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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4

       

       

       

       

       

       124화. 지옥의 끝에서 ( 4 )

       

       

       

       

       

       “꺼윽ㅡ”

       

       

       한껏 붉게 달아오른 얼굴. 근처에만 가도 진동하는 술 냄새. 비틀거리는 걸음새. 

       라이언하트는 누가 봐도 전형적인 만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수레를 타지 않고 제 발로 걸어서 결투장에 들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린 결과가 이 모양이니, 뒤에서 애덤이 머리를 싸매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하… 난 모르네. 분명히 말렸어. 어제 술을 먹겠다고 했던 건 자네란 말이야.”

       

       “히끅! 아이, 이 사람아. 나 안 취했다니까? 히끅!”

       

       

       입을 열면 고약하고 꿉꿉한 술의 악취가 올라왔다. 애덤이 라이언하트를 가까스로 부축해서 결투장의 입구에 도착했을 무렵.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 내가 이럴 줄 알았지.”

       

       “히끅! 응…?”

       

       “…망했군.”

       

       

       결투장의 입구를 등지고 한 손에는 두꺼운 경전을 들고 있는 안토니오. 그의 표정은 한없이 온화했다.

       

       자비롭고 또 자비로워서. 어떤 죄인이라도 따스하게 품어줄 것처럼 부드러워서.

       역설적으로 두려웠다. 

       

       애덤은 안토니오의 등 뒤에서 거대한 무언가를 본 착각마저 들었다. 실로 엄청난 기백. 

       

       죽는다.

       

       애덤의 생존 본능이 외쳤다.

       

       행동은 빨랐다.

       

       부축하고 있던 라이언하트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그리고 빠르게 도망친다.

       

       

       “레온, 미안하네! 나라도 살아야지 않겠나!!”

       

       쌔앵ㅡ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애덤의 뒤로 먼지가 꼬리처럼 남았다. 안토니오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그의 목적은 애덤이 아니었다.

       저기 엎어져 있는 저 팔라딘.

       

       꿈틀.

       

       잘못한 건 아는지, 얼굴도 못 드는 저 늙은이가 안토니오의 목적이었다.

       

       

       “일어나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바닥에 엎드린 라이언하트는 못 들은 척 움직이지 않았다.

       

       

       “일어나라고.”

       

       “크, 크흠.”

       

       

       낮은 목소리에 한껏 살의를 담아 말하자, 그제야 주춤주춤 일어나는 라이언하트. 

       엉거주춤하게 서더니 안토니오의 시선을 어색하게 피했다. 

       

       딸꾹! 딸꾹!

       

       라이언하트의 입에서 연신 딸꾹질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갈수록 가관인 모습에 안토니오의 시선이 차게 식어간다.

       

       

       “하…”

       

       “아니, 그. 토니, 내 말 좀 들어보게. 내가 어제 정말로 경건하게 준비하려고 했단 말이지? 그래서 목욕재계도 하고, 밤늦게까지 경전도 읽으면서ㅡ”

       

       “그만.”

       

       “정말 변명이 아니라ㅡ”

       

       “나도 알겠네. 자네 말은 충분히 알겠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안토니오의 표정은 도저히 그의 말을 믿는 표정이 아니었다. 라이언하트는 억울해서 미칠 노릇이었지만, 어쩌겠는가.

       그의 평소 행실에 대한 업보인 것을.

       

       안토니오는 라이언하트를 한심하게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골이 아파오는지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일단 술기운이나 좀 몰아내 보게. 그 정도로 취하지는 않았겠지?”

       

       “그으… 좀 힘들 것 같은데?”

       

       “여섯 신 맙소사.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건가!”

       

       “윽.”

       

       “하ㅡ 이리 오게. 내가 해주지.”

       

       

       안토니오의 두 손이 라이언하트의 등에 맞닿았다. 살며시 눈을 감은 안토니오의 신성력이 라이언하트의 몸으로 흘러 들어간다.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라이언하트.

       

       푸시이익ㅡ!

       

       이윽고 그의 몸에서 뿌연 증기가 뭉게 뭉게 올라왔다. 동시에 독한 술 냄새도 풍겼다.

       

       신성력을 이용해 술기운을 몰아낸 것이다.

       

       어지간한 사제와 성기사들은 따라 하지 못할 정교한 신성력 운용이 만들어낸 기술이었다.

       

       몸에 가득했던 술기운이 일시에 빠져나가자 정신이 깨기 시작한 라이언하트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쓰ㅡ읍…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군!”

       

       “라이언하트, 제발 정신 좀 차리게. 제발…”

       

       “하하! 할 말이 없구만. 그래도 아까 내가 한 말은 전부 사실ㅡ”

       

       퍼억!

       

       “끄읍…”

       

       

       구차한 변명을 끊는 경전의 가르침. 너무나 아픈 가르침은 옆구리를 통해 온몸 구석구석 퍼져나갔다.

       

       라이언하트의 입이 조용히 닫혔다.

       

       

       “미, 미안하네…”

       

       “알면 좀 조용히 하게. 머리가 지끈거리니까.”

       

       

       안토니오의 뒤를 따라 얌전히 결투장으로 들어가는 라이언하트의 뒷모습은, 참으로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 * * * *

       

       

       

       

       

       밀린 청소도 끝내고, 쌓인 빨래도 돌렸더니 할 일이 없었다. 침대에 누워서 가만히 유튜브를 보는 것도 질려서 다시 게임을 켰다.

       

       로딩 화면이 지나고 익숙한 신전이 보인다. 

       

       뽈뽈뽈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일하는 드워프들. 어떤 녀석은 광산에서 광물을 캐고, 어떤 녀석은 대장간에서 망치를 두들기면서 일하고 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래. 열심히 일해서 골드를 벌어오란 말이야.’

       

       

       소작농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지주의 심정이다. 이 녀석들이 열심히 일하는 만큼 전부 골드가 되는 거다.

       

       뽈록뽈록

       

       앙증맞은 다리를 움직여 어디론가 향하는 드워프가 있다. 가만히 그 모습을 따라가보니, 초원에 놓인 알에 다가가는 녀석.

       

       이윽고 알을 붙잡고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 《어흐*#흑¡ 내ㄱr 얼마sK 힘드@ㄴ지 아£ㅣ?!》

       

       – 《하루rp에 맥주 4 토ㅇ&이라니!!》

       

       

       뭔가 더럽게 억울한 모양.

       

       

       “뭐지?”

       

       

       누가 괴롭히기라도 했나.

       

       드워프는 그렇게 한참을 펑펑 울다가 좀 진정이 됐는지, 서리 알을 폭 끌어안았다.

       

       뾰롱ㅡ!

       

       그때 서리 알에서 모래시계가 나타났다. 천천히 떨어지던 모래알의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관심과 애정으로 자란다는 게 이런 뜻이구나?’

       

       

       알의 설명 문구에 있던 말이 떠올랐다. 일꾼들이 알을 보살펴주거나, 껴안으면 부화 속도가 빨라지는 듯하다.

       

       슥- 툭. 스윽- 툭.

       

       여기저기서 술 마시고 있던 드워프들을 드래그해 알 옆에다가 떨궜다. 대롱대롱 매달려있다가 쿵ㅡ하고 엉덩방아를 찧는 드워프도 있었다.

       

       쿵!

       

       – 《어ㅇ|쿠!》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엉거주춤하게 서다가, 이내 서리 알에 다가가서 포옥하고 끌어안는다. 시원해서 기분 좋은지 뺨도 부빈다.

       

       근육이 우락부락한 드워프들이 서리 낀 알을 둘러싸고 끌어안고 있는 진풍경이 완성됐다.

       

       

       ‘…좀 징그럽네.’

       

       덜컥! 덜컥!

       드드드드ㅡ!

       

       서리 알이 들썩거리며 진동한다. 그 모양이 어쩐지 드워프들에게서 탈출하려는 몸부림처럼 보였다면 기분 탓일까. 

       

       모래시계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진 걸 확인하고, 콜로세움 UI로 이동한다. 

       

       시련을 줘야 하는 인원은 두 명 남았다.

       

       순번으로는 레온, 언제부터인지 이름이 라이언하트라고 나오는 노인이 먼저다.

       

       

       ‘할 거면 레온하르트라고 짓던가, 라이언하트가 뭐야?’

       

       

       어떻게 사람 이름이 사자의 심장 일수가 있지. 볼 때마다 신경쓰여 죽을 것 같다. 나중에 이름 바꾸는 아이템 나오면 저 녀석한테 먼저 써줘야지.

       

       

       ‘시련은 뭘 해야 하나.’

       

       

       지금까지 봐온 라이언하트의 전투력은 꽤나 높은 편이다. 이벤트 첫날에 만취한 상태로도 순식간에 적을 이기기도 했고.

       

       아마 전투력으로는 어디가서 꿇리지 않으리라.

       

       슥- 스윽-

       

       《물의 시련》

       《전장의 시련》(추천!)

       …

       《술의 시련》(비추천!)

       《후회의 시련》(추천!)

       《감각의 시련》

       

       

       “와. 비추천은 처음 보네.”

       

       

       ‘술의 시련’ 바로 옆에 볼드체로 강조까지 해서 적혀있는 비추천 문구. 추천은 봤는데 비추천은 처음봤다.

       

       지금까지 라이언하트가 보여준 꼬락서니를 떠올려 보면 타당한 경고문이기는 하다.

       

       술에 만취해서 수레에 실려 오지를 않나, 경기장 밖으로 달려가서 토를 하지 않나. 솔직히 토까지 할 줄은 몰랐다.

       

       

       “음…”

       

       

       저번 ‘뒷방의 시련’으로 깨달은 게 있다. 그건 바로 깝치지 말자는 것. 게임에서 이게 좋다고 추천해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이번에는 고인물의 감이라고 까불지 말고, 얌전히 추천해주는 대로 골랐다.

       

       

       《후회의 시련… 도전자는! 라이언하트!》

       

       – 휘이잉

       

       바람이 몰아치는 콜로세움.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며 알 수 없는 장엄함을 더했다.

       흙먼지를 뚫고 나온 라이언하트의 표정이 제법 진지하다. 

       

       라이언하트의 등에 메인 장대가 눈에 들어온다. 그 끝에는 커다란… 아주 커다란 날이 붙어 있다.

       

       

       “창…?”

       

       

       창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창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했다.

       

       

       “할버드?”

       

       

       긴 창의 끝에 우람하게 붙은 도끼날. 뾰족하게 날이 선 창날과 그 밑에 붙은 초승달 모양의 도끼날이 흉흉한 빛을 발한다. 

       

       라이언하트가 들고나온 무기는 다름 아닌 할버드였다. 

       노인과 할버드.

       

       기가 막힌 조합에 무릎을 탁 쳤다.

       

       내가 왜 이걸 생각 못 했을까!

       

       흰 머리의 라이언하트가 할버드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은 마치 관우와도 같았다. 내가 이런 정석적인 컨셉을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니.

       

       뼈아픈 실책이다.

       

       – 쿠구구구구

       

       이윽고 콜로세움의 땅이 흔들리며 ‘후회의 시련’이 시작되었다.

       

       

       

       

       

              * * * * *

       

       

       

       

       

       쿠구구구구ㅡ!

       

       땅이 흔들린다. 라이언하트는 온몸의 감각을 집중했다. 손에 잡힌 할버드의 묵직한 감각이 선명하다.

       

       그는 스승님의 유품인 할버드를 그리 애용하지 않았다. 할버드를 잡을 때면 눈가의 흉터가 욱신거렸다.

       

       

       ‘내가 왜 이걸 가져왔을까.’

       

       

       한순간의 변덕이었다.

       

       애덤이 빌려준 롱소드를 가져올 수도 있었고, 대장간에서 다른 무기를 빌려올 수도 있었다.

       

       굳이 그러지 않은 이유는, 신 앞에서 속죄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을까. 

       

       그는 죄인이었다. 죽으면 아마 지옥으로 가리라.

       보내주지 않는다면 자청해서 지옥으로 가야 마땅한 죄인이다.

       

       

       휘이이잉ㅡ

       

       바람이 강하게 몰아치며 모래 폭풍이 그를 덮쳤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라이언하트는 경건하게 경전을 읊었다.

       

       

       ‘여섯 번째 신이시여. 부디 이 죄 많은 자를…’

       

       “…언…트 님!”

       

       ‘내가 어둠과 유혹에 지지 않고 빛을 따라 걷게 하시며ㅡ’

       

       “…언하트 님! 라이님하트 님!!”

       

       

       라이언하트는 불현듯 그를 부르는 이름에 눈을 번쩍 떴다. 누가 그를 부른단 말인가?

       

       누군가 모래바람 너머에서 라이언하트를 애타게 외치고 있었다.

       

       

       “라이언하트 님!!”

       

       “…누가 나를ㅡ”

       

       “난 여기있네!!”

       

       

       라이언하트의 말을 끊고 저 앞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쿵 하고 가슴이 내려앉는 착각이 든다. 

       

       우렁차고 화통한 목소리.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설마, 설마…!’

       

       

       모래바람을 헤치고 달려 나간다.

       

       라이언하트라는 이름은 세례명이다. 세례명은 오직 한 명에게만 허락된다. 그 예외는 세례명을 받은 사람이 죽었을 때 뿐.

       

       지금까지 ‘라이언하트’ 라는 세례명을 썼던 사람은 성인을 제외하면 오직 두 명.

       

       레온, 그 본인.

       

       그리고ㅡ

       

       

       ‘스승님…!’

       

       

       그의 스승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봐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추천과 댓글은 너무너무 감사하게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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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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