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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2

       

       

       

       

       

       162화. 황금 나무 ( 4 )

       

       

       

       

       

       쾅ㅡ!

       

       “아니, 내가 똑똑히 봤다니까? 그 새끼 그거 내가 두 번이나 죽인 그 녀석 맞다고!”

       

       프리가의 외침과 함께 고급 원목 탁자가 쿵 하고 울렸다. 어떻게 되먹은 사람이 갈수록 힘이 세지는지, 원목 탁자의 한가운데에는 어렴풋하게 주먹 자국이 남았다.

       

       이스칼은 슬쩍 주먹 자국을 보고는 꿀꺽 침을 삼켰다.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서 프리가의 주먹 도장에 위압된 건 그 뿐인 걸까.

       

       “허허허. 프리가 공녀님, 저도 물론 공녀님의 고견을 믿습니다. 아무렴 두 번이나 마주쳤던 상대이니, 저희 중에서 공녀님이 가장 잘 아시겠죠.”

       “그렇지? 그러니까 당장 저 도마뱀이 날아간 방향으로 조사대를 꾸려서 보내야 된다고!”

       “그렇게 재촉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안토니오가 잔뜩 흥분한 프리가를 침착하게 달랬다.

       

       “공녀님. 성지의 문에서 나온 푸른빛의 용이, 공녀님이 최초의 조우에서 신의 품으로 돌려보낸 용이 맞습니까?”

       “어, 으응.”

       “그렇군요.”

       

       묵직한 목소리에서 세월이 빚어낸 무게감이 느껴진다. 프리가는 순간적으로 저 멀리 북부에 있는 그녀의 아버지 앞에 서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 용이 공녀님의 시련에서도 나왔고, 이제는 성지의 문을 열고 온전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군요.”

       “맞아.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니까?”

       “…흐음.”

       

       확실히 범상치 않은 일이었다. 고문서에서 기록으로나 존재했던 신화 시대의 지배자, 용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다니.

       

       성도의 하늘을 가로지르는 용을 목격한 이들은 저마다 상상의 나래를 부풀리며 신나게 떠들고는 했다.

       

       ‘멸망의 징조라는 헛소리부터, 신화로의 회귀라거나 용 족의 부활이라는 둥… 민심이 뒤숭숭하구나.’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셀리나라는 여인과 프리우스 후작. 두 사람이 고대의 다섯 종족을 부활시키라는 사명을 받았다면서 한창 성도가 시끄러웠는데.

       

       또다시 신묘한 일이 일어났다.

       

       ‘진정 신께서 무엇을 뜻하고 계신 것인지…’

       

       작고 작은 필멸자의 머리로는 감히 위대한 계획의 실마리조차 허용되지 않는 걸까.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지압하는 안토니오. 다른 나라에서도 용을 목격했는지, 용에 관해 물어보는 문서가 산처럼 쌓이고 있었다.

       

       다섯 종족과 수인에 관한 것만 해도 신경 쓸 것투성이인데, 용이라니! 안토니오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데모닉이 슬쩍 안토니오의 눈치를 보다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으, 용에 관련된 것은 제가 책임지고 조사해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조사대를 꾸릴 준비가 거의 다 끝난 참이었습니다. 다 끝나면 보고서를 올리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아. 그런가?”

       

       안토니오가 반색하며 반겼다.

       

       이럴 때 라이언하트가 있었다면 든든했겠지만, 축제가 끝나기 무섭게 방랑벽이 도졌는지 편지 한 통 남기지 않고 훌쩍 떠나버렸다.

       

       “예. 애초에 신의 품으로 돌아간 용이 다시 모습을 보였다는 건, 용이 나서야 하는 일이 생겼다는 뜻일 테니… 최악에는 대악마가 나타났을지도 모릅니다.”

       “대악마…”

       

       데모닉의 말에 대회의실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악마에게 몸을 빼앗겼던 케니스는 저도 모르게 신검의 손잡이를 쓰다듬었고, 악마라면 치를 떠는 프리가는 도낏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대회의실의 공기에 커다란 돌이 올라앉은 듯 무거워진다.

       

       조용히 앉아있던 한스가 가라앉은 분위기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기. 제가 한마디 해도 괜찮겠습니까?”

       “…”

       “한스 님, 말씀하시지요.”

       

       원탁에 앉은 이들 중, 제일 연장자는 안토니오와 데모닉. 덕분에 그들이 회의의 흐름을 조절하고 있었다.

       데모닉은 고개를 휙 돌려 한스를 못 본 척했고, 안토니오가 한스에게 발언권을 줬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한스가 쭈뼛거리며 일어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주제와 관련된 것은 아닌데… 제가 말씀드리는 것을 깜빡해서 지금이라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말을 흐린 한스가 주섬주섬 그의 롱소드를 꺼냈다.

       

       크로스 가드와 가까운 검신에 새겨진 주홍빛의 룬 글자 두 개가 강렬한 존재감을 발한다.

       

       태양을 붓으로 삼아 글자를 쓴다면 이런 색이지 않을까.

       

       “그건… 룬 글자가 두 개가 되었군요! 아니 한스 님! 도대체 언제 글자를 새로 받으신 겁니까?! 이런 중대 사항을 왜ㅡ 아니지. 데모닉 팔라딘, 자네는 알고 있었나?!”

       

       안토니오가 놀랐다는 듯 말했다. 단순히 글자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신의 글자가 새겨진 것이다.

       둘도 없는 중대사항.

       

       안토니오는 이것과 관련된 보고를 전혀 듣지 못했다. 데모닉 또한 몰랐는지 고개를 저었다.

       이글거리는 안토니오의 눈을 마주친 한스가 뜨끔했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하, 하하. 제가 깜빡해서…”

       “그걸 단순히 깜빡했다는 말로ㅡ… 휴, 아닙니다. 제가 너무 흥분했군요. 한스 님, 죄송합니다.”

       “하하… 죄, 죄송합니다.”

       “회의가 끝난 후에 꼭 신학 연구실에 들러서 그쪽에도 말씀 해주셔야 합니다.”

       “아이고, 예. 헤헤. 알겠습니다.”

       

       한스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 앉았다. 얼빠진 표정에 과장되게 멍청한 행동.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실소가 나왔다.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한스의 촌극 덕분에 무겁던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이를 확인한 안토니오가 박수를 짝ㅡ치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 이제 대략 정해진 듯하니 다들 일어나시죠. 데모닉 팔라딘은 조사대에 관한 계획서 작성해서 최대한 빨리 나한테 가져오도록 하게.”

       

       안토니오가 의자를 드륵ㅡ끌며 일어났고 다른 이들도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찌뿌드드한 몸을 풀었다. 

       

       “으아ㅡ 앉아 있었더니 몸이 막 여기저기 쑤시네. 야 이스칼. 대련 한 판하고 밥이나 먹자. 어때?”

       “아, 대련이요? 어…”

       

       프리가의 제안에 뒤룩뒤룩 눈동자가 굴러가는 이스칼. 대뜸 대답이 튀어나오지 않는 모습에 프리가가 눈을 찌푸렸다.

       

       “뭐야. 약속 있어? 누구야, 그 고양이 년이야?”

       “아, 아뇨 아뇨! 셀레나는 아닙니다. 그냥 그 뭐냐, 제 하인 산쵸랑 같이 밥을 먹기로 해서요.”

       “…그래? 선약이 있구나… 그럼 어쩔 수 없지.”

       

       기분 탓인지 프리가의 어깨가 조금 축 처졌다. 어울리지 않게 살짝 침울해진 모습. 이스칼은 그의 양심을 콕콕 찌르는 송곳을 느꼈다.

       

       ‘공녀님한테는 죄송하지만… 오늘 산쵸가 밥 먹으면서 비장의 연애 노하우를 알려준다고 했는걸.’

       

       산쵸가 알면 겨우 자신과의 밥 때문에 공녀님의 제안을 거절하냐고 가슴을 쿵쿵 치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이스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씩씩하게 나아갔다.

       

       산쵸의 연애 특강을 듣고, 새로워진 자신으로 돌아오겠다고 다짐하면서.

       

       한스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저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옆에서 보면 다 티가 나는데, 저렇게 답답할 수가.

       마음 같아서는 이스칼을 도와주고 싶지만ㅡ

       

       “한스 님ㅡ!!”

       

       와락!

       

       “읏차. 데이지 위험하잖아.”

       

       대회의실의 문이 열리자마자 데이지가 도도도 뛰어오더니 한스에게 몸을 날렸다. 이미 예상하였기에 무사히 받아낸 한스가 티 나지 않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스도 제 코가 석 자였다. 누군가를 도와주기는커녕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 이스칼은 그저 마음으로 응원하는 수밖에.

       

       “후우… 스읍ㅡ 후우…스으읍ㅡ”

       

       뛰어와서 숨이 차는지 품에 고개를 파묻은 데이지가 호흡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체력이 부치는지 얼굴에 홍조가 있고, 귀 끝이 빨갛다.

       

       잘 먹고 잘 지낸다고 하지만, 혹시 어딘가 아픈 걸까?

       

       “데이지, 데이지? 괜찮아? 얼굴이 좀 빨간ㅡ”

       “네, 네에. 저는 괜찮아요…”

       

       흠칫.

       

       데이지의 눈동자가 살짝 풀려있다.

       

       다시 보니 홍조는 아픈 이의 것이 아니라, 잔뜩 흥분한 사람의 그것이다. 그의 등 뒤로 여러 사람의 시선이 느껴진다. 다행히 각도 때문에 데이지의 얼굴을 보지는 못한 모양.

       

       누군가 본다면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큰일 났다!’

       

       사회적인 죽음을 직감한 한스가 재빨리 데이지를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렸다.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

       

       “아니! 데이지! 열이 이렇게나 심하다니! 빨리 사제님에게 가봐야겠구나!”

       “음? 데이지 양이 아프다고요? 제가 한번ㅡ”

       “아이고! 데이지 조금만 참으렴!!”

       

       대사제인 안토니오가 한스에게 다가갔지만, 일부러 과장되고 크게 외친 한스가 데이지를 들고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아…”

       

       먼지만 길게 남은 한스의 흔적을 보며, 케니스가 작게 탄식을 뱉었다. 끝나고 저녁이라도 같이 먹자고 할 참이었는데.

       

       데모닉이 혀를 끌끌 차며 다가왔다.

       

       “쯧쯧. 저놈도 사람은 못 되는구나.”

       “한스 씨를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아빠.”

       “흥.”

       

       어울리지 않게 새침한 어투로 고개를 돌린 데모닉. 삐진 티를 내는 것이 의도가 다분하다.

       

       자신과 저녁을 먹자는 것이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케니스가 픽 웃음을 터뜨렸다. 결투 축제 이후, 데모닉이 이런 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부쩍 늘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무뚝뚝한 사람인데, 가족한테는 무르다는 걸까.

       

       “조사대 계획서 얼마나 남았어요? 얼마 안 남았으면 같이 후딱 쓰고 밥 먹으러 가요.”

       “…그럴까?”

       

       데모닉의 입꼬리가 싱긋 올라간다. 부녀가 오붓하게 걸으며 걸음을 옮길 때ㅡ

       

       “용이다ㅡ!! 용이 나타났다ㅡ!!”

       

       성도 구석구석까지 퍼지는 고함. 경계 근무를 서던 성기사가 외친 것일까. 케니스와 데모닉이 저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곳에는…

       

       펄럭 펄럭ㅡ

       

       《흠. 이쯤이 좋겠군.》

       

       창공을 뒤덮는,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는 푸른 빛의 용이 고고하게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저 하늘을 나는 것에 불과할 텐데, 창공의 제왕에 걸맞은 위엄이 가득하다.

       

       빙글빙글 성도의 하늘을 날던 용이 지상을 향해 천천히 몸을 낮추었고.

       

       쿠웅ㅡ!

       

       가벼운 땅울림과 함께 성지의 문 곁으로 내려앉았다.

       

       “꺄아아악ㅡ!!”

       “용, 용이야!! 진짜 용이라고!!”

       

       난리가 난 성지의 문 주변. 용은 주변의 소란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다 왔다. 내려라 원숭이들아.》

       

       퉁명스러운 말투와는 반대로 조심스럽게 자세를 낮춘 용. 이윽고 용의 등에서 누군가 빼꼼 고개를 내밀더니 용의 날개를 타고 쭈욱 미끄러져 내려왔다.

       

       용은 이들이 전부 내렸는지 확인하고,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손에 감싸고 있던 것을 꺼내 보였다.

       

       《…자, 이제 이걸.》

       

       그것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나무였다.

       

       크기가 아주아주 작은, 묘목 정도의 크기인 나무.

       

       “…이게 도대체 뭐죠?”

       “…글쎄. 일단 계획서는 안 써도 되겠구나.”

       

       케니스와 데모닉은 그저 아연한 눈빛으로 그 모든 풍경을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이야기하던 용의 등장과 용의 등에서 내려온 이들, 황금빛 묘목…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독자님의 사랑 햠량 10000%의 후원!!! 감사합니다!!! 악마가 도망친 곳에서 과연 어떤 일을 벌일지…!!! 저도 몹시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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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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