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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8

       

       

       

       

       

       88화. 앞으로, 한 걸음 ( 6 )

       

       

       

       

       

       파그작.

       

       

       얇고 단단한 무언가를 꿰뚫는 감각이 검을 통해 느껴졌다. 알과도 같은 껍질을 뚫고, 그 속에 있는 여린 무언가를 찔렀다.

       한스는 롱소드를 통해 느껴지는 촉감으로 확신했다.

       

       

       ‘해냈다.’

       

       

       ㅡ라고.

       

       

       《끄하, 흐아아아악!!! ■■■-!!!》

       

       

       검에 꿰뚫힌 너글이 꼬챙이에 찔린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제 몸을 이루고 있는 벌레처럼, 살아남기 위해 추하게 발버둥 친다.

       그 모습에 한스는 더욱 힘을 주며 검을 깊이 찔러넣었다.

       

       꾸욱하고 힘을 주자 날카로운 검이 여린 무언가를 완전히 꿰뚫는 감촉이 느껴졌다. 

       악마의 몸속 가장 깊은 곳,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악마의 가장 치명적인 무언가를 완전히 파괴했다.

       

       

       《끄흐,  으흐아악ㅡ!!!》

       

       

       너글의 몸이 점차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발밑에 있는 구정물보다 더욱 까맣고 역한 진흙처럼 뚝뚝 녹아내린다.

       벌레들이 진물과 고름으로 변해 떨어지고,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녹아내린다. 여름을 맞이한 눈사람처럼, 신성한 빛 앞에 녹아내려 한 줌의 진물이 되어간다.

       한스는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어느새 몸의 반 이상이 녹아내린 너글이 한스를 보며 말했다.

       

       

       《크흐ㅡ 네, 네놈… 어떻게. 어떻게ㅡ!!》

       

       

       어떻게 자신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걸까.

       거인과 맞서싸운 소년병처럼 터무니없고 무모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승자는 한스였으니.

       

       한스조차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신께서 나의 뒤를 밀어주시고. 앞에서 이끌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악마 따위에게 지겠어.”

       

       

       여섯 번째 신께서 한스를 보우하시고, 한스가 걷는 길을 앞서 걸어간 사람들이 안내해주니, 그는 혼자 싸웠으되 혼자 싸운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감히 악마 따위에게 질 수 있겠는가.

       

       그 말을 들은 너글이 소리쳤다.

       

       

       《어떻게에ㅡ!! 어떻게 ■의 힘을-!! 어째서 ■이 다시!!》

       

       

       “뭐…?”

       

       

       한스는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악마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현명했지만, 이미 거의 다 녹아내려 바닥에 늘어붙은 너글은 더 이상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아아… 원망…스러ㅂ…》

       

       

       

       어느새 한 줌의 독물로 변한 너글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지더니, 이윽고 완전히 사라졌다. 

       한스는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봤다. 마지막에 악마가 하던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그리고 싸우는 동안 흥분해서 자세히 생각할 수 없었지만, 악마가 한 말은 마치…

       

       

       ‘그동안 이 세계에 신이 없었다는 듯한…’

       

       

       저도 모르게 떠오른 불경한 생각해 화들짝 놀란 한스가 제 뺨을 짝ㅡ하고 때렸다.

       이게 무슨 불경한 생각이란 말인가? 지금도 신께서 그를 지켜보고 계심이 분명한데, 한스는 재빨리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전능하신 여섯 신이시여, 제가 감히 악마의 말에 현혹되어 불경한 생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짧은 기도문을 외운 한스는 약간 긴장된 눈으로 천장을 바라봤다. 

       신께서는 참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보고 계시니, 말 하나 행동거지 하나하나 주의해야 함이 분명했다.

       

       다행히 자비로운 신께서는 한스의 불경한 생각을 탓하실 생각이 없으신지, 벼락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ㅡ 반짝

       

       “음?”

       

       

       돌아가기 위해 무거운 몸을 가누며 절뚝거리던 한스는 바닥에서 반짝이는 무언가에 시선을 돌렸다.

       한 줌의 진물로 가득한 곳에 피처럼 붉은 보석이 있었다.

       

       탁하고 어딘가 음산한 기운이 가득한 붉은 보석. 그것의 가운데에는 한스의 검으로 꿰뚫은 흔적이 뚜렷했다.

       아마 저것이 너글의 위신을 이루고 있던 핵심인 듯 했다.

       

       

       “…일단 챙겨두자.”

       

       

       꺼림칙하고 가지고 있으면 저주를 받을 것 같은 보석이지만, 혹시 모르니 챙겨가는 것이 좋으리라.

       한스는 행여나 보석이 손에 닿을까 조심스럽게 천으로 감싸서 주머니에 챙겨넣었다.

       

       그리고 절뚝절뚝 다리를 절며 동굴을 나섰다.

       

       

       “후우ㅡ”

       

       

       동굴을 나서자 맑은 공기가 한스를 반겼다. 청명한 달이 한스를 반기는 듯 비췄다. 

       

       그제야 한스는 모든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악마와 싸웠다.

       그리고 살아 돌아왔다.

       

       

       “…가야지.”

       

       

       한스 자신도 모르는 약속을 맺었다고 주장하는 당돌한 소녀의 곁으로.

       금방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으니.

       

       절뚝절뚝 다리를 절며 나아가는 한스. 

       그 뒤에는 핏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져 그 흔적만을 남겼다.

       

       

       

       

       

              *       *       *       *       *

       

       

       

       

       

       “공녀님ㅡ! 그쪽으로 또 갑니다!”

       

       “알고 있어!”

       

       

       산에 있는 시골 마을, 이제는 작은 성채가 되어버린 곳은 살육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주변의 땅은 모두 마수의 시체요, 쌓은 시체에서 흐르는 피가 작은 강물처럼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끝없이 몰려드는 마수들은 그야말로 자연재해와도 같았다.

       

       

       ‘도대체 언제 이렇게 새끼를 많이…!’

       

       

       케니스는 잠시도 쉬지 않고 연신 뛰어다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제국에서 도망치던 무리 어미가 이곳에 자리 잡은 시간은 길게 잡아봐야 1, 2개월 안팎.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나 많은 새끼를 친다는 것은, 제아무리 이치를 벗어난 마수라고 해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분명 뭔가 개입을 했는데!’

       

       

       이단 숭배자, 혹은 악마. 

       둘 중 하나가 무리 어미에게 개입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비정상적인 번식이 가능할 리 없다.

       

       

       “용사님! 2소대 전투 불가능!! 뒤로 후퇴하겠습니다!!”

       

       “서쪽 성벽에서 지원 요청!! 지원 가능한 부대가 없습니다!!”

       

       “칫… 조금만 더 버티세요!! 제가 가겠습니다!”

       

       

       부대원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끝없이 몰려오는 마수들에 점차 부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부상자는 후방으로 옮겨서 사제들에게 치료를 받고 다시 전선에 투입됐지만, 점차 부상자의 수가 늘어나고 사제들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케니스! 뒤로 물러서! 이대로 있다가는 포위당해!”

       

       “큿…”

       

       

       또 다시 뒤로 물러난다. 벌써 몇 번이나 물러난 것인지 모른다.

       천지를 뒤덮은 벼락 덕분에 숨을 크게 돌릴 수 있었지만, 그 정도가 무색할 정도로 무식하게 수로 몰아붙이는 마수들.

       

       

       “여러분ㅡ! 힘! 내세요!!”

       

       

       성벽 위에서 루엘이 열심히 샛별의 지팡이를 휘둘러 사방으로 빛을 흩뿌렸다. 빛이 몸에 스며들자, 바닥났던 기력이 다시금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야ㅡ! 너 거기 있다가 뒤져!! 뒤로 가, 뒤로!!”

       

       “히엑!!”

       

       

       프리가의 외침에 후다닥 뒤로 물러선 루엘. 잠깐이지만 큰 힘을 주고 갔다.

       

       

       “크아앗!!”

       

       

       저 옆에서는 이스칼이 거대한 방패를 들고 마수를 곤죽으로 만들고 있었다. 

       아직 전투 경험이 부족한 이스칼은 프리가나 케니스처럼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 보다는, 부대원들과 함께 움직이며 안정적으로 마수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느즈막한 밤에 시작된 전투는 어느새 새벽까지 이어졌다.

       

       

       “후, 후우ㅡ”

       

       “야, 괜찮아?”

       

       “아… 괜찮아요. 아직, 아직 할 수 있어요.”

       

       “무리하지마. 저 새끼들, 수가 끝도 없어. 체력 관리를 하라고, 체력 관리.”

       

       

       프리가가 케니스의 옆에 다가와 약간의 걱정을 담은 눈으로 바라봤다.

       

       프리가 그녀도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나마 프리가는 한 곳에서 움직이지 않았으니 견딜만한 수준이였으리라.

       

       하지만 밤새도록 동쪽 성벽과 서쪽 성벽을 오가며 정신없이 뛰어다닌 케니스는 이미 한계에 가까웠다.

       

       몇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검을 휘두르고, 사람을 뒤로 옮기고 뛰어다녔다. 제아무리 용사라고 해도 결국에는 인간.

       체력의 한계는 명확하다.

       

       

       ‘신이시여…!’

       

       

       케니스는 또다시 저 멀리서 몰려오는 마수떼를 바라보며 기도를 올렸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자신은 악마에게 몸을 빼앗겼을 때 죽었어야 했던 몸. 신의 자비로 얻은 목숨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이니까.

       

       다만, 자신이 죽음으로서 그녀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두려웠다.

       신께서 그녀에게 내린 단 한 가지의 사명.

       

       

       ‘악을 멸하고, 선을 보호하라…’

       

       

       그 사명을 다하는 날까지, 마땅히 몸 마쳐 헌신해야함이니.

       그녀는 그 날이 오는 순간까지 헌신하고 봉사해야 함이 마땅했다.

       

       

       “후우ㅡ”

       

       

       깊게 숨을 마시며, 호흡을 정돈한다. 수많은 시체를 썰었음에도 여전히 날카로운 신검을 굳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앞을 바라본다. 

       

       땅을 울리며 달려오는 수 많은 역병쥐.

       눈에서는 뚜렷한 광기가 줄기줄기 흘러내리고, 침을 질질 흘리며 광분하여 달려온다.

       

       

       “흐읍ㅡ!”

       

       

       이윽고 코앞까지 달려온 마수떼들이 케니스를 향해 달려들 때ㅡ

       

       

       ㅡ 촤앙!

       

       

       “읏?”

       

       

       하늘에서 거대한 깃창이 떨어져 마수떼의 앞을 가로막았다.

       깃창에 걸린 깃발은 바람에 펄럭이며 그 위용을 숨김없이 떨쳐보였다.

       

       황금빛의 거대한 깃발이 펄럭이고, 정교하게 수놓아진 황금색의 그림들이 꿈틀거렸다.

       드넓은 초원을 용맹하게 내달리는 말과 전사가 그려진 그림.

       

       깃대의 손잡이에는 신성하고 신비한 글자가 촘촘하게 새겨져 있고, 깃창의 크기는 얼마나 거대한지 케니스가 한참을 올려다봐야 그 끝이 보일 지경이었다.

       

       

       “이, 이건?”

       

       

       잠시 케니스가 멍하지 깃대를 바라보자, 어디선가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이히힝ㅡ!

       

       

       “말 소리…?”

       

       

       제국의 원군인가?ㅡ 라고 생각한 케니스가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지원군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점차 말발굽 소리와 말의 울음소리는 점차 크게 들려왔다.

       

       투그닥 투그닥하며 땅을 울려온다. 하지만 땅이 울리지는 않았다.

       거세게 투레질하는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말이 보이지는 않았다.

       

       갑작스럽고 기묘한 상황에 모두가 멈추어 섰을 때, 하늘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 “싸워라!! 신의 영광을 위해!!”

       

       

       “저, 저건…”

       

       

       하늘에서 수많은 전사들이 말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 말들 하나하나가 천하의 명마요, 전사들의 위세는 가히 신의 군대라고 부르기 충분했으니.

       

       마침내 위대한 신의 전사들이 지상에 도래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ㄴㅇ0ㅇㄱ!!! 아닛 이게 무슨 일입니까!!

    – ‘신선우’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주말 연재는 제가 짬이 나면 틈틈이 써서 올리는 편입니다!!! 할 수 있따! 라고 약속드리기는 어려운 상황이죠!! 한스! 굳세어라!!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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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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