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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1

       

       

       

       

       

       161화. 황금 나무 ( 3 )

       

       

       

       

       

       온천에서 첨벙이던 이베르가 ‘차원 관문’을 통과하는 순간, 갑자기 눈앞이 핑 돌면서 시야가 캄캄해졌다. 정신을 잃었다는 소리는 아니다. 

       오랫동안 누워있다가 갑자기 일어섰을 때 기립성 저혈압의 느낌과 비슷했다.

       

       머리가 조금 어지럽고 시야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수준.

       

       나도 모르게 책상에 머리를 기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아주 잠깐만 쉬려고 했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번쩍 눈을 떴을 때,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몸이 너무 개운한데? 이거 얼마나 잔 거야?’

       

       사무실 불이 꺼져 있는 걸로 봐선 오랫동안 잔 건 아니지만, 애초에 자려고 한 건 아니었다.

       무심코 학생 시절처럼 팔베개를 하고 잤더니 오른쪽 팔이 쩌릿쩌릿하다. 딱딱하게 굳은 팔을 주물주물 마사지해주면서 요령껏 손을 움직여 핸드폰을 켠다.

       

       이베르가 차원 관문을 통해서 나간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다음부터는 기억나지 않는다.

       

       ‘애초에 갑자기 왜 그렇게 어지러웠지?’

       

       빈혈을 겪어 본 적은 없지만, 만약 빈혈이 있다면 그런 느낌 아니었을까.

       몸 안에 있는 무언가 갑자기 쭈욱 빨려 나가는 기분.

       

       ‘…내가 이베르를 차원 관문 밖으로 보내서?’

       

       일단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곧장 ‘세계 탐험 모드’로 향한다. 내가 이베르에게 바랬던 것은 불타는 나무를 막는 것.

       내 의도가 잘 전해졌을지 모르겠다.

       

       “뭐야 이거?”

       

       불타던 나무가 있던 장소는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여기저기 땅이 갈라지고, 뒤집히고 숲이 박살 났다.

       불이 꺼지기는 했는데… 이베르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커다랗고 멋지게 생긴 파란 용이 쓰러져 있다. 이베르가 역변하지 않고 잘 자란다면 딱 이렇게 되지 않을까.

       

       ‘아니. 진짜 이베르네?’

       

       쓰러진 용 머리 위에 <서리용 이베르>하고 이름이 나타난다. 얘가 진짜 이베르라고?

       잠깐 보지 않던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무럭무럭 급성장했을까. 아니, 그 전에 이베르의 체력이 바닥이다.

       

       무언가랑 싸웠는지 피도 철철 흘리고, 옆구리에는 화상처럼 보이는 상처도 있다.

       

       ‘도대체 뭐랑 싸웠길래 이런 상태에서도 진 거야?’

       

       응애 이베르가 성장기라면, 지금의 이베르는 성숙기 혹은 완전체 정도 아닐까. 

       

       《’성역 선포’ 발동! 일대의 HP가 미약하게 회복됩니다!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이베르의 주변에 다친 주민들도 몇 명 보였다. 저들까지 하나하나 힐을 써주기는 귀찮아서 장판기로 썼다.

       곧장 화면에 금빛 원이 생기더니 이베르와 주민들의 체력이 빠르게 차오른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신이니까 살릴 수 있는 주민들은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빠밤ㅡ!

       

       《불가사의 건축물을 발견했습니다! “위대한 황금 나무”를 찾아냈습니다!》

       

       “오?”

       

       불이 완전히 꺼진 나무는 이름처럼 황금 나무, 그 자체였다. 잎사귀부터 힘차게 뻗은 나뭇가지, 굵은 기둥까지 선명한 황금빛으로 가득하다.

       나무니까 진짜 황금은 아니겠지만, 보는 이를 압도하는 무언가 존재한다.

       

       “아. 거기에 나온 황금 나무가 이건가?”

       

       그제서야 기억났다.

       

       무기를 해금하고 만들지도 못했던, 드워프들이 못 만든다고 배짱 장사 했던 활의 이름.

       

       B급 무기, 황금 나무의 대궁.

       

       그 활의 이름과 지금 발견한 황금 나무의 이름이 같다.

       이게 과연 단순한 우연일까? 

       

       ‘…뭔가 있을 것 같은데.’

       

       불가사의 건축물 ‘위대한 황금 나무’.

       

       좀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조사의 기본은 관찰.

       우선 카메라를 최대로 확대해서 샅샅이 살펴본다. 언제부터인지 확대의 수준이 점점 높아져서, 이제는 황금 나무의 잎사귀에 있는 잎맥도 보이는 수준이 됐다.

       

       물론 그 정도 확대까지는 필요 없으니까, 적당히 조절해서 빠르게 훑어본다.

       

       “얘들은 뭔가 좀 다르게 생겼네.”

       

       그러면서 알아낸 사실.

       이베르의 주변에 있는 이 주민들,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귀가 너무 뾰족하고, 또 너무 잘생기고 예쁜 놈들만 가득하다. 

       귀가 뾰족하고 아름답게 생겼다… 떠오르는 건 판타지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종족.

       

       ‘설마 엘프인가?’

       

       그런 내 추측을 뒷받침하듯, 경쾌한 팡파레 이모티콘이 화면 가득 나타났다.

       

       삥뽕ㅡ!

       

       《고대의 다섯 종족! ‘엘프’를 발견했습니다!》

       

       “오.”

       

       판타지라고 한다면 거의 필수로 등장하는 이종족.

       드워프와 함께 판타지의 국밥을 담당하는 엘프가 나타났다.

       

       과연 엘프라고 생각하고 자세히 바라보면 영락없는 엘프의 특징이 보였다.

       귀가 뾰족한 것도 그렇고, 나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높은 나무에 다람쥐처럼 구멍을 뚫어 집을 지었다. 심지어 공터와 길도 전부 나무를 엮어서 공중에 만들었다.

       

       나무에 대한 사랑이 실로 집착에 가까운 수준.

       

        ‘새로운 종족을 발견했으니까 퀘스트 갱신됐으려나.’

       

       《다섯 종족을 찾아 번성시키자!  현재 진행도 : 2/5  보상 : ■》

       

       “그런데 이건 왜 그대로지?”

       

       아까 메시지에서 다섯 종족이라고 말했으니까, 엘프가 퀘스트에서 말하는 다섯 종족인 건 확실한데.

       

       그러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엘프를 본 적이 있다는 소리인가? 그래서 발견한 종족이 처음부터 2/5 였던 거고?

       

       ‘언제…?’

       

       도대체 언제 엘프를 봤다는 거지?

       

       

       

       

       

       *****

       

       

       

       

       

       “쿠릅ㅡ! 쿠르륵!!”

       

       짙은 눈이 내리는 설원.

       갑작스럽게 허공에 생겨난 붉은색의 원이 무언가를 토하듯 뱉어내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풀썩하고 바닥에 쓰러진 무언가. 

       

       살아있기는 한 지 가슴팍이 가늘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눈이 그것의 위로 두껍게 쌓일 시간이 흐르고, 그것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쿠릅…흐으.”

       

       광기와 끝없는 탐욕, 식탐 따위가 번들거리는 눈동자. 줄줄 흐르는 피보다 더욱 짙은 적붉은색의 비늘.

       

       황금 나무를 탐하던 악마였다. 

       지금은 그저 추하게 도망친 패배자에 불과했지만.

       

       “쿠으… 크으읍!”

       

       한쪽 눈 깊숙이 박힌 나뭇가지를 빼낸 악마는 그것을 거칠게 내던졌다. 겨우 나뭇가지 때문에 지다니.

       애초에 나뭇가지 따위에 왜 이렇게 신성력이 많이 깃들었단 말인가.

       

       ‘…변수. 변수였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어.’

       

       악마는 드넓은 설원을 절뚝거리며 방금의 싸움을 복기했다. 패배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의 종노릇이나 하는 용이 나타났다는 점, 그가 알고 있던 용보다 훨씬 더 강했다는 점, 쇠락한 황금 나무의 반발이 너무 강해서 신성을 온전히 먹어 치우지 못한 점, 섬뜩할 정도의 신성력이 깃든 나뭇가지…

       

       쓰라린 패배.

       

       하지만 손해만 본 것은 아니었다. 

       

       신성을 일부나마 먹어 치우고 본신의 격을 한 차례 끌어올린 것이 첫 번째 이득이요.

       용이 살아있다는 것을 안 것이 두 번째 이득이요.

       ■이 그와 용의 싸움에 개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 세 번째 이득이었다.

       

       특히나 ■이 개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 중요했다.

       

       ‘개입할 수 있다면 분명 개입했을 터. 하늘에 만든 별자리는 단순한 허세였나?’

       

       악마와 ■의 하수인이 생사를 걸고 싸우는 전투다. 개입할 수 있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터.

       분명 무언가 제약이나 한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쿠릅ㅡ 크르릅…”

       

       악마는 설원을 따라 질질 걸음을 옮기며 계획을 고민했다. 

       그가 앞선 싸움에서 패배한 결정적인 이유.

       

       ‘힘. 힘이 부족했다.’

       

       동족들의 자발적인 희생으로 모은 힘, 신성을 먹어 치우고도 용과 겨우 대등하게 싸웠다. 그마저도 기습을 통한 유효타가 아니었다면 패배했을 싸움이다.

       ■도 아닌, 하수인에 불과한 용에게 패배했다. 이대로라면 ■을 먹어 치우는 것은 우스갯소리도 될 수 없는 헛소리에 불과했다.

       

       힘.

       절대적인 힘이 부족했다.

       

       그렇다면 그가 해야 할 행동은 무엇인가?

       

       “크르릅…저기가 좋겠군.”

       

       고개를 돌려 이리저리 바라보던 악마의 눈이 눈보라의 장막을 뚫고 저 멀리 떨어진 거대한 성벽을 향했다.

       두 발로 선 늑대와 인간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악마에게 필요한 것은 절망 그리고 공포.

       그리고 영혼과 제물.

       

       그것을 얻기 제일 쉬운 방법은 역시 전쟁 아니겠는가?

       

       만찬을 발견한 악마의 눈이, 싱긋하고 웃음을 그렸다.

       

       

       

       *****

       

       

       

       “ㅡ…텔! ㅡ스텔! 정신ㅡ 니?”

       

       삐이이ㅡ

       

       높은 이명이 머리를 째는 듯 울려온다. 송곳으로 머리를 찌르는 듯 쑤신다. 에스텔은 무의식적으로 눈가를 가리며 신음을 뱉었다.

       

       “으, 으음…” 

       “에스텔! 에스텔! 정신이 들어?”

       “누가 족장님을 모셔 와!”

       “내가, 내가 갈게!”

       “나도 갈게!!”

       “야, 야! 너희들 전부 가면 나 혼자 어떡하라는… 나도 같이 가!”

       

       우당탕ㅡ!

       

       주변이 시끌시끌하다. 

       

       의자를 바닥에 끄는 소리, 문을 쾅 하고 닫는 소리, 쿵쾅거리며 뛰어가는 소리… 

       소음들이 머리를 웅웅 울린다.

       

       ‘왜 이렇게 시끄러워…’

       

       욱씬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눈이 빛에 적응하면서 점차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무 특유의 무늬로 가득한 천장이 보이고, 벽에 걸린 형광 벌레 호롱등 보인다. 소박한 서랍과 수수한 방 안의 장식들.

       익숙한 풍경이다. 다름 아닌 에스텔 그녀의 집이었으니까.

       

       “으윽…”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니,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파온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옆에서 에스텔을 간호하던 이는 누군가를 부르러 갔는지 아무도 없었다.

       

       ‘…아니, 다들 어디 간 거야.’

       

       방금까지 누가 있기는 했는지 거칠게 끌린 의자가 보였다.

       

       가볍게 한숨을 뱉은 에스텔은 천천히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기억나는 것은… 불타는 황금 나무와 악마의 습격, 어디선가 나타난 용.

       

       그리고, 그리고ㅡ

       

       “…활!”

       

       활.

       분명 활을 쐈다. 에스텔의 두 손으로, 활시위를 당겨서 악마의 눈동자를 맞췄다.

       

       에스텔이 황급히 몸을 일으켜 활을 찾았다. 그녀가 활을 당겼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다. 

       

       “아.”

       

       활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녀의 침대 바로 옆에 놓여 있었으니까. 

       

       산산이 부서진 상태로.

       

       신화시대에서부터 그녀의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가보와도 같은 물건이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부서질 줄이야.

       에스텔이 떨리는 손으로 활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금이 가고, 조각나고, 활시위는 끊어졌다.

       

       다시는 쓸 수 없으리라.

       

       ‘팔찌는…’

       

       그녀가 갖은 고생을 해가며 구해온 팔찌 형태의 성물. 흐릿한 기억 속에서 팔찌는 옅은 실금이 가고 있었다.

       

       설마 팔찌도 망가졌나?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에스텔은 두통도 잊고 몸을 일으켜 빠르게 방 안을 돌아다녔다. 손쉽게 찾아낸 활과 달리 팔찌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방 안을 빙빙 돌며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팔찌에 에스텔이 초조하게 손톱을 깨물 때쯤ㅡ

       

       《거기 원숭이, 이걸 찾나?》

       

       육중한 목소리가 창문 밖에서 에스텔을 불렀다. 

       

       화아악ㅡ

       

       무언가가 창문을 가리며 짙은 그림자가 집 안에 드리운다. 갑작스레 밤이 찾아온 듯, 캄캄해진 실내.

       

       거대한 압박감이 에스텔을 짓누른다. 

       

       무언가.

       

       거대한 무언가가 그녀의 등 뒤에 있다. 

       창문, 저 창문 너머에 초월적인 것이 그녀를 향해 말을 걸고 있었다.

       

       딱딱 부딪치는 입, 손발이 오들오들 떨리고 차가운 기운이 몸을 감싼다.

       

       “후우. 후우…”

       

       창문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린 에스텔은ㅡ

       

       《누가 원숭이 아니랄까 봐 행동이 굼떠서는ㅡ》

       

       “꺄아아아악!!”

       

       창문을 통해 그녀를 바라보는.

       

       거대하고 푸른 눈동자를 마주하고는 쿵ㅡ하고 기절했다.

       

       《…이거 혹시 내가 잘못한 건가?》

       

       단순히 말을 걸었을 뿐인 이베르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시카고 피자처럼 입 안 가득 퍼지는 치즈같은 후원!!! 감사합니다!!! 저는 독자님의 사랑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렇게 큰 댓글은… 다 안 들어가요옷!! 항상 변함없는 사랑과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 ‘팬시스트’님!!! 살얼음 가득한 생맥주처럼 톡톡 튀는 후원!!! 감사합니다!!!

    ??? : 저기.. 다음화…주세요..
    자까 : 큰소리로 말씀해주세요!!
    ??? : 다!음!화!주!세!요!
    자까 : 좋아! 아주 활기차군!! 저기 독자님한테 ‘다음 화’ 하나 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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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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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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