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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3

       

       

       

       

       

       83화. 앞으로, 한 걸음 ( 1 )

       

       

       

       

       

       일정한 대형을 유지하며 한스를 인도하는 신비한 벌레들. 한스는 홀린 듯 그 뒤를 따라갔다.

       신께서 그를 인도하고자 하시니, 그는 그저 따를 뿐이었다.

       

       

       ㅡ 사박사박

       

       

       희미한 달빛에 의지해 어두운 숲을 헤쳐 나가고, 중간중간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찌르르ㅡ울어온다.

       

       한스를 안내하는 벌레는 점차 풀이 우거지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그를 인도했다. 들짐승도 다니지 않을 정도로 험하고 비탈진 곳으로.

       

       

       “후ㅡ”

       

       

       점차 억세지는 풀과 무성하게 자라나 시야를 가리는 나뭇가지들. 한스는 롱소드를 휘둘러 길을 정리해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 벌레들은 자신을 어디로 인도하는 것일까… 한스는 알 수 없었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녹색으로 빛나는 벌레들의 뒤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멈추지 않고 날아가던 벌레들이 어느 지점을 빙빙 돌더니, 이윽고 공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여기는…”

       

       

       한스는 벌레들이 빙빙 돌던 곳으로 다가갔다.

       

       제법 높은 비탈길이 있는 곳이다. 한스에게는 그리 높다고 볼 수는 없지만, 만약 발을 헛디뎌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크게 다칠 만한 높이다.

       

       조심조심 비탈길을 내려가는 한스. 신비한 벌레들이 자신을 이곳으로 인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스는 주르륵ㅡ하고 미끄러지며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그리고 재빨리 주변을 둘러본다. 

       

       저 나무 아래에 작은 인영이 보인다. 발소리를 죽이고 조심스럽게 다가간 한스.

       

       

       “…! 데이지! 데이지, 괜찮아?”

       

       

       그곳에는 데이지가 있었다. 발을 헛디뎌 구르기라도 했는지, 창백한 얼굴로 색색거리고 있었다.

       

       

       “아… 한스 님. 여기는 어떻게…”

       

       “데이지! 괜찮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아니, 아니지. 잠깐만 기다려.”

       

       

       한스가 조심스럽게 데이지의 몸을 살폈다. 보라색으로 부어오른 발목과 어딘가 부러졌는지 괴상하게 뒤틀린 팔. 

       

       데이지는 고통으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비탈길에서 떨어진 것이 분명하다.

       

       살며시 발목을 만지자 데이지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아윽!”

       

       “저기에서 떨어진 거야?”

       

       “네. 너무 어두워서 앞이 안 보이는 바람에…”

       

       “잠깐만 기다려봐. 힘은 들어가니?”

       

       “으… 윽! 아파요…”

       

       

       재빨리 짐을 뒤지는 한스. 깨끗한 천과 반듯한 나뭇가지를 갈아둔 꼬챙이를 꺼냈다. 머릿속으로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발목이 보라색으로 부은 걸로 봐서는 염좌 같은데… 제법 심하게 부었어.’

       

       

       침착해야 한다.

       한스는 떨리는 손을 애써 다잡으려 노력하며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우선 천을 길게 풀어서 발목 주변이 움직이지 않게 고정한다. 

       행여 데이지가 아플까 매우 신중하게 힘을 조절했다.

       

       

       ‘그리고 팔은…’

       

       

       기괴한 각도로 뒤틀린 팔. 조심스럽게 나뭇가지 두 개로 임시 부목을 만들고, 천으로 칭칭 감쌌다. 그러자 제법 그럴듯한 모양새로 응급조치가 끝난 모습.

       

       한스가 열심히 손을 놀리는 동안, 데이지는 물끄러미 한스를 바라봤다.

       

       

       “한스 님.”

       

       “왜?”

       

       “제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아셨나요?”

       

       “… 신께서 도와주셨어.”

       

       “신께서요?”

       

       

       데이지의 고개가 갸웃했다. 신께서 데이지를 어찌 알고 도와주셨다는 걸까?

       일단 한스가 그렇다고 하니, 데이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안 믿는구나?”

       

       “믿어요. 한스 님이 하신 말이니까.”

       

       “허.”

       

       

       전부터 느꼈지만, 꼬마치고는 제법 노골적으로 제 감정을 보이는 아이다. 정말 어린 아이가 맞는지 의심되는 수준.

       

       우선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끝낸 한스가 데이지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았다.

       

       

       “데이지, 잠깐만.”

       

        “하, 한스 님?!”

       

       “움직이면 떨어져. 가만히 있어.”

       

       

       갑작스레 한스의 품에 안기자 당황한 데이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가볍게 발버둥 치려는 듯하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저, 저 땀 많이 흘려서 냄새날 텐데…”

       

       “응? 아냐, 하나도 안 나.”

       

       

       한스가 데이지의 머리칼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기겁하며 소리를 빽 지르는 데이지.

       

       

       “꺗! 뭐, 뭐하시는 거예요!”

       

       “아니, 진짜 아무 냄새도 안 나. 걱정하지 마.”

       

       “그게 문제가 아니라…!! 휴ㅡ”

       

       

       한숨을 푹 내쉰 데이지는 아무 말 없이 한스의 품에 몸을 맡겼다. 한스는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품에 안긴 데이지의 자세를 바꿨다.

       

       결국 등에 멘 짐가방을 앞으로 메고, 등에 데이지를 업었다. 그리고 천을 이용해 데이지와 자신을 꼼꼼하게 묶은 한스.

       

       등 뒤에서 데이지가 말했다.

       

       

       “… 한스 님. 등이 많이 젖으셨네요.”

       

       “아, 미안. 오면서 땀을 좀 흘렸거든. 많이 찝찝하겠네. 앞으로 바꿔줄까?”

       

       “음. 아니에요. 괜찮네요. 오히려 좋아요.”

       

       

       그렇게 말하며 한스의 등에 고개를 파묻는 데이지. 어쩐지 등에서 느껴지는 숨결이 조금 거세졌지만… 한스는 애써 모른척했다.

       

       

       ‘데이지는 어린애야. 정신 차려 한스! 상대는 성인식도 안 치른 꼬마애라고!’

       

       

       애써 속으로 되뇌던 한스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제 데이지를 구했으니, 서둘러 내려가야 한다.

       

       

       “데이지, 이제 마을로 돌아가자.”

       

       “아…”

       

       

       어쩐지 아쉬운 데이지의 목소리. 한스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잃어버린 꽃팔찌 때문이리라.

       

       

       “데이지. 여기는 너무 위험해. 지금 마을이 어떤지 알고 있어?”

       

       “마을이요?”

       

       “지금 마을에 마수들이 쳐들어왔어. 수가 엄청나. 이 산도 안전하지 않아.”

       

       “그런…”

       

       

       아연해진 데이지의 목소리. 데이지가 충분히 상황을 이해했다고 생각한 한스가 서둘러 발을 옮기려 하자, 데이지가 한스를 막았다.

       

       

       “한스 님, 잠깐만요! 마수가 마을로 쳐들어왔다면…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뭐?”

       

       

       멈칫한 한스의 발걸음. 데이지가 어쩐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제 생각이지만… 그 마수들은 저희 마을 사람들이 불러온 걸지도 몰라요.”

       

       “불러왔다고?”

       

       “네…”

       

       

       한스는 순간 머리가 멈춘 듯했다. 마을 사람들이 마물을 불러왔다고? 그러면, 마을 전체가 이단이라는 소리인가? 데이지도 이 일에 가담한 건가? 그러면 데이지랑 데이지의 어머니는 어떻게 되는 거지?

       

       많은 생각들이 빠르게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그걸 모르는 데이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농작물들이 점차 죽어가는 거였어요. 심어둔 작물부터 나무까지 시들었죠. 그다음에는 산짐승들이 조금씩 적어지고, 우물이 메마르고… 마을 분위기가 뒤숭숭해졌죠.”

       

       

       “…”

       

       “마을에 점차 먹을게 떨어져 갈 때, 그 남자가 나타났어요.”

       

       

       데이지는 말을 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추위나 오한으로 떠는 것이 아닌, 어딘가 소름 끼친다는 기색이었다.

       

       

       “온몸을 보이지 않게 감싼 기분 나쁜 남자는… 저희에게 피를 요구했어요.”

       

       “피를?”

       

       “네. 저희에게 딱 한 방울씩의 피를 달라고 했어요. 그러면 음식과 물, 돈을 주겠다면서요.”

       

       

       수상하다. 너무나 수상하다. 먹을게 없어져 가는 산골 마을에 나타나서 음식을 주면서 피 한 방울을 요구하는 사람?

       당장 근처 교회에 신고해야 마땅하다.

       

       

       “… 그걸 받아들였구나.”

       

       “네. 저랑 저희 엄마를 빼고, 모든 사람이 피를 한 방울씩 줬어요.”

       

       

       데이지는 우울하게 말했다.

       

       

       “저희 엄마가 너무 수상하다면서, 근처 교회에 신고하자고 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음식과 돈을 준 귀인에게 뭐 하는 짓이냐면서 따지면서 욕하고… 저랑 엄마를 노골적으로 괴롭혔어요.”

       

       “미친.”

       

       “남자는 그 후에도 몇 번씩이나 저희 마을에 와서 피를 받아 갔어요. 딱 한 방울씩. 그리고 얼마 전에 피를 뽑은 사람들에게 선물이라면서 보석을 주고는 나타나지 않았죠.”

       

       “…그리고 우리가 온 거구나.”

       

       “네.”

       

       

       한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데이지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마을 사람들 전체가 이단에 엮인 셈이다.

       그들이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이단 심문관이 판단하겠지만, 당장 한스가 생각하기에는 마을 사람들의 죄질이 무겁다.

       

       

       “그리고 그 남자는, 산의 정상에 있는 동굴에 있어요.”

       

       “동굴에?”

       

       “네, 한번은 피를 가지고 뭘 하는지 궁금해서 몰래 뒤를 따라갔거든요. 이 근처에 있는 동굴로 들어가는 걸 봤어요.”

       

       

       데이지가 몰래 미행했다는 말에 한스는 크게 놀랐다.

       

       

       “데이지! 위험하게 왜 그런 짓을 해!”

       

       “…걱정해주시는거에요?”

       

       “당연하지! 안 들켰으니 망정이지, 들켰으면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그런 짓을 한 거야!”

       

       “기쁘네요.”

       

       

       혼을 내는데, 도리어 기분이 좋아지는 데이지. 한스의 등에 볼을 꾹꾹 부빈다. 한스는 더 잔소리하려다가 그만뒀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으니.

       

       그것보다는 데이지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일단 알겠어. 그래도 나한테는 네 안전이 먼저야. 다친 것도 내가 임시로 조치한 거고, 빨리 치료해야 덧나지 않아. 일단 마을로 가자.”

       

       “읏…”

       

       

       한스의 진지한 걱정에 다시금 볼이 발갛게 된 데이지. 등에 얼굴을 묻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을 무언의 긍정이라고 받아들인 한스가 서둘러 마을로 향하려 할 때.

       

       

       ㅡ 부우우웅

       

       

       어디선가 날아온 연둣빛의 벌레들. 한스를 데이지에게 인도했던 신비한 벌레들이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똑같이 대형을 이루어 한스에게 길을 안내했다.

       

       

       “이, 이런…”

       

       

       아연해진 한스의 표정. 연두빛의 벌레들은 그들을 마을로 안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 방향.

       

       산의 정상으로, 그들을 이끌고 있었다. 데이지가 말한 동굴이 있는 곳으로.

       

       

       “한스 님. 신께서는 아직 한스 님이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는 것 같아요.”

       

       

       멍하니 벌레들을 바라보던 데이지가 한스의 귀에 속삭였다. 한스는 고뇌했다.

       

       그에게는 의무가 있다.

       신이 그에게 부여한 사명과 의무.

       

       그리고 자신의 욕심도 있다.

       자신의 등에 업힌 작은 소녀를 안전하게 지키고 싶은 욕심.

       

       갈팡질팡하는 한스의 발걸음. 이윽고 마음을 굳힌 한스가 산에서 내려가려 할 때.

       

       데이지가 한스에게 속삭였다.

       

       

       “동굴로 가세요, 한스 님.”

       

       “데이지?”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잖아요. 저는 짐이 되겠죠.”

       

       “짐이라니! 어떻게 말을ㅡ”

       

       “제가 업혀있으면 제대로 싸우지 못하시겠죠. 전 여기에 두고, 어서 다녀오세요.”

       

       

       팔을 앞으로 뻗어 짐가방을 뒤적거린 데이지는 날카로운 나무 꼬챙이를 몇 개 꺼냈다.

       

       

       “정말 괜찮아요. 저쪽 나무 위에 올려주세요.”

       

       “데이지…”

       

       “여기에 몇 시간 동안 누워있었는데,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 잠깐 다녀오시는 동안,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요. 별 일 없을거에요.”

       

       

       소녀의 단호한 말에 한스는 떨리는 손으로 소녀와 자신을 연결한 천을 풀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소녀를 들어 가장 높은 나무 위에 올렸다. 행여나 떨어질까 몸을 단단히 고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스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데이지를 바라봤다.

       

       

       “데이지, 정말 괜찮겠어?”

       

       “네. 그러니까 얼른 다녀오세요.”

       

       “그래도…”

       

       

       데이지가 피식 웃었다. 자신보다 더 큰 남성이 이리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재밌는 걸까?

       

       

       “어머, 전 해야 할 일도 못 하는 남자는 딱 질색이던데. 한스 님이 그런 건 아니겠죠?”

       

       

       과장된 연기 톤의 말투. 한스의 입술이 삐뚜스름하게 올라갔다. 자신을 안심시키려 하는 걸까.

       

       작지만 어른스러운 아이답다.

       

       

       “하… 정말 금방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한스는 나무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신비한 벌레들을 쫓아 산을 달렸다.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금방 올 거니까.

       

       데이지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빨리 오세요…”

       

       

       옅은 달빛이 소녀의 뺨을 쓰다듬듯 내려앉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쓰고 나니까 신님이 좀 나쁜놈 같네요ㅋㅋ

    ㄴㅇ0ㅇㄱ!!! 아닛!! 이게 무슨 일입니까!!!

    – ‘신선우’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하하!! 저는 잘 모르겠네요!!! 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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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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