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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9

       

       

       

       

       

       139화. 비사 ( 3 )

       

       

       

       

       

       어둑한 밤하늘은 데모닉의 얼굴을 가렸다. 하여 케니스는 데모닉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구태여 보려 하지도 않았다.

       

       데모닉은 밤의 치마 한 폭에 기대어 남몰래 눈물을 흘렸기에, 케니스는 그저 조용히 그의 옆을 지켰다.

       자식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의 모습이란, 참으로 서글프고 또 슬픈 것이었으니.

       

       

       “후… 못난 모습을 보였구나. 미안하다.”

       

       “…아니에요. 아빠.”

       

       “그 로켓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리아와 내가 결혼식을 올리던 날에 서로 나눠 가졌던 거란다. 소중히 간직해주렴.”

       

       꼬옥.

       

       목에 걸린 로켓이 찰랑이며 은근한 무게를 자랑했다. 케니스는 손으로 로켓을 꼬옥 감싸 쥐었다. 은은한 온기가 느껴진 것 같다면 착각이었을까?

       

       데모닉이 어둑한 밤의 거리를 나아가며 케니스에게 말했다.

       

       

       “그리고 늦었지만, 시련을 통과한 거 축하한다.”

       

       “아. 맞다.”

       

       

       잊고 있던 시련의 존재. 어머니와 데모닉, 만신전에 얽힌 이야기 때문에 잠시 시련에 대한 것을 잊고 있었다. 케니스의 반응에 데모닉이 뒤돌아보며 의아하게 물었다.

       

       

       “설마 탈락한 거니?”

       

       “어, 으음ㅡ 통과했을걸요… 아마도?”

       

       “아마도?”

       

       

       케니스의 애매한 반응에 데모닉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뭐, 됐다. 날이 밝으면 알게 되겠지. 그 전에 돌아와야 할 테니, 우린 좀 더 빨리 움직여야겠어. 서두르자꾸나.”

       

       

       조금 더 빠르게 발걸음을 재촉하는 데모닉. 케니스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네 엄마한테 인사 하러 가야지.”

       

       

       케니스를 위해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희생한 어머니, 리아. 데모닉의 말에 케니스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차올랐다. 

       

       슬픔, 그리움, 애정, 애틋함… 거품처럼 보글보글 떠올랐다가, 다시금 깊게 가라앉는다. 차오르는 무언가를 애써 눌러 담았다.

       

       눈물을 흘리기에는 아직 너무 일렀다.

       

       밤하늘의 별을 길동무 삼아 얼마나 나아갔을까. 데모닉은 성도의 한 공동묘지에 이르렀다. 야트막한 동산에 위치한 공동묘지.

       수많은 묘비 사이로 리아라고 쓰여있는 새하얀 묘비가 있었다. 누군가 꾸준히 관리했는지, 묘비는 유독 상태가 깨끗했다.

       

       데모닉의 시선이 묘비를 향했다. 그의 눈에는 그리움과 슬픔이 한껏 묻어 나오고 있었다. 

       케니스는 묘비에 새겨진 문구를 속으로 천천히 읽었다.

       

       

       ‘별처럼 빛나고 눈처럼 아름다웠던 그대. 여자에서 아내로, 마침내 어머니로. 그리하여 잠들다…’

       

       

       그래. 그녀의 어머니는 참으로 눈송이처럼 덧없이 잠들었다. 새하얗고 또 아름답게, 서글프게.

       

       스윽.

       

       묘비를 찬찬히 쓸어내린다. 시리도록 차가운 감촉이 오히려 반갑다. 케니스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벌리려 애썼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말을 해야 좋을까.

       

       여러 가지 말들이 모이고 흩어진다. 단어와 단어가 조합되고 분해되기를 반복하다가, 케니스는 간신히 한 마디를 뱉었다.

       

       

       “…저 왔어요.”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인사였지만, 딸과 어머니의 첫 만남에 어울리지 않는 인사였지만.

       

       데모닉도 케니스도.

       

       그저 묵묵히 묘비 앞에 고개 숙였다.

       

       십수 년에 걸쳐, 마침내 모인 가족의 모습이란.

       참으로 그러했다.

       

       

       

       *****

       

       

       

       슬픔은 밤에 묻고, 떠오른 태양은 새로운 하루와 함께 찾아온다. 케니스는 밤새도록 데모닉과 이야기를 나누며 울고 웃고 하다 늦은 새벽에야 조금 잘 수 있었다.

       

       그 결과는 팅팅 부어버린 눈. 프리가는 케니스를 만나자마자 첫인사로 눈을 지적했다.

       

       

       “야, 너 울었냐?”

       

       “예? 아, 아니에요!”

       

       “아니긴. 눈이 팅팅 부었구먼. 야 이리 와봐. 왜 울었는데, 누가 울렸어? 한스 그 새끼야?”

       

       “아닛, 한스 씨가 거기서 왜 나와요!”

       

       “그 새끼 그거 어? 어린 여자애 데리고 다닐 때부터 이상했어. 야! 말리지 말아봐. 이 기회에 내가 그 새끼 버릇을 고쳐놔야지. 그런 놈들은 아주 그냥 손모가지를 잘라놔야 버릇이 고쳐진다고!”

       

       “고, 공녀님! 그런 거 아니에요!! 도끼, 도끼는 좀 놓고!”

       

       

       무슨 상상을 했는지 두 눈에서 살기를 가득 흘리며 도끼를 들고 나서려는 프리가와 그걸 말리는 케니스. 이른 아침부터 결투장에서는 한바탕 소란 아닌 소란이 일어났다.

       

       

       “…뭐지? 데이지, 누가 내 이름 부르지 않았니?”

       

       “우음. 아니요? 전 못 들었어요.”

       

       “그런가?”

       

       

       이제 막 결투장의 입구를 들어오던 한스는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듯한 기분에 머리를 긁적였다. 입에는 평소 자주 먹는 사탕을 물고 있어 말투가 약간 어눌했는데, 데이지는 그걸 보고 귀엽다며 웃었다.

       

       

       “아. 한스 님. 이거 들고 가세요.”

       

       “이게 뭐야? 도시락?

       

       “네. 한스 님이 고기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고기를 좀 많이 넣었어요.”

       

       “세상에. 이걸 다 직접 만든 거야?”

       

       

       데이지가 건넨 도시락의 내용물은 휘황찬란했다. 잘 구워진 고기와 빵은 먹음직한 자태를 뽐냈고, 사이사이 귀여운 동물 모양으로 꾸며진 야채 조각들이라니. 한스는 입이 떡 벌어졌다. 이게 데이지의 나이에 만들 수 있는 수준이란 말인가?

       

       한스의 놀랍다는 반응에 데이지는 몸을 베베 꼬았다.

       

       

       “헤, 헤헤. 전부 제가 만든 건 아니고 엄마랑 같이… 그래도 제가 만든 것도 제법 많아요!”

       

       “이야. 데이지 대단한데? 너무 고마워, 잘 먹을게.”

       

       슥 슥.

       

       기특한 마음에 한스는 데이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스의 손길을 한껏 만끽하며, 데이지는 머릿속으로 엄마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 “기억하렴, 데이지. 남자는 먹을 것부터 길들여가는 거야. 네 손맛에 맞춰서 그 남자의 입맛을 길들이는 게 시작이란다.”

       

       씨익.

       

       데이지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었다. 그동안 그녀는 해자를 메우듯, 한스의 주변을 차근차근 점령해가리라.

       

       

       ‘제가 놓치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한스의 손 아래로 데이지의 눈동자가 번뜩였지만, 한스는 아무것도 모른채 그저 도시락을 받고 희희낙락할 뿐이었다.

       

       

       “하하! 아침부터 이렇게 부지런하다니. 젊은이들이 보기 좋구먼.”

       

       “늙은이들은 괜히 방해하지 말고, 저쪽 구석에 가서 쉬고 있자고.”

       

       “우리도 아직 한창때 아닌가? 내가 술집에 가면 여자들이 그렇게 모여든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하게! 자네 흰 머리를 보고 어느 여인이 좋아한단 말이야?”

       

       “세상은 넓은 법이야. 자네가 모르는 여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자네는 평생 모르겠지.”

       

       

       어쩐 일로 멀쩡하게 걸어들어온 라이언하트와 애덤이 옥신각신하며 결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달리 체구가 큰 라이언하트와 유달리 키가 작은 애덤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한편의 서커스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오늘이 결투 축제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는 만큼, 복장도 정갈하게 차려입고 왔다. 라이언하트는 오랜만에 꺼낸 팔라딘 정복을, 애덤은 번듯하고 깔끔한 옷을 차려입었다.

       

       두 노인의 뒤를 이어 등장한 것은, 어쩐지 굉장히 피곤해 보이는 이스칼이었다. 밤새 잠을 설친것인지 유독 눈 밑이 퀭한 것이 도드라졌다.

       

       오죽했으면 프리가를 말리던 케니스가 깜짝 놀라서 걱정할 정도.

       

       

       “세상에, 이스칼? 괜찮아요?”

       

       “아, 아… 용사님. 저는 괜찮습니다…”

       

       

       괜찮다고 말하는 입과 그렇지 못한 표정.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러는 용사님이야말로 괜찮으신가요? 며칠 만에 일어났다고 들었습니다.”

       

       “아… 저야 뭐, 멀쩡하죠.”

       

       

       케니스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체감상으로는 하룻밤 정도 지났다고 느꼈는데, 자신이 며칠 만에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서는 얼마나 놀랐던가.

       

       

       괜히 자신을 침대로 옮겨둔 것이 아니었다.

       

       비척거리는 이스칼을 발견한 프리가가 빠르게 달려왔다. 투두두두하며 달려오다가 이스칼과 가까워질수록 점차 속도가 줄어든다.

       

       이윽고 이스칼의 앞에 도착한 프리가는 무언가 어색하게 쭈뼛거리는 태도였다.

       

       

       “그으, 야! 며, 면상이 왜 그 모양이냐?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잔 녀석처럼…”

       

       “공녀님, 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밤늦게까지 생각할 것이 있어서 조금…”

       

       “엉? 뭔데? 무슨 일인데? 야! 너 그거 뭐야. 편지? 편지야?!”

       

       “우악! 비, 비밀입니다! 으아악!”

       

       “야 이씨, 말해! 빨리 말해!! 무슨 편지야! 연애편지? 연애편지야?! 야!! 어떤 년이야!”

       

       

       품속의 무언가를 숨기려는 이스칼과 그걸 강제로 알아내려는 프리가. 그 과정에서는 약간의 무력이 동반된 취조가 동원되었다. 프리가의 헤드락이 이스칼에게 작렬했다.

       

       뭉클.

       

       프리가의 푹신한 가슴이 이스칼의 머리에 닿았고, 이스칼은 발작하듯 발버둥 쳤다. 그래도 프리가의 품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우, 우아아악! 공녀, 공녀님!! 머리!! 제 머리에!! 다, 닿고 있습니다!!”

       

       “말해, 빨리 말하라고!! 어떤 년이냐고!! 엉? 네 머리가 왜ㅡ 흐잇!!”

       

       

       이스칼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개졌다. 가슴이 닿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프리가가 후다닥 이스칼을 놓았다.

       

       

       “너, 너너너! 너 이 새끼!! 어?! 뒤, 뒤졌어 진짜! 이 응큼한 새끼!!”

       

       “으아악, 끄학!! 악!”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프리가는 도망치는 이스칼을 뒤쫓으며 분노의 추격을 이어갔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티격태격하기는 했지만… 나름 사이가 좋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웃고 있는 케니스에게 데모닉이 슬쩍 다가왔다. 한 손으로 가볍게 케니스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케니스, 괜찮니? 피곤하거나 몸이 이상하지는 않고?”

       

       “조금 늦게 잔 걸로 걱정하시긴. 쌩쌩해요.”

       

       “그래. 그렇다면 좀 다행이구나.”

       

       찌릿!

       

       데모닉은 케니스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케니스의 몸을 다른 방향으로 돌렸고, 고개를 슬쩍 돌려 한스를 바라보았다.

       

       실로 살벌한 눈빛. 동공이 잔뜩 축소된 데모닉의 눈에는 뚜렷한 살기가 가득했다.

       

       

       ‘널 죽이겠다.’

       

       오싹!

       

       한 손에 도시락을 들고 케니스를 향해 다가가던 한스는 뱀을 마주한 개구리처럼 얼어붙었다. 벽을 뛰어넘은 강자가 보내는 살의는 형체를 갖추어 한스를 위협하는 듯 했지만!

       

       

       “끄흐읍…!”

       

       

       한스, 그도 규격 외의 존재들과 몇 차례 사선을 오가면서 경험이 쌓인 전사. 이를 악물고 데모닉의 살기를 견디며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삐걱거리는 관절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식은땀이 뚝뚝 흘러내린다.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한스의 걸음이 앞으로 나아간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으니, 한스는 앞으로 끊임없이 나아갔다.

       

       

       “호오?”

       

       

       데모닉의 눈에 제법이라는 기색이 돌다가, 쿵 하고 발을 굴렀다. 신성력이 실린 발구름은 땅을 타고 흐르다가 한스의 아래에서 터져 올랐다.

       

       펑!

       

       “우아아악!”

       

       

       가벼운 폭발에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가 쿵 하고 떨어진 한스. 그 와중에도 도시락을 품에 안아서 지켜냈다. 데모닉은 한스를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려 비릿하게 웃었다. 

       

       허약한 놈팽이에게 케니스를 넘겨줄 수는 없다.

       

       

       “응? 어디서 한스 씨 목소리가…”

       

       “아! 케니스. 혹시 오늘 안토니오 대사제님을 만났니?”

       

       

       데모닉이 다급하게 화제를 전환하며 케니스의 주의를 끌었다. 잠시 데모닉의 눈을 바라보던 케니스가 픽 웃더니 대답했다.

       

       

       “아뇨. 왜요?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시대요?”

       

       “아마 너랑 나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 모양이던데, 만신전에도 안 계시고… 어디 계신지 알 수가 없구나.”

       

       “음… 뭐, 급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나중에 찾아봬도 괜찮겠죠.”

       

       

       데모닉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관중석에는 점차 사람들로 차기 시작했다. 어쩌면 오늘이 결투 축제의 마지막 날이라는 소문이 퍼졌는지, 그 어느 때 보다 사람이 가득 모여들었다.

       

       웅성이는 사람들의 소음은 그 자체로 거대한 울림이었다.

       

       둥ㅡ 둥ㅡ 둥ㅡ!

       

       소음을 뚫고 들려오는 거대한 북소리. 사람들은 저마다 떠드는 것을 멈추고, 결투장에 집중했다.

       

       결투장을 채우던 소음이 완전히 가라앉을 무렵, 한 무리의 사람들이 결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

       

       “음?”

       

       

       케니스와 데모닉의 입에서 의구심 가득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얀 천 옷을 입은 그들은 케니스와 데모닉이 너무나 잘 아는 얼굴이었으니까.

       

       맨발에 하얀 천 옷을 걸친 그들은 결투장을 가로질러 거대한 옥좌가 보이는 곳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털썩 무릎을 꿇었다.

       

       옥좌 앞에 무릎 꿇은 사람들, 그들의 가장 선두에 있는 것은.

       

       늙은 대사제, 안토니오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벌꿀같이 달콤한 후원!! 감사합니다!! 아메리카 대륙은 지구 방장 사기맵이 분명합니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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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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