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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0

       

       

       

       

       

       150화. 수상할 정도로 수상한… ( 5 )

       

       

       

       

       

       저벅 저벅.

       

       거친 숲속을 내려가는 프리가의 발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제법 오랫동안 오갔는지 무성한 수풀 사이로 작은 오솔길도 있었고, 걸리적거릴 만한 나뭇가지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녀의 앞에서 더욱 빨리 걸어야 하는 시종만 체력이 부쳐서 죽을 노릇이었다.

       

       하지만 시종의 걸음은 결코 느려지지 않았다. 프리가의 매서운 살기가 가시처럼 뾰족하게 그의 등을 콕콕 찔러대고 있었는데, 시종을 향한 살기가 아니었음에도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 느낌은 마치 뭐랄까… 연락도 없이 늦게까지 술을 먹고 집에 들어가는데, 창문 너머로 아내의 그림자가 보였을 때와 비슷했다. 물론 그는 숫총각이었지만, 느끼기에는 그랬다.

       

       

       “야. 생각해보니까 이스칼이랑 그 계집애가 같이 다닌다는 거 성도에 소문 다 났겠네? 이제는 이스칼 걔 얼굴 모르는 사람도 없잖아.”

       

       

       조용히 걷던 프리가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헥헥거리던 시종이 빠릿하게 대답했다.

       

       

       “아이, 고! 후윽ㅡ 아, 아닙니다 공녀님. 이스칼 님이 헤엑, 밖에서는 얼굴을 가리셔서ㅡ 후욱. 저야 원래 이스칼 님 따라다녔으니까요ㅡ 아이고고!”

       

       “…그래? 너 이름이 뭐랬지? 산고? 상디?”

       

       “산쵸! 산쵸입니다요, 공녀님!”

       

       “왜 이걸 나한테 말해주러 온 거야? 이스칼 시종이면 나한테서 숨겨야 되는거 아니야?”

       

       “헥ㅡ 이스칼 님의 배필은, 훅 공녀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ㅡ! 훅, 후읍!”

       

       

       이스칼이 어렸을 때부터 곁에서 시중을 들었다는 산쵸의 말에 불쾌한 와중에도 조금은 기분이 좋아진 프리가. 그녀는 훗날, 이스칼이 자신에게 장가오는 날에 산쵸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짧은 대화를 끝으로 그녀는 산쵸의 뒤를 따라 묵묵히 걸었다.

       

       

       “헥, 헤엑! 고, 공녀님. 거의 다 왔습니다.”

       

       “그래? 여기에 있단 말이지?” 

       

       

       사람이 바글거리는 번화가에 도착하고 나서야 산쵸의 발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어찌나 열심히 발을 놀렸는지 땀에 젖은 웃옷이 몸에 척하고 달라붙어 있다.

       

       괜스레 산쵸에게 미안해진 프리가가 그를 돌려보냈다.

       

       

       “됐어. 이제 가봐. 여기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팅ㅡ

       

       노고에 대한 보답과 사과의 의미가 담긴 황금빛 동전이 하늘을 날아 산쵸의 품으로 떨어졌다. 죽을상이던 산쵸가 활짝 웃으며 허리를 꾸벅 숙였다.

       

       

       “예, 예! 같이 다니시는 여자는 커다란 로브를 쓰고 다닌다고 하니까 알아보기 쉬우실 겁니다.”

       

       “엉 그래. 얼른 가서 쉬어. 누가 뭐라고 하면 내가 쉬라 했다고 하고.”

       

       “예 감사합니다, 공녀님!”

       

       

       산쵸는 예의 바르게 허리를 꾸벅꾸벅 숙이고는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프리가는 이내 인파를 바라보며 지나가는 이들의 얼굴들을 슥 훑었다.

       

       이스칼 이스칼 이스칼.

       

       감히 그 동안 얼굴 좀 못 봤다고 이따위로 나와?

       

       

       ‘하. 넌 뒤졌어 진짜.’

       

       카그긍ㅡ!

       

       한 쪽 어깨에 기대서 들고 있던 도끼를 축 늘어뜨리고 바닥에 질질 끌자, 반듯한 블록이 깊게 파이면서 작은 불똥이 튀었다. 케니스나 데모닉이 알면 나중에 뭐라 할 테지만, 그건 나중의 일 아니겠는가?

       

       지금 중요한 건 그 건방진 년의 낯짝을 보는 거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년인지, 얼마나 곱상하게 생겨먹은 년인지 모르겠지만. 만난다면 얼굴 가죽을 시원하게 뜯어주리라.

       

       

       “엄마 저기… 저 분 혹시ㅡ”

       

       “쉬잇! 조용히 하렴, 조용히!”

       

       “공녀님 안녕하ㅡ 죄, 죄송합니다…”

       

       크그극ㅡ!

       

       용 사냥꾼의 도끼가 불똥을 피우며 사납게 이빨을 갈고, 프리가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던 사람들은 그녀의 눈빛을 보고는 주춤주춤 물러났다. 

       

       살벌하기 짝이 없는 모습. 당장이라도 누구 하나 매달아 죽일 눈빛이다.

       

       속닥 속닥.

       

       “공녀님이 왜 여기에 도끼를 들고 오셨지…? 설마 사악한 이단 새끼들이라도 나타났나?”

       

       “그럴 리가. 그랬으면 진작에 성기사들이 여기를 쫙 덮었을걸?”

       

       “우와! 도끼 엄청 크다아ㅡ!”

       

       

       저들끼리 작게 나누는 말들.

       

       화려하게 막이 오르고 여러모로 긴 여운과 함께 그 끝을 장식한 ‘결투 축제’ 이후, 사람들 사이에서 이스칼과 프리가는 사실상 공개 연애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누구 하나 먼저 말로 고백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시련에서 보여줬던 이스칼의 행보는 열정적이고 뜨거운 순애보 그 자체였으니까. 타인이 보기에는 당연히 연인으로 보이는 것이다.

       

       …

       

       어쩌면 이스칼만 그 사실을 몰랐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그건 그거대로 화나는 일이다. 프리가는 성킁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이 번화가 어딘가에 그 빌어먹을 도둑고양이 같은 년과 건방진 이스칼이 있다.

       

       타앗!

       

       프리가가 날듯이 땅을 박차며 달려나갔다. 거대한 도끼를 요령 좋게 들어 올려서 행인들에게 닿지 않게 했고, 빼곡하게 모여있는 사람들의 틈으로 바람처럼 움직이며 날아오른다.

       

       스슥ㅡ.

       

       그러면서도 눈동자가 쉼 없이 굴러가며 지나가는 얼굴들을 살핀다. 가게 창문으로 보이는 내부의 손님, 지나가는 행인과 흥정하는 상인들.

       

       

       ‘…찾았다.’

       

       

       저 건너편의 찻집.

       

       딱 이스칼만한 덩치의 로브와 그 옆에 앉은 로브 쓴 녀석 하나. 온몸을 꽁꽁 가렸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이스칼이 확실했다.

       

       

       ‘넌 뒤졌어.’

       

       

       프리가는 찻집의 앞에서 도끼를 양손으로 고쳐 잡았다.

       

       도낏자루가 손에 착 감긴다.

       

       스윽ㅡ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살기는 갈무리하고, 숨소리도 작게 조절한다. 마치 사냥감에게 달려들기 직전의 기세로.

       

       찻집의 문이 지척까지 다다랐을 때!

       

       콰앙ㅡ!

       

       바람처럼 쏘아진 도끼가 문을 종잇장처럼 부수며 나아간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안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만 요란하고 적당히 힘 조절했으니 다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프리가는 처참하게 그 흔적만이 남아 덜렁거리는 문을 발로 박차고 들어가며 외쳤다.

       

       

       “이스칼 나와!!”

       

       

       어떻게 생겨먹은 년인지, 낯짝이나 한번 보자.

       

       

       

       *****

       

       

       

       

       

       로브를 뒤집어쓴 이스칼이 초조하게 다리를 떨며 재촉했다.

       

       

       

       

       “그으, 셀리나 양? 조사에 협조할 생각은 있는 거요? 오늘도 벌써 가게만 몇 군데를 돌아다니고ㅡ”

       

       “흐응ㅡ 재촉하지 마. 퍼리우스 후작이 그렇게 연회를 자주 여는 줄 알아?”

       

       “그건…”

       

       “후작은 조심성이 강해. 자기가 섣부르게 찔러본 탓에 숨어서 더 하다고. 이러면 나도 물건 생겼을 때 말고는 연락을 못 한다니까? 그러니까 우선 물건을 구해야지.”

       

       “그 물건이라는 게 동물 귀가 그려진 그림을 말하는 거 아니오? 그럼 그냥 화가한테 돈을 주고 시키는 편이 효율적일 텐데”

       

       “쯧쯧. 자기는 퍼리우스 후작을 너무 과소평가하네. 그 후작이 취향은 좀 변태같아도, 보는 눈이 얼마나 높은지 알아?”

       

       

       셀리나가 차를 호록 마시며 중얼거렸다. 

       

       

       “그 후작은 어지간한 작품이 아니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만나려면 이렇게 계속 돌아다니면서 ‘그 그림’을 구하는 수밖에 없어. 아니면 그에 버금가는 그림이나 예술품을 구하던가. 자기는 그런 거 구할 수 있어?”

       

       “그건…”

       

       “어지간한 걸작이 아니라면 후작이 아니라 그 밑의 고용인들 선에서 막혀.”

       

       

       순간적으로 만신전 복도에 걸려있는 성인들의 초상화가 스쳐 지나갔지만, 그걸 건드리면 무조건 천벌이다. 이스칼이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치? 그러면 후작이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를 만날 물건을 찾는 수밖에 없어. 그중에서 제일 쉽고 빠른 건 이렇게 골목길을 돌아다니면서 ‘그 그림’을 찾는거고.”

       

       “…후작이 이렇게나 잘 숨을 줄은 몰랐는데.”

       

       

       퍼리우스 후작에 대한 조사는 진척이 없었다.

       

       제국 출신의 귀족이라는 것을 알아냈으니, 금방 찾을 줄 알았건만 땅으로 숨었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도무지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때마침 세례식으로 성도에 머물고 있던 카이사르 황제의 적극적인 협조로 퍼리우스 후작의 제국 시절 얼굴과 이름, 신상 정보 등은 확보했지만 모든 것들이 무용했다.

       

       그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탐색하고 조사해도, 성도에 있는 퍼리우스 후작을 찾을 수 없었다.

       

       

       ‘연회장과 저택은 언제 냄새를 맡은 건 지 벌써 정리했고…’

       

       

       결국 선택한 것은 후작이 환장한다는 예술품으로 만나는 것. 셀리나는 그 수단으로 골목길에서 가끔 발견된다는 수수께끼의 그림을 선택했다.

       

       호롭ㅡ

       

       “느긋하게 마음을 먹어야지. 그림을 줍는 건 완전히 운이라서 어쩔 수 없어.”

       

       “휴우ㅡ”

       

       

       이스칼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조사에 진척이 없으니 의욕은 사라지고 점차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조사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사실은 그냥 수상할 정도로 교양이 넘치는 변태들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변태라고 하기에는 너무 철저할 정도로 숨어버린 후작.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끝이 찝찝하다.

       

       

       ‘정말로 하늘로 솟아버린 것이 아니고서야 원…’

       

       쫑긋.

       

       “음?”

       

       

       달달한 케이크와 차를 즐기던 셀리나의 고개가 한순간 찻집의 문을 향하고ㅡ.

       

       콰앙ㅡ!

       

       튼튼한 문이 부질없이 흩날리며 터져나갔다.

       

       

       “꺄아아악!”

       

       “뭐, 뭐야! 무슨 일이야!”

       

       “다들 고개 숙여!”

       

       

       자욱하게 일어나는 먼지. 

       

       그 사이를 헤치며 한 인영이 외쳤다.

       

       

       “이스칼 나와!!!”

       

       

       익숙한 목소리. 모를 수가 없다.

       이스칼의 동공이 풀리고 거세게 흔들렸다.

       

       차가운 겨울바람과 함께, 공녀님이 오셨다.

       

       

       

       

       

       *****

       

       

       

       

       

       “이게 다야?”

       

       

       처음 발견한 셀리나를 제외하고도 열심히 성도를 돌아다니면서 잊힌 핏줄들을 찾아 다녔다. 믈론 투자한 시간에 비하면 성과는 거의 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겨우 남자 한 명이 끝이라니.’

       

       

       일단 없는 것보다는 좋을 것이다. 여자 한 명, 남자 한 명 이렇게 성비도 딱 맞아떨어지고.

       

       

       삥뽕ㅡ!

       

       《잊힌 것들의 후손, ‘털북숭이 로한’을 발견했습니다!》

       

       

       술에 취해 으슥한 골목길에서 자고 있는 녀석. 몸에 털이 엄청 많은 것이 왜 털북숭이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다.

       

       

       ‘얘는 무슨 동물 귀가 생기려나.’

       

       

       뭐가 생기더라도 그닥 보고 싶은 모습은 아니리라. 세상모르고 자는 로한에게도 6천의 신앙심으로 동물 귀를 달아줬다.

       

       자진해서 남자에게 동물 귀 달아주는 날이 올 줄이야. 세상일 참 모르는 거다.

       

       

       ‘아. 한스’

       

       

       새로운 룬을 각인시킨 한스에게로 화면을 옮긴다.

       

       늦은 밤까지도 열심히 망치를 두들기는 애덤과 건물 밖에 멍하니 서 있는 한스와 한스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데이지, 상품으로 받은 유니콘도 있었다.

       

       푸르륵ㅡ

       

       연신 투레질하며 데이지의 쓰다듬을 즐기는 녀석. 내가 유니콘을 줬지만 저건 좀 많이 아닌 것 같다.

       

       

       ‘저거 날 잡아서 중성화라도 한번 해야겠는데.’

       

       

       설마 아직 어린아이인 데이지한테도 저딴 식으로 행동할 줄이야. 언제 한번 좋은 날 잡아서 유니콘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겠다.

       

       그 후에도 이리저리 화면을 옮겨가며 구경하다가 이제 그만 꺼야겠다 싶을 때.

       

       삥뽕ㅡ!

       

       《성지 방문을 추천하는 주민이 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게임을 끄려는 나를 케넬름이 붙잡았다. 뭔가 추천해줄 것이 있는 모양. 일단 메시지 창을 따라 화면을 옮겼다.

       

       화살표가 이끄는 데로 쭈욱 따라갔다니, 의외의 인물에게서 멈췄다.

       

       

       “진짜로? 진짜 이거 맞아?”

       

       삥뽕ㅡ!

       

       《’수상할 정도로 교양 넘치는 후작’의 성지 방문을 추천합니다!》

       

       

       진짜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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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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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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