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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2

       

       

       

       

       

       82화. 검은 역병 ( 5 )

       

       

       

       

       

       사도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다. 신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으니, 두려울 것이 무엇일까.

       그들의 눈에서는 용맹함이 흘러넘쳤고, 굳게 잡은 무기는 산이라도 가를 듯했다.

       

       그리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들의 앞에는 용사가 있었다.

       고고하게 보랏빛으로 빛나는 신검을 든 케니스는 성벽에 올라서서 어둠을 노려봤다.

       

       

       – “■■■■■■■■!!!”

       

       – “■■■■■■■■!”

       

       

       저 어둠 너머로, 눈에서 붉은 귀기가 흘러내리는 무수한 수의 마물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맹목적으로 산 것의 살점을 탐하고, 피를 갈망한다.

       

       저것들은 존재 자체가 신성에 대한 모독이요, 생명에 대한 배덕이었다.

       이 땅에서 없어져야 마땅할 버러지들.

       

       

       “적이 몰려옵니다! 전방에 활!!”

       

       

       케니스가 크게 외치자, 프리가가 쩌렁쩌렁하게 복창했다.

       

       

       “전방에ㅡ! 활!!”

       

       

       성벽 전체에 울려퍼진 프리가의 외침. 사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활을 겨눴다.

       일제히 당겨진 활시위가 파르르 떨려왔다.

       

       

       ‘조금만 더.’

       

        “■■■■■■■■!!!”

       

       

       괴성과 함께 미친듯이 달려오는 마수들. 이윽고 성벽을 둘러싼 해자에 마수들의 그림자가 비췄을 때.

       

       케니스가 크게 외쳤다.

       

       

       “발사!!”

       

       – “쏴라!!”

       

       – “손이 안 보이게 쏴!”

       

       – “이게 너희 애미한테 들어갔던 화살이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가 그 몸을 퉁기며, 화살을 하늘로 날려 보냈다. 공기를 가르며 쏜살같이 날아간 화살은 피와 살점으로 이루어진 마수를 부드럽게 꿰뚫었다.

       

       

        “■■■■■■■■!”

       

       

       일제히 날아간 화살에 달이 가려지고, 우수수 쓰러져가는 마수들.

       한 번의 사격에 제법 많은 수가 쓰러졌지만, 뒤에서 더 많은 수의 마수가 몰려들며 금방 그 빈자리를 채워버린다.

       

       그림자를 검으로 베어낼 수 없는 것처럼,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튀어나온다.

       

       

        “■■■■■!!!”

       

       “미친…”

       

       

       마수들은 저들 앞에 해자가 있어도 맹목적으로 달려들었다. 첨벙거리는 물소리가 울리며 마수들이 물에 빠져 죽는 소리가 들려왔다.

       

       앞에 서 있는 이가 물에 빠져 죽고, 자신도 물에 빠져 죽는다. 그러면서도 성벽을 향해 다가오며 괴성을 지른다.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광기 어린 집착.

       그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해, 해자가 메꿔졌습니다ㅡ!””

       

       

       쌓이고 쌓인 마수들의 시체로 깊은 해자가 메워졌다. 마수는 동족의 시체를 밟고, 파먹으며 성벽을 향해 달려왔다.

       

       

       “2소대, 3소대!! 기름!!”

       

       

       손가락에서 피가 배어 나올 때까지 화살을 쏘고 있지만, 바다에서 아무리 물을 퍼내도 마르지 않는 것처럼 마수 떼는 건재했다.

       

       어느새 성벽 가까이 다가온 마수들에게 끓는 기름을 붓고, 기어 올라오는 녀석들을 미친 듯이 떨어뜨린다.

       

       

       “녀석들이 올라왔다!! 빨리 움직여!!”

       

       

       그럼에도 아득바득 성벽을 올라온 마수들이 보인다. 프리가는 재빨리 도끼를 휘둘러 거대한 쥐를 반토막 냈다.

       

       점차 성벽 위로 올라오는 쥐의 수가 늘어나고, 전황은 수성전에서 난전의 형태로 바뀌어간다.

       

       

       “…뭔가 이상해요.”

       

       “뭐가?”

       

       “이 쥐들! 흐읍! 제국에서 봤던 그 쥐는 맞는데! 이 정도였나요?”

       

       

       케니스가 달려드는 역병쥐를 반으로 가르며 던진 말. 프리가는 도끼를 크게 휘두르며 동의했다.

       

       

       “맞는! 말이네! 이 정도로! 흣! 미친놈들은 아니었는데!”

       

        “■■■■■!!!”

       

       “이 마을에 뭔! 애미 원수라도 있나!!”

       

       

       거대한 도끼의 궤적을 따라 솟구치는 까만 피. 프리가는 도낏자루를 땅에 쿵ㅡ하고 찍으며 잠시 숨을 골랐다.

       

       제국에서도 떼거리로 몰려다니긴 했지만, 이렇게 죽음도 불사하는 광기를 보이지는 않았다.

       

       

       ‘여기에 뭐 노릴 게 있다고…’

       

       

       속으로 투덜거리던 프리가는 힐끗 성벽 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꺄아악!! 꺄아아악!!”

       

       – “괴물이야!! 우린 모두 죽을 거야!!”

       

       – “마녀!! 전부 마녀 때문이야!! 아아악!!!”

       

       

       구석에 모여서 오들오들 떠는 마을 사람들이 보인다. 죽는 것은 그리 두려우면서, 뭐가 그리 중요한지 품에 감싼 주머니는 놓지 않고 있다.

       

       

       “쯧, 겁쟁이들.”

       

       

       북부에서는 어린아이들도 돌을 던지며 싸웠는데, 라고 생각한 프리가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괜히 기분이 나빠진 프리가는 저 성벽 너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희미한 달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보이고, 지상을 비추는 옅은 달빛.

       

       그리고 달빛을 따라 넘실거리는 역병쥐의 물결이 지평선을 채운다. 마치 거대한 파도가 작은 성벽을 향해 몰려오는 듯하다.

       

       

       “…염병. 밤이 기네.”

       

       

       프리가는 침을 퉤 뱉었다.

       

       아직 밤은 너무나도 길었다.

       

       

       

       

       

              * * * *

       

       

       

       

       

       “씁…”

       

       화면을 지켜보며 초조하게 다리를 떤다. 다리를 덜덜 떨면서 손톱도 잘근잘근 깨물었다. 디펜스라고 해서 무난하게 깰 줄 알았는데, 역시 어림도 없는 걸까.

       

       기지를 향해 웨이브는 미친 듯이 몰려오고, 시간은 너무 많이 남았다.

       

       

       – “동쪽 성벽에 지원 부탁해!!”

       

       – “기름을 부어!!”

       

       – “■■■■■!!!”

       

       

       현장에 있는 것처럼 생생한 사운드와 배경음악. 평소 같았으면 역시 갓겜이라면서 머리가 깨졌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신앙심으로 업그레이드한 해자는 무력화 당한 지 오래고, 어느새 성벽을 중심으로 아슬아슬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화살탑과 여러 방어시설이 열심히 일하며 웨이브를 막아내고 있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조졌는데?”

       

       

       디펜스 게임에서 아슬아슬하게 막아내는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조금이라도 적의 숫자가 늘어나거나 강해진다면 순식간에 뚫릴 것이다.

       

       팽팽한 전선이 유지되고 있으니, 보스 토벌은 꿈도 못 꾸는 상황.

       누구라도 하나를 빼는 순간, 실낱같은 방어선이 무너질 것은 뻔하다.

       

       

       “…상점, 상점에 뭔가 방법이…”

       

       

       쓸 수 있는 스킬도 없으니, 내 손은 자연스럽게 상점으로 향했다. 정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신앙심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건물도 없고, 스킬도 없었으니 말이다.

       

       

       “딱 5개만 사자.”

       

       

       정말 과소비 없이, 딱 필요한 스킬 5개만 살 거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낭비 없이 필요한 것만.

       

       

       “오, 이거 좋아 보이네.”

       

       

       오랜만에 스킬 상점에 들어오니, 꼴에 업데이트를 한 것인지 못 보던 스킬들이 제법 늘어났다. 기상천외하고 신기한 효과를 가진 것부터, 제법 강해 보이는 스킬까지.

       

       

       ㅡ 빠밤!

       

       《신규 레이드 오픈 기념! 디펜스 전장에 특화된 스킬들을 저렴한 가격에 만나보세요!》

       

       

       디펜스 레이드에 특화된 스킬들을 추천하는 메시지. 추천하는 스킬들은 모두 5개. 꼼꼼하게 하나하나 읽어보니, 과연 추천하는 이유가 있다.

       

       모두 디펜스에 특화된 스킬이다. 하나는 아마 탐색 특화인 것 같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 스킬들을 번들로 묶어서 판매하는데, 할인이 제법 들어간다.

       

       

       “30퍼센트 할인? 이건 참을 수 없지.”

       

       

       농담이 아니라, 30퍼센트 할인은 부처님도 못 참는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결제창으로 이동한다.

       

       

       ㅡ 우우웅!

       

        [WEB발신] 카드 49,000원 일시불 승인. 

       

       

       7만 원짜리 묶음을 5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샀으니까, 혜자 아닐까? 이렇게 퍼주면 개발자들은 뭐가 남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개발사의 기둥을 뽑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책상을 바꿔줬거나.”

       

       

       실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멈췄던 화면을 재생시킨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전선. 우선, 쿨타임이 가장 짧은 스킬부터 사용한다.

       

       

       《몰아치는 번개 폭풍! 일정 구역에 번개를 쏟아붓습니다. 낮은 확률로 마비 효과를 부여합니다.》

       

       

       꽈르르릉ㅡ!!!

       콰ㅡ 콰앙!!

       

       

       까맣게 몰려있는 쥐들의 한가운데 떨어지는 번개 폭풍.

       징그러울 정도로 모여있는 까만 무리에 벼락이 떨어지자, 시원하게 죽어 나가며 말끔하게 청소된다.

       

       이유 모를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지는 모습.

       

       

       “크ㅡ 이게 5만 원의 가치지!”

       

       

       이런 혜자팩을 30퍼센트 할인해서 팔았다고?

       진짜 개발자들은 뭐 먹고 살려는 거야?

       

       

       

       

       

              * * * *

       

       

       

       

       

       “후욱, 후우ㅡ”

       

       

       한스는 연신 흐르는 구슬땀을 닦으며 묵묵히 산을 올랐다. 힘에 부치거나 체력의 문제가 아니다.

       

       한스의 긴장이 문제였다.

       

       

       ㅡ바스락!

       

       “흡…!”

       

       

       조심조심 앞을 나아가다가, 수풀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기겁한 한스. 재빨리 자리에 엎드려 숨을 참았다.

       

       

        “키히이익!”

       

       

       수풀을 헤치며 나타난 거대한 쥐. 동시에 한스의 코에 역겨운 시체의 냄새가 났다.

       썩고 부패하여 죽어가는 존재의 향기.

       

       

       ‘제발 그냥 가라… 제발!’

       

       

       한스는 손으로 입을 막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손에 든 롱소드는 덜덜 떨렸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에 등이 축축했다.

       

       

       “키힉, 킥?”

       

       

       쥐는 무언가 이상한지, 연신 킁킁거리며 주변을 탐색했다.

       역겨운 포자가 덜렁거리는 거대한 코가 한스의 바로 옆까지 온다.

       

       

       ‘제발, 제발…!’

       

       

       간절해지는 한스의 기도. 이윽고 역병쥐의 주둥이가 크게 벌어지더니ㅡ

       

       

       “켁!! 케헥!!”

       

       “키히이이익!!”

       

       

       이름 모를 들짐승을 날렵하게 낚아챘다. 역병쥐는 찌꺼기가 가득한 주둥이를 쩝쩝거리며 들짐승의 살을 파먹었다.

       

       그러고는 만족스러운지 천천히 모습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갔나?”

       

       

       한참이 지나고 주변이 조용해지자, 한스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옷에 묻은 흙을 탁탁 털고 있자니, 문뜩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기세등등하게 데이지를 구해오겠다고 말했으면서, 지금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후.”

       

       

       복잡한 감정이 실린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고래를 들어 산의 정상을 바라봤다.

       

       

       ‘여기까지는 데이지 발자국을 따라서 어찌어찌 왔는데.’

       

       

       언젠가 아버지에게 배운 야생동물 추적술을 요긴하게 써먹은 한스.

       옅은 달빛에 의지해 무른 흙에 남은 데이지의 족적을 필사적으로 더듬어 산의 중턱까지 따라왔다.

       

       

       ‘흔적이…’

       

       

       흙이 딱딱해지는 지대에 들어서면서, 더 이상 족적이 남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정말 온 산을 뒤져야 한다.

       

       

       “후ㅡ 일단…”

       

       

       한스는 근처의 나뭇가지를 뚝 부러뜨려 나름의 표시를 만들었다. 이리하지 않으면 금방 길을 잃으리라.

       모두 아버지에게 배운 일상의 소소한 지혜였다.

       

       한스는 숨을 깊게 내쉬며 하늘을 올려봤다. 이제부터는 한스의 운과 속도에 달렸다.

       

       

       ‘부디 신께서 길을 인도해주시길.’

       

       

       하늘을 보며 짧은 기도를 마친 한스.

       이내 발을 옮기려 할 때, 그를 둘러싼 연녹색의 벌레들이 눈에 들어왔다.

       

       반딧불이처럼 은은한 빛을 내며 한스의 주변을 날아다니는 벌레들. 혐오스럽거나 징그럽다는 느낌보다는 신비로운 감정이 앞섰다.

       

       

       ㅡ 부우우웅

       

       

       일제히 대형을 갖춰 어디론가 날아가는 벌레들. 그 모양새는 마치 한스에게 따라오라는 듯했다.

       

       어안이 약간 벙벙해진 한스.

       

       

       ‘그으, 인도해달라고 하기는 했는데… 좀 빠르시네.’

       

       

       기도의 효과가 너무 좋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ㄴㅇ0ㅇㄱ!!! 아닛 이게 무슨 일 입니까!!!

    – ‘신선우’ 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새로운 패키지와 현질요소가 주인공을 기다립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의도적으로 노출시키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스포나 떡밥은 아닙니다!!

    – ‘독서567’ 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다음화는 놀랍게도… 다음화가 올라올 때 나옵니다!!! 그것이 연재니까.(끄덕)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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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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