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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0

       

       

       

       

       

       100화. 내가 누구냐고? ( 2 )

       

       

       

       

       

       “후-”

       

       

       데모닉은 언짢은 기분을 애써 털어내며 검을 갈무리했다. 감독관의 일을 부탁받은 이후, 수준 이하의 도전자들을 걸러낸 지 벌써 몇 주째.

       

       감독관이라고 해도, 빡빡하게 기준을 두고 평가하지는 않았다. 그가 적당히 힘을 조절한 일검을 받아내거나 피하면 합격이었다.

       물론 그조차도 못하는 어중이떠중이들은 가차 없이 탈락.

       

       나름대로 할 만 한 일이었다. 그렇게 피곤하지도 않았고, 가만히 서서 검만 휘두르면 전부였으니까.

       

       데모닉의 기분이 언짢은 이유는 감독관 일 때문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그의 하나뿐인 딸, 케니스와 관련된 사항이었으니.

       

       

       ‘놈팽이 같은 한스…!’

       

       

       머릿속으로 검은 머리의 한스 얼굴이 지나갔다. 저번 연병장에서 자신과 케니스가 대화하는 중간에 끼어드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산골 마을 파견을 계기로 둘의 사이가 조금 더 가까워진 모양. 오늘 한스와 자주 붙어 다니는 꼬마까지 셋이서 놀러 간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저도 모르게 울컥한 데모닉이었다.

       

       비록 오늘 데모닉이 케니스와 선약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 뭔가 하자고 말을 한 적도 없지만.

       

       그래도 케니스에게 찝쩍거리는 한스를 볼 때마다, 괜스레 속에서 열불이 솟아올랐다.

       

       

       ‘… 우습군. 내가 이렇게 아비 노릇을 할 자격이나 있는지.’

       

       

       이내 데모닉은 자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아비라고 밝힌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나서려 드는지. 스스로의 모습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멀리서 지켜만 봤던 그 긴 세월, 왜 먼저 케니스에게 다가가지 못했나.

       

       왜 케니스에게 자신이 아버지라고 말할 수 없었나.

       

       모두 그 아이를 위해서였지만, 아직까지도 케니스와 이 주제로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어쩌면 그가 의도적으로 피했을지도 모른다.

       

       과연 케니스가 자신을 이해해줄런지…

       

       끝없이 이어지던 데모닉의 상념은 다음 도전자로 인해 끊어졌다.

       

       

       “다음은 내가 도전하지.”

       

       “…일검을 받아내면 합격입니다.”

       

       

       데모닉은 눈을 가늘게 뜨며 도전자를 살펴봤다. 제법 거대한 체구, 얼굴 전체를 가리는 투구와 기묘하게 울리는 목소리.

       손에는 은근히 황금색으로 빛나는 롱소드를 들고 있다. 낡고 해진 로브가 등에서 펄럭이는 걸로 보아하니, 떠돌이 기사나 방랑 전사로 추측됐다.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군.’

       

       

       저런 큰 덩치의 사람은 매우 드물어서 봤다면 분명 기억에 남았을 텐데, 이상한 일이다.

       데모닉은 떠오르는 잡생각을 가라앉히고 자세를 잡았다.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려 좀 신경질적으로 감독에 임했지만, 이제는 사적인 감정을 가라앉혀야 한다.

       

       

       “수직 베기를 하겠습니다. 막거나, 피하면 됩니다.”

       

       “음. 알겠네.”

       

       

       거구의 사내는 검을 빼 들고 마주 겨눴다. 그리고 데모닉의 검이 천천히 올라갔다가, 빠르게 휘둘러진다.

       

       빠르기는 하지만 눈으로 보일 정도의 속도. 위력도 적당히 조절해서 막지 못해도 기절하는 수준에서 끝날 것이다.

       

       데모닉의 검이 허공을 가르며 거구의 사내에게로 향하는 그 찰나의 시간. 데모닉과 같은 강자에게는 그 찰나의 순간을 쪼개고 쪼개서 사용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저건?’

       

       

       검이 휘둘러지는 찰나, 데모닉의 눈은 저 멀리 지나가는 익숙한 붉은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붉은 머리카락은 흔한 편이지만, 저렇게 불타는 것처럼 화려한 붉은 머리카락은 성도에 오직 하나뿐이다.

       

       그의 딸, 케니스.

       

       

       ‘그 옆에는…’

       

       

       꼴 보기 싫은 검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기생오래비 같은 한스가 분명하다.

       

       빠드득-

       

       저도 모르게 이가 갈리며 뿌득하고 살벌한 소리가 울렸다.

       

       자연스럽게 손에 힘이 들어간다. 데모닉의 동공이 아주 작게 축소되며, 오직 한스만을 바라봤다.

       

       저 손! 한스의 손이 꿈틀거리며 케니스의 손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저 추악한 욕망을 가득 실은 손가락이 징그럽게 꿈틀거리며 케니스의 손으로 향하는 것을 보라! 저 모습은 마치, 제 추악한 성욕을 풀고자 안달이 난 짐승의 모습 아닌가!

       

       

       ‘이! 이 기생오래비 같은 놈이!!’

       

       

       까드득-

       

       

       데모닉의 입 안에서는 연신 이 갈리는 소리가 울리고, 관자놀이에 힘줄이 불룩하니 솟아났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전신에 힘이 들어가며, 검은 데모닉의 의도보다 훨씬 빠르고 강하게 휘둘러졌다. 

       

       데모닉은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이, 이런!’

       

       

       다급히 몸에 힘을 줘 검을 제어하려 했지만, 데모닉의 검은 어느새 사내의 지척에 다다랐다.

       

       거구의 사내는 그저 태연하게 데모닉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휘둘러진 검을 알아차리지도 못한 걸까?

       

       그렇다면 사내는 데모닉의 일격에 크게 다칠 것이 분명했다. 

       

       

       ‘큰일…!’

       

       

       데모닉은 팔의 관절이 부러질 정도로 강하게 허리를 뒤틀며 검의 경로를 바꾸고자 하였다.

       

       그렇게 하면 사내는 미약한 상처 정도로 끝날 것이다.

       

       

       “흡!”

       

       

       카아앙-!

       

       

       데모닉이 허리를 뒤틀기 직전, 거구의 사내는 짧은 기합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아래에서 위로.

       

       그를 향해 휘둘러지던 검을 향해, 강하고 정확한 타격으로 받아친 거구의 사내.

       

       데모닉의 검이 손에서 빠져나가 허공을 휘젓다가 툭 하고 떨어졌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받아치기였다. 검에 실린 힘을 정확히 파악하고, 딱 그만큼의 힘을 사용해서 정확한 시점에 휘둘렀다.

       

       

       “허…”

       

       

       데모닉은 저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지금 저 사내는 자신의 일격을 받아친 것인가? 

       

       의도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팔라딘의 전력이 담긴 일격을?

       

       

       ‘굉장한 강자군.’

       

       

       아마 마땅한 변수가 없다면 이 사내는 강력한 우승 후보가 되리라.

       

       거구의 사내는 데모닉에게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손을 슥 내밀었다. 

       

       

       “좋은 일격이었네. 중간에 호흡이 좀 아쉽기는 했지만, 나쁘지 않았어.”

       

       “하.”

       

       

       당돌하고 오만하다. 하지만 그럴만한 실력자다. 도대체 왜 이런 강자가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일까?

       

       데모닉은 피식 웃으며 손을 마주 잡았다. 커다란 손이 데모닉의 손을 한 움큼 감쌌다. 

       

       거칠고 커다란 손. 그리고 가까워진 거리.

       

       데모닉은 사내의 투구에 있는 눈구멍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보았다. 턱없이 좁은 틈이지만, 데모닉은 볼 수 있었다.

       

       사내의 왼쪽 눈이 회색빛으로 가득하다. 

       

       

       ‘거구의 사내, 수상할 정도로 강한 실력자, 왼쪽 눈이 안 보이는 맹인…?’

       

       

       주어진 퍼즐을 맞추자, 얼추 사내의 정체가 보였다. 이 정도면 모르는 것이 이상하리라.

       

       데모닉이 사내를 보며 알겠다는 눈빛으로 씩 웃자, 머뭇거리던 거구의 사내가 데모닉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티 많이 났나?”

       

       “속일 생각은 있으신 겁니까?”

       

       “이런, 나름 감춘다고 무기도 바꾼건데.”

       

       

       곤란하다는 듯 말하던 사내가 다시 데모닉에게 속삭였다.

       

       

       “그으, 토니는 화가 많이 났나?”

       

       

       데모닉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셋뿐인 팔라딘 중에서, 저 혼자 성도에 있지 않습니까. 화를 안 내는 게 이상합니다.”

       

       “끙…”

       

       

       거구의 사내는 조용히 침음을 삼켰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죽기 살기로 정체를 숨겨야 한다.

       

       골치 아프다는 듯 투구를 긁적이는 사내에게 데모닉이 말했다.

       

       

       “설마 진짜 이름을 쓰실 리는 없고 가명을 쓰셨을 테니… 뭐라고 불러드리면 되겠습니까?”

       

       “레온, 레온이라고 부르게.”

       

       “레온…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데모닉이 후읍-하고 숨을 모으더니 크게 소리쳤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들으라는 듯, 아주 크게.

       

       

       “아주 훌륭한 일격이었습니다! 단언컨데, 그대는 지금까지의 도전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자가 틀림없습니다!”

       

       “야, 야!”

       

       

       데모닉의 외침에 사람들의 시선이 레온에게 집중되자 기겁한 레온이 데모닉에게 작게 소리쳤다.

       

       정체를 숨기려면 조용히 참가해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이목을 집중시키다니?

       

       데모닉은 짓궂은 미소를 씩 지어 보였다. 레온은 머리를 망치로 맞은 기분이었다.

       

       사람 같지도 않고 감정도 없어 보였던 데모닉이 지금 자신에게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인가?

       

       

       “뛰어난 실력자여, 그대의 이름은 레온!! 제가 기억하겠습니다. 그대는 지금까지의 도전자 중에서 가장 강한 전사입니다!!”

       

       “…”

       

       “레온!! 그대가 명예로운 결투를 통해 영광스러운 전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레온의 앞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

       

       

       주변 사람들이 레온이라는 이름을 못 들었을까, 거듭 반복해서 말하는 데모닉.

       

       레온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제대로 한 방 먹었다. 

       

       설마 믿었던 데모닉에게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을 줄이야.

       

       감독관이 가장 강한 도전자라고 거듭 강조하며 외치자, 주변에 있는 전사들이 뜨겁게 달아오른 시선으로 레온을 바라봤다.

       

       전사라는 자들은 싸우고 강해지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자들. 감독관이 인정한 가장 강한 전사라고 하니, 호승심이 끓어오르는 것이었다.

       

       

       “후우-”

       

       

       재빨리 로브를 뒤집어쓴 레온은 데모닉을 한 차례 째려봤다.

       

       데모닉은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제가 뭐 틀린 말 했습니까?”

       

       

       레온은 뭐라 반박하려다가, 점차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전사들을 느끼고는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여기에 있다가는 꼼짝없이 대련해야 할 노릇이다. 이목이 집중되면 그의 정체를 알아채는 이도 점차 많아질 터.

       

       

       “어엇! 저쪽에 지나가는 덩치 큰 로브! 저기 가장 강한 도전자다!”

       

       “저 사람이 감독관이 인정한 강자래!”

       

       “감독관의 일격을 손가락으로 잡았다는데?”

       

       “아냐, 내가 듣기로는 고개만 까딱하고서는 ‘느려.’ 이렇게 말했다고 했어.”

       

       “와, 진짜 엄청 강한 사람인가 봐. 이름이 레온이라고 했어.”

       

       

       로브를 뒤집어쓰고 빠르게 대로를 가로지르는 와중에도 레온을 알아본 이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뭔 놈의 소문이 이렇게 빨리 퍼지는 것인지. 방금 그 소란이 있고서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성도 전체가 레온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레온은 어쩐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어느새 100화에 이르렀습니다.

    처음 설레이는 마음으로 1화를 써서 올릴 때에는 10명만 봐줘도 대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100화라니!!

    너무 과분한 관심과 사랑 덕분에 이렇게 올 수 있었던 것이겠죠!! 항상 너무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더 노력하고 재밌는 글을 쓸 수 있는 글쟁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중요 공지>>>

    100를 기념해서 이모티콘을 뽑으려고 합니다! 독자님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공지를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ㄴㅇ0ㅇㄱ!!! 아닛!! 이게 무슨 일입니까!!!

    – ‘크리슴’ 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짧고 강렬한 심정이 담긴 메시지!!! 너무나 뜻깊은 메시지에 저는 그만 주저앉아서 아이처럼 울부짖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눈물이 철철 흘러나오는 감동의 도가니탕!!!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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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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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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