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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0

       

       

       

       

       

       90화. 뒷정리 ( 2 )

       

       

       

       

       

       “한스 님, 괜찮으세요?”

       

       “음… 조금 아프긴 한데, 아직은 걸을만해. 그러는 데이지 너야 말로 괜찮아?”

       

       “저는 괜찮아요.”

       

       

       데이지는 제 몸보다 커다란 한스를 부축하며 비틀비틀 산을 내려갔다. 나름대로 부축한다고 용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한스가 데이지의 어깨에 팔만 걸쳐둔 것이었다.

       

       데이지도 비탈길에서 구르며 다친 발목으로 성치 못한 상황. 그녀도 급조한 나뭇가지로 목발을 짚어가고 있었기에, 부축은 시늉만 낸 셈이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리셨어요. 빨리, 빨리 마을로 가야…”

       

       “윽, 악! 자, 잠깐만. 너무 빨리 걸으니까 상처가…”

       

       

       마음이 급해진 데이지가 한스를 재촉할 때마다 한스는 조금씩 벌어지는 상처로 고통을 호소했다.

       

       한스는 제 허리춤의 검을 내려다봤다. 미친 듯이 맥박치며 피를 뜨겁게 달구고, 온몸에 끝없는 힘을 줬던 용기의 룬은 잠잠했다. 제 할 일은 끝났다는 듯한 모양새.

       

       다시 한번 글자가 힘을 빌려준다면 마을까지 금방 내려가겠지만… 이 글자는 신이 자신에게 내려주신 힘. 글자가 사사로이 그 힘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엇, 저 풀!”

       

       

       데이지가 어디론가 절룩절룩 달려가더니, 맨손으로 흙을 팍팍 파헤쳤다. 손톱 밑에 흙이 잔뜩 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기색이다.

       

       이윽고 조심조심 뿌리를 캐낸 데이지가 한스에게 다가왔다.

       

       

       “한스 님, 이 풀은 살살이 꽃이에요! 상처가 났을 때, 뿌리즙을 바르면 좀 덜 아프다고 했어요.”

       

       

       그러더니 뿌리에 묻은 흙을 대충 털어내고는 그 뿌리를 제 입에 앙 하고 집어넣었다.

       

       

       “어? 아니, 데이지! 그거 더러운 거야! 뱉어 얼른!”

       

       

       한스가 기겁하며 말렸지만, 데이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뿌리를 꼭꼭 씹었다. 그리고는 제 손에 붸 하고 뱉어냈다. 뿌리는 그 형체를 잃어 잔뜩 뭉개져 있었다.

       

       그리고는 한스를 바라보며 태연하게 말했다.

       

       

       “한스 님, 다리 쪽 상처 보여주세요.”

       

       “어? 으, 응?”

       

       “얼른요. 지금 이 속도로는 하루종일 걸려도 마을에 못 가요. 그리고 상처가 곪으면 평생 간다고 했어요. 다리에 흉이라도 지면 어떡해요. 그러니까 얼른 상처 보여주세요.”

       

       

       데이지의 입에서 또박또박 흘러나오는 논리정연한 말들. 한스는 뭐라고 반박하려다가 이내 포기했다. 데이지의 말대로 상처가 곪으면 크게 고생할 테니까.

       

       

       “그래… 그럼 좀 부탁할게.”

       

       “네!”

       

       

       조금은 기쁜 듯한 기색. 한스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기쁜 걸까? 고사리 같은 손이 한스의 정강이로 향했다.

       

       

       “아, 데이지 잠깐…”

       

       “아…”

       

       

       문뜩 한스가 데이지를 말리려 했지만, 데이지가 조금 더 빨랐다. 데이지의 손이 한스의 바지춤을 걷어 올리자 처참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붉고 검은색으로 뭔지 모를 것들과 잔뜩 엉겨 붙은 피딱지와 데이지의 주먹보다 조금 더 크게 난 상처. 그 사이로 하얗게 보이는 뼈.

       심각한 상처였다. 지금까지 이 상처를 입고도 걸어온 한스가 신기할 정도.

       

       데이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하, 한스 니임…”

       

       “어어? 왜 울어 데이지. 울지마 뚝!”

       

       “저, 저 때문에 지금까지 이 상처로오…”

       

       “아니야, 정말 괜찮아서 그랬어. 진짜 걸을만해. 보기에만 이렇지, 그렇게 아프진 않다니까?”

       

       

       한스가 애써 데이지에게 설명했지만, 데이지는 눈에 뻔히 보이는 한스의 거짓말을 믿지 않았다.

       손등으로 눈에 차오른 눈물을 슥슥 닦아낸 데이지.

       

       그러고는 조심조심 으깨낸 즙을 한스의 상처에 바르기 시작했다.

       

       

       “윽!”

       

       “많이 아프세요…?”

       

       “쓰읍ㅡ 조금 따끔하네?”

       

       

       애써 웃어 보이는 한스. 많이 쓰라린지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데이지는 더욱 조심히 상처에 즙을 발랐다. 으깨낸 즙을 모두 바르자, 놀랍게도 다리의 통증이 점차 가시기 시작했다.

       

       데이지의 방법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

       한스는 씩씩하게 걸으며 데이지에게 말했다.

       

       

       “데이지, 이것봐. 이제 진짜 별로 안 아파. 진짜 효과 좋은데?”

       

       “휴… 다행이네요.”

       

       

       조마조마했는지 데이지는 슥 이마를 닦아냈다. 그러고는 다시금 나란히 서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목발로 걸음걸이가 불편한 데이지를 위해 한스는 발걸음을 일부러 천천히 늦추며 데이지의 속도에 맞추어 걸었다.

       

       둘 사이에 많은 대화가 오고 가지는 않았다. 부스럭 거리며 밟히는 나뭇잎 소리와 으직하고 부러지는 나뭇가지 소리 뿐.

       

       그렇게 적막 속에서 걷던 데이지가 문득 한스에게 말했다.

       

       

       “한스 님.”

       

       “어?”

       

       “성도에서는 몇 살이 되면 성인식을 치르나요?”

       

       “성인식?”

       

       

       한스는 곰곰이 떠올렸다. 자신도 성도의 사람은 아니여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 18살 전후였던 걸로 기억했다.

       

       

       “아마 18살인가, 그랬을껄?”

       

       “18살… 18 빼기 내 나이면… 앞으로 7년… 7년이면…”

       

       

       가만히 중얼거리면서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뭔가를 셈하는 데이지.

       한스는 애써 못들은척했다. 데이지는 분명 순수한 호기심으로 성인식을 물어본 것일 거다. 

       

       … 그래야했다.

       

       

       “한스 님.”

       

       “어, 어어?”

       

       “한스 님은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내 나이?”

       

       

       또렷하게 한스를 바라보는 데이지의 눈동자. 어쩐지 한스의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사냥감을 덮치기 직전의 맹수를 보는 듯한 느낌.

       

       한스는 애써 그 느낌을 털어내며 대답했다.

       

       

       “나는 21살인데…”

       

       “21살… 21 더하기 7은… 그러면 그때 내 나이랑 빼면…”

       

       

       계속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숫자를 더하고 빼기를 거듭하는 데이지.

       

       한스는 애써 데이지의 혼잣말을 흘려버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자신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이다.

       

       저 멀리, 작은 산골 마을의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       *       *       *

       

       

       

       

       

       옅은 홍조를 띠며 발갛게 달아오른 두 볼. 케니스는 약간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프리가를 바라봤다. 사람도 아니고, 말을 보면서 저런 눈빛이라니?

       

       케니스는 조심스럽게 프리가에 속삭였다.

       

       

       “그으… 공녀님. 아니죠?”

       

       “와ㅡ 진짜 미쳤다. 저 근육이랑 달리는 자세 좀 봐. 한 번만 타보면 소원이 없겠네… 어? 아, 미안 못 들었어. 뭐라고?”

       

       “아, 아! 아뇨! 아니에요!”

       

       

       멍하니 말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프리가는 케니스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되물었다. 다행히 케니스가 상상한 불경하고 끔찍한 경우는 아닌 듯했다.

       

       다그닥 다그닥하고 천천히 말을 몰며 우서리우스가 다가왔다. 

       

       그 머리 뒤에서 휘광이 반원을 그리며 빛났고, 눈에서는 신성한 빛이 줄기줄기 흘러나왔다. 

       너무나 뚜렷한 성인의 흔적. 

       

       

       “용사님께 영광을.”

       

       “여,여여 여섯 신께 영광을!”

       

       

       케니스가 입을 덜덜 떨며 가까스로 인사했다. 말에서 내렸음에도 성인 남성보다 머리 두 개는 큰 거대한 체구, 얼굴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흉터와 왼쪽 눈을 덮은 손톱 자국.

       길고 무성한 수염과 그가 애용했다는 성스러운 망치까지.

       

       그 모든 것들이, 케니스의 앞에 서 있는 자가 우서리우스라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찌할 줄 모르는 케니스에게 속삭이는 프리가.

       

       

       “야, 근데 이 아저씨는 누군데 바로 알아보는 거야?”

       

       “공녀님! 아저씨라뇨! 만신전에서 가장 위대한 팔라딘으로 꼽히는 우서리우스 팔라딘 님이세요!”

       

       

       케니스는 펄쩍 뛰어오르며 프리가에게 설명했다.

       

       

       “제 1 기도실에서 매일 보셨잖아요! 벽면에 성인분들 초상화 걸려있는 곳, 케넬름 성녀님 바로 다음에 계신 분!”

       

       “음, 그랬나?”

       

       

       성인들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던 프리가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애초에 그녀의 관심사는 시종일관 저 찬란하고 늠름한 군마를 향하고 있었다.

       

       

       “와ㅡ씨. 이거 근육 봐라 이거. 진짜… 와, 말이 안 나오네. 딱 한 번만 타보면 안 되나? 안 되겠지?”

       

       

       프리가는 연신 감탄사를 뱉으며 우서리우스의 말을 힐끔거렸다.

       케니스는 그런 프리가의 반응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들겼다.

       

       

       “공녀님! 지금 저희는 성인을 마주하고 있는 거예요! 팔라딘 역사상 가장 위대했다는 분이라니까요?”

       

       “그러면 뭐.”

       

       

       프리가는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케니스, 너도 성인 아니야? 저 양반은 신 만나봤어? 무기 직접 받아봤어? 아닐꺼아냐. 그러면 나도 성인이고, 저기 이스칼도 성인이네?”

       

       “어? 어…”

       

       

       뜻밖의 말에 당황한 케니스. 

       곰곰이 생각해보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그, 그래도… 톨로레스 협곡에서 300의 악마와 단신으로 맞서 싸운 분이신데…”

       

       

       어쩐지 자신감이 없어진 케니스가 기어가듯 중얼거렸다. 우서리우스는 그 모습을 보며 껄껄 웃었다. 웃음소리도 어찌나 큰지 주변 공기가 쩌렁쩌렁 울리는 듯했다.

       

       

       “아ㅡ하하하! 용사님, 저는 그저 늙고 약해진 늙은이일 뿐입니다. 300의 악마와 싸웠다는 것도 후세에 전해지면서 과장된 무용담일 뿐이지요. 그보다는, 용사님이야말로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깃창을 바닥에 푹 꽂으며 무릎을 꿇는 우서리우스. 그를 따라 뒤에 서 있던 전사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붉은 머리 소녀를 향해, 위대했던 전사들이 경의를 표한다.

       

       

       “신께 사랑받고, 악을 멸하시는 용사님께. 경의를!”

       

       “”경의를!!””

       

       

       일제히 복창하는 말에 주변의 산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케니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서리우스를 바라봤다.

       

       

       “용사님, 가시고자 하는 길은  험난하고 고될 것입니다. 악은 어디에나 이빨을 도사리고 기회를 엿보고 있으며, 선의는 너무나도 미약하고 쉽게 사그라들지요. 타협하고자 하면 더 쉬운 길이 있을 겁니다. 쉴 새 없이 용사님을 유혹할 테지요.”

       

       허나ㅡ

       

       “명심하셔야 합니다. 용사라 함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무엇하나 포기해서는 안 되는 법. 용사님께서 걸으시는 길의 끝에는 저희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찬란한 영광이 있을 것입니다.”

       

       

       우서리우스의 등 뒤로 서서히 여명이 밝아온다. 

       눈부신 태양이 산등성이 너머로 고개를 내밀자, 땅거미가 물러나고 밝은 태양의 시간이 도래한다.

       

       

       “아… 몸이…”

       

       

       햇빛이 영광의 기마대를 비추자 전사들은 하나둘 밝은 별무리가 되어 흩어져나간다. 그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으로 가는 모양새로 별이 되어 저 높은 하늘로 향한다.

       

       우서리우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케니스를 바라봤다.

       

       

       “용사님, 항상 기억하셔야 합니다. 용사님의 곁에는 여섯 번째 신께서 함께하십니다. 그걸 잊지 마십시오.”

       

       

       말을 마친 우서리우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깃창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사도 부대원들을 향해 섰다. 

       

       피투성이의 전사들이다.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웠고, 끝끝내 살아남아 찬란한 승리의 햇살을 마주한 역전의 전사들.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하는 우서리우스.

       

       어느새 태양빛이 우서리우스의 발끝을 비추며 그의 몸이 천천히 빛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영광스러운 신의 전사들아ㅡ!”

       

       

       깃창이 크게 펄럭인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음에도 제 스스로 몸을 펼져보이며 위용을 널리 떨쳐 보인다.

       

       

       “신께서 그대들을 지켜보시니! 기억해라, 전사들이여!”

       

       

       어느새 몸통까지 빛으로 변해 흩어져가는 우서리우스. 그러나 그 기백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욱 거세게 덩치를 키웠다.

       

       

       “명예롭게 살고, 영광을 위해 싸워라!!”

       

       신의 영광을 노래하라ㅡ!

       

       

       우서리우스의 외침은 산을 울리며 거대한 메아리로 돌아왔다. 마치 산 위에서 수백 수천이 일제히 외치는 듯, 공기를 울리며 메아치리고 듣는 이의 가슴을 흔들었다.

       

       이윽고 우서리우스는 거대한 별이 되어 저 높은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어둠이 가시고 찬란한 태양이 제 몸을 비췄다.

       

       작은 산골 마을에 도래한 어둠이 가시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

    (11/30 20:50 긴급 패치!!!)

    히에엑!!! 작가의 실수…!!! 데이지에게 급조한 목발을 전달해 줬습니다!!!

    추가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데이지도 비탈길에서 구르며 다친 발목으로 성치 못한 상황. 그녀도 급조한 나뭇가지로 목발을 짚어가고 있었기에, 부축은 시늉만 낸 셈이다.<<<

    >>>목발로 걸음걸이가 불편한 데이지를 위해 한스는 발걸음을 일부러 천천히 늦추며 데이지의 속도에 맞추어 걸었다.<<<

    ㄴㅇ0ㅇㄱ!! 아닛 이게 무슨 일입니까!!

    – ‘에어프라이’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면적이 적고 노출이 높을수록 고인물은 맞지만… 맞지만!! 성기사는 자고로 풀 플레이트가 ‘간지’라 이 말입니다!!!

    – ‘신선우’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신에게 잘 보이고, 열심히 수련하면 천?국에 갈 수 있읍니다!! 우리 모두 기도해야합니다. 오오, 여섯 신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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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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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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