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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5

       

       

       

       

       

       95화. 두 번째 계시

       

       

       

       

       

       깊고 어두운 곳.

       모독적이며 타락한 것들의 둥지.

       

       꺼지지 않는 불길과 용암이 이글거리고, 영혼이 얼어붙는 한기가 가득하여 시간마저 멈춰버린다.

       숨만 쉬어도 몸이 썩어들어가는 오염된 땅이 있고, 배덕적이고 불경한 생물들이 꿈틀거리며 기어다니는 곳.

       

       그야말로 악마들의 둥지.

       

       그 중, 적지 않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너글의 본신이 눈을 번쩍 떴다.

       

       

       《끄하아아아악!!! 흐아아아!! 흐어, 흐아아!!》

       

       

       온 사방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고통에 찬 비명. 너글의 주변을 기어다니던 이름 모를 벌레 모양의 악마들이 팍하고 터져나갔다.

       

       너글은 제 몸을 이루고 있는 촉수들을 사정없이 꿈틀거리며 주변을 두들겼다.

       두터운 촉수의 끝에서 샛노란 무언가가 뚝뚝 흐르며 닿는 모든 것들을 녹였고, 너글의 커다란 눈은 정신없이 사방으로 흔들렸다.

       

       

       《흐아, 아아아!!! ■!! ■이!! 아아아ㅡ!!》

       

       

       너글의 비통한 괴성 혹은 비명. 그 속에 담긴 감정은 실로 복합적이었다.

       

       경멸, 증오, 분노, 질시… 하지만 너글의 몸을 휘감는 감정은 그보다 더욱 컸다.

       

       두려운, 공포, 불안, 초조, 혼란… 그 모든것들이 너글의 영혼을 뒤흔들며 그를 몰아세웠다.

       

       ■!! 아아, 그 증오스럽고 두려운 이름이여!!

       

       너글은 거대한 눈동자를 부들부들 떨었다.

       

       ■이 돌아오다니!!

       

       한참 동안 제 두려움을 떨쳐내려 발광하던 너글은 긴 시간이 흘러서야 가까스로 진정할 수 있었다.

       

       너글의 주변은 여기저기 잔뜩 파이고 깨지며 한바탕 태풍이 지나간 듯했다. 주변에 있던 악마들이 잔뜩 죽었지만, 너글은 시선조차 주지 않고 중얼거렸다.

       

       

       《도대체 왜 다시 ■이 돌아온 거지? 아니, 그보다 어째서? 어떻게 ■의 힘이 다시!!》

       

       

       너글은 똑똑히 기억했다. 자신의 위신에 대항하던 벌레 같은 인간, 그 몸과 격이 제법 흥미로워 실험체로 삼으려 할 때 인간의 몸에 ■의 힘이 깃들었다.

       

       그 증오스러운 힘은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것이었으니. 틀림없는 ■의 힘이다.

       

       

       《으음…》

       

       

       방심한 틈을 노린 검이 자신의 위신을 파고들며 강제로 추방당했다. 너글은 어쩐지 아릿하게 저려오는 몸을 쓰다듬었다.

       

       너글은 똑똑히 기억한다.

       먼 옛날, ■과 악마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다퉈왔는가! 다만 힘의 차이는 절대적인 것이라, 아무리 어둠이 짙어도 빛 앞에서는 사그라드는 것이 이치.

       

       악마들은 그저 술수를 부리거나 암약하며 야금야금 갉아먹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또다시 어둠 속으로 숨어야 하는가.》

       

       

       오랜 시간 동안 부재했던 ■.

       

       긴 시간 침묵을 깨고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으니, 악마들은 그저 위광이 가실 때까지 어둠 속에서 숨어 살아야 함이니.

       

       

       《씨앗! 씨앗을 거둬야 한다!!》

       

       

       너글은 퍼뜩 자신이 세상에 뿌려둔 씨앗이 떠올랐다. 오랜 시간에 걸쳐 세상에 조금씩 뿌려둔 역병의 씨앗들. 쥐의 형태를 한 역병의 씨앗들이 온 대륙 곳곳에 퍼져있었다.

       

       이미 늦었겠지만, 남은 흔적이라도 최대한 지워야 한다. 마음이 급해진 너글은 황급히 씨앗들에게 흘러가는 힘을 끊어냈다.

       

       우수수 연결이 끊기며 수백 수천의 씨앗들이 죽어가는게 느껴졌다. 너글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이제 너글은 수백 년 동안 쥐 죽은 듯 그의 영역에서 잠을 잘 것이다.

       

       아주 긴 시간이 흐르면, ■도 다시 침묵하리라.

       

       

       《어리석은 동포들…》

       

       

       너글은 다른 악마들에게 ■에 대한 사실을 숨기기로 했다. ■에게 벌레처럼 죽어 나가겠지만, 너글에게는 알 바 아니였다.

       오히려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경쟁자가 줄어들 테니 많이 죽을수록 좋았다.

       

       

       《■… 증오스럽고 끔찍한 이름…》

       

       

       너글의 거대한 눈이 서서히 감겼다. 성채처럼 거대한 몸을 뒤덮는 두터운 갑각이 자라나고, 한 겹 두 겹 너글을 감싼다. 이윽고 수십 겹에 달하는 갑각이 갑옷처럼 너글을 휘감았다.

       

       점차 너글의 의식이 깜빡깜빡 희미해진다.

       본래 악마들은 잠을 자지 않는다.

       너글처럼 의도적으로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면, 먹지도 자지도 않는다.

       

       악마들은 그야말로 영생의 존재요, 불멸의 존재.

       영혼이 멀쩡하면 육신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ㅡ 푸그르르륵!

       

       

       반대로 말하자면, 영혼이 죽으면 무조건 죽는다.

       

       

       ‘물소리?’

       

       

       너글은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물소리에 촉수를 움찔거렸다. 물소리가 들려오다니, 좋지 않은 징조다.

       

       꿈일 리는 없다. 

       꿈은 영혼의 바다 변두리를 헤엄치는 행위. 

       악마는 바다가 원치 않게 나타난 부산물에 가깝다.

       

       그리하여 악마는 꿈을 꾸지 않는다.

       

       

       ㅡ 푸화아아악!!

       

       

       ‘무, 무슨!!’

       

       

       너글은 거친 물소리와 제 머리채를 끄집고 어디론가 잡아당기는 힘에 기겁하며 저항했다. 거대한 힘이 너글의 영혼을 쥐어 잡고 끌어당긴다.

       

       저항은… 할 수 없다. 강대한 힘이 무식하게 그의 영혼을 잡아당겼다.

       

       

       ‘으, 으아아아아!!’

       

       

       너글의 비명은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온몸을 뜯어내는 고통이 너글을 강타했다.

       

       그렇게 얼마나 끌려갔을까, 너글은 가까스로 눈을 떴다.

       

       그리고….

       

       

       《네, 네가 어떻게!!!》

       

       “이제야 잠을 자다니, 독하네요 정말.”

       

       

       붉은 머리의 여인을 볼 수 있었다. 손에는 익숙한 망치를 들고 불처럼 화려한 머리칼을 자랑하는 여인.

       

       그럴 리 없다. 어떻게, 어째서, 왜!

       

       못해도 수백 년 전에 죽은 인간이 어떻게!!

       

       케넬름이 씩 웃으며 너글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망치를 매만지며 너글에게 다가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래도 우리 구면이죠? 또 첫 손님이기도 하니…”

       

       《오, 오지마라!! 오지마아!! 넌, 넌 뭐냐!! 도대체 어떻게!!》

       

       

       너글은 제 몸을 질질 끌며 뒤로 물러났다. 너글의 성채처럼 거대했던 몸은 참으로 작고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강제로 영혼의 바다에 끌려오면서 상당 부분 뜯겨나갔으리라.

       

       

       “우선, 좀 맞고 시작하죠?”

       

       《으아아!! 흐아아아악!!》

       

       

       언제나 고요한 영혼의 바다.

       

       그 한켠에서 너글의 비명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래서!”

       

       퍽!

       

       “너희들 목적이!”

       

       퍼억!

       

       “뭐냐고!!”

       

       퍼어억!!

       

       

       망치로 무언가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 * * * *

       

       

       

       

       

       “대사제님! 성지! 성지 다녀온 이야기 해주세요!”

       

       “나는 케넬름 성녀님 얘기 듣고 싶은데!”

       

       “하하. 성지 이야기는 벌써 몇 번이나 했으니, 오늘은 성녀님에 대해 이야기 해줄까요?”

       

       “네에ㅡ!”

       

       “어이쿠, 대답이 우렁차네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잘 들어보세요.”

       

       

       안토니오는 길게 자란 수염을 쓰다듬으며 오밀조밀 모여앉은 아이들에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시작했다.

       

       성지에서 세 개의 인장을 받은 사도, 안토니오.

       대사제이자 사도인 그의 요즘 일상은 동네 아이들에게 성인들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었다.

       

       집필하던 책을 마무리하니 남는 것이 시간이라. 늙은이의 취미라면 취미인 셈이고, 종교 활동이라면 종교 활동이었다.

       

       천천히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안토니오는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백색 타일이 깔린 광장의 가운데에서는 분수가 솟구치고, 눈 부신 햇살이 내리쬔다. 사이좋은 연인이 정겹게 걸어가고, 열심히 손님을 붙잡는 장사꾼의 목소리가 반갑다.

       

       평화롭고 안락하다.

       

       안토니오는 그 모든 것들을 눈으로 새기며 방긋 웃었다. 이 모든 일상이 은혜롭고, 축복이니. 마땅히 감사할 줄 알아야 함이다.

       

       

       “… 그렇게 해서 케넬름 성녀님은 수 많은 악마를 물리치고 안식의 땅으로 들어가셨답니다.”

       

       “대사제님! 우리 집! 우리 집에 성녀님 그림 있어요! 대사제님한테 보여드릴까요? 그런데 성녀님 얼굴은 없어요…”

       

       “우와, 너네 집에 있는 그림도 얼굴이 없어? 우리 집에 있는 그림도 얼굴 없는데!”

       

       “와아ㅡ! 대사제님, 성녀님은 정말 힘이 엄청 엄청 세요?”

       

       “바보야, 그것도 몰라? 당연히 엄청 힘이 세겠지!”

       

       

       왁자지껄 떠들던 아이들이 투닥거리기 시작한다. 안토니오는 허허롭게 웃으며 아이들을 말렸다.

       

       

       “하하하. 자, 여러분. 싸우면 안 되죠. 여섯 신께서는 항상 여러분을 지켜보고 계시ㅡ”

       

       

       안토니오의 말이 툭 끊겼다.

       

       

       ㅡ 화아악!

       

       

       안토니오의 손등에 새겨진 세 개의 글자. 신께서 그에게 사명과 함께 주신 계시의 글자들.

       

       하나는 케니스의 위험을 예지하며 사라졌고, 두 개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눈부신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단편적인 그림들이 안토니오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까만 바다, 대륙 곳곳에 흩어진 빛. 그 빛들이 서서히 한곳으로 모인다. 그 곳은ㅡ

       

       

       “ㅡ 허윽!”

       

       

       안토니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굽혔다. 이마에서 굵은 땀이 떨어지고, 거친 호흡이 멈추지 않았다. 

       

       

       “대, 대사제님ㅡ!”

       

       “우아앙! 대사제니임! 아프지 마세요오!”

       

       “흐에에엥, 이제 안 싸울게요! 흐끕ㅡ”

       

       

       잔뜩 놀란 아이들이 닭똥 같은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면서 안토니오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오동통한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눈물 콧물로 얼굴이 엉망이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진정한 안토니오는 애써 웃어 보이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 하하. 별 일 아니랍니다. 여섯 신께서 저에게 시키실 일이 있으셨던 모양이에요. 잠시 신을 만나뵙고 왔답니다.”

       

       “우엥ㅡ 대사제님이 벌써 신님 곁으로 가시면 안 돼요. 흐끕!”

       

       “우아앙! 여섯 신님이 대사제님을 부르셨어! 사제님 죽지 마요오!!”

       

       “이런…”

       

       

       역효과였는지 더욱 시끄럽게 울어대는 아이들. 안토니오는 꽤 오랫동안 아이들을 달래서야 만신전에 돌아올 수 있었다.

       

       

       ‘바다와 대륙, 흩어진 빛들이 한곳으로 모인다…’

       

       

       만신전을 가로지르는 안토니오의 걸음이 급하다. 머릿속으로는 그림처럼 스쳐 지나간 짧은 순간들을 쉬지 않고 되뇌였다.

       

       까만 바다와 어디론가 모이는 빛…

       

       저번 계시와는 달리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허나 열쇠는 그 속에 있기 마련. 안토니오는 다급하게 문을 열었다. 

       

       이 모든 것들을 기록해야 한다.

       그는 신과 함께하는 기적의 시대를 살아가고, 그분의 뒤를 따라 걸어가고 있었으니.

       

       마땅히 모든 것을 기록하여 후대에 그 영광을 알릴 의무가 있었다.

       

       다급하게 깃펜을 놀리는 안토니오의 손길. 유려한 필기체가 수놓아진다. 춤추듯 움직이던 깃펜이 우뚝 멈춰선다.

       

       

       ‘바다, 바다… 까만 바다… 분명 저번 데모닉의 보고서에서 봤던 내용인 것 같은데?’

       

       

       신성 로마니안 제국에서 있었던 악몽의 마귀 토벌, 그 후에 데모닉이 정리하여 제출한 보고서.

       그 어딘가에서 ‘바다’ 와 관련된 내용을 본 기억이 문뜩 스쳐 지나간다.

       

       다급하게 문서 더미를 파헤치는 안토니오. 이윽고 원하는 것을 찾았는지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며 그 내용을 훑기 시작한다.

       

       

       “…5호의 증언을 토대로 악마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영혼의 바다로 추측됨. 다만 어디까지나 추측인 만큼, 섣불리 단정할 수 없고 자세한 조사가 필요함…”

       

       

       누군가 이르기를 이계의 바다 혹은 영혼의 고향.

       

       태초의 바다가 안토니오의 계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댓글과 추천은 작가에게 크으은 힘이 됩니다!!

    ㄴㅇ0ㅇㄱ!! 아닛 이게 무슨 일입니까!!

    – ‘신선우’ 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엣? 100화가 가까워지고 있다구요?? 어째서?? 뎃? 난데? 어, 음… 캐릭터 설정집이라… 있기는 한데… 까기 부끄러워용… 차라리 100화 기념으로 표지를 뽑아볼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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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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