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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2

       

       

       

       

       

       122화. 지옥의 끝에서 ( 2 )

       

       

       

       

       

       지옥(地獄).

       

       죄를 지은 자들의 영혼이 끌려가는 지저의 감옥이요, 영혼의 종착지. 시뻘건 불꽃이 영혼을 태우고 또 태우면서, 영겁의 고통을 선사하는 감옥.

       

       만신전에서는 성서를 통해 천국과 지옥에 대해 설명한다. 지옥은 항상 불이 이글거리는 지하의 감옥으로, 천국은 구름 위에 존재하는 영원한 기쁨의 땅으로.

       최근 들어서는 성지에 다녀온 안토니오와 루엘, 데모닉 등의 사례로 천국에 대한 설명이 바뀌고 있지만, 지옥은 여전히 불타는 감옥의 형태였다.

       

       

       “지옥… 말씀이십니까?”

       

       “그래, 지옥. 혹시 뭐 들은 거 있는가?”

       

       “글쎄요. 애초에 티그리우스 경이 방금 막 정신을 차리셔서, 저는 상태만 가볍게 확인하고 나왔습니다.”

       

       “…그렇군. 알겠네.”

       

       

       라이언하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지옥.

       그곳은 팔라딘과 사제들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하하하! 별일 아닐세.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요즘 불경을 많이 저지르지 않았나. 팔라딘의 의무에 소홀하기도 했고. 그래서 좀 신경 쓰였지 뭔가!”

       

       “아.”

       

       

       중년 사제는 약간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라이언하트의 방랑벽은 만신전에서 아주 유명했으니까.

       

       

       “뭐. 그래도 늙은이가 죽기 전까지 최대한 속죄하면서 살아가면, 신께서도 어여삐 여기시지 않겠는가? 아하하하!!”

       

       “그런 것이 어찌 불경이겠습니까? 팔라딘께서 안식을 취하신다면, 분명 신께서 팔라딘을 위한 자리를 비워두실 겁니다.”

       

       “그래… 그랬으면 좋겠군.”  

       

       

       대화를 마친 라이언하트는 뒤로 돌았다. 돌아서는 그의 표정은 짙은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아무런 표정이 없었을지도.

       

       

       “알려줘서 고마웠네.”

       

       “아, 예.”

       

       

       저벅 저벅.

       

       라이언하트는 묵묵히 걸었다. 만신전을 나서고, 성도의 밖으로 향한다.

       점차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지기 시작한다.

       

       사람보다 나무가 많아지고, 잘 정리된 도로에서 흙길로 바뀐 길을 걸어 나간다.

       이윽고 사람의 흔적보다는 짐승의 흔적이 더욱 많아진 숲을 걷는다.

       

       파슥.

       

       얼굴을 가리는 나뭇가지를 가볍게 밀며 도착한 곳은-

       

       

       “여기는 여전하군.”

       

       

       작은 공터였다.

       숲 한가운데에 위치한 야트막하고 평평한 공터.

       

       평평하게 다져진 땅에는 무언가 빼곡하게 박혀있다.

       나무를 깎아서 만든 작은 명패다. 땅에 박힌 명패들에는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날카로운 무언가로 긁으면서 새긴 듯, 투박한 글씨.

       비와 세월에 마모되고 흐릿해져 뭐라고 쓰여 있는지 알아보기 쉽지 않았다.

       

       그 수는 공터를 가득 채우고도 조금 남았다.

       

       라이언하트는 허리를 숙여 명패를 하나하나 쓰다듬었다. 

       

       

       “…저 왔습니다.”

       

       

       이곳은 그가 직접 만든 작은 공동묘지.

       

       스윽.

       

       묵은 거미줄을 치우고, 나뭇잎과 굴러다니는 잡다한 것들을 하나하나 치우기 시작한다. 만신전의 팔라딘이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일들. 

       허나 그가 원해서 하는 일이다.

       

       묵묵히 허리를 숙여 공터를 청소한다. 뻗어 나온 나뭇가지들을 하나하나 꺾어서 정리하고, 자라난 잡초들을 맨손으로 파서 뽑아낸다.

       제법 오랫동안 해온 일인지 모양새가 썩 능숙했다.

        

       툭 툭.

       

       “어이구야.”

       

       굽혔던 허리를 툭툭 치면서 일어난 라이언하트. 

       명패를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저도 제법 나이를 먹은 모양입니다.”

       

       쩌릿.

       

       이곳에만 오면 왼쪽 눈의 흉터가 아려왔다. 일개 상처도 그 날을 잊지 못하는 걸까.

       떨리는 손으로 더듬더듬 눈의 흉터들 더듬는다. 비록 한 쪽 눈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 날의 기억은 눈 앞에 보이는 듯 생생했다.

       

       

       ‘스승님…’

       

       

       만신전의 팔라딘, 라이언하트.

       그가 세례명을 받기 전에 쓰던 속세의 이름, 레온.

       

       이곳에서 라이언하트는 풋내기 성기사였던 레온으로 돌아간다. 혈기 왕성하고, 실력보다는 의욕이 높았던 애송이 시절로.

       

       스읍- 하아.

       

       허나 그리 어깨가 가볍지는 않았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짐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으니.

       

       그것의 이름은 죄책감이었다.

       

       

       

       

       

              *       *       *       *       *

       

       

       

       

       

       빠밤ㅡ!

       

       《티그리우스… 시련 성공!》

       

       

       “아니, 여기서 백룸이 나와버리네.”

       

       

       뒷방의 시련을 골랐더니, 백룸으로 보내버리는 미친 전개.

       요즘 유튜브에서 백룸이나 도시괴담 관련해서 몇 개 영상을 보기는 했는데, 이것도 알고리즘의 영향을 받는 건가 싶다. 

       

       뒷방의 시련이 백룸맵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망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 제국제일검.

       

       디버프까지 받은 몸으로 어떻게든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솔직히 디버프까지 준 건 너무 심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탈출할 줄이야.’

       

       

       오늘 두 명의 시련을 진행했으니 콜로세움 UI를 종료했다. 시련 고르느라 머리 빠지게 고민하고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더니 눈이 조금 아파온다.

       

       오싹.

       

       기분 탓인지 뒤에서 누가 지켜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뒤에는 아무도 없다.

       

       

       “…요즘 왜 자꾸 누가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조만간 굿이라도 해야 하나 싶다.

       찝찝한 기분을 안고 신전이 있는 화면으로 나갔다.

       

       광산과 술집, 대장간을 돌아다니며 일하는 드워프들을 멍하니 구경한다. 뽈뽈거리며 열심히 일하는 녀석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제작에 실패한 활들이 떠올라서 불현듯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 쓸모없는 놈들 이거.”

       

       

       ‘마수 토벌’ 모드보다 돈을 못 벌어오는 너희들이 잘하는 게 뭐야 도대체. 뚱땅거리면서 날붙이나 만들 줄 알지.

       

       휘이익! 휙!

       

       일하는 놈들은 내버려 두고, 술집에서 나오는 녀석 하나를 붙잡아서 공중으로 끌어올린다. 

       화면에서 한 바퀴, 두 바퀴 정도 빙글빙글 돌리면서 심술을 부렸다.

       

       

       《아이£¥r?! 드워ㅍㅡiQr 사r려!!》

       

       

       손가락을 따라 휘적거리는 드워프를 보니 조금은 마음이 풀린다. 그래도 활을 해금해도 만들지 못하는 이 상황은 아주 짜증 나기 그지없다.

       해결책도 모르고, 방법도 모른다. 

       뭔가를 제시해주지도 않는다.

       

       

       ‘뭔가 선행 조건이 있나?’

       

       

       건물 중에서 먼저 지어야 하는 건물이 있나 싶었지만, 활과 관련된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건물은 아니라는 뜻.

       

       점차 미궁에 빠져간다.

       

       

       ‘…상점에 있나?’

       

       

       혹시나 싶은 마음에 상점창으로 향한다. 화려하게 번쩍거리는 네온 사인과 갖가지 할인 행사들이 눈을 어지럽힌다.

       계속해서 돌아가는 눈을 애써 붙잡으며, 무기와 관련된 카테고리로 향한다.

       

       스윽 슥.

       

       여러 가지 무기 관련 패키지가 있지만, 활을 해금한다는 내용의 패키지는 없다. 

       상점에도 없다면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하 진짜… 뭐지.”

       

       

       치밀어오는 짜증에 머리를 마구 긁었다. 

       머리가 복잡해진다.

       

       드워프라서 못 만드나? 아니면, 뭔가 다른 조건이 있나?

       

       

       ‘에이씨. 모르겠다.’

       

       

       상점창을 나가려는데, 메시지창 하나가 떠오르며 나를 막았다.

       

       

       삥뽕ㅡ!

       

       《특별 할인 행사!》

       

       《아래의 상품들을 할인된 가격으로 만나보세요!》

       

       《바위가 가득한 알 : 9,900원》

       《비늘이 자라난 알 : 9,900원》

       《눈동자가 박힌 알 : 9,900원》

       《서리가 낀 알 : 9,900원》

       

       《※행사 상품은 한 개만 구매할 수 있습니다.※》

       

       

       “알?”

       

       

       갑자기 알을 판다고? 

       

       이게 무슨 아이템인데 갑자기 행사를 하나 싶다. 행사 할인 중이기도 하고, 처음 보는 종류의 아이템이라서 자세히 보기를 눌러 들어갔다.

       

       

       《바위가 가득한 알 : 바위에 둘러싸인 알. 매우 딱딱하다. 정성으로 보살피면 도움이 되는 생명체가 나올지도?》

       

       

       “펫이구나?”

       

       

       게임에서 또 빠지면 섭섭한 것이 바로 펫 아니겠는가. 펫이 있으면 전투를 도와주거나 하는 식으로 도움을 주기 마련.

       이 게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건 안 사면 호구인데?’

       

       

       행사까지 붙어서 하나에 만 원도 안 하는데, 지금 이거 안 사면 극심한 손해다.

       잔고가 조금 아슬아슬하기는 해도 만 원 정도는 낼 수 있다.

       

       

       ‘뭘 사야 좋을까…’

       

       

       이건 한 개 밖에 못사는 아이템인 만큼 아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모든 정신을 집중해서 알을 살핀다. 

       

       주어진 알은 모두 네 개. 오 박사님이 주는 스타팅 포켓몬처럼 게임의 극후반까지 함께 할 수도 있는 녀석들이다.

       당연히 신중을 가해서 골라야 하리라. 

       

       일단 알의 설명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비교한다.

       

       

       ‘설명은… 전부 비슷하네.’

       

       

       이름에 대한 설명이 조금씩 다른 것이 전부다.

       

       ‘바위가 가득한 알’은 바위로 둘러싸인 알이다. ‘비늘이 자라난 알’은 작은 비늘이 돋아난 알이다. 하는 식의 차이밖에 없다.

       그럼 외형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는 건데…

       

       

       ‘바위 알은 땅 속성이겠고, 비늘 알은 물고기? 물고기면 물 속성이려나?’

       

       

       화(火) 속성의 공격을 인챈트하는 ‘미약한 불꽃’ 같은 경우를 보면, 이 게임에도 속성은 존재한다.

       자세하게 설명을 안 해줘서 그렇지.

       아마 속성 간에 따른 우열도 있을 것이다.

       

       고민이 깊어진다.

       

       만약 속성 간에 우열이 있다면, 지금 나에게 별로 없는 속성을 고르는 것이 이득이 될 것이다.

       

       눈동자가 박힌 알은 뭔 속성인지 감도 안 잡히니까 일단 후보에서 제외한다.

       남는 건 바위, 비늘, 서리.

       

       

       “음…”

       

       

       아마도 바위는 땅, 비늘은 물, 서리는 얼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 대부분은 불이나 번개, 성(聖) 계열.

       지금 상황에서는 물이나 얼음 쪽을 고르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시간이 흐르며 깊은 고민이 이어진다.

       

       하지만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이 있듯, 깊은 고민은 오히려 악수로 이어지는 법.

       결단은 빠르고 확실하게 내려져야 한다.

       

       파앗ㅡ!

       

       “이거다…!”

       

       

       깊은 고민 끝에 결정한 알. 마음을 정했다면 결제까지는 물 흐르듯 이어진다.

       태극권의 고수처럼 부드럽고 빠르게 결제를 마치고, 핸드폰에 도착한 결제 알림을 확인했다.

       

       

       우웅ㅡ!

       

       [WEB발신]  카드 9,900원 일시불 승인.

       

       

       

       뒤를 이어 메시지 창이 떠오른다.

       

       

       빠밤ㅡ!

       

       《’서리가 낀 알(영구제)’ 구매 완료! 우편함을 확인해 주세요!》

       

       

       “혜자군.”

       

       

       만 원도 하지 않는 가격에 기간제도 아닌 영구 펫을 샀으니 이건 혜자가 분명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과 추천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수정사항
    과금 내역의 문자에 따라오는 날짜를 삭제하였습니다…!!! 작 중 시간의 흐름에 혼란을 줄 수 있는 부분…!! 죄송합니다!!

    – ‘신선우’님!! 10 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성녀는 인터넷을 할 수 없슴니다… 주인공을 엿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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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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