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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7

       

       

       

       

       

       137화. 비사 ( 1 )

       

       

       

       

       

       사내의 비명은, 통곡은 오래도록 끊이지 않았다. 차갑게 식어가는 연인의 몸을 붙잡고 매달리는 그의 뒷모습은 한없이 작았으니.

       

       케니스는 그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린 자신이 휘말린 이 끔찍한 의식과 어머니의 희생, 그리고 죽음.

       

       문득 혼란스러워졌다. 시련에서 그녀가 개입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죽은 것일까?

       신께서는 무엇을 위해 이러한 과거를 자신에게 보여주시는 걸까?

       

       

       ‘나는, 나는…’

       

       

       창고는 비통한 슬픔이 가득했다. 허나 현실은 짧은 슬픔도 허락하지 않았다. 성기사 한 명이 뛰쳐 들어오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악, 악마! 악마들이!! 성벽을 향해 온다! 악마들이 몰려온다!”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을 몰고 온다고 하였나. 절망적인 소식을 전하는 성기사의 표정은 어두웠다. 창고 안에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만신전이 내부의 사정으로 혼란스러운 지금, 악마들의 공습까지 더해졌으니. 일단 습격을 막아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성기사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깨어나지 못할 잠에 빠진 리아를 붙잡은 데모닉은 멍하니 고개를 떨궜다. 누구도 데모닉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연인을 잃은 그를 위한 성기사들의 배려였다.

       

       그러한 소란 속에서.

       

       케니스가 조용히 창고의 밖으로 향했다. 소란과 동떨어진 곳으로 향하여 차가운 밤 공기를 들이 마신다. 아스라이 들려오는 성기사들의 고함과 때 아닌 소란으로 깨어나는 성도의 시민들.

       

       멍한 눈빛으로 달을 올려보았다. 

       

       

       ‘엄마가 나를… 날 살리려고…?’

       

       

       모든 것이 꿈처럼 몽롱하게 들려온다. 점차 시야가 일그러진다고 느꼈다. 물건의 외곽선이 춤추듯 일렁거리고, 꾸물거리며 합쳐지고 분리되면서 움직인다. 춤추듯이 녹아내린다.

       

       한낱 미몽처럼, 새벽의 이슬처럼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져간다.

       

       사박 사박.

       

       어디선가 모래사장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느낄 무렵.

       

       케니스는 자신이 누워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가운 밤공기도, 시리게 눈부신 밤하늘도 사라지고, 푹신한 침대만이 느껴졌다.

       

       꿈뻑.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눈을 깜빡이자 흐릿하던 시야가 점차 뚜렷해진다.

       

       

       ‘여기는…’

       

       

       만신전의 치료실이다. 시련 중인 자신이 다른 이들처럼 쓰러져서 이곳으로 옮겨둔걸까?

       

       늦은 한밤중인지,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시련은… 끝난건가?’

       

       

       슬쩍 몸을 일으켜 치료실의 바깥으로 향했다. 깊은 잠에 빠져든 만신전은 무서울 만큼 고요했으니. 케니스는 그저 복도를 따라 정처 없이 걸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달래기 위해. 신께서 그녀에게 보여준 시련의 저의를 깨닫기 위해.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니까,ㅡ…!! 우리는…!!”

       

       “…ㅡ 아직은 시기상조…!”

       

       “…음?”

       

       

       어두운 복도를 따라 걷다가, 작은 빛줄기가 새어 나오는 문을 발견했다. 아주 살짝 열린 틈으로 빠져나오는 빛과 소음. 익숙한 목소리가 안에서 들렸다.

       

       케니스는 홀린 듯 그 문으로 향했다. 한껏 발걸음을 없애고, 기척을 죽여서 살짝 열린 틈으로 향한다.

       

       방 안에는 익숙한 얼굴이 몇 보였다. 데모닉과 안토니오 그리고 나이가 지긋한 몇 명의 대사제들.

       

       이 늦은 밤에 무얼 그리 열심히 토의하는지, 진지한 얼굴로 서로 한 치의 물러섬 없이 각자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늦은 밤까지 다들 열심히 일하시네.’

       

       

       그저 업무에 관한 자리라고 생각한 케니스가 발걸음을 돌리려 할 때, 문밖으로 흘러나오는 단어 하나가 케니스의 발을 붙잡았다.

       

       

       “이제 용사님에게 리아에 대한 것을 알려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아직 때가 너무 일러요! 용사님께서 큰 혼란에 빠지실 겁니다!”

       

       “그걸 핑계로 언제까지 쉬쉬할 셈입니까!”

       

       “이건 만신전의 원죄입니다, 원죄! 저번 용사님 시련에도 데모닉 팔라딘과 리아의 젊은 시절이 나왔어요! 이게 뭘 의미하는 것입니까! 신께서는 이미 저희의 죄를 알고 계십니다!”

       

       

       “그, 그건… 데모닉 팔라딘과 리아의 젊은 시절이 나왔다는 것 하나로, ‘희생제’까지 나오는 것은 억측입니다! 결국 전부 안토니오 대사제의 추측 아닙니까?”

       

       “그래요, 저의 추측이고 어쩌면 망상입니다. 하지만 이 하늘 아래, 우리가 숨길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걸 왜 아직도 모르는 겁니까! 사실을 밝히고, 지금이라도 원죄에 대한ㅡ”

       

       

       안토니오와 다른 대사제들이 서로 언성을 높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데모닉은 그저 눈을 감고,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로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로페누스의 독단이… 아니였어?’

       

       

       만신전의 원죄, 희생제, 리아… 케니스는 그것이 자신의 시련에 나온 것임을 직감했다. 로페누스의 독단이 아니라, 만신전이 깊숙이 얽혀있다는 것도.

       

       콰앙ㅡ!

       

       힘껏 열리는 문. 방 안의 모든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지금 그 이야기. 자세히 들려주시죠.”

       

       “요, 용사님…?”

       

       “어떻게… 아니, 어디까지 들으셨습니까?”

       

       “케니스! 언제 일어난 거냐.”

       

       

       당황, 불안, 초조, 반가움…

       

       다양한 감정을 실은 눈동자가 케니스를 향했다. 케니스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차갑게 말했다.

       

       

       “우리 엄마, 로페누스. 그리고 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말씀해 주시죠.”

       

       “그, 그걸 어떻게…”

       

       “용사님이 그 이름을 어떻게 아신 겁니까?”

       

       

       대사제들의 얼굴에 뚜렷한 당황의 기색이 비쳤다. 케니스의 입에서 로페누스의 이름이 나올 줄 몰랐던 걸까.

       

       후우…

       

       데모닉이 깊은 한숨을 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케니스에게로 향했다. 시리게 차가운 그의 눈동자에는 깊은 회한이 가득했다.

       

       

       “케니스. 같이 좀 걷자. 걸으면서… 걸으면서 이야기해주마.”

       

       

       케니스와 함께 밖으로 나가는 데모닉을, 대사제들은 감히 붙잡을 수 없었다. 그의 등에는 아직도 슬픔이 가득했다.

       

       

       

       

       

       *****

       

       

       

       

       

       그런 일을 겪은 적 있는가? 내가 왜 이 장소에 있는지 모르고, 어떻게 왔는지도 알 수 없는… 마치 치매 환자가 된 것 같은 그런 기분. 혹은 단기 기억 상실이 걸린 것 같은 기분.

       

       물론 내 상태가 그 정도로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무슨 이유로 바닷가에 와 있는지 묻는다면 나는 해줄 이야기가 없다.

       

       

       “…뭐지?”

       

       

       정말 나도 몰랐으니까.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까만 물로 가득한 바다였다. 

       

       망망대해.

       

       수평선 저 너머까지 가득 펼쳐진 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촘촘히 박힌 별들이 은하수를 이루어 빛나고 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뭔 경우인지도 모르겠다.

       

       

       ‘이게 대체… 무슨…’

       

       

       머리를 싸매고 마지막 기억을 더듬는다. 분명 핸드폰에서 오류가 패치됐다는 알람을 받았고, 게임을 켰다.

       

       그리고, 그리고…

       

       쩌적! 하고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나더니, 바닥이 쑥 꺼졌다. 그렇게 좀 떨어지다가…

       

       

       ‘여기였어.’

       

       

       뭔가 이상하다. 난 집에서 게임을 하다가, 바닥이 꺼졌는데 바다라고? 그것도 망망대해에 떠 있는 이 작은 섬?

       

       현실감이 없어 멍하니 하늘을 올려보다가, 문득 기시감이 느껴져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 모래섬, 저 하늘, 까만 바다…

       

       어디선가 봤다. 분명 언젠가 와 본 적이 있는 장소… 그래, 꿈에서 봤던가?

       

       

       ‘분명 여기 어디쯤에서…’

       

       

       여기 쯤에서 내 핸드폰과 똑같은 핸드폰을 줍는 꿈을 꾼 적이 있다. 그래, 이곳이다.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는데 내 핸드폰과 똑같은 것이 떨어진 곳.

       

       사박 사박.

       

       발가락 사이로 고운 모래알이 파고들며 간지럽힌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모래섬을 거닐었다. 여기 어딘가, 이쯤에서 핸드폰을 주웠다.

       

       

       ‘ 그 핸드폰에서… 케니스. 맞아, 케니스가 나왔어.’

       

       

       흐릿한 기억은 더듬을수록 뚜렷해져 간다. 여기에서 케니스에게 ‘축복’을 줬다.

       

       그저 꿈이라고 치부했던 것이 현실이 되어 다가오는 이 기묘함이란. 혹시나 또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있는 힘껏 뺨을 꼬집었지만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

       

       꿈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게 현실이라고?

       

       

       ‘이게 뭔… 도대체 이게 뭐지? 여기가 어디야?’

       

       

       그저 방 안에서 평화롭게 게임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사박 사박-

       

       파도도 치지 않고 바람도 불어오지 않는 기묘한 이곳에서, 누군가 모래사장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의 발소리다. 누구라도 만나서 이곳에 대해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저, 저기요! 잠깐만요!”

       

       

       저 멀리, 모래사장과 바다의 경계에 서 있는 여인이 보였다. 고요한 호수와도 같은 바다를 바라보는 여인의 뒷모습은 청초하기도 하였고, 어딘가 애달프기도 했다.

       

       여인을 향해 다급하게 뛰어가다가 점차 걸음이 느려졌다. 

       

       

       ‘붉은 머리…?’

       

       

       여인의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가 눈에 들어온다.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무당의 말.

       

       

       ‘선녀?’

       

       

       나를 보필하는 선녀가 있다고 했다. 붉은 머리의 선녀. 그리고 저 여인의 머리도 붉은색이다. 이건 단순한 우연일까?

       

       밤하늘의 별처럼 뿔뿔이 흩어져 있던 기묘한 일들 사이에 선이 그어지기 시작한다. 마치 별자리처럼, 하나의 그림을 그려나간다.

       

       알 수 없는 꿈들과 까만 바다, 붉은 머리의 여인… 저 여인이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것들을 저 여인이 알려줄 것이다.

       

       그러한 확신이 들었다.

       

       사박 사박-

       

       천천히 걸음을 옮겨 여인을 향해 다가간다. 발소리를 들었는지, 여인이 천천히 뒤돌았다. 달도 없는 이 기묘한 공간에서, 여인은 그 스스로 달처럼 빛났다.

       

       순간 빛났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반투명한 베일로 얼굴을 가렸음에도, 그 자태와 미모를 감출 수는 없었다. 바다를 뒷배경으로 별들 사이에서 빛나는, 마치 달의 여신과도 같은 모습.

       

       

       “아니, 그.. 저, 흠 크흠!”

       

       

       얼굴의 절반을 넘게 가렸는데도 알 수 있는 미모에 말문이 막혔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한심한 모습에 문득 자살 욕구가 올라왔다.

       

       얼굴에 피가 몰려 뜨겁게 달아오른다. 어떻게든 더듬더듬 말을 뱉어보려 하지만, 눈동자는 여인의 얼굴을 피해 이리저리 허공을 맴돌았다. 더듬더듬 말이 되려다 만 것들이 튀어나온다.

       

       

       “아, 음. 그, 제가요? 그 뭐냐, 멍청한 소리라는 건 알겠는데. 크흠! 지, 집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아 이걸 어떻게 말해야 되는거지?”

       

       “…반갑습니다.”

       

       “네?”

       

       

       여인이 깊이 허리를 숙인다. 머리를 숙이고 숙이다가, 무릎이 땅에 닿으려고 한다. 초면에 대뜸 절을 받게 생겼다.

       

       

       “아니! 잠깐, 잠깐만요! 이러지 말고, 잠깐 좀 일어나세요!”

       

       “…예. 감사합니다.”

       

       

       문득 다짜고짜 절부터 시작한 무당이 떠올랐다. 요즘 왜 자꾸 이런 사람들만 만나는 걸까.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몰려온다.

       

       멍하니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정수리가 아려왔다. 그러고보니 가끔 내 꿈에 나왔던, 그리고 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악몽에 나왔던 그 여자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인은 굽힌 허리를 펴더니 듣기 좋은 미성으로 말했다.

       

       

       “궁금한 것이 많으실 테지요. 여기가 어디인지, 또 제가 누구인지…”

       

       스륵.

       

       여인은 자신의 얼굴을 가린 베일을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새신부의 면사포와도 같은 그것은 손을 따라 수줍게 올라가며 여인의 얼굴을 드러냈다.

       

       흐읍.

       

       숨이 막혔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저 금빛 눈동자. 황금을 녹여서 보석을 조각해도, 저것보다는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여인의 황금빛 눈동자가 곱게 휘어지며 초승달을 그렸다.

       

       

       “잠시 걸으시죠. 천천히 걸으면서 하나씩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언가에 홀린 것 같은 기분. 나는 저도 모르게 여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사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면사’를 뜻합니다.

    – ‘신선우’님!! 폭풍처럼 몰아치는 후원!! 감사합니다!! 구원 빔!! 주인공아, 구원 펀치가 되어라!! 아앗, 어째서 답글이 두 번 써지는 거지?

    – ‘신선우’님!! 폭풍처럼 몰아치는 후원!! 감사합니다!! 구원 빔!! 주인공아, 구원 펀치가 되어라!! 아앗, 어째서 답글이 두 번 써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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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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