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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9

       

       

       

       

       

       119화. 익숙한 손님 ( 2 )

       

       

       

       

       

       

       ——————!!

       

       

       서리고룡의 괴성이 고막을 울린다. 쿵 쿵- 느릿하게 거리를 좁히는 서리고룡. 거대한 체구를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다가온다.

       

       프리가는 눈을 좁히며 용 사냥꾼의 도끼를 움켜쥐었다. 고룡의 몸에 새겨진 문양을 따라 기묘한 환상과 환청이 아른거렸다.

       

       흐릿한 냉기를 두른 그것들은 고룡의 몸을 따라 흐르며 안개처럼 제 형체를 쉴 새 없이 바꿨다. 어느 순간에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어느 순간에는 옛 부하의 얼굴로.

       

       

       “시발…”

       

       

       망자들의 속삭임이 프리가의 정신을 흔들었다.

       

       모두 그녀의 아픈 기억들이다.

       

       죽은 어머니의 모습, 미끼를 자처하며 홀로 남은 부하, 그녀의 오판으로 죽어간 이들.

       

       그녀가 깊은 망각 속으로 묻었던 이들이 깨어난다. 북부의 차가운 눈 아래에 꽁꽁 얼려버렸던, 의도적으로 모르는 체하고 하고 살았던 상처들이 꿈틀거리며 프리가를 마주한다.

       

       냉기를 두른 환영들이 그녀에게 속삭인다.

       

       네가 우리를 죽였노라고. 너의 실수로 인해서 우리가 죽었다고.

       

       

       “하, 허읍. 씁- 크흡!” 

       

       

       숨이 막혀온다. 기억들은 흉터가 되어 목을 졸라온다. 망자들의 차가운 손이 숨통을 조여오는 것 같다.

       

       정신과 마음에 파고들어 스며든다. 그녀의 마음에 뿌리내리고 속삭인다.

       죽어가는 부하의 마지막 숨결이, 제 어미의 마지막 단말마가 메아리친다.

       

       과거의 망령들이 소리친다. 오래된 상처를 들쑤시며 그녀의 정신을 뒤흔든다.

       

       주춤.

       

       프리가의 발이 뒷걸음질 친다. 꿈틀거리는 문양은 망령이 되어 그녀의 눈과 귀를 어지럽힌다.

       

       ——————!!

       

       콰가가각!

       

       고룡의 앞발이 땅을 긁으며 전진했다. 거대한 아가리가 쩍 벌어지며 프리가를 향해 벌어졌고-

       

       

       “크읏!!”

       

       콰앙ㅡ!

       

       환영으로 넋이 나가 있던 프리가는 옆으로 구르며 가까스로 피했다. 고룡은 느긋하게 그녀를 몰아붙였다. 가끔은 일부러 느릿하게 공격하며 프리가를 가지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카가가각-!

       

       고룡의 발톱이 도끼를 긁어대고, 문양이 춤추며 프리가의 눈을 현혹한다.

       

       부웅ㅡ!

       

       거대한 꼬리가 채찍처럼 꿈틀거린다. 프리가는 연신 바닥을 구르며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콰앙ㅡ!

       

       프리가를 향해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고룡의 발톱. 날카로운 발톱이 프리가를 무자비하게 찢어발겼다.

       

       

       “끄으윽!!”

       

       

       가까스로 치명상은 피했는지, 프리가는 상처 입은 팔을 움켜잡고 땅을 박찼다. 허나 여전히 동공은 갈팡질팡하고, 고룡의 문양이 그녀를 현혹하고 정신을 흔들었으니.

       

       

       ——————…!!!

       

       

       서리고룡은 제 위용을 과시하며 여유롭게 그녀를 사냥했다. 고양이가 상처 입은 쥐를 가지고 놀듯이, 일부러 죽이지 않고 천천히 구석으로 몰아갔다.

       

       

       “공녀님이…”

       

       

       케니스가 결투장 바깥에서 안타깝게 외쳤다. 프리가의 상태가 이상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라이언하트가 조용히 말했다.

       

       

       “저 문양… 아무래도 환각을 보여주는것 같은데. 그걸 생각해도 저 반응은 너무 심하군.”

       

       “환각을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라이언하트는 턱을 쓰다듬으며 지긋이 문양을 바라봤다. 꾸불꾸불 춤추듯 그려진 문양. 그의 추측이 맞다면 프리가는 지금 환상이나 환청을 듣고 있을 터. 

       

       그걸 감안해도 프리가의 정신은 유독 불안정해 보였다. 이상할 정도로.

       

       

       “그렇다고 해도 저 모습은 너무 이상하군. 보는 것만으로 저렇게 사람의 정신을 흔든다고? 저건 저주에 가까운 수준인데?”

       

       “…공녀님은 북부에 있을 때도 자해를 자주 하셨어요. 멀쩡할 때도 죽은 부하들의 환청이나 환각을 자주 보셨고. 요즘은 그런 기색이 없어서 괜찮아지신 줄 알았는데.”

       

       “그렇다면, 억눌러온게 한 번에 터졌다고 봐야겠군.”

       

       

       라이언하트의 눈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피를 피로 씻는 전장에서 살아오기를 수십년, 그는 알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보다 보이지 않는 상처가 훨씬 더 위험하다는 것을. 마음에 난 상처는 사람의 영혼을 좀 먹고 파고들어간다.

       

       그렇게 마음이 썩어들어간 사람은 어느 순간, 툭 하고 무너져버린다. 너무나 쉽게.

       

       라이언하트는 그런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봐왔다. 그래서 그는 기도했다.

       

       부디 저 아가씨가 무너지지 않기를.

       

       

       ——————!!

       

       

       “시이, 발…”

       

       뚝… 뚝…

       

       길게 찢어진 상처에서 붉은 피가 흘러 내린다. 다행히 주로 쓰는 팔은 아니었고, 약간 경련이 있을 뿐 움직일 수는 있었다.

       

       허나 상황은 암울했다. 그녀의 도끼는 고룡에게 닿지도 못했고, 고룡의 문양은 계속해서 그녀에게 환영을 보여줬다.

       

       꾸욱-

       

       그래도 싸워야 하리라. 이대로 꼴사납게 지는 건 그녀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안간힘을 써서 흔들리는 초점을 고룡에게로 향한다. 역시나 고룡의 문양이 꿈틀거리며 그녀를 현혹한다. 죽은 자들의 얼굴이 고룡의 곁에서 꿈틀거린다.

       

       

       “크읍…!”

       

       까득-

       

       정신을 차리기 위해 혀를 씹은 프리가. 입에서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고통으로 잠시 머리가 맑아진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필사적으로 방법을 찾는다.

       

       

       ‘눈을 감고 싸워?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러면 아예 다른 곳을 보면서? 아니면ㅡ’

       

       달그락.

       

       바쁘게 머리를 굴리던 와중, 주머니 속에서 모난 무언가 느껴졌다. 작은 숫돌이다.

       

       그녀가 밤새도록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며 갈았던 숫돌. 프리가는 손에 숫돌을 올리고 멍하니 바라봤다.

       

       어쩐지 조금 따뜻한 숫돌. 아마 기분 탓이겠지만, 답답한 숨통이 조금은 트이는 기분이다.

       

       

       “후… 후우ㅡ 개 같은 장난질이네 진짜.”

       

       

       큰소리 뻥뻥 치고 왔는데, 꼴사나운 모습만 보여줬다. 저기 얼빠진 얼굴로 자신를 보고 있는 저 멍청한 얼굴을 보라. 프리가는 어쩐지 망령에 휘둘린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작은 숫돌을 손에 꼭 쥐었다. 숨통이 조금 더 트이는 기분. 나쁘지 않다.

       

       

       ——————!!!

       

       우웅ㅡ!

       

       

       용 사냥꾼의 도끼가 강하게 울부짖는다.

       

       망자들, 상처, 흉터.

       

       모두 그녀의 아픈 기억들이다. 많이 아프고 힘들었던 순간들. 과거엔 맨정신으로도 환청과 환각을 봤고, 때때로 자해하기도 했다.

       

       허나 과거일 뿐이다.

       

       지나간 시간의 잔재들. 더 이상 과거의 망령에 휘둘리지 않는다.

       

       손안에 움켜쥔 숫돌이 새삼 느껴진다. 그리고 저 멍청한 얼굴도.

       

       

       “이거… 날 너무 물로 본 거야!”

       

       타탓-!

       

       앞으로 강하게 뛰어들어 고룡의 품으로 파고든다. 문양이 꿈틀거리며 망령의 얼굴을 보이지만,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카가각ㅡ!!

       

       ——————!!

       

       

       용 사냥꾼의 도끼가 꿈틀거리는 환영을 가르고, 고룡의 발목을 후려친다.

       

       팟ㅡ

       

       반짝이는 도끼자루의 글자. 빈 글자는 앞으로 여섯 개.

       

       

       “잘 보라고, 뼈다구 새꺄. 그리고 너도.”

       

       

       프리가는 도끼를 겨누며 말했다. 손에는 숫돌을 꼭 쥐고 있었다.

       

       꼴사나운 모습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 * * * *

       

       

       

       

       

       《——————!!》

       

       

       우렁차게 울부짖는 서리고룡을 보자 손이 벌벌 떨리며 식은땀이 났다.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이 겪는다는 PTSD가 이러할까?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서리고룡이 여기서 튀어나올 줄은 몰았다.

       

       – 카가가각!

       

       – “하, 허읍. 씁- 크흡!” 

       

       좋지 못한 기억들로 잠시 넋이 나간 사이, 프리가는 고군분투하며 구석으로 몰렸다.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스킬을 찾는다.

       

       

       ‘그러니까, 어… 우선 디버프부터!’

       

       

       일단 서리고룡의 약화가 최우선이다. 그간 쏠쏠히 써먹은 디버프를 고룡에게 사용했다.

       

       

       《쇠약의 손길! 대상의 노화를 촉진시킵니다. 일정 시간 동안 대상의 민첩, 방어력, 공격력이 크게 낮아집니다.》

       

       

       2만 원 주고 산 스킬인 만큼, 주요 능력치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모조리 약화시키는 개사기 스킬이다. 이 스킬 덕분에 그나마 하위권 녀석들이 조금이라도 더 버텨서 꼴찌를 면했다.

       

       

       – “끄흐읍..!”

       

       

       화면에 보이는 프리가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고 안색도 파란 것이 뭔가 이상하다.

       

       아니나 다를까, 메시지 창이 나타난다.

       

       ㅡ삥뽕!

       

       《프리가가 상태이상 ‘혼란’에 빠집니다! 프리가의 공격이 상당히 높은 확률로 빗나갑니다!》

       

       《프리가가 상태이상 ‘죄책감’에 빠집니다! 프리가의 행동이 둔해집니다!》

       

       

       “이런 씨…”

       

       

       보자마자 험한 말이 올라오려고 한다. 만전의 상태로 싸워도 이길까 말까인데, 상태이상까지 붙었다.

       

       저번 레이드에서는 상태이상 같은 거 없었다. 아마 고룡의 몸에 덕지덕지 발라진 저 문양 때문에 상태이상이 걸리는 것 같다.

       

       – 콰앙!

       

       《——————!!》

       

       

       미리 디버프를 걸어둔 덕분인지, 프리가는 상태이상이 걸린 상황에서도 어찌어찌 죽지 않고 잘 피해 다녔다.

       

       

       “정화, 정화 스킬이…”

       

       

       분명 전에 정화 스킬을 사뒀던 걸 기억한다. 저 거지 같은 상태이상을 풀어야 우선 뭐라도 할 테니, 손가락을 바삐 움직이며 정화 스킬을 찾았다.

       

       

       “아, 여깄다!”

       

       

       저번에 사둔 상태이상을 모조리 풀어주는 ‘침착한 정신’. 서둘러 프리가에게 스킬을 사용하려 할 때ㅡ

       

       

       빠밤ㅡ!

       

       《프리가가 상태이상 ‘혼란’을 이겨냅니다!》

       

       《프리가가 상태이상 ‘죄책감’을 이겨냅니다!》

       

       – “이건 날 너무 물로 본 거야…!”

       

       – 카가각ㅡ!

       

       

       저 혼자 상태이상을 풀어낸 프리가가 고룡에게 도끼를 크게 휘둘렀다. 디버프로 방어력이 낮아진 고룡이 크게 휘청이며 체력이 뭉텅 깎여나간다.

       

       갑작스러운 분위기 반전에 약간 얼이 빠졌다. 물론 상태이상이 풀린 건 좋지만…

       

       

       “아니, 음… 어떻게?”

       

       

       어떻게 혼자 상태이상을 푼 거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예? 뭐, 뭐가 맛있어요?? 엣??

    아닛!!! ㄴㅇ0ㅇㄱ!!

    – ‘신선우’님의 정기후원!!! 감사합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재밌는 글을 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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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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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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