몇 번이나 불렀는데 대답도 안 하시고.”

       

       “아니, 아닙니다. 잠시 아버지 생각이 나서…”

       

       

       한스는 멋쩍게 둘러대며 머리를 긁적였다. 케니스가 고개를 슥 숙이며 한스를 바라봤다.

       

       

       “아버님이랑 사이가 좋으셨나요?”

       

       “뭐, 그냥 그랬죠? 아주 친하거나 살갑지는 않았는데, 그런대로 부모자식 사이 정도는 됐던 거 같습니다.”

       

       

       한스의 머릿속을 스치는 아버지의 모습. 태양 빛에 쭈그러들어 깊게 파인 주름살과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얼굴. 두텁게 박힌 굳은살과 까맣게 탄 피부…

       

       한겨울이면 웃통을 까고 맨몸으로 눈밭을 헤치며 계곡물에서 씻던 사람. 농작물을 파먹는 돌멧돼지와 한바탕 씨름해서 기어이 잡아낸 인간.

       

       

       ‘…알아서 잘 살고 계시겠네.’

       

       

       인간 자체가 강하게 태어난 사람이 바로 한스의 아버지였다.

       

       한스가 멍하니 아버지 생각을 하고 있자니, 케니스가 머뭇머뭇 말을 꺼냈다.

       

       

        “그으… 한스 씨,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잖아요?”

       

       “어, 어어? 예! 그랬죠!”

       

       “그게 말이죠, 사실은…”

       

       

       케니스는 뭐가 그리 말하기 부끄러운지 몸을 베베 꼬았다. 한스는 그 모습을 보며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아니, 오늘 바로?! 이, 이건 너무 빠르지 않을까요 용사님! 싫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데!’

       

       

       “한스 씨의 검을 한번 볼 수 있을까요?”

       

       “…예?”

       

       “신의 문자가 새겨졌다는 검이요! 혹시 한번만 볼 수 있을까요? 소문을 듣고서 너무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아까부터 계속 찾아다녔어요!”

       

       “아, 그… 제 검을?”

       

       

       한스의 멍한 대답에 케니스가 잠시 움츠러들었다.

       

       

       “물론 한스 씨가 싫다고 하시면 어쩔 수 없지만…”

       

       “아니, 뭐. 보여드리는 거야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만.”

       

       

       어째선지 약간 김이 빠진 한스는 검을 꺼내 조심스럽게 케니스에게 보여줬다. 검신의 가장 아래, 주홍빛으로 이글거리는 신비한 글자가 있었다.

       

       그걸 보는 케니스의 눈동자가 별처럼 반짝였다.

       

       

       “이게 바로 신께서 직접 만드신…”

       

       

       홀린 듯 속삭이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손가락으로 글자를 훑어보는 케니스. 그 분위기는 어딘가 몽롱한 기색이 있어 한스는 넋을 놓고 바라봤다.

       

       한참 동안 글자를 바라보던 케니스가 검을 한스에게 돌려줬다. 더 보고 싶지만, 차마 그러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표정이다.

       

       

       “여기요. 고마워요 한스 씨. 덕분에 귀한 걸 봤네요. ‘용기의 룬’ 이라고 했죠? 한스 씨에게 잘 어울리는 글자네요.”

       

       “아유, 아닙니다. 저야 뭐, 운이 좋은 놈에 불과하죠. 용기는 무슨, 도망이나 치지 않으면 다행이구요.”

       

       “아니에요, 한스 씨. 저번에 리치랑 싸울 때도 용맹하게 싸우던 모습을 봤는데요?”

       

       “그건… 싸우는 척만 했던 겁니다. 사실 싸움은 전부 케일 성기사님이 하셨죠.”

       

       

       한스는 함께 요양하던 금발 머리의 성기사, 케일을 떠올렸다.

       리치의 공격에 당해 함께 얼음이 갇혔다가 풀려난 선임급 성기사. 그녀는 얼마 전 그녀의 부대로 복귀했다고 하였다.

       

       한스는 우울한 표정으로 바닥을 보며 말했다.

       

       

       “저는 싸우는 게 너무 무섭습니다. 뭔가를 죽이는 것도 무섭고, 죽는 것도 무서워요… 신께서는 왜 이런 겁쟁이에게, 용기라는 뜻의 글자를 주신 걸까요.”

       

       

       잠시 한스를 바라보던 케니스가 입을 열었다.

       

       

       “저도 싸우는 게 무서워요. 다치는 건 너무 아프고, 적들은 강하고 두렵죠. 그래도 저는 용기를 내는 거예요.”

       

       “…”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묻더라고요. 용사라서 그렇게 용감한 거냐고. 흐흣, 아니에요 그런거. 용사라고 하면 사람들은 저에 대해서 오해를 해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케니스가 한스의 주변을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그녀의 뒤를 따라 흩날리는 붉은 머리카락은, 마치 어두운 밤에 나타나 한스를 홀리는 요정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제가 하루종일 용사일꺼라고 착각하죠. 밥 먹을 때도 용사답게, 옷을 입어도 용사답게, 훈련을 해도 잠을 자도 용사처럼 할 거라고. 사실은 그런게 아닌데 말이죠.”

       

       

       자리에 멈춰선 케니스가 한스를 바라봤다.

       

       

       “한스 씨, 제가 용사를 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용사는 그냥 이름에 불과해요. 누구나 용사가 될 수 있어요. 한스 씨도, 어린아이도, 노인분들도. 중요한 건 딱 하나에요.”

       

       

       한스의 앞까지 다가온 케니스의 붉은 눈동자가 타오르는 별처럼 반짝인다. 

       

       

       “앞으로, 한 걸음 내딛을 용기.”

       

       

       케니스가 한스에게 속삭였다.

       

       

       “너무나 두렵고 절망적일 때가 있어요. 뒤돌아 도망치고 싶은 순간. 그때,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면. 누구나 용사가 될 수 있어요. 중요한 건 가장 짧은 용기. 세상에서 가장 짧은 용기가, 한스 씨를 용사로 만들어주는 거예요.”

       

       “앞으로 한 걸음…”

       

       “한스 씨. 용기는 두려움을 모르는 게 아니에요. 그건 무모한 거죠. 죽을 만큼 무섭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그 한 걸음을 내딛는 게 바로 용기. 이 안에 있는 거죠.”

       

       

       케니스가 한 손으로 한스의 명치를 콕 찔렀다. 

       

       

       “무섭다는 건, 이겨낼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

       

       

       한스는 말없이 케니스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한스의 얼굴을 비추는 케니스의 눈동자는, 밝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사람을 홀리는 듯했다.

       

       

       – “케니스ㅡ!! 어딨어ㅡ!! 밥 먹어ㅡ!!”

       

       

       저 멀리서 케니스를 찾는 프리가의 외침이 울렸다. 외침을 들은 케니스가 뒤로 물러났다.

       

       

       “이제 그만 가봐야겠어요. 제가 괜한 말을 한 거 아닐지 모르겠네요. 한스 씨, 좋은 밤 되세요!”

       

       

       케니스는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뛰어갔다.

       

       

       “아! 검 보여줘서 고마웠어요!”

       

       

       어느새 저 멀리까지 달려간 케니스의 말이 작게 들려온다. 한스는 멍하니 그의 가슴께를 작게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별말씀을요.”

       

       

       괜시리 가슴께가 뜨겁고 답답했다. 케니스가 한스의 명치를 찌르며 작은 불씨를 놓고 간 듯했다.

       

       앞으로 불꽃을 보면, 그녀가 생각날 것 같았다. 

       타오르는 불처럼 화려하고 따뜻한 그녀의 눈동자가.

       

       

       

       

       

              * * * *

       

       

       

       

       

       한스의 가슴에 작은 불씨가 심어진 밤이 지나고.

       

       다시 걷고 먹고, 자는 나날이 반복됐다. 처음에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고 겉돌던 한스였지만, 이제는 제법 친하다 싶은 이들도 생겼다.

       

       

       “이제 좀 솔직하게 말해봐. 너랑 용사님이랑 무슨 사이냐?”

       

       “아니, 진짜 아무 사이 아니라니까? 용사님이 검 좀 구경시켜달라고 하신 게 전부야.”

       

       “그걸 지금 믿으라고?”

       

       

       한스의 옆에서 귀찮게 달라붙은 근육질의 털북숭이, 로한.

       

       로한도 이번 출정에서 친해진 사람이었다. 한스보다 머리 한 개 반 정도는 큰 덩치에 온몸에 털이 북실북실한 로한은 계속해서 한스를 추궁했다.

       

       

       “야, 솔직하게 말해봐. 용사님은 너한테 아무 마음이 없어도, 너는 용사님 좋아하지?”

       

       “무! 무, 무슨 헛소리야 이건 또! 아니야!”

       

       

       얼굴이 벌게진 한스가 펄쩍 뛰어오르며 부정했다. 하지만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을 의미하는 법. 로한은 고개를 저었다.

       

       

       “포기해라. 내가 진짜 같은 신성 사도 부대원이니까 말해주는 건데, 용사님은 네가 오르지도 못할 나무야.”

       

       “…애초에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했는데, 자꾸 헛소리야.”

       

       

       잔뜩 삐진 한스가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자, 로한이 따라붙으며 말했다.

       

       

       “야, 야야. 삐졌냐? 삐졌어?”

       

       “안 삐졌어. 저리 가.”

       

       “삐졌네 이거. 사내답지 못하게 그걸로 삐지고 말이야. 쯧쯧, 떼라 그냥.”

       

       “너 진짜 이리 와봐. 잠깐 이리 와.”

       

       

       참다못한 한스가 검 손잡이를 잡고 로한을 부르자, 로한은 덩치에 안 어울리게 부리나케 도망쳤다.

       

       한스는 저 멀리 도망친 로한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 날 이후, 타오르는 불꽃을 보면 생각나는 눈동자가 있었다.

       

       

       ‘정신 차려, 한스. 너랑 용사님은 다른 세계의 사람이야.’

       

       

       애초에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봐서도 안 된다. 신에게 선택받은 용사와 일개 농부인 자신.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다. 

       

       스스로 되뇌며 걷는 한스. 멍하니 걷다 보니, 행렬의 선두에서 누군가 외쳤다.

       

       

       “모두 주목ㅡ!”

       

       

       쩌렁쩌렁한 외침에 퍼뜩 고개를 든 한스. 첫날 한스에게 갑옷과 투구를 입혀준 대머리가 소리치고 있었다.

       

       

       “이제 곧 있으면, 작전 장소에 도착한다! 보는 것처럼 산속에 있는 작은 촌락이니까, 주민들에게 헛짓거리하지 말고! 하다가 걸리면 내가 신의 곁으로 보내주겠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한스는 몰래 귀를 막았다. 어찌나 목청이 큰지, 몸이 울리는 기분이다.

       

       

       “그리고, 신성 로마니안 제국에서도 병력이 온다고 한다! 잠깐이지만 한솥밥 먹을 텐데, 괜히 쌈박질하다가 걸리면!! 그것도 신의 곁으로 보내주마!!”

       

       

       그때 누군가 손을 들고 물었다.

       

       

       “그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면 어떡합니까!”

       

       “그러면 무시해라! 힘없고 작은 짐승일수록 시끄럽게 짖는 거다!”

       

       “신을 모독하면 어떡합니까?”

       

       “그러면 묵사발을 내야지! 신을 모독하는 녀석에게 지면!! 내가 한 번 더 묵사발로 만들어주마!!”

       

       

       열정적인 전달이 끝나고, 행렬은 작은 촌락으로 들어섰다. 조잡한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이고,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제국에서 도망친 역병쥐의 어미가 근처에 자리 잡았다고 추측되는 곳, 지도상에 그 이름조차 없는 작은 촌락.

       

       한스는 작은 촌락에 들어서면서 어쩐지 좋지 못한 예감을 느꼈다.

       

       뭔가,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ㄴㅇ0ㅇㄱ!!! 아닛!! 이게 무슨 일입니까!!!

    – ‘신선우’님!!! 10코인 후원!!! 감사함니다!!! 비축본… 있으면 너무나 좋겠지만…!!! 작가는 현재 라이브로 갈기면서 소설을 쓰는 상황!!! 하루 1편도 간당간당하지만… 비축분 제작…!!! 일단 노력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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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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