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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1

       

       

       

       

       

       101화. 내가 누구냐고? ( 3 )

       

       

       

       

       

       “천지신명님 한 번만 도와주세요. 진짜 제발.”

       

       

       청명한 달이 휘영청 떠오른 야심한 밤.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냉수를 떠 놓고, 절을 하며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었다. 오늘을 위해 목욕재계를 하여 부정을 씻어냈다. 원래도 하루에 한 번씩 씻지만, 일단 부정을 털어냈다는 기분이 중요한 거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밝은 달과 깨끗한 냉수가 올려진 개다리소반, 그리고 그 위에 놓인 내 스마트폰.

       

       스마트폰의 화면에는 ‘랜덤 무기 제작 레시피’를 띄워놨다. 콜로세움 이벤트의 상품을 위해, 나는 지금 랜덤 무기 레시피에서 C 등급 이상의 무기가 나와야 하는 중대한 뽑기를 앞둔 상황.

       

       여기서 C 등급 이상의 무기가 나오면 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C 등급이 나와도 좋다. C 등급의 아래만 아니면 된다.

       

       

       “제발, 제발 천지신명님, 부처님, 예수님, 알리신이시여… 이렇게까지 하는데 제발 한 번만 저를 도와주세요.”

       

       

       평생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한 건 군대 갔을 때밖에 없다. 진심을 담아 얼마나 기도했을까.

       

       반짝-

       

       밤하늘에서 작은 별이 반짝 빛났다고 느꼈을 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모든 일에는 적합한 때가 있고, 그때는 순식간에 지나가기 마련.

       

       

       “차앗!”

       

       

       검지 손가락을 쭉 펴서 재빨리 화면으로 향한다.

       

       노리는 것은 오직 단 하나, C 등급 이상의 무기 레시피!

       

       먹잇감을 덮치는 사자처럼 손가락을 움직인다. 빠르게, 하지만 단호하게!

       

       정확하게 움직인 손가락은 스마트폰의 레시피 사용을 터치했다. 이윽고 화려한 팡파레 소리가 울리며 레시피가 사용됐음을 알린다.

       

       

       ㅡ 빠밤!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진인사 대천명.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의 선택을 기다린다. 가챠라 함은 결국 하늘의 운에 달린 것. 지금의 나는 어떤 결과가 나와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눈꺼풀이 가볍게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괜히 기대하면 안된다. 사람은 언제나 기대를 하기 때문에 배신을 당하는 거야.

       

       기대를 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조심스럽게 눈을 뜬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늘게 뜬 눈으로 스마트폰이 보인다.

       

       C 등급 무기, 떴냐?

       

       

       “으와…!”

       

       

       화면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B 등급 무기의 레시피.

       

       떠, 떴다!! 떴다고!! 

       

       그걸보자 온몸의 털이 삐쭉 솟아오르며,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기분이 들었다.

       

       무릎으로 기어서 재빨리 스마트폰을 움켜쥔다. 들뜬 눈으로 화면의 아이템 설명을 읽었다. 역시 지성이면 감천이라…고…어?

       

       눈동자가 조금 떨려오는 게 느껴진다. 잘못 읽었나 싶어서 눈을 비비고, 떠 놓았던 냉수를 벌컥벌컥 마신다. 숨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다시 천천히 무기의 설명을 읽는다.

       

       …그래도 변함없이 똑같은 설명, 똑같은 아이템.

       

       

       “이, 이게 뭔…”

       

       

       어이가 없어서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게 느껴진다. 하늘까지 치솟았던 기분이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면 이렇겠구나 싶다.

       

       

       “야이, 씨…! 지금 이게 게임이냐! 이게 게임이야?!”

       

       

       텅 빈방에서 처절한 비명이 울린다. 개발자들은 사람이 아니라 악마가 분명하다.

       

       그들은 인간의 마음을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아이템을 줘! 이런 무기를 어떻게 쓰냐고!

       

       비통한 심정을 애써 추스른다. 거지 같은 무기는 거지 같은 무기인 거고, 상품으로 올리긴 해야 한다. 

       

       떨리는 손으로 ‘찬란한 백금’을 사용해 무기를 만든다. 

       

       

       ㅡ 빠밤!

       

       《최초획득! B 등급, ‘끔찍하게 무거운 워해머’ 획득!》

       

       

       “하…”

       

       

       B 등급 무기인데 뭐? 수식어가 무거워? 헛웃음 밖에 안 나온다. 이제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워해머의 설명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혹시 내가 잘못 읽었을지도 몰라. 그래, 어쩌면 버그 때문에 다른 아이템의 설명이 나왔을지도…

       

       

       《끔찍하게 무거운 워해머 : 보기보다 끔찍할 정도로 무겁다. 외형은 평범한 워해머지만, 그 무게는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 들 수만 있다면 아주 위협적인 무기가 될 것 같다.》

       

       

       변치 않는 설명창. 거칠게 떨려오는 눈동자가 느껴진다.

       

       뭐? 들 수 있으면 위협적인 무기라고? 들 수 있으면?

       그 말은 못 들 수도 있다는 소리 아닌가.

       

       소설에 나오는 물을 무서워하는 닭들이 쓰던 망치야? 묠니르도 아니고, 이게 뭔 개똥 같은 아이템인지 모르겠다.

       

       

       “하- 돌겠네 진짜.”

       

       

       조건형 아이템도 정도껏 납득할 수 있는 정도의 조건이면 이해하겠는데. 무거워서 못 쓸 수도 있다는 조건은 진짜, 하…

       

       한숨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일단 참는다. 떨리는 손으로 ‘끔찍하게 무거운 워해머’를 상품에 등록했다.

       

       워해머는 백금을 기본 베이스로 제작해서인지, 굉장히 밝은 은색을 띠고 있다. 조금 길어 보이는 손잡이와 망치의 머리 부분에는 상대를 돈까스처럼 다질 수 있는 가시가 뾰족하게 솟아있다. 가운데에는 뭔지 모를 표식도 새겨져 있었다.

       

       

       “아! 진짜 개망겜!”

       

       

       한숨을 푹 내쉬며 게임을 종료했다.

       

       망겜이 그렇지 뭐.

       

       

       

       

       

              * * * * *

       

       

       

       

       

       “으하하하! 그거 아주 걸작이구먼 그래!”

       

       “웃지 말게… 난 진짜 심각하니까.”

       

       

       애덤의 우렁찬 웃음소리가 껄껄 울렸다. 어찌나 신이 났는지, 탁자를 탕탕 두들기며 정신없이 웃는다. 눈물을 슥 닦으며 웃던 애덤은 레온을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적당히 놀다가 돌아왔어야지.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렇게 골탕을 먹이겠는가?”

       

       “놀다 온 게 아니라 수행을…! 휴- 됐네.”

       

       “으응? 우리 ‘최강의 도전자’께서 기분이 언짢으신가? 으음? 아하하하하!!”

       

       “후우…”

       

       

       애덤의 굵은 눈썹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레온을 놀렸다. 믿고 있던 후배에게 한 방 단단히 먹은 레온은 그저 참는 수밖에 없었다.

       

       설마 데모닉이 그런식으로 자신을 골탕먹일 줄은 몰랐으니까.

       

       끓어오르는 속을 달래려 술을 벌컥벌컥 들이킨 레온이 어느새 동난 술을 보며 말했다.

       

       

       “애덤, 술 더 없는가?”

       

       “술? 여기 대장간이야 이 양반아. 술이 있겠어?”

       

       “쩝, 그런가?”

       

       

       씨익 입꼬리가 올라가는 애덤.

       

       

       “뒤지게 많지! 아하하하!!”

       

       “역시! 자네는 날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니까! 으하하하!!”

       

       “내가 누구인가? 성도 제일 대장장이! 어?! 드워프의 제자!! 애덤 스미스 아니겠는가!! 아하하하!! 아, 저기 뒤쪽 창고에 가면 오크통 있을거야, 그거 들고 오게. 자네가 마실만큼 적당히 들고오라고.”

       

       “음… 애덤 자네, 많이 취한 것 같은데 자신 있는가?”

       

       

       레온이 애덤을 보며 도발했다. 애덤은 피식 코웃음 쳤다. 지금 이 늙은이가, 자신에게 술로 도발을?

       

       자신이 성지에서 마신 술만 해도 성도를 둘러싸는 해자를 만들 수 있을 거다. 아마 성도에서 자신보다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리.

       

       

       “자네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마셔도 난 끄떡없을 거야. 자네야말로 나이가 있는데 몸을 생각해야지.”

       

       “코찔찔이 애덤이 많이 컸구만? 오늘 내가 기강 한번 잡아주겠네.”

       

       

       패기 넘치는 발언을 한 레온은 뒤쪽에 있는 창고로 향하더니, 이내 묵직한 오크통 5개를 탑처럼 쌓아서 들고 왔다. 실로 놀라운 괴력.

       

       쿠웅-!

       

       레온이 오크통을 내려놓자, 주변의 땅이 가볍게 흔들리는 착각마저 들었다. 레온은 애덤을 보며 씩 웃었다.

       

       

       “지금이라도 패배를 인정하면, 내가 여기 있는 술통을 전부 열지는 않겠네.”

       

       “하! 자네는 내일 있을 숙취나 걱정하게.”

       

       

       둘이 합치면 100은 거뜬히 넘는 노인들의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 이윽고 술이 넘어가며 분위기는 흥겹게 달아올랐다.

       

       그간 쌓인 이야기는 많았고, 둘이 함께 보낸 시간은 더욱 길었기에 술은 끊임없이 넘어갔다.

       

       묵힌 이야기는 길지만, 밤은 짧은 법.

       

       둘은 해가 저물었다가 다시 떠오를 때까지 술을 마셨다.

       

       

       “빌어먹을… 애덤…”

       

       “패배자 녀석. 먼저 자게.”

       

       

       새벽을 알리는 닭이 울기 직전, 레온의 거대한 몸이 스르륵 쓰러지며 둘의 승부는 마침표를 찍었다.

       

       레온은 대장간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깊은 잠에 빠졌다. 긍지 높은 전사도 아닌, 신실한 신도도 아닌. 그저 볼품없는 술꾼의 모습으로.

       

       짜악-!

       

       “일어나!”

       

       

       그렇게 세상모르고 자던 레온은 문득 뺨에서 강렬한 통증을 느끼며 일어났다.

       

       

       짜악-!

       

       어찌나 손이 매운지 얼굴 한쪽이 화끈거린다. 술기운 때문에 무거운 몸을 끙끙거리며 일으키자, 애덤이 그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것이 보였다.

       

       

       “무, 물 좀…”

       

       “물 같은 소리 할 때가 아니야! 자네 축제에 참여한다면서!!”

       

       

       쩍쩍 갈라진 목이 물을 호소한다. 애덤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레온에게 소리쳤다.

       

       

       “지금 축제가 시작했어! 결투의 축제가 시작한다고!!”

       

       “…뭐?”

       

       

       술에 쩔어서 몽롱하던 정신이 번쩍 깨어난다. 레온은 재빨리 몸을 일으키려 노력했다. 전날 마신 술의 여파로 몸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하고, 세상이 빙빙 돈다.

       

       

       “여기, 물 한 잔 마시고 정신 차려.”

       

       

       애덤이 시원한 냉수 한 잔을 건내줬다. 말라붙은 목에 물이 들어가자 그나마 살 것 같다.

       

       

       “정신 차리고! 저기 지금 결투장 보여? 저기 보이냐고!”

       

       “어, 후- 후우- 보여, 보이네.”

       

       “어젯밤에 성화 99개가 모두 타올랐어! 축제가 시작했다는 거야! 만신전에서 모든 도전자를 부르고 있네! ”

       

       

       결투장의 위로 화려한 꽃들이 하늘을 수놓으며 흩날리는 것이 보인다. 거대한 함성이 들려온다. 거리가 제법 있는데도 그 함성이 뚜렷하게 들린다. 

       

       

       “야! 얼른 가야지! 어젯밤에 만신전에서 도전자들한테 전부 모이라고 연락했다니까! 우리만 술 마신다고 못 들었다고!”

       

       “잠깐, 잠깐만 기다리게… 우욱! 우웨엑!”

       

       

       레온은 술기운을 몰아내기 위해 신성력을 움직이려 했지만, 지나칠 정도로 술을 마신 탓에 그 정도로 정밀하게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했다. 

       

       도리어 구역질을 하는 레온을 보며 애덤은 이마를 탁 쳤다. 나이를 헛으로 먹은 이 늙은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뛰기는커녕 걷지도 못하는 레온을 보며 애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이대로 있다가 결투의 장이 열리면, 레온은 결투도 못하고 탈락할지도 모른다.

       

       진짜 업고 가야 하나 고민하던 애덤의 눈에 골목에 놓인 것이 보였다. 조금 낡은 수레다.

       

       

       “저거다!”

       

       

       애덤은 재빨리 수레를 끌고 왔다. 수레의 주인에게는 미안하지만, 나중에 사정을 설명하면 이해해주리라.

       

       끙끙거리며 레온을 수레에 싣고, 애덤은 재빨리 발을 옮겼다. 낡은 수레가 대로를 달리며 덜컹거릴 때마다 뒤에서는 죽는소리가 났지만, 그것까지 신경 써주기에는 너무 늦었다.

       

       덜컹-!

       

       “우욱!”

       

       “조금만 참아 이 친구야!”

       

       

       애덤은 바쁘게 발을 놀리며 저 멀리 보이는 경기장을 향해 달려갔다. 

       

       와아아아-!!

       

       경기장에 가까워질수록, 군중의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들려왔다.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소리치는 듯, 하늘이 울리고 심장이 떨려온다.

       

       

       “도전자들이여ㅡ!! ….니다!! 영광….!!!”

       

       

       사회자를 맡은 사람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아직 늦지는 않은 모양이다. 애덤은 재빨리 수레를 끌며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아치형의 문을 지나 경기장으로 향하자, 저 너머의 밝은 태양이 애덤을 비추며 한순간 경기장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와아아아아-!!

       

       시야를 압도하는 웅장함, 함성, 열기, 흥분.

       

       그 모든 것이 피부에 와닿으며 느껴졌다. 눈에 보이는 모든 이가 소리치며 열광하고 있고, 드넓게 펼쳐진 경기장에는 혈기가 끓는 전사들이 투지를 불태운다.

       

       사회자가 삐걱거리며 수레를 끌고 온 애덤을 발견했다. 마침 도전자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던 걸까, 사회자가 애덤을 향해 말했다.

       

       

       “지금 막 도착한 도전자여, 그대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수레에서 비척비척 일어난 레온이 애덤을 슥 밀고는 비틀비틀 걸어 나갔다.

       

       

       “흐… 내가 누구냐고?”

       

       

       입에서는 술 냄새가 풍기고, 몸은 숙취에 쩔어서 신성력을 쓰지 못할지라도.

       

       그는 전사였다. 

       

       

       “내 이름은 라이언하트ㅡ!! 강인한 사자의 심장이요, 성도 최강의 팔라딘ㅡ!!”

       

       

       늙었다는 것은 그만큼 오랫동안 살아남았다는 것.

       

       살아남는 자가 곧 강자이니.

       

       

       “나에게 도전할 자, 그 누구인가ㅡ!!”

       

       

       가장 노련한 사자가 도전자들을 향해 용맹하게 울부짖었다.

       

       

       

       

       

       

       

       

       

       

       

       

       

       

       

       

       “아이고…”

       

       

       애덤은 술기운에 쩔어서 스스로 정체를 밝혀버린 친구를 보며 이마를 짚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댓글과 추천은 작가를 춤추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ㄴㅇ0ㅇㄱ!!! 아닛 이게 무슨 일입니까!!!

    – ‘신선우’님!! 4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독자님의 댓글 전부 읽었습니다! 몸둘바를 모를 정도로 정성 가득한 장문의 댓글에 저는 그만 주저 앉아서 울뻔했습니다!! 사실 아직도 이 글은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을 위해서라도, 저는 끝까지 글을 써야겠지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사랑!!! 합니다!!! 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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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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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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