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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0

       

       

       

       

       

       110화. 순위전 ( 3 )

       

       

       

       

       

       《모두 싸움을 멈추시오!!》

       

       

       결투장의 외곽을 빼곡하게 둘러싼 성화에서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에는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위엄이 깃들어 있었고, 오랜 세월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스며든 무게감이 있었다.

       

       따각 따각 따각-

       

       성화에서 걸어 나온다. 

       

       

       그것이. 

       

       

       열 번째 성화를 헤치며 세상에 발을 내딛는다.

       

       

       “뭐, 뭐야…?”

       

       

       프리가의 도끼가 가늘게 떨려왔다.

       누군가 갑자기 경기를 중단하라고 외치더니, 성화에서 뭔가 튀어나왔다.

       

       말. 

       온몸이 눈처럼 새하얀 말이다.

       머리에 뿔을 달고 있는 말이 나타났다.

       

       심지어 그 말이, 허공을 밟으면서 내려오고 있었다.

       

       프리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확실하게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따각 따각 따각

       

       허공을 울리는 말 발굽 소리. 그 소리는 참으로 청명하기 그지없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흰 갈기에는 별들이 스며들어 은하수를 이루고, 사뿐하게 허공을 즈려밟는 걸음걸이에는 만인을 우러러보는 위엄이 깃들어있다.

       

       머리에는 일각이 늠름하게 자라나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치고.

       

       맑은 눈동자에는 노회한 현자와도 같은 깊음이 있고.

       

       그 깊고 중후한 목소리에는 듣는 이를 설득시키는 무게감이 있었다.

       

       그것은 말의 형상을 하고 있으되, 영혼을 꿰뚫어보고 탐구하고 판별하는 자이니.

       

       오오, 감히 눈을 마주칠 수가 없음이라.

       

       

       《그대들은 이 싸움을 멈추시오.》

       

       

       성화에서 나온 말이 프리가의 앞에 멈춰 서며 말했다.

       

       저 그윽하고 현묘한 눈동자를 보라.

       말과 눈이 마주친 프리가는 저도 모르게 온몸이 발가벗겨진 채로 구석구석 핥아지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으윽!”

       

       

       소름 끼치는 감각에 몸을 부르르 떤 프리가. 

       닭살이 오돌톨하게 올라온 팔을 쓰다듬으며 애써 말의 눈동자를 피했다.

       

       

       “너, 너는 뭐야…? 아니, 애초에 저쪽 성화에 있던 말이 설마?”

       

       《그렇소, 아름다운 처녀여. 나는 이 축제의 신물로 준비된 몸.》

       

       빛으로 태어났으며 순수와 순결을 사랑하는 성스러운 말, 요정마.

       

       《달리 말하자면 유니콘이라고 할 수 있겠군.》

       

       “유니콘?”

       

       

       프리가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유니콘이라? 

       적어도 그녀는 그런 이름의 말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성화에서 튀어나온 이 유니콘이라는 녀석이 싸움을 멈췄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프리가는 아직 에스텔의 얼굴에 바람구멍을 만들어주지 못했다.

       

       유니콘이라는 녀석이 무척이나 탐이 났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이다.

       자신의 힘으로 10등에 들어서 정당하게 이 말을 손에 넣으면 된다. 프리가는 그럴 자신이 있고, 능력도 있었으니까.

       

       지금 제일 최우선은, 자신을 야만인이라고 모욕한 에스텔의 처벌.

       

       프리가는 유니콘에게 도끼를 겨눴다.

       

       

       “네가 이번 축제의 상품으로 준비된 녀석이라는 건 알겠는데, 이 싸움을 말릴 이유는 없을 텐데? 얌전히 네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 내가 나중에 데리러 갈 테니.”

       

       

       프리가는 날카로운 기세를 흘리며 유니콘을 노려봤다. 그 말을 들은 유니콘은 고개를 저었다.

       

       

       《거칠지만 아름다워. 그대는 마치 가시를 품고 있는 장미와도 같은 처녀군. 그대가 나를 데리러 온다니 무척이나 설레는 일이지만, 아쉽게도 이번에는 물러설 수가 없소.》

       

       “…뭐?”

       

       《나는 그대들의 싸움을 막을 것이오. 그대가 아무리 나를 막아서려 한다고 해도, 나는 이 싸움을 멈출 것이오. 설령 나의 창조주, 위대하고 드높으신 분이라도 나의 뜻을 꺾을 수는 없소!》

       

       

       명백한 거절의 의사. 프리가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신이 주관하는 축제에, 상품으로 준비된 녀석이 신을 거스르면서 이 싸움을 막으려고 한다고?

       

       

       ‘도대체 왜?’

       

       

       이쯤 되자 그 이유가 궁금해진 프리가. 도끼를 내리며 유니콘에게 물었다.

       

       

       “아니, 도대체 왜?”

       

       《이유?》

       

       푸르르르-

       

       

       프리가를 바라보는 유니콘이 거칠게 푸레칠했다. 

       그 모습은 무언가에 흥분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잔뜩 성이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처녀여. 나는 처녀가 너무나 좋소.》

       

       “…허?”

       

       《나는 처녀가 너무나 좋단 말이오. 시골의 아낙네 처녀의 풋풋한 흙내음이 좋소. 서재 종업원 처녀 아가씨의 수줍은 표정이 좋소. 손잡으며 자란 소꿉친구 처녀의 모습이 좋소. 발랑까진 모습이지만 처녀인 것도 좋소. 아, 냉철하고 무뚝뚝한 도시 아가씨가 처녀인 것도 좋지.》

       

       “너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나는 처녀가 너무나도 사랑스럽단 말이오. 아시겠소? 모든 여자들은 처녀일 때 가장 아름다운 법이오. 그 모습은 마치 절벽 위에 위태롭게 피어난 한 떨기의 가냘픈 꽃망울과도 같지.》

       

       “미친새끼…”

       

       《나를 욕해도 좋소. 이해를 바라지는 않으니! 하지만, 이 나에게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사명이 있는 것이오. 바로 온 세상의 처녀들을 수호하고, 순결을 지키는 것!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 처녀인 그대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지켜만 볼 수가 없었소!》

       

       

       프리가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서리고룡과도 싸움에서도, 케니스의 몸에 빙의한 악마와 싸울 때도, 바다처럼 몰려오는 역병쥐들과의 전투에서도. 

       그녀는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이 녀석은 다르다. 지금까지의 적과는 차원이 다른, 이해할 수 없는 광기를 가지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푸르르륵-

       

       유니콘이 거칠게 투레질하며 프리가를 바라봤다.

       

       

       《자아, 처녀여. 이제 나의 숭고한 뜻을 알아주겠소?》

       

       “미쳤어… 넌 미친 새끼야!”

       

       《그렇게 불러도 상관없소. 처녀를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창조주를 거역할 테니!》

       

       

       프리가는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며 주위를 둘러봤다. 관중석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술렁이고 있고, 경기장의 바깥에 있는 성기사들은 어째서인지 오지 않는다.

       이것까지 모두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섣불리 경기장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고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

       

       

       《저들은 올라오지 않을 것이오. 우리가 지금까지 한 대화는 그대와 나. 둘밖에 들리지 않았을 테니, 저들은 상황을 몰라서 섣불리 오지 못하겠지.》

       

       

       한 걸음, 또 한 걸음.

       

       유니콘은 따각따각 발굽을 울리며 서서히 거리를 좁혔다.

       점차 가까워지는 말의 주둥이, 어째서인지 유니콘의 콧김이 점차 거세지고.

        

       프리가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으며 몸을 움츠렸다.

       

       이 미친 신은 도대체 왜 이런 또라이 변태 같은 말을 만들었길래, 자신이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건가!

       

       꽈르르릉-!!

       

       돌연 마른하늘에서 눈부신 벼락이 내리치며 유니콘의 바로 옆을 강타했다.

       종이 한 장, 어쩌면 그보다 더 아슬아슬하게 내려친 벼락.

       

       프리가의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의 강력한 벼락이다.

       

       이히히힝-!

       

       유니콘은 벼락이 떨어진 곳을 힐끔 보더니, 하늘을 향해 거세게 울부짖었다.

       

       

       《위대하고 드높으신 나의 창조주시여! 그대의 지엄한 의지조차 나의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나는 오로지 처녀를 위해 살아가니!! 그대조차 나를 막을 수 없습니다!》

       

       

       프리가의 팔에 매달려서 신음하다가 언제부터인지 기절해서 조용히 누워있는 에스텔.

       유니콘은 쓰러진 에스텔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푸르르륵-

       

       유니콘은 주둥이를 씰룩이며 쓰러진 에스텔의 몸 여기저기를 킁킁거렸다.

       그러더니 히쭉 미소를 지었다.

       

       

       《과연… 내 느낌이 맞았군. 틀림없어.》

       

       “뭐?”

       

       《이 향기, 농후함, 그리고 이 깊이… 최소 백 년 단위의, 아니 그 이상인가? 놀랍군.》

       

       

       쓰러진 사람의 몸 여기저기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면서 중얼거리는 말의 모습이란, 실로 흉하기 그지없는 것이라.

       프리가는 눈썹을 한껏 찌푸리고 바라봤다.

       

       

       “너… 도대체 뭐냐? 아니, 얘가 여자였어?”

       

       《그렇소. 흠, 다른 이들은 몰랐을 수도 있겠군. 제법 단단히 꾸몄으니. 하지만 처녀가 나의 눈을 벗어날 수는 없는 법.》

       

       

       유니콘은 에스텔의 냄새를 한껏 음미하다가 프리가를 바라봤다.

       

       

       《처녀여, 내가 부탁하겠소. 부디 여기 쓰러진 처녀를 용서할 수는 없겠소?》

       

       

       프리가의 눈이 차게 식었다. 그녀는 용서해줄 생각이 없었다.

       에스텔 본인이 무릎을 꿇고 빌어도 해줄까 말까인데, 타인이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녀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안돼. 이 녀석은 나의 가족, 명예, 땅, 형제. 그 모든 것을 모욕했어. 나는 모욕의 대가를 받을 거야.”

       

       《단호하군. 그것이 그대의 뜻이라면… 알겠소.》

       

       

       유니콘은 뒤로 돌아서더니, 쓰러진 에스텔에게로 향했다. 

       그 뒷모습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 프리가가 유니콘에 달려들었다.

       

       

       “야! 너 지금 뭐 하려는 거야!”

       

       《나는 처녀를 수호하오. 처녀인 그대와는 싸울 수 없는 몸. 하지만 나는 처녀를 수호해야 하지. 그러니 나는 이 처녀를 데리고 멀리 떠나겠소.》

       

       “뭐?”

       

       

       에스텔 앞에 천천히 무릎을 꿇는다.

       

       유니콘이 재주좋게 움직이며 쓰러진 에스텔을 자신의 등으로 옮기려 할 때ㅡ

       

       꽈르릉-!! 콰광!! 콰릉!!

       

       하늘에서 무수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마른 하늘에서 쏟아지는 벼락은 유니콘을 향해 쏟아졌다.

       

       

       《끄하아아악!! 흐아아악!!》

       

       

       빛으로 태어난 요정마라고 해도, 신의 벼락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지 유니콘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그러면서도 행여나 쓰러진 에스텔이 벼락에 맞을까 자신의 몸으로 가리는 모습.

       

       

       《위대하신 분이시여!! 어찌하여 저를 막으시나이까!! 그대가 저의 창조주이기 때문에 제가 손길을 허락했던 사실을 잊으셨습니까?! 이 순수한 몸은 오로지 처녀에게만 허락되었지만, 제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참았는데!! 어찌 저에게 이러십니까!!》

       

       

       되려 하늘을 향해 역정을 내는 유니콘.

       

       가만히 그 사태를 관망하던 프리가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저 유니콘은, 자신을 창조해준 신도 처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손도 못 닿게 하려다가 봐줬다는 소리 아닌가?

       

       

       ‘…진짜 미친 새끼인가?’

       

       

       프리가는 유니콘을 타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유니콘을 타면 멋은 있을 것 같지만… 한평생 처녀 딱지 못 떼고 늙어 죽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건 무척이나 곤란하다. 자신은 데릴사위를 들여서 닉스 가문의 후사를 이을 의무가 있는 몸.

       노처녀로 죽는 건 안 된다.

       

       

       콰르릉-!! 콰광!!

       

       

       《끄흐…! 으아아악!! 그만, 그만!!! 알겠습니다!! 위대하신 분이시여, 제가 잘못했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십시오!!》

       

       

       무수한 벼락 찜질을 당하던 유니콘은 이윽고 백기를 들었다. 하늘을 향해 크게 절을 올리는 시늉을 하며 자신이 졌음을 시인한 것.

       유니콘은 발걸음을 돌려 자신이 있던 성화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가면서도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에스텔과 프리가를 바라봤다.

       

       

       《아쉽구려… 장미꽃 같은 처녀여. 부디 그대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겠소.》

       

       

       

       따각따각 소리를 울리며 열 번째 성화로 올라간 유니콘은 이윽고 거대한 성화에 다시 몸이 휘감겼다.

       

       프리가는 폭풍처럼 몰아친 상황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이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어, 어어… 그러니까ㅡ”

       

       

       사회자도 갈피를 못 잡고 어벙하게 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성화에서 갑자기 말이 나타나더니, 쓰러진 도전자를 데려가려다가 벼락을 맞고 다시 성화로 돌아갔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리고 프리가와 말이 무언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는데, 도대체 무슨 내용이란 말인가?

       

       프리가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느끼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쩐지 골치 아파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 도전자는,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엉?”

       

       

       그림자 속에서 소리소문 없이 나타난 5호가 쓰러진 에스텔을 가볍게 품에 안았다.

       바로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기척에 흠칫한 프리가. 저도 모르게 도끼를 휘두를 뻔했다.

       

       

       “어, 아. 그래.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지마. 놀라서 공격할 뻔했잖아.”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공녀님.”

       

       

       5호는 프리가에게 꾸벅 목인사를 하더니, 조용히 결투장의 바깥으로 나갔다.

       

       프리가는 결투장의 바깥에서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성기사들을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하, 씨. 분명 무슨 얘기 했냐고 물어볼 텐데.’

       

       

       사실대로 얘기해주는 건 어렵지 않다. 문제는…

       

       

       ‘처녀에 미친 말이 발정 나서 결투 중간에 난입했고, 그걸 신이 벼락으로 막았다고 얘기해도 믿을까?’

       

       

       자신 같아도 믿지 않으리라.

       아마 신에 대한 믿음이 광신에 다다른 이들이라면, 더욱 안 믿을 것 같았다.

       

       

       ‘적당히 꾸며서 얘기해야겠네.’

       

       

       어떻게 이야기를 꾸며내야 저들이 믿을지, 프리가는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며 거대한 옥좌를 노려봤다.

       신이라는 작자가 피조물 관리도 못 해서 이게 뭐란 말인가?

       

       

       ‘나한테 빚진 거야.’

       

       

       프리가는 여섯 개의 옥좌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과 추천은 작가에게 늘 큰 힘이 됩니다!!

    – ‘신선우’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속성별 활!! 그것도 나름의 로망이 담겨잇죠!! 무형의 화살!! 정령 화살!! 개쩌는 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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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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