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40

       

       

       

       

       

       140화. 비사 ( 4 )

       

       

       

       

       

       까만 바다와 은하수가 가득한 이곳.

       

       모래사장에 무릎을 꿇은 케넬름은 내게 옥좌에 앉으라는 둥, 뭔가 부담스러운 말을 꺼냈다. 척 봐도 보통 일은 아니다.

       

       

       “아니, 그… 뭔 옥좌요?”

       

       “제가 말을 잘못했군요. 위대하신 분이시여, 그대께서는 이미 옥좌에 앉아 계십니다. 그저 당신의 뜻을 펼치시면 됩니다.”

       

       “아니 그게 뭔 소리예요 대체…”

       

        “행하시면 그리될 것입니다.”

       

       “하아ㅡ”

       

       

       분명 대화를 하고 있음에도 대화하고 있지 않은 이 기분. 서로 간의 요점과 핀트가 빗나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일단 손에 들고 있는 서리알을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려 놓았다. 꿀렁이는 화면을 통과하는 그 감촉은 묘하게 소름 끼치는 것이, 차가운 젤리에 손을 집어넣는 것 같았다.

       

       툭.

       

       우다다다-

       

       잔디밭에 서리알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자, 손톱만한 크기의 드워프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서리알을 껴안았다.

       

       드워프들에게 둘러싸이자 부르르 몸을 떠는 서리알을 잠시 바라보다가, 무릎을 꿇고 있는 케넬름을 바라보았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다.

       아주 자세하고 차근차근하게, 정확한 설명이.

       

       

       “케넬름 씨? 일단 좀 일어나서 설명을 좀 해봐요. 옥좌는 뭔 소리고, 여긴 어디고…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아. 제가 감정이 앞서서 그만…”

       

       

       잠시 멍때리던 케넬름은 그제서야 작게 감탄을 흘리더니,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골 때리는 여자다.

       

       

       “위대한 분이시여, 그대께서는 혼란스러운 세계를 구원할, 아니. 이미 구원하고 계시는 유일한 신이십니다. 다름 아닌 그 게임을 통해서 기적을 행하고 계시지요.”

       

       “…예?”

       

       “세상을 좀 먹는, 이 영혼의 바다를 더럽히는 악마들을 처단하시어 세상을 구원하시는 분. 그것이 바로 당신, 여섯 번째 신이십니다.”

       

       “허…?”

       

       

       예상했던 스케일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이야기. 덕분에 잠시 뇌가 멈춘다는 경험을 했다. 떡 벌어진 입을 애써 수습했다.

       

       

       “아, 아니. 잠깐, 잠깐만… 그러니까, 내가 지금 신이라고요? 이 게임은 다른 세계랑 연결되어 있고, 악마를 죽여서 세상을 구해달라?”

       

       “예. 정확합니다.”

       

       “허, 아니 이게 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갑자기 신이라고? 내가? 고작 게임 좀 했을 뿐인데? 세상을 구해달라는 건 또 뭐야. 이렇게 막무가내로?

       

       케넬름에게 따지려고 했는데 생글생글 웃는 케넬름의 얼굴을 보니, 그럴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예쁜 사람이 저렇게 웃는 건 반칙이지.

       

       

       “위대한 분이시여, 이걸 좀 봐주시겠습니까?”

       

       

       케넬름은 광산을 비추던 화면에 손짓했다. 손짓을 따라 화면이 빠르게 바뀌더니, 이윽고 콜로세움이 나타났다. 케니스와 다른 영웅급 모험가들이 시련을 치르던 곳.

       

       백발 노인들이 흰옷을 입고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 보인다. 혼자 몸을 일으킨 노인이 무어라고 크게 외치고 있다.

       

       

       “이건…?”

       

       “저들은 만신전… 그러니까 여섯 신을 모시는 사제들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위대하신 분에게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있군요.”

       

       “나한테? 고해성사나 뭐 그런 것처럼?”

       

       “예, 비슷합니다.”

       

       

       담담하게 말하는 케넬름의 얼굴 한 켠에는 이유 모를 그림자가 엿보였다. 황금빛 눈동자에 아른거리는 저것은, 안타까움일까 슬픔이었을까.

       

       일단 나한테 고해성사한다고 하였으니, 화면 속 노인이 외치는 말에 집중했다.

       

       

       “와- 이거 진짜 미친…”

       

       

       노인이 굳은 목소리가 전하는 내용은 꽤 충격적이었다.

       

       케니스의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인신 공양과 그 어머니의 희생, 주도자의 타락과 이로 인한 악마들의 습격. 그로 인한 무수한 민간인의 사망, 이를 은폐한 만신전.

       

       

       “잠깐, 잠깐. 저기서 말하는 케니스가 내가 알고 있는 그 케니스? 저게 케니스가 어렸을 때 있던 이야기라고?”

       

       “…그렇습니다. 만신전은 신을 만들겠다는 오만하고 방자한 야심을 품었고, 그 끝은 처참한 실패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은폐하였죠.”

       

       “와, 골 때리네 이거.”

       

       

       내가 신이라는 이 상황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지금 저 할아버지가 말하는 이야기는 더 어지럽다. 그런 사실을 그냥 숨기려고 했다고? 그리고 이제서야 밝힌다니.

       

       케넬름을 바라보니 그녀의 눈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어쩌면 동질감일까? 저들을 이해하지만, 그릇된 선택을 안타까워하는 그런 감정이 가득했다.

       

       기분 탓인지 안색도 아까보다 조금 창백해졌다.

       

       

       “그래서, 내가 뭐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요.”

       

       “… 그저 행하고자 하는 바를 행하소서. 당신께서 가는 길은 방향이 될 것이고, 그대의 의지가 곧 하늘의 뜻입니다.”

       

       스윽.

       

       케넬름이 고개를 깊이 숙이며 내 뜻을 존중한다는 의지를 보였다. 문득 무당이 내게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간다.

       

       

       ‘상제님이 가는 길이 곧 천도…라고 했었지.’

       

       

       천도. 하늘의 길. 천지자연의 도리.

       

       솔직히 내가 신이라는 것이 실감 나지는 않았고, 이 모든 상황도 어쩐지 현실감은 없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런 걸까.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이 도리를 행해야 한다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당연한 일.

       

       

       “일단 얘기를 좀 들어봐야겠어.”

       

       

       삼자대면.

       이런 이야기는 당사자들의 말을 모두 듣는 것이 중요한 법이다.

       

       아까의 서리알을 떠올리면서 화면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물컹한 젤리는 통과하는 듯한 감촉이 팔을 감싸고, 콜로세움을 향해 팔을 뻗었다. 미니어처 콜로세움의 피규어를 꺼내는 기분이다.

       

       다른 점이라면 이건 진짜 사람이라는 거겠지.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여서 노인과 케니스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화면 밖으로 손을 꺼냈다.

       

       

       

       

       

       *****

       

       

       

       

       

       무리의 제일 선두에 위치한 안토니오의 표정은 결연하였다.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 특유의 각오가 보였으며, 잔뜩 긴장한 눈썹의 끝은 파르르 떨려왔다.

       

       데모닉이 작은 탄식을 흘렸다. 안토니오와 그의 뒤에 흰 천 옷을 입은 이들은 모두 낯이 익은 얼굴들이었다.

       

       희생제의 전말을 알고 있는 자들.

       리아의 희생과 로페누스의 타락, 그 끔찍한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안토니오를 따라 옥좌를 향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조금이나마 파악한 데모닉과 달리, 케니스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대사제들의 돌발 행동을 지켜보는 다른 이들의 표정도 케니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뭐, 뭐에요? 안토니오 대사제님이랑 다른 분들이 어째서…?”

       

       “케니스. 저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네 엄마의 죽음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네?”

       

       

       데모닉의 말에 케니스가 재빨리 뒤에 위치한 자들의 얼굴을 샅샅이 훑었다. 과연, 데모닉의 말대로 자세히 바라보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케니스가 시련에서 깨어난 밤, 안토니오와 함께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각오를 굳힌 표정으로, 또는 약간의 불안이 깃든 표정으로. 안토니오의 뒤를 따라 무릎을 꿇고 있었다.

       저들이 도대체 왜 저런 짓을 하는 걸까.

       

       케니스의 표정에 의문이 더욱 짙어졌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옥좌를 바라보던 안토니오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전능하신 여섯 신과 이 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고백합니다. 저희는 의무를 등졌고 지은 죄가 무거우며, 행실을 불경하게 하였나이다.”

       

       쿵 쿵!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희의 큰 탓이옵니다.”””

       

       

       안토니오의 말을 이어, 무릎 꿇은 이들이 가슴을 쿵쿵 치며 크게 복창하였다.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관중들은 침묵을 지키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옵건대 저희의 죄를 용서하지 마소서. 그대의 가장 뜨거운 지옥으로 우리를 데려가소서.”

       

       

       짧은 기도를 외운 안토니오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관중석을 향해 크게 외쳤다.

       

       

       “이 자리에 모인 수많은 분들 그리고 성도의 시민들이여! 감히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이는 만신전의 원죄요, 씻겨지지 않는 오물과도 같은 추악함입니다.”

       

       후읍ㅡ

       

       한 차례 호흡을 가다듬은 안토니오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십수 년 전! 악마들이 대대적으로 성도를 습격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수십의 성기사가 눈을 감았고, 수백의 백성들이 희생당했습니다. 참으로 끔찍하고,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황제 카이사르는 이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성도가 악마들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카이사르도 익히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 사건을 구태여 언급하는 이유가 뭐냐는 것.

       

       

       ‘그 일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는 뜻인가?’

       

       “그 습격의 배후에는… 악마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악마에 의해 타락한, 악마 숭배자가 되어버린 사제가 있었습니다.”

       

       

       안토니오는 침중한 표정으로, 하지만 흔들림 없이 그 날의 진실을 풀어놓았다. 오랫동안 어둠에 묻혀있던 진실은 케케묵은 녹이 벗겨지듯, 점차 제 모습을 드러냈다.

       

       다름 아닌 만신전의 입을 통하여.

       그 날의 추악한 진실을, 만신전의 광기를 담담히 풀어냈다.

       

       사람들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누군가는 만신전에게 배신감을 느꼈고, 로페누스의 추악함에 치를 떨었다. 딸을 위해 희생한 어미에게 연민을 품은 자도 있었고, 만신전의 어리석은 행동을 비난하는 자도 있었다.

       

       

       “우우ㅡ!!”

       

       “어떻게 그런 걸 숨길 수가 있냐!”

       

       “너희들이 그러고도 대사제야?!”

       

       

       술렁이는 결투장.

       

       비난, 욕설과 분노.

       

       안토니오와 대사제들은 그 모든 것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숙연하게 눈을 감고, 옥좌를 향해 고개 숙였다. 너무 늦은 고해성사였다. 이제 모든 것은 신께서 판단하시리라.

       

       얼마나 기도를 올렸을까.

       

       잔뜩 흥분한 관중들의 열기가 조금 식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쿠웅ㅡ!

       

       하늘이 제 몸을 반으로 가르며, 천지가 개벽하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초콜릿처럼 달달한 후원!! 감사합니다!! 19끔 외전이라뇨…!! 작가쟝은 그런거 몰라요…!! 히에에엑!!!!

    다음화 보기


           


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