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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0

       

       

       

       

       160화. 황금 나무 ( 2 )

       

       

       

       

       

       펄럭 펄럭.

       

       거대한 가죽을 두른 날개가 펄럭이는 소리는, 마치 바람의 분노한 고함과도 같았다.

       

       황금 나무를 불살라 먹던 검붉은 불꽃이 얼음에 갇혀 멈추고, 에스텔과 족장, 바쁘게 뛰어다니던 모두의 시선을 오롯이 강탈하는 숨 막히는 존재감.

       

       에스텔의 떨리는 눈이 천천히 그 존재를 훑었다.

       

       머리 위에 늠름하게 자라난 여섯 개의 뿔, 짙푸른 군청색의 비늘과 몸 곳곳을 감싸는 얼음은 마치 갑주의 형태.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은 이 세상의 무엇이라도 찢어발길 듯했다.

       

       “…용?”

       

       장로의 떨리는 목소리. 에스텔은 말도 안된다는 듯 소리쳤다.

       

       “용이요? 신화 시대에 전부 사라졌다는 그 용 말씀이세요?!”

       “저 형태, 저 눈빛, 이 존재감…아아. 용, 용이 확실하다.”

       

       신화 시대의 지배자라고 불리던 그 용이라니. 에스텔은 잘게 입술을 깨물었다.

       

       오래전에 사라졌다는 용이 어째서 갑자기 나타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용은 검붉은 불꽃과 적대적인 관계로 보였다. 최소한 자신들의 적은 아니라는 뜻 일터.

       

       몽롱한 눈으로 용을 올려다보는 장로의 어깨를 흔들어 정신을 일깨운다. 이럴 시간이 없다.

       

       “장로님, 장로님! 이럴 시간이 없어요! 어서, 어서 빨리 모두를!”

       “아, 아. 그래. 그래 네 말이 맞구나. 용은 중요하지 않다. 어서 빨리 모두를 대피시켜야지.”

       

       멈춰 있던 시간이 풀린 것처럼, 장로를 비롯한 모두가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한다. 전사들은 무기를 챙겨 들었고, 아녀자는 들것으로 부상자를 나른다.

       

       《감히 너 같은 쓰레기가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하다니. 세상 참 좋아졌구나. 옛날 같았으면 저 심연 구석에 처박혀서 감히 눈도 못 마주쳤을 것이…》

       

       고고하게 하늘을 날던 용이 냉소와 함께 말했다. 얼음에 갇혀 있던 불꽃이 그 말에 역린을 찔린 듯, 크게 몸을 부풀리며 얼음을 깨부순다.

       

       《———!! 요, 용이라니! 어떻게 아직도!》

       

       불꽃의 혀가 날름거렸다. 몹시 당황했는지 몸을 이룬 불꽃이 여기저기 흔들리며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황금 나무를 갉아 먹던 불꽃은 사그라지고, 번져나가던 잔불이 꺼진다.

       

       《감히 입을 열지 마라. 너의 아가리에서 풍기는 악취가 내 코를 썩어 버리게 만드는 것 같구나.》

       

       용은 짧은 대답과 함께 힐끗 지상을 바라봤다. 구태여 저 버러지와 대화를 나눈 것은, 지상에 있는 원숭이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것.

       

       ‘원래라면 이렇게 친절을 베풀지는 않지만…’

       

       위대하신 분을 모시는 자의 입장에서 불필요한 살상을 해서 쓰겠는가? 이베르는 원숭이들이 모두 도망칠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리며 시간을 끌었다.

       

       눈치는 있는지 부리나케 도망치며 나무 주변에서 사라지는 원숭이들. 이를 확인한 이베르가 크게 외쳤다.

       

       《버러지보다 못한 악마 녀석. 네가 왔던 심연으로 돌아가라!》

       

       짧은 선언과 함께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주변 일대의 공기를 모조리 마셔버리겠다는 듯, 쩍 벌어진 턱으로 어마어마한 바람이 몰려든다.

       

       작은 소음마저 빨아들였는지 순간의 적막이 일대를 지배한다.

       

       정적.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ㅡ!!》

       

       그제야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불꽃이 부리나케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늦어버린 상황.

       

       그리고 잔혹한 얼음의 폭풍이 몰아친다.

       

       콰아아아아ㅡ!

       

       용의 입에서 거대한 얼음의 숨결이 터져나간다. 용의 숨결과 맞닿은 것의 수분을 얼리면서 제 영역을 넓히고,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의 시간을 얼리고 강탈한다.

       

       그것은 검붉은 불꽃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 끄아아ㅡ!!》

       

       쩌적ㅡ!

       

       짧은 비명이 터져 나오다 그마저도 얼어붙었다. 불꽃은 제 몸을 뒤틀며 몸부림치다가 쩍ㅡ하고 얼어붙었다. 얼음 안에 갇힌 불의 형태로, 황금 나무의 기둥을 감싼 그대로 멈춰 버렸다.

       

       《흥. 감히 벌레 녀석 주제에.》

       

       꽁꽁 얼어버린 불꽃을 확인한 이베르가 천천히 몸을 낮춰 지상으로 내려왔다. 콧김 한 번이면 끝날 버러지가 감히 여기까지 오게 하다니. 

       

       지상에 발을 디딘 이베르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제일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이베르가 올려봐야 할 정도로 거대한 황금의 나무.

       

       《…아직까지 남아 있었나.》

       

       시간이라는 희끄무레한 안개에 덮인 기억의 어딘가, 이베르는 기억을 더듬어가며 황금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슬쩍 꼬리를 나무에 가져다 대니, 아직까지도 맥박치는 신성이 느껴졌다. 비록 악마에게 부분부분 신성을 먹혀 구멍이 뚫렸지만, 그 위용은 여전하다.

       

       《이게 마지막 남은, 아니지. 이제 둘인가.》

       

       정확히는 마지막으로 남은 신성 ‘이었던’ 황금 나무다. 이제는 성도에 하나 더 있으니.

       

       이베르는 이리저리 주변을 돌아다니며 황금 나무를 구경했다.

       황금빛 가득한 잎사귀를 한 움큼 모아서 드워프들에게 줄 것도 챙기고, 불타는 황금 나무 곳곳의 잔불에 얼음을 던지기도 했다.

       

       얼음으로 봉인된 적이라 해도 너무나 방심한 모습.

       

       그래.

       

       방심했다.

       

       너무나 압도적인 힘의 격차에 마음을 놓고, 악마의 끈질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오만하게 행동했다.

       

       쩍…

       

       무언가 갈라지는 아주 작은 소음. 이베르가 한껏 긴장하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면 들었을 소리. 하지만 이베르는 황금 나무에 정신이 팔린 상태였다.

       

       쯔적… 쩌저적…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얼음이 부서진다. 검붉은 불의 악마를 가둔 얼음이 아주 느리고, 천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윽고 거미줄 같은 실금이 얼음을 뒤덮었을 때ㅡ

       

       콰아앙ㅡ!!

       

       《크하악!! 끄으읍!!》

       

       《하, 하하! 신의 엉덩이나 핥는 도마뱀 주제에, 감히 감히! 나를 막아? 형제들의 힘과 신성을 손에 넣은 이 몸을, 뭐? 버러지?!》

       

       거대한 불꽃이 이베르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불의의 일격을 허용한 이베르가 멀리까지 나뒹굴었다.

       

       얼음에서 풀려난 불꽃이 횃불에 춤추는 그림자처럼 꾸물거리더니, 점차 그 형상을 고정하기 시작한다.

       

       《봐라, 나를 봐라! 나는 신성을 먹어 치우고, ■마저 먹어 치울 것이다!》

       

       굵고 긴 몸통이 자라나고, 튼튼한 뒷다리와 채찍 같은 꼬리가 생겨난다. 창공을 뒤덮는 날개가 펼쳐지고, 긴 목의 끝에 자라난 얼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마치…

       

       용의 형상이었다.

       

       불꽃이 모습을 바꾼 거라고 알리듯, 검고 붉은 색의 비늘을 자랑하며 광기와 끝없는 탐욕으로 번쩍이는 눈을 가진 용.

       

       《크으으ㅡ!! ——————!!!》

       

       그를 본 이베르가 격노하여 포효했다. 차마 뜻을 담지 못한 울림이 하늘을 메운다.

       

       《이 버러지도 못된 오물 덩어리가ㅡ!! 감히, 감히 용의 형상을 따라 하느냐!!》

       

       깊게 파인 옆구리에서는 뼈가 드러났고, 피가 철철 흐르고 있지만. 넘실거리는 검붉은 불꽃이 혓바닥을 꺼내 이베르의 상처를 핥으며 끊임없이 고통을 선사했지만.

       

       그럼에도 이베르의 분노는 그 모든 고통을 잊게 했다.

       

       콰아아앙ㅡ!

       

       검붉은 용에게 쇄도한 이베르의 발톱. 비늘을 두른 육체끼리 부딪쳤을 터인데, 거대한 산이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푸른 빛의 용과 검붉은색의 용이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들이밀며 치열하게 뒤엉킨다.

       

       한 번의 몸부림에 땅이 갈라지고, 두 번의 휘두름에 산맥이 찢어졌다. 거대한 덩치는 그 자체로 강대한 무기가 되었고, 용의 싸움은 자연재해를 방불케 했다.

       

       “이게… 도대체…”

       “저게, 용…?”

       “아, 아아…다섯 신이시여, 부디 황금 나무를 보살피시고 저희를 살피소서.”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전투의 현장. 땅이 뒤집히고 갈라지며, 주변의 모든 것이 부서진다.

       

       에스텔과 그녀의 동족들은 떨리는 눈으로 용의 싸움을 바라봤다.

       

       두 마리의 용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싸웠지만, 옆구리에 부상을 입은 푸른 빛의 용이 점차 수세에 몰렸다. 이대로 있다가는 푸른 용은 죽고, 검붉은 용에게 황금 나무가 불타리라.

       

       꾸욱.

       

       에스텔은 입술을 꾹 깨물다가, 고개를 들고 자신의 짐가방을 뒤적였다. 가장 깊은 곳, 행여나 잃어버리거나 흠집이라도 날까 감히 손에 걸지도 못했던 팔찌.

       

       결투 축제에서 받아온 팔찌 형태의 성물.

       

       팔찌에 깃든 신성함이 느껴진다. 에스텔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팔찌를 손에 걸었다. 몸 구석구석 퍼지는 활력과 힘.

       

       ‘…할 수 있어.’

       

       아주 오래 전, 그녀의 종족이 신에게서 받은 은총.

       

       나무 위에서 누구보다 자유롭게 살리라, 그리고…

       

       ‘활을 손처럼 쓰리라…’

       

       추락한 은총은 반전되고, 족쇄가 되어 그녀의 종족을 속박하는 사슬이 되었지만. 이 팔찌가 있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할 수 있다.

       

       스읍ㅡ 후우…

       

       깊게 숨을 들이 마시고 어깨에 걸쳐둔 활을 꺼낸다. 떨리는 손으로 나뭇가지를 주워 시위에 걸었다. 곧고 바른 형태의 튼튼한 나뭇가지다.

       

       왼손으로 활을 잡고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로 활시위를 있는 힘껏 당긴다. 팔찌의 신성한 기운이 그녀를 감쌌다.

       

       “에, 에스텔?! 너 지금 활을…”

       “어ㅡ 어떻게? 어떻게 한 거야?!”

       “활을 당겼다고…?”

       

       주변의 놀란 목소리가 에스텔을 감싼다. 하지만 날카롭게 벼려진 정신은 그 모든 것을 외면하고, 오롯하게 한 점의 목표물을 향했다.

       

       긴 세월을 버텨낸 활이 삐걱거리며 비명을 지르고, 팔찌에 깃든 신성함이 빠르게 옅어지며 실금이 간다.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지만 조급해하지 않는다. 

       

       호흡을 가다듬고, 시선은 용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일점.

       

       한 번의 기회.

       

       “후우ㅡ”

       

       …지금.

       

       퉁ㅡ!

       

       가볍게 호흡을 뱉으며 손을 놓는다.

       

       가볍고 경쾌한 줄 울림이 공기를 때리고, 활시위를 떠난 나뭇가지가 쏜살같이 날아간다. 

       

       한 마리의 새처럼 날아간 나뭇가지가 허공을 유영하며 솟구치다가ㅡ

       

       《——————!!》

       

       붉은 용의 눈 깊숙이 틀어박혔다.

       

       한쪽 눈동자에서 피가 흐르는 붉은 용이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지르며 몸을 휘저었다. 커다란 빈틈.

       

       이베르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죽어라, 이 버러지 같은 녀석!!》

       

       굵고 위협적인 꼬리를 휘둘러 붉은 용의 몸통을 후려친다. 뿌드득ㅡ하는 감촉이 꼬리를 타고 전해졌다.

       

       치명상이다. 이베르는 확신했다.

       

       쿠콰아아앙ㅡ!!

       

       《…끄흐, 흐으으! 끄하아아악!》

       

       저만치 밀려난 붉은 용의 가슴팍이 움푹 파였다. 입에서 붉은 피가 주륵 흘러내린다.

       

       붉은 용의 얼굴에 고통스러운 기색이 뚜렷했다. 들이마시는 숨을 따라 피거품이 일어난다.

       

       이베르의 일격이 제대로 들어갔지만, 숨통을 끊기에는 부족했다.

       

       허나 방금의 일격으로 승부의 방향이 넘어왔다. 그 사실을 이베르도 느꼈고, 악마 또한 직감했다.

       

       이대로 싸우다간 지고 말 것이다.

       

       《크흐ㅡ 멍청한, 크릅! 도마뱀 녀석! 날 죽이려고, 크르릅! 했다면 머리를 노렸어야지!》

       《…! 녀석 무슨 수작을ㅡ!!》

       

       붉은 용이 부서진 가슴팍에서 흐르는 피를 한 움큼 잡더니 허공으로 흩뿌렸다. 악마의 피가 하늘에 흩날리며 불에 타오른다. 타오르는 피는 저들끼리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거대한 원형의 불꽃이 되어 불타올랐다.

       

       화아악ㅡ!

       

       이윽고 거대한 문이 되었다. 악마가 본신의 피를 매개로 하여 만든, 공간과 공간을 접어서 이동하는 관문.

       

       관문 너머에는 눈이 내렸다. 끝도 없이 펼쳐진 설원. 악마의 속셈을 깨달은 이베르가 몸을 날렸다.

       

       《어딜 도망치려고ㅡ!!》

       

       콰가가각ㅡ!!

       

       이베르가 얼음의 숨결을 내뱉었다. 모든 것을 얼리는 잔혹한 얼음이 악마를 향해 날아갔지만ㅡ

       

       《크르릅ㅡ 난 이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악마가 조금 더 빨랐다. 붉은 용이 관문을 통과하자, 피로 만들어진 불꽃은 곧장 사라지기 시작했다.

       

       목표를 잃은 얼음의 숨결이 허공을 통과해 애꿎은 숲을 통째로 얼렸다.

       

       잔불만이 흩날리며 관문의 존재를 증명했다.

       

       “악마가…”

       

       치열한 싸움은 한순간에 사그라들고 숲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가쁜 숨을 내쉬며 완전히 금이 간 팔찌를 바라보는 에스텔.

       피를 지나치게 흘린 탓에 비틀거리는 이베르.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며 침묵을 지키는 동족들.

       

       영원 같은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으윽.”

       《위대, 하신 분… 죄송…》

       

       쿠웅ㅡ!

       

       깊은 부상을 입은 이베르와 정신력이 다한 에스텔이 쓰러지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핫초코처럼 뜨끈하고 따뜻한 후원!!! 감사합니다!!! 참으로 심오한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고것은…!!! 자연의 신비!!! 심도깊은 연구가 병행되야 할 주제!!! 저도 잘 몰?루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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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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