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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8

       

       

       

       

       

       118화. 익숙한 손님 ( 1 )

       

       

       

       

       

       

       밤이 드리운 까만 장막은 지평선 너머로 몰려가고, 별들은 무대에서 내려가는 배우처럼 하나둘 제 모습을 감춘다.

       배우들이 떠나간 무대를 채우는 것은 만물을 비추는 태양, 그 찬란한 위광이 하늘을 덮는다.

       

       그리고 다시금 축제의 시간이 시작된다.

       

       신의 이름으로 시작된 축제. 

       그 끝 또한 신의 이름으로 끝나야 할 것이니. 축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싸우고 증명하라. 그대들의 자격을 증명하라!

       

       와아아아ㅡ!

       

       관중들의 터질 듯한 함성이 하늘을 찌른다.

       

       

       “흠.”

       

       

       프리가는 가만히 서서 옥좌를 바라봤다. 거대한 여섯 개의 옥좌.

       손 안에서 작은 숫돌을 빙글빙글 굴리며 눈을 가늘게 뜬다. 어젯밤 도끼날에 갈려 나간 숫돌이다.

       

       

       “흐읏, 짜!”

       

       

       손장난 치던 숫돌을 주머니에 넣으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이번 시련은 프리가의 차례.

       

       지금까지 신이 그녀에게 보여줬던 행보를 생각하면… 도대체 무슨 시련을 줄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공녀님. 괜찮으세요?”

       

       “아무렇지도 않아. 그냥, 음. 시련으로 뭐가 나올지는 조금 궁금하네.”

       

       “뭐가 나오든 공녀님이라면 금방 해치울 수 있을 거예요!”

       

       “하. 그거야 당연한 거지.”

       

       툭ㅡ

       

       “하하! 아가씨라면 어떤 괴물이 나오더라도 손쉽게 해치울 테지!”

       

       “꼴사납게 떨어진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방심은 금물입니다 공녀님.”

       

       

       라이언하트와 한스가 다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프리가를 응원했다.

       

       프리가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힐끗 어깨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멀찍이 떨어져서 눈치만 보는 이스칼이 있었다. 커다란 방패값도 못하고, 멀리서 그녀의 눈치만 보며 전전긍긍하는 꼴이란!

       사내란 놈이 직접 와서 말할 용기도 없단 말인가? 

       

       아무리 봐도 이스칼은 먼저 다가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덩치가 큰 녀석들을 상대할 때는 주로 무게중심을 공략하는 게ㅡ 어? 공녀님?”

       

       후우ㅡ

       

       가볍게 숨을 고른 프리가가 성큼성큼 이스칼에게 다가갔다.

       

       

       “야.”

       

       “어, 어어. 네, 네? 공녀님?”

       

       

       프리가는 이스칼에게 얼굴을 바싹 붙이며 으르렁거렸다. 

       

       두근- 두근-

       

       코 앞까지 다가온 프리가의 얼굴 때문인지, 그녀의 알 수 없는 기백 때문인지.

       이스칼의 심장은 사정없이 쿵쾅거렸다.

       

       

       “너.”

       

       

       프리가의 하얀 손가락이 이스칼의 가슴팍을 쿡 찔렀다.

       

       

       “앞으로 내가 지켜볼 거야. 똑바로 해.”

       

       “예, 예?! 알겠슙! 쓰읍… 알겠습니다!”

       

       “내가 보이면 어? 멀리서도 퍼뜩 뛰어와서 네가 알아서 내 옆에 딱 서고! 그러란 말이야!”

       

       “예엡! 알겠습니다!”

       

       “어디 가서 막 쫄거나 그런 모습 보이면 진짜 내 손에 뒤지는 거야 알겠어? 처신 잘하라고.”

       

       

       뭐를 지켜보고 뭐를 똑바로 하겠다는 건지. 말을 한 프리가도 모르고, 그걸 들은 이스칼도 모르고, 지켜보는 사람들도 몰랐다.

       

       딱 한 명.

       

       

       “청춘이로고.”

       

       

       늙은 팔라딘은 팔짱을 끼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 * * * *

       

       

       

       솨아아ㅡ

       

       황량할 정도로 넓은 결투장, 그 한가운데 프리가가 서 있다.

       

       결투장의 메마른 모래를 머금은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프리가는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칼을 느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앞선 도전자 중에서 시련을 통과한 사람은 오직 하나.

       

       이스칼.

       

       이스칼과 앞선 도전자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물러서지 않고 싸웠다. 죽음도 불사하고 치열하게.’

       

       

       한스 또한 물러서지 않고 용맹하게 싸웠지만, 경험의 부족으로 아쉽게 패배한 경우였다.

       

       대충 알 것 같다.

       

       신이 이 결투장을 통해 무엇을 보고자 하였고, 그들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하! 웃기네 진짜.”

       

       

       결투장 한 가운데에 서있자니 거대한 옥좌들이 그녀를 내려다보는 모양새였다. 프리가는 옥좌들을 보며 픽 웃었다.

       

       전사의 용맹함과 전투에서 물러서지는 않는 것.

       

       그것들은 북부인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기본적이 소양이었다. 세 살배기 갓난아기도 언 수프를 들고 마수 대가리를 깨는 곳이 북부인데, 감히 북부의 공녀에게 용맹함을 시험하려 해?

       

       그 어떤 괴수를 보내와도 보란 듯이 토막 내고 신의 면전에다가 외치리라.

       

       이게 전부냐고. 겨우 이것들이 시련이냐고.

       

       … 그리고 가능하다면 주먹질도 한번 해주고.

       

       쿠구구구ㅡ

       

       결투장의 땅이 가볍게 흔들리며, 시련의 시작을 알렸다.

       

       프리가의 검은 눈이 낮게 가라앉으며 사방을 둘러본다. 용 사냥꾼의 도끼가 시퍼런 날을 뽐내며 피를 갈망하는 듯했다.

       

       굳세게 움켜쥔 도끼, 전의로 이글거리는 눈빛. 프리가는 그 어떤 괴물이 달려들어도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사아아아ㅡ

       

       싸늘한 한기가 결투장에 내려앉았다. 수분이 얼어붙으며 서리가 되어 내려앉고, 한낮의 태양이 무색하게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쩌적 쩌저적-

       

       “얼음이…?”

       

       

       발밑으로 얼음이 기어 다니며 제 영역을 넓히고, 점차 냉기가 강해지며 뼛속까지 파고든다. 이윽고 바닥이 두껍게 얼어붙기 시작한다.

       

       두근- 두근-

       

       온다.

       오고 있다.

       

       프리가의 짐승과도 같은 직감이 경고하고, 용 사냥꾼의 도끼가 외쳤다.

       

       준비하라 준비하라!

       그대의 적이 도래한다!

       

       쩌저적ㅡ

       

       발 밑의 두꺼운 얼음이 쩍쩍 갈라진다.

       

       프리가는 문득 기시감을 느꼈다. 이 풍경, 이 상황… 왜인지 조금 익숙했다.

       

       

       ‘이거 어디서 봤는데?’

       

       쩌적ㅡ!

       

       두터운 뿔이 얼음을 뚫고 솟아난다. 땅을 긁으며 올라오는 거대한 뼈의 발톱. 맹렬하게 뿜어져나오는 냉기(冷氣).

       

       

       “하! 진짜 이러기야?”

       

       

       익숙함의 이유를 깨달은 프리가는 헛웃음를 터뜨렸다. 역시 신이라는 작자는 밴댕이 소갈딱지가 분명하다.

       

       뒤에서 호박씨 좀 깠다고 그녀에게 이러는 걸 보면 틀림없는 좀생이다. 아마 세상 제일 가는 소인배일 것이다.

       

       

       ——————…

       

       

       낮은 울음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흐르며 바닥을 긴다.

       

       푸른 안광이 줄기줄기 흘러내리고, 뼈로 된 몸통에서 짙은 냉기(冷氣)가 흘러내린다. 가슴뼈에는 큰 선이 하나 그어져있다. 

       

       프리가의 이명인 용 사냥꾼.

       그녀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냥감, 서리고룡.

       

       

       ——————!!!

       

       

       서리고룡이 죽음의 바다를 건너와 다시 한번. 프리가를 향해 울부짖었다.

       

       우우웅-

       

       사냥감을 알아챈걸까, 용 사냥꾼의 도끼가 빛을 내뿜으며 몸을 떨어댔다. 마치 당장이라도 용의 머리를 깨부수고 싶어 안달이 난 듯 했다.

       

       

       ‘저건 뭐지?’

       

       

       찬찬히 서리고룡을 살피던 프리가는 눈썹을 찌푸렸다.

       

       분명 전에는 없었던 기묘한 문양들이 고룡의 온몸에 그려져 있었다. 문양은 스스로 춤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꿈틀거리는 눈동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얼핏보면 몸을 속박한 사슬과도 비슷했다.

       

       

       ‘…뭐. 일단 한 대 후려갈겨 보면 알겠지.’

       

       

       프리가는 씩 입꼬리를 올렸다. 신이라는 작자가 그녀에게 엿이나 먹어보라고 서리고룡을 불러낸 모양인데…

       

       타탓-!

       

       “이미 한 번! 잡아봤다고!!”

       

       

       땅을 박차며 재빨리 고룡의 품으로 뛰어든다. 뛰어난 사냥꾼은 사냥감을 기억해두는 법. 서리고룡의 대처법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를 너무 얕봤다. 보란 듯이 해치우고 그녀의 용맹을 증명하리라.

       

       부웅-!

       

       용 사냥꾼의 도끼로 서리고룡의 다리뼈를 쪼갤 듯 내리쳤고ㅡ

       

       

       “으읏!”

       

       우뚝.

       

       서리고룡에게 닿기 직전에 멈췄다.

       

       도끼가 파르르 몸을 떨며 진동했다. 도끼를 쥔 프리가의 손이 거칠게 떨리고, 확장된 동공은 고룡의 몸에 새겨진 문양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프리가는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뒤로 물러났다. 서늘한 한기에도 불구하고, 잠깐 사이에 식은땀을 한가득 흘렸다.

       

       

       “시, 시발 진짜…”

       

       

       식은땀을 닦으며 옥좌를 노려보는 프리가. 험한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다. 이딴 식으로 나오긴가? 정말로?

       

       ——————…!!

       

       서리고룡이 프리가를 보며 켈켈 웃는 모양새를 취했다. 마치 그녀의 상황을 아는 듯, 한껏 비웃는 자세를 취한다.

       

       빠득-

       

       관자놀이에 핏줄이 뿌득하고 올라오고, 이가 갈린다. 그럼에도 섣불리 뛰어들 수가 없었다.

       

       – 프리가… 내 아기…

       

       – 공녀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고룡의 몸에 새겨진 저 문양이, 그녀에게 환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주 엿같은 환상을.

       

       

       

       

       

              * * * * *

       

       

       

       

       

       슥- 스슥-

       

       시련 리스트를 내리며 그 종류들을 빠르게 훑는다. 이번 차례는 프리가. 꽤 높은 순위로 올라가야 하는 만큼, 적당히 쉬운 시련을 줄 생각이다.

       

       

       ‘야만전사한테 쉬운 게 뭐가 있을까.’

       

       

       호전적이고 파괴적인 이미지의 야만전사. 그리고 지금까지 살펴본 프리가의 전투 스타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도끼로 부수고 개박살 낸다.

       

       

       ‘그러면 잡몹 웨이브가 몰려오는 걸로? 아냐, 그러다가 저번처럼 스킬도 못 쓰면 큰일 나지.’

       

       

       아무래도 잡몹 웨이브가 제일 쉬울 것 같지만, 저번 이스칼의 경우도 있으니 신중을 가한다. 아무리 쉽다고 해도 내가 스킬을 못 쓰는 건 좀 불안하다.

       

       슥- 슥-

       

       계속해서 리스트를 내린다. 내리다가 문득 눈길이 가는 이름을 발견했다.

       

       

       《손님의 시련 : 선한 자는 오지 않고, 오는 사람은 선하지 않은 법. 이제 손님을 맞이할 시간입니다.》

       

       

       “손님…?”

       

       

       알쏭달쏭 수수께끼 같은 이름의 시련. 다른 것들은 직관적으로 바위의 시련, 뱀의 시련 이런 식이었는데.

       

       조금 더 자세한 정보를 보려고 무의식적으로 한번 터치했는데ㅡ

       

       

       《손님의 시련… 도전자는! 프리가!》

       

       “어! 아니 잠깐!! 확인도 안 하고 바로 시작하면!!”

       

       

       이거 고르는 거 맞냐고 확인 메시지도 없이 바로 시작해 버렸다. 화면 이곳저곳을 두들겨 보지만, 이미 시작한 시련은 멈추지 않는다. 자동 저장이라 게임을 강제로 꺼도 복구가 안된다.

       

       

       “에이씨 진짜…”

       

       

       속에서 올라오는 분을 다스리고 애써 침착함을 유지한다. 별 거 없을 거다. 손님의 시련… 이름만 보면 손님이 온다는데 별 일 없이 쉬운 시련일 거다.

       

       망겜 진짜. 어떻게 확인 메시지 하나를 안 띄워주고 바로 시작할 수가 있지?

       

       – 쩌적! 쩌저적ㅡ!

       

       콜로세움의 바닥을 뒤덮는 얼음이 퍼져나간다. 이윽고 결투장이 두꺼운 얼음으로 가득 차고, 쩍쩍 갈라지면서 그 틈으로 커다란 뿔이 솟구친다.

       

       그리고… 익숙한 뼈 발톱이 땅을 쥐여 잡고 거대한 몸체를 끌어올린다.

       

       

       “어…? 아?”

       

       

       입에서 멍청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저 뼈… 땅을 부수고 나타나는 등장… 낯익은 손님…

       

       아니다. 아닐 거다. 아니여야 한다.

       

       심장이 거세게 뛰고, 식은땀이 흐르며 손 끝이 가볍게 떨리는 게 느껴진다. 숨도 조금 가빠지는 것 같다.

       

       

       “에이, 아니야. 아니지. 그지? 아니지? 진짜 제발… 이건 아니지…”

       

       

       현실을 부정한다. 그럴 리 없다. 손님이라면서, 요즘은 이딴 것도 손님이라고 불러준단 말인가? 이게 현실일리 없다.

       

       내가 헷갈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어본다. 

       

       

       《——————!!》

       

       

       미약한 기대를 박살내는 괴성. 입에서 육두문자가 나오기 일보 직전이다.

       

       푸른 안광을 흘리는 눈, 뼈로 된 몸통, 넝마투성이의 날개.

       

       1 스테이지 보스이자 뉴비 절단기인 서리고룡이다.

       

       

       “아, 진짜… 하…”

       

       

       좋지 못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평타에 붙어있는 스턴, 심심하면 날리던 광범위 브레스, 2페이즈로 들어가면 공중 패턴 추가에 짱짱한 체력까지.

       

       악질 중의 악질 보스 서리고룡이 다시 돌아왔다. 그것도 프리가의 시련으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지, 지금 나를 돈으로 사려고 하는건가!! 코인으로 협박하기 멈춰…!!! 매일 열심히 글을 쓰고 있으니… 부디 봐주시길 바랍니다…!! 작가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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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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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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