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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8

       

       

       

       

       

       108화. 순위전 ( 1 )

       

       

       

       

       

       케니스처럼 외식과 나들이를 하며 휴식을 취하는 이들도 있었고, 누군가는 수행을, 혹은 숙면을 취하며 짧은 휴식을 보냈다.

       

       그리고 해와 달이 차오르고 지는 것을 반복하기를 며칠.

       시간은 화살처럼 빠르게 흘렀다.

       

       결투의 축제. 전사들을 위한 결투의 장.

       

       여섯신의 드높은 이름만큼이나, 그 축제의 위광도 대단히 드높았으니. 모인 전사들은 수천에 달했고, 그들 중에서 감독관의 심사를 통과한 전사들의 수는 고작 818명.

       

       그리고 이어지는 치열한 결투와 혈투, 그리고 투쟁.

       

       명예와 영광.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이기도 한.

       그러한 것들을 위한 싸움.

       

       818명에서 409명으로 그리고 204명, 마침내 99명에 이르기까지.

       결투장에 뿌려진 피와 땀은 감히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99명의 전사들이 결투장에 입장하니.

       

       

       “케니스ㅡ! 케니스ㅡ! 케니스ㅡ!”

       

       “에스텔!! 얼굴 보여줘요ㅡ!!”

       

       “레온 멋있다ㅡ!”

       

       

       관중들은 저마다 응원하는 전사의 이름을 외치며 색색의 꽃을 뿌렸다. 오늘의 축제는 다른 날보다 그 의미가 남다르다.

       

       오늘 결투장에 들어온 전사들의 수는 99명.

       그리고 축제의 시작과 함께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성화도 99개.

       참으로 의미 있고 뜻깊은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성화에 준비된 신물의 숫자와 전사들의 수가 딱 맞아떨어지니, 그들에게는 신물이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음이 나약한 자라면 신물을 받고 축제를 포기했겠지만…

       이들은 치열한 결투를 통해 자신을 증명한 강인한 전사들. 

       축제를 포기하는 자는 없었다.

       

       끝까지 싸우리라.

       모든 것을 걸고.

       

       프리가는 힐끗 고개를 돌려 케니스를 바라봤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지금까지 총 3번의 결투를 치르면서 케니스와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케니스뿐만 아니라 이스칼, 로한, 한스, 레온… 만신전 소속의 사람들끼리는 기가 막히게도 서로 만나지 않았다.

       

       신이 준비한 축제라고 만신전의 편의라도 봐주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던 프리가는 피식 웃었다.

       

       

       ‘설마. 아무리 신이라고 그렇게 소인배 같은 짓을 하겠어?’

       

       

       그저 우연에 불과하리라.

       기가 막힌 우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대기실 구석에서 도끼날을 갈던 프리가. 그녀에게 사제 한 명이 다가왔다.

       

       

       “프리가 님, 이제 다음이 공녀님 차례입니다.”

       

       “어, 알겠어.”

       

       

       프리가는 휘휘 손짓하고는 몸을 일으켜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다리에 착 달라붙는 바지를 몰래 쳐다보는 이도 있었다. 음흉한 시선이 느껴졌다.

       

       착 달라붙어서 다리의 라인을 뽐내는 바지와 얇은 상의, 짧게 자른 짐승 가죽조끼. 성도에서는 볼 수 없는 파격적인 복장이다.

       

       

       ‘여긴 너무 더워…’

       

       

       프리가의 옷은 북부의 전통적인 의상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녀가 나름대로 개조한 것.

       성도의 옷에 비하면 좀 달라붙고 과감한 면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저 정도는 시선은 익숙했다.

       

       프리가는 구태여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도가 지나치면 도끼로 친히 응징하겠지만, 저건 귀여운 수준이다.

       

       약간 어두운 터널을 지나 눈부신 태양이 내리쬐는 결투장으로 향한다.

       묵직한 용 사냥꾼의 도끼가 손에 착 감긴다.

       

       저 멀리서부터 프리가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가! …리가! …프리가!! 프리가! 프리가!!”

       

       

       수천수만의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환호하는 짜릿함이란. 손끝까지 전율이 쩌릿쩌릿하게 흐르는 이 기분은 상당히 자극적이었다.

       

       이스칼이 바보처럼 웃는 이유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후ㅡ”

       

       

       프리가는 조금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려 심호흡을 했다. 명경지수는 싸움에 있어 프리가의 철칙 중 하나.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실상 지켜진 적은 없지만, 일단 그녀가 추구하는 철칙은 그러했다.

       

       그녀의 맞은편에 선 전사를 바라봤다. 작은 체구에 로브로 온몸을 꽁꽁 싸맸고 어깨에는 각궁이, 허리춤에는 단검이 걸려있다.

       

       

       ‘맨발에 나막신?’

       

       

       나무로 만든 나막신을 맨발로 신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걸을 때마다 따각- 따각- 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프리가의 한쪽 눈썹이 까딱 올라갔다.

       

       

       “나막신… 뭐, 좋아. 자신 있나보네?”

       

       “…”

       

       

       프리가의 말에 침묵으로 답하는 상대. 축제의 사회자가 크게 외쳤다.

       

       

       “용 시해자 프리ㅡ가!! 그 상대는 바로ㅡ!! 혜성처럼 등장한 단검술의 달인!! 에스텔ㅡ!!”

       

       

       사회자의 말을 들은 프리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텔? 흔한 이름은 아니네.”

       

       “…”

       

       “단검술의 달인이라던데, 기대되네. 한번 재밌게 싸워보자고.”

       

       “…”

       

       “…야, 사람이 말을 하면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냐.”

       

       “…”

       

       “씹냐? 야, 안 들려?”

       

       

       에스텔은 어떤 대꾸도 반응도 없었다. 일관된 무시에 프리가는 이빨을 빠득 갈았다. 벌써부터 머리에 열이 오르기 시작한다.

       

       

       ‘머리는 차갑게, 머리는 차갑게, 머리는 차갑게…’

       

       

       애써 되뇌인다. 후우ㅡ 심호흡을 하며 침착함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성이 흔들리면 곤란하다.

       

       

       “풋.”

       

       “…허?”

       

       

       에스텔의 로브 아래에서 조그맣게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프리가는 순간 잘못 들었나 하는 표정으로 에스텔을 바라봤다.

       

       

       “옷이…”

       

       “옷? 내 옷이 왜.”

       

       “야만인 같아…”

       

       “뭐? 야, 너 지금 뭐라고 했냐?”

       

       “…”

       

       “야만인? 너 뒤지고 싶어? 어? 이 새끼가, 야만인? 사람한테 야만인?!”

       

       

       순식간에 열이 오른 프리가가 도끼를 들고 날뛰었다. 에스텔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침묵을 지켰다.

       

       

       “너 이 씹새끼, 넌 뒤졌어! 야! 로브 벗어! 로브 벗고 얼굴 까라고! 내가 네 얼굴에 바람구멍 만들어줄게!!”

       

       “프, 프리가 님! 진정하세요! 아직 결투 시작 전입니다!”

       

       “야 이씨!! 말리지마! 말리지 말라고!! 내가 오늘 저 새끼 대가리 반쪽 내버릴라니까!!”

       

       “죽이면 실격입니다!! 프리가 님 제발!”

       

       

       길길이 날뛰는 프리가를 말리기 위해 성기사들이 달려들어 팔다리를 붙잡아야 했다. 실낱같은 이성이 남아서 성기사들에게 도끼를 휘두르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후, 후우… 후우…”

       

       

       필사적으로 말린 끝에 가까스로 발광이 멈춘 프리가. 하지만 그 눈빛은 에스텔을 찢어 죽을 듯했다.

       

       프리가는 그 어떤 말보다 야만인이라는 단어에 민감했다.

       북부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북부는 그녀의 자랑스러운 고향이고 든든한 가족이었으니까.

       

       하지만.

       

       프리가를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북부의 공녀이자 북부를 대표하는 그녀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북부 전체를 야만인 취급하는 것. 

       

       그녀가 야만인이 되면, 북부 전체는 야만인들이 사는 땅이 된다는 뜻이다.

       

       프리가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에스텔은 씩씩 거리며 화를 참는 프리가를 보며 또다시 작게 중얼거렸다.

       

       

       “무식한 야만인.”

       

       “이… 씹…!!”

       

       

       프리가의 이빨이 뿌득ㅡ하는 소리를 내며 갈렸다. 도끼를 잡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속으로 다짐했다. 저 잘난 로브를 찢어발기고, 면상에다가 도끼 자국 두어 개는 남겨주리라.

       

       

       “결투를ㅡ!!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신호와 함께, 프리가는 먹잇감을 덮치는 늑대처럼 달려들었다. 

       

       

       “야이! 호로새끼야!!”

       

       

       걸쭉한 욕과 함께, 용 사냥꾼의 도끼가 에스텔을 덮쳤다.

       

       

       

       

       

              * * * * *

       

       

       

       

       

       “음ㅡ”

       

       

       핸드폰을 보며 고민에 빠진다. 맨바닥에 누워있자니 등이 결려와서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며 뒹굴었다.

       

       매트리스는 세탁방에 맡겨서 없다. 얼마 전 또다시 이상한 오물이 묻어나왔기 때문.

       

       지금 고민하는 것도 그것과 관련이 있다. 한 번은 우연이라지만, 두 번부터는 우연이 아니다. 세 번째는 필시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이상한 검은 오물이 침대를 더럽힌 것이 이번으로 벌써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이유도 모르고 그냥 찝찝하게 넘겼지만, 더는 안된다.

       

       

       “뭐지 진짜…”

       

       

       검은 오물, 이상한 오물, 찐득한 폐기물 등 여러 가지 키워드로 검색해봤지만 쓸만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진짜 혹시나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자는 사이에 대변을 지렸나 의심도 해봤다.

       

       천만다행으로 대변은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아무튼 이 오물의 이유를 찾아내야했다.

       

       

       ‘이건 또 뭐야. 환골탈태?’

       

       

       서칭에 서칭을 거듭하자 무협 용어까지 등장한다. 대충 읽어보니 몸이 더 나은 몸으로 변하는 과정이라는데, 사람이 무슨 뱀도 아니고 껍질 벗는 것처럼 변한다고 한다.

       

       

       ‘뭔 죄다 판타지에 무협 얘기밖에 없어.’

       

       

       결국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찾지 못했다. 두 번의 오물 사태의 공통점이라면… 내가 잠을 잔 사이에 일어났다는 것, 그리고 이상한 꿈을 꾸었다는 것.

       

       

       ‘…게임?’

       

       

       퍼뜩 일어나서 핸드폰을 바라본다. 

       

       첫 번째 오물 사태에는 케니스가 꿈에 나왔다. 두 번째 오물 사태의 꿈에서는 프리가가 나왔다. 

       

       과연 이게 우연일까?

       

       근래에 이상한 꿈을 많이 꾸기는 했다. 자각몽을 꾸는 비율도 부쩍 늘어났고.

       

       미심쩍은 눈으로 핸드폰을 바라본다. 게임과 이상한 오물, 그리고 꿈.

       

       이것들을 억지로 연결하려 하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밖에 나오지 않는다. 손에 들고 있는 퍼즐의 개수가 너무나 적다.

       

       일단은… 일단은 모르겠다.

       

       뭔가 이상하기는 한데, 뭐가 왜 이상한지 알아낼 방법이 없으니. 설마 게임이 내 뇌 속에 멀티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닐 테고.

       

       

       ‘이러다가 게임에 빙의도 하겠네.’

       

       

       피식 웃음이 터졌다. 실없는 생각이다.

       

       우웅ㅡ

       

       핸드폰이 진동한다. 확인해보니 게임의 팝업 알람이 와있었다.

       

       

       《99명의 전사들! 순위전의 시작! 콜로세움의 결투가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상황 : 프리가 VS 에스텔 》

       

       

       넋 놓고 있던 사이에 프리가 순번이 돌아온 모양. 지금까지는 별다른 버프를 주지 않아도 순탄하게 이겼다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재빨리 게임에 접속했다.

       

       웅장한 콜로세움의 전용 UI로 들어가자, 아직 시작하지는 않았는지 도끼를 꺼내든 프리가의 모습이 보였다.

       

       그 상대는…

       

       

       ‘에스텔? 얘는 칭호가 없네?’

       

       

       간혹 칭호가 없는 녀석들도 있기는 했다. 그런 경우에는 엄청나게 쌔거나, 엄청나게 약하거나. 둘 중 하나더라. 강한 쪽은 은둔고수나 그런 컨셉 아닐까 싶다.

       

       

       – “야만인…”

       

       – “뭐? 야만인? 야, 너 ‘삐ㅡ’고 싶어? 어, 이 ‘삐ㅡ’ ‘삐ㅡ’가! 대가리에 ‘삐ㅡ’ ‘삐ㅡ’ ‘삐ㅡ’!!”

       

       

       프리가의 대사 중 절반 이상이 묵음 처리됐다. 아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어우…”

       

       

       저 에스텔이라는 녀석이랑 프리가 사이에 있는 특수 도발 대사 같은 모양인데. 에스텔은 딱 한 마디 했는데 가성비가 너무 좋다.

       

       지금까지의 딜교환은 에스텔의 압승. 한마디의 말로 천 냥 빚도 갚을 모습이다.

       

       그런데 음…

       

       애초에 프리가는 직업부터가 야만 전사인데, 야만인 맞지 않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ㄴㅇ0ㅇㄱ!! 아닛 이게 무슨 일입니까!!

    – ‘신선우’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엘?프?? 에로?프?? 작가도 잘 몰?루… 당??근??

    그나저나 엘프하니까 ‘제로의 사역마’에 나오는 ‘티파니아’가 생각나네요. 제 인생 첫 씹덕물이었는데… 완결났다는 소문에 헤드스핀 돌면서 괴성을 질렀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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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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