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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7

       

       

       

       

       

       

       157화. 다섯 종족 ( 4 )

       

       

       

       

       

       프리우스 후작은 매우 열정적으로 일했다. 누가 그에게 시키지 않았음에도 셀리나를 도와 굵직한 일들을 진두지휘하였으며, 만신전의 대사제들과 카이사르 황제를 매일 같이 만나면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오죽했으면 프리우스 후작이 현역으로 활동하던 시절을 옆에서 봤던 카이사르 황제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겠는가.

       

       

       “…프리우스 후작. 자네가 그토록 일을 열심히, 그러니까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인 줄 몰랐군.”

       

       “황송합니다, 폐하. 제국에 봉사하던 시절에도 소인은 그저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지금은, 그저 시간이 흘러 경험이 조금 쌓인 것뿐이지요.”

       

       

       말이나 못 하면.

       

       카이사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애써 감춰야 했다. 일은 잘하는데, 딱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의 유형이 바로 프리우스 후작이었다. 

       

       카이사르와 율리우스 황태자가 프리우스 후작의 집무실에 갑작스레 쳐들어왔음에도 자리에 앉아 고개만 까딱이는 저 오만방자함을 보라. 제국에 있던 시절에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늉이라도 했는데, 은퇴했다고 아주 동네 아저씨 취급이다.

       

       …그럼에도 프리우스 후작을 타박할 수 없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능가하는 능력을 그가 보여줬기 때문이다.

       

       카이사르와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손은 쉬지 않고 바삐 움직이며 서류를 날아다녔다. 만년필을 쥔 사람의 손이 저렇게 빠르고 정교하게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제국에 있을 때 그렇게 열심히 일할 것이지. 괜히 후작이 얄미워진 카이사르.

       

       

       “자네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 그러니까…스툴투스, 그 저주받은 돼지 녀석 이후로 처음인가?”

       

       빠각.

       

       “아.”

       

       

       고급스러운 금박이 새겨진 만년필의 몸통이 허망하게 부서진다.

       

       좋지 못한 기억이 떠오르는 듯, 프리우스 후작의 동공이 탁하게 물들어간다.

       

       일부러 그랬지만, 카이사르는 최대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이런, 미안하네. 꺼내면 안 되는 이야기였나?”

       

       “…아, 아아닙니다. 폐하…”

       

       

       눈에 띄게 떨리는 후작의 손. 카이사르는 애써 웃음을 감췄다. 

       

       그러게 제국에서 일할 때 지금의 반이라도 일했으면 얼마나 좋은가?

       

       후작의 맛깔난 반응에 신이 난 카이사르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땐 참 힘들었지… 안 그런가? 자네도 그렇고, 재상도 그렇고…”

       

       “…산 채로 튀겨서 짐승 밥으로 줘도 시원치 않을 놈의 뒤치닥꺼리를 한다고 꽤 많이. 아주 많이 고생했지요.”

       

       “그래… 정말 고생했지.”

       

       

       황제와 후작의 눈빛이 아연해졌다.

       

       그 망할 돼지 녀석이 제국 1년 예산 중에서 2할을 횡령하여 연회에 쓰는 바람에, 제국 전체가 휘청거린 전대미문의 사건.

       

       사라진 2할의 국고를 채운다고 황제와 재상은 온 사방으로 편지와 서류를 작성했고, 후작은 그야말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재정 대 감축을 진행했다.

       

       예산 재분할과 대규모의 구조조정, 부서 감축과 폐쇄… 제국은 후작의 피땀 끝에 간신히 숨통을 이어갔다.

       

       후작이 만들어낸 잠깐의 유예기간 동안, 그들은 말 그대로 수명을 갈아 넣어가며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각고의 노력 끝에 가까스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지만… 쓰라리고 아픈 추억이었다.

       

       후작과 황제는 사선을 넘나든 전우의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불쾌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그런데 프리우스 후작, 그런데 아까부터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나?”

       

       “아, 엇.”

       

       

       옆으로 다가온 카이사르가 의아하다는 듯 말하며 후작의 서류를 훔쳐봤다. 아까부터 계속 저 한 장의 서류에 머무른 후작의 만년필.

       

       서류 한 장에 긴 시간을 쓰지 않아도 충분한 후작이 이토록 공을 들이는 업무라니. 호기심이 동했다.

       

       프리우스 후작의 손이 카이사르를 막으려다 허공에 멈칫 매달린다. 늦어버렸다.

       

       

       “이건… ‘수인 종족의 개별성과 특성 및 신체적 특이점에 따른 심층적 조사 제안서’? 작성자… 프리우스 후작?”

       

       “크흠. 제가 여섯 번째 신에게서 받은 사명이 아무래도 수인족에 관련된 것이다 보니, 그들을 좀 더 자세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만신전과 셀리나 님의 협조 아래에 좀 더 자세한 특성을 조사하고자ㅡ”

       

       

       묻지도 않았음에도 술술 나오는 변명. 카이사르의 눈이 힐끔 후작을 향했다. 

       

       성도에서 머무는 동안 소문으로 익히 들었다. 동물 귀를 미친 듯이 좋아하는 귀족이 성도에 산다고. 그리고 후작이 성지의 문에서 나오는 날, 열성적으로 동물 귀를 외쳤다고.

       

       설마 프리우스 후작…

       

       카이사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류를 프리우스에게 다시 돌려줬다. 그리고 가만히 어깨를 토닥였다.

       

       

       “자네 취향이 참…”

       

       “…”

       

       “걱정말게. 크, 푸흡!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테니. 자네는 수인족을 보호해야 하는데, 풉! 그런 낭설이 퍼지면 곤란하지.”

       

       

       카이사르의 격려 아닌 격려. 하지만 입꼬리는 정직하게 씰룩거리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있었으니.

       

       오랜 상사에게 취향을 들킨 후작은 어깨를 부들부들 떨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만신전 내부에 위치한 도서관.

       

       곰팡내 가득 풍기는 고어로 작성된 고문서부터, 아직 잉크의 물이 채 마르지 않은 파릇한 책까지. 그러한 것들이 쌓이기를 가히 수만 권.

       

       길고 긴 신학의 지식이 총망라된, 신학의 정수. 

       

       지식을 탐하는 학자부터 신학을 연구하는 신학자까지 저마다 책에 머리를 파묻고 학문에 전념하기 바쁘다. 간혹 책 넘기는 소리와 만년필이 양피지 위를 스치는 소리, 기침 소리가 조용하게 들릴 뿐.

       

       고요하고 낮게 흐르는 침묵과 고요.

       

       그야말로 지식과 배움의 요람.

       

       그러한 정적은, 거대한 열기와 함께 사라졌다.

       

       

       “여기, 여기 있습니다! 여기에 다섯 종족에 관한 문구가!”

       

       “그거 따로 빼두고! 아니, 그 책은 다섯 종족이 아니라 다섯 종의 버섯이잖아!”

       

       “만신전에 ‘오크도 할 수 있는 주부 요리 50선’이 왜 있는 거야? 이거 고대 요리책 아냐? 아니, 애초에 오크? 그 돼지들이 요리를 한다고?”

       

       “오크들이 요리? 뛰어다니면서 쭈언줴엥ㅡ 이 말밖에 못 하는 놈들이 무슨.”

       

       

       사람들이 연신 소리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책을 높이 쌓아서 옮긴다. 고요와 정적을 미덕으로 삼는 도서관에서 이러한 행패라니. 

       

       응당 눈을 찌푸리고 보는 이가 있어야 하건만, 그런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럴 사람이 없었다.

       

       불만을 제기해야 할 학자와 신학자들이 앞장서서 쿵쾅거리며 도서관을 뛰어다녔기 때문.

       

       

       “찾았다, 찾았어!! 여기 이거야! 드디어 찾았다고! 내 박사 졸업 논문도 이제 완성이야!”

       

       “성지의 문에 새겨진 문양과 다섯 종족의 관계는 뭐지? 아니, 성지의 문에 새겨진 생물들이 정말로 실존하는 것들이라면 전설로만 존재했던 티렉스 도마뱀에 대한 것도ㅡ”

       

       

       학자들이 평소의 점잖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럽게 뛰어다닌다. 

       

       잊힌 종족의 등장!

       

       연못에 떨어진 바위와도 같은 소식은 학계에 커다란 파도를 몰고 왔다. 새로운 지식에 목마른 학자들은 눈에 불을 켜고 고문서를 뒤적거렸고, 신학자들은 성경과 교리를 미친 듯이 분석하며 저의를 파악하려 애썼다.

       

       그렇게 도서관은 잠들지 않고, 밤낮없이 열의에 불타는 학자들로 북적였다.

       

       

       “…다섯 종족.”

       

       

       그러한 소란에서 한 걸음 떨어진 그늘 속, 까만 갑주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까마귀 모양의 가면을 쓴 이단 심문관, 5호다.

       

       조심히 손을 움직여 가면을 벗는다. 하얀 머리카락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가만히 머리칼을 쓸어내린다.

       

       

       “…다섯, 종족.”

       

       

       하얀 머리카락. 빨간 눈. 칼에 베여도 금방 낫는 몸.

       

       멈칫멈칫 고민하다가, 한 손의 갑주를 벗고 조심스레 그늘 밖으로 내밀어본다. 창가를 통해 도서관을 가로지르는 태양을 향해, 손을 뻗는다.

       

       치이익ㅡ!

       

       “끄으윽!”

       

       

       태양에 닿은 부위가 불에 닿은 듯 빨갛게 익어가며 연기가 일어난다. 재빨리 손을 빼냈지만 수포가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있다.

       

       꾸깃.

       

       흉측하게 타버린 손. 태양 아래에서 살 수 없는 몸이다. 평생을 그늘에서 살아가야 하는 비루한 몸뚱아리.

       

       

       ‘…은총.’

       

       

       추락, 소실, 반전, 타락… 무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지금은 그저 낙인에 불과하다. 버림받은 자들의 낙인.

       

       5호는 흉측하게 타버린 손을 내려보다가, 스르륵 어둠 속으로 몸을 감췄다.

       

       가야 할 곳이 생겼다.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는 5호의 빨간 눈이 잠시 반짝이더니, 이내 조용한 그림자만이 자리를 지켰다.

       

       

       

       

       

       ******

       

       

       

       

       

       “박 주임, 아까 말한거 다 했어?”

       

       “아, 지금 거의 다 했습니다! 한 20분만 더 있으면 끝납니다.”

       

       “그거 다 하고 나한테 메일로 보내.”

       

       “네.”

       

       “아, 맞다. 그리고 내가 새로 보낸 메일에 자료 싹 취합해서 서버에다가 올리고!”

       

       “…네.”

       

       타닥. 타다다닥.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가 사무실에 가득하다.

       

       이 일이 원래 그렇지만, 한가할 때는 엄청 한가하다가 바쁠 때는 또 엄청 바쁘다. 덕분에 아침부터 점심 시간때까지 핸드폰은커녕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휴ㅡ”

       

       

       한바탕 전쟁을 끝낸 심정이다. 아까운 점심시간, 재빨리 밥을 먹고 의자를 최대한 뒤로 젖힌 다음 목베개를 꺼낸다.

       

       완벽한 휴식의 자세.

       

       아침부터 바쁘게 일했더니 늙고 병든 몸이 휴식을 달라며 아주 소리를 질렀는데, 이러니 좀 살 것 같다.

       

       

       “어으ㅡ”

       

       

       기지개도 한번 쫙 펴주고.

       

       능숙한 조교의 시범으로 핸드폰을 꺼내 게임을 켠다. 낮잠 자기 전 게임은 빼먹을 수 없는 루틴.

       

       익숙한 신전이 화면이 보인다. 짧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는 드워프와 뭘 하려는 건지 바위를 향해 열심히 박치기하는 이베르.

       

       

       ㅡ 콩! 콩! 콩!

       

       ㅡ “삐익! 삐익! 삑!”

       

       ‘…왜 저래?’

       

       

       어린 녀석이 저렇게 박치기하면 머리 안 좋아질라. 이베르를 말릴 겸 좀 놀아주려고 드래그해서 온천에 빠뜨렸다.

       

       

       ㅡ 첨벙! 첨벙!

       

       ㅡ 삐힉! 삐히히히힉!!

       

       

       그리 신나는지 날치처럼 온천을 누비는 이베르. 항상 활기차서 보기 좋다.

       

       

       “상점이나 봐야겠다.”

       

       

       ‘수수께끼 상점’에서 뭘 팔지 확인하는 것도 빼먹을 수 없는 노릇. 먼저 ‘세계 탐험 모드’로 향한다. 세계 탐험 모드에 들어가야 수수께끼 상점을 열 수 있다.

       

       여전히 새하얀 안개에 둘러싸인 대륙이 보인다. 내가 볼 수 있는 곳은 아주 한정적이다.

       

       

       “어.”

       

       

       그런데 저 멀리.

       

       새하얀 안개에 둘러싸인 어딘가에서 까만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마치 화재 현장 같은 모습.

       

       

       “…불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불타는 금요일처럼 뜨겁고 빠이팅 가득한 후원!!! 감사합니다!!! 도둑 고양이 Vs 북부 대공녀의 싸움 수준 실화냐…!!! 항상 응원 감사합니다!! 사랑!! 합니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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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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