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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5

       

       

       

       

       

       165화. 엘프 ( 1 )

       

       

       

       

       

       “그래서 다른 분들… 그러니까 엘프? 맞죠?”

       

       끄덕.

       

       “고개만 끄덕이지 말고 말을 좀…하아. 아무튼, 그 엘프라는 다른 분들은 전부 성지로 갔다고요? 여섯 번째 신을 모시기 위해서?”

       

       끄덕.

       

       커다란 원탁에 앉은 뾰족 귀 에스텔은 이어지는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고개만 움직인다. 맞으면 위아래로, 틀리면 좌우로.

       당사자는 편할지 모르지만, 이야기 상대로서는 영 꽝이다.

       

       마주 앉은 성기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본래 이런 정보와 관련된 일이라면 이단 심문관이 담당하겠지만, 이번에는 반강제적으로 차출 당해서 끌려왔다.

       

       그것도 비번인 날에.

       

       이단 심문관들은 수인을 납치하려는 노예 상인들을 잡아내느라 사람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짬에 이런 일을 도대체 왜… 아니, 그나저나 진짜 숨 막히게 예쁘네.’

       

       마주 앉은 엘프는 뚱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성기사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과연 그 미모는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비번에 끌려 나온 분노도 사그라들게 만드는 미모.

       

       성지의 문 주변에 모여있던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푸른 용에서 내린 이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조각보다 아름다운 미모였다고 하는데, 그 말은 틀림없는 진실이었다.

       

       “음- 그러면 에스텔이라고 하셨죠. 왜 다른 분들을 따라가지 않고 이곳에 남은 거죠?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멈추지 않던 에스텔의 고개가 우뚝 멈춰 섰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미간을 곱게 찡그리더니 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원탁 위에 꺼내 놓은 것은 금이 잔뜩 간 팔찌와 완전히 부서진 활, 그리고 말라비틀어진 나무껍질 하나.

       

       “이건…”

       

       찬찬히 살펴보니 팔찌는 어딘가 낯이 익었다. 

       

       잠시 고민하던 성기사가 손을 탁 쳤다. 결투의 축제에서 우승자들이 받았던 성물이다.

       몇몇 성물은 외형이 똑같았는데, 이것들을 미리 확인해둔 것이 빛을 발했다.

       

       “이건 성물이군요. 그것도 예전에 열린 결투의 축제에서 받았을 성물. 이걸 어디서 구한 거죠? 설마 그때 축제에 참여했습니까?”

       

       끄덕.

       

       고개를 끄덕인 에스텔이 작게 입을 열었다.

       

       “맞아.”

       

       “…말을 할 줄 아는군요. 도대체 지금까지 왜 말을 하지 않고ㅡ”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골 때리는 상대다. 짧은 문답으로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확인한 성기사의 표정이 썩어갔다. 

       

       “이건 내가 결투의 축제에서 받았어. 나를 단검술의 달인이라고 소개하던데.”

       

       “단검술의 달인…? 아, 아아! 그때 공녀님한테 맞고서 기절한?”

       

       찌릿.

       

       에스텔이 눈을 좁히며 성기사를 째려봤다.

       

       그녀에게도 아픈 기억인 걸까. 한 방 먹인 기분에 기분이 좋아진 성기사가 실실 웃으며 괜히 종이를 뒤적였다.

       

       “뭐, 좋습니다. 그러면 다른 엘프들을 따라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요.”

       

       “흥. 내가 여기에 남은 이유는 두 가지야. 하나는 우리 종족의 복수, 다른 하나는 내 개인적인 이유.”

       

       “종족의 복수라? 조금 더 자세하게 들을 수 있을까요.”

       

       곱게 찡그려진 에스텔의 미간이 펴질 무렵, 문밖에서 소란스러운 외침이 들려왔다.

       

       《처ㅡ…!! 농후한ㅡ…!!! 주ㅡ, 나를 막지ㅡ…!!!》

       

       “저 미친ㅡ! 발정난ㅡ… 말…!! 막아!!”

       

       투두두두두ㅡ

       

       시끄러운 외침과 땅울림.

       마치 말이 달려오는 소리와도 같았다.

       

       어떤 제정신 아닌 놈이 만신전 안에서 이렇게 소란스럽게 떠들고, 말을 들여온단 말인가.

       

       아무래도 후임놈들 정신이 빠진 것이 틀림없다. 성기사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언제 한번 날이라도 잡아서 기합을 줘야겠다.

       

       “시끄럽네.”

       

       “하, 하하. 제가 잠시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바깥에서 누가 싸움이라도 난 것일까. 성기사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굳게 잠긴 문의 잠금장치가 성기사의 손에 풀리고…

       

       콰앙ㅡ!!

       

       《처ㅡ녀ㅡ여ㅡ!!》

       

       ‘커다란 무언가’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막 문을 열고 있던 성기사는 감탄이 나올 정도의 순발력으로 피했지만, 가엾은 문은 그렇지 못했다.

       

       처참하게 흩날리는 문의 파편.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 에스텔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그것’을 바라봤다.

       

       푸르르륵ㅡ

       

       거친 투레질 소리.

       

       윤기가 흐르는 하얀 갈기와 총기가 반짝이는 눈동자, 힘차게 솟은 일각. 온몸이 눈처럼 새하얀 말이다.

       

       자세히 보니 그것의 눈에 보이는 것은 총기가 아니었다.

       

       좀 더 뜨겁게 이글거리는… 열정? 어쩌면 본능과도 비슷한 충동적인 무언가.

       

       놀란 에스텔과 눈이 마주친 그것이 씨익 웃어 보였다.

       

       분명한 말의 형상임에도 웃었다.

       

       《다시 만나서 반갑소, 처녀여!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대 같은 처녀를 기다려왔다오!》

       

       “…”

       

       대뜸 아는척하며 타인의 처녀를 운운하는 말. 희미하지만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한 익숙함이 기분 나쁘다.

       

       길 가다가 아는 얼굴의 변태를 만난 기분이랄까.

       

       에스텔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그냥 다른 이들을 따라 성지로 갔어야 했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

       

       

       

       

       

       빠밤ㅡ!

       

       《”위대한 황금 나무의 묘목”을 획득했습니다! 인벤토리를 확인해주세요!》

       

       빠밤ㅡ!

       

       《잊힌 다섯 종족의 구성원, “엘프”를 획득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상세 정보’를 통해 확인해주세요!》

       

       빠밤ㅡ!

       

       《새로운 건물이 해금되었습니다! 건물 리스트를 확인해주세요!》

       

       성룡 이베르가 차원 관문을 통과하기 무섭게 메시지가 연달아 올라온다. 바삐 진동하며 읽어보라 재촉하는 핸드폰.

       

       급할 것 없이 가장 상단의 것부터 차근차근 읽는다.

       

       “묘목 획득… 이건 나중에 심거나 하면 되는 것 같고. 엘프 획득? 이건 잘 모르겠네. 건물 해금은 나중에 보면 되고.”

       

       – “삐이익? 삐이이익!!”

       

       성룡 이베르는 이세계 한정 변신이었는지, 다시 귀엽고 깜찍한 응애 이베르로 돌아왔다. 언제 위엄 넘치는 모습을 보였냐는 듯, 광산 주변을 빙빙 돌더니 온천으로 날쌔게 뛰어든다.

       

       – 푸화악!

       

       – “으ㅇr악! 온천왕 이베르ㄱiㅏ 나ㅌ*ㅏ났다!!”

       

       – “다들 정신 차ㄹl고 대혀ㅇ을 잡아! ㅇ-ㅗ늘이야말로 우리들의 온ㅊ&ㅓㄴ을 되찾을 시간이다!”

       

       – “삐히이이익ㅡ!!”

       

       대형을 갖춰 일제히 물을 퍼붓는 드워프와 물수제비처럼 통통 튀며 반격하는 이베르의 모습에서, 이유 모를 장엄한 브금이 들려오는 건 어째서일까.

       

       알아서 잘 노는 녀석들에게서 화면을 돌려, 한 구석에 모여있는 새로운 손님들을 향했다.

       

       따로 전달한 말이 없음에도 성룡 이베르가 알아서 잘 데려온 손님들.

       

       엘프다.

       

       ‘오…’

       

       카메라를 확대해서 살펴보니 과연 미의 종족이라는 엘프답게 구성원 모두가 예쁘고 잘생겼다.

       

       어딘가의 일꾼처럼 술을 죽어라 마시지도 않고, 수염이 덥수룩하지도, 울룩불룩한 근육으로 몸이 딱딱해 보이지도 않는다.

       

       ‘에휴. 비교해봐야 뭐하냐.’

       

       이러나저러나 결국 내 일꾼들은 드워프인 것을. 이것들도 자꾸 보다 보니 정이 들어서 이제는 조금 귀여워 보이는 지경이다.

       

       괜한 마음을 뒤로하고 엘프들의 ‘상세 정보’를 열었다.

       

       《엘프 : 자연과 친한 엘프는 숲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타고난 사냥꾼입니다. 동시에 뛰어난 장인이기도 하죠. 그들은 나무를 통해 만드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상태 이상 : 반영구적인 저주 – 거주지 제한, 원거리 무기 제한》

       

       하단에 보이는 상태 이상이 눈에 띈다. 현재 엘프들은 반영구적인 저주에 걸린 상태. 겉보기에는 저주에 걸렸다는 걸 믿기 어려울 만큼 쌩쌩하고 건강하다.

       

       메시지 중에서 거주지의 제한과 원거리 무기의 제한이라는 글귀가 몹시도 거슬린다.

       

       ‘…나막신?’

       

       또 특이한 점은 하나도 빠짐없이 나막신을 신고 있었다. 나무를 깎아 만든 나막신이 따각 따각 울린다. 나무 위에 있을 때는 맨발로 돌아다니던 모습과 대조적이다.

       

       엘프와 나막신이라.

       무협에서 나오는 까르보나라만큼 이질적인 조합이다. 설마 이게 엘프들의 저주와 관련 있는 걸까?

       

       ‘나막신과 나무, 거주지의 제한이라…’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나무 위를 고집하던 엘프들. 엘프들이 다람쥐처럼 나무 위에서 살던 것은 거주지의 제한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

       

       예를 들면 나무 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식인데, 꼼수로 나막신을 만들어서 신고 다니는 식으로.

       

       시험 삼아 엘프 한 놈을 꾸욱 터치했다. 대체로 이런 식이면 뭐라도 나오던데.

       

       …

       

       “이게 아닌가?”

       

       놀라울 만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괜한 머쓱함이 밀려온다. 

       

       의도치 않게 꾹꾹이를 당한 엘프는 주저앉아서 바들바들 떨고 있다.

       

       ‘어, 이런.’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는데. 미안한 마음에 살짝 확대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상태 이상을 해주하는 스킬이 있기는 한데, 단일 스킬이어서 당장은 좀 무리다. 엘프들 하나하나에게 스킬을 써서 어느 세월에 해주를 하겠는가.

       

       – “ㅇnㅡ읏.”

       

       주저앉은 엘프를 적당히 달래준 후, 인벤토리를 열었다. 잡다하게 쌓인 아이템들 사이에서 반짝이는 황금 나무의 묘목. 

       

       인벤토리를 조작해 묘목을 광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심는다. 다 자라면 엄청 크게 자랄 테니, 미관상 이게 보기 좋을 것이다.

       

       삥뽕ㅡ!

       

       《”위대한 황금 나무의 묘목”을 설치했습니다!》

       

       《황금 나무의 주변에 나무가 자라납니다! 나무의 성장 속도가 매우 크게 증가합니다!》

       

       뾰로롱- 하는 앙증맞은 효과음과 함께 땅에 심어진 묘목. 그 형태나 크기는 내가 봤던 황금 나무에 비할 수 없지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

       

       한국 게이머의 특징, 3초 이상 걸리는 로딩은 참기 힘들다.

       

       인벤토리에서 썩어가던 잡템 하나를 꺼냈다. 언젠가 쓸 일이 있을 줄 알고 꼬박꼬박 풀매수하던 수수께끼 상점의 물건 중 하나다.

       

       《몬스터 X – 식물 급속 성장제 : 식물의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가 듬뿍 담긴 물약. 누군가는 이 비약을 콩에 써서 하늘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어딘가에 쓰기 애매한 아이템이었는데, 이참에 재고 정리한다는 심정으로 전부 꺼냈다.

       

       띠링ㅡ!

       

       《몬스터 X를 황금 나무의 묘목에 사용했습니다!》

       

       띠링ㅡ!

       

       《몬스터 X를 황금 나무의 묘목에 사용했습니다!》

       

       띠링ㅡ!

       

       《몬스터 X를 황금 나무의 묘목에 사용했습니다!》

       

       묘목 위로 형광색 물병이 나타나더니 폭포처럼 액체를 쏟아낸다. 그것이 무려 세 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잠시 기다리자ㅡ

       

       드드드드ㅡ!

       

       화면이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진동이 아니라 발작하는 수준의 흔들림.

       

       성지를 비추는 화면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미친 듯이 흔들리다가, 한참 후에야 진동이 멈췄다.

       

       ‘이게 대체 뭔…’

       

       내가 뿌린 물약은 성장제가 아니라, 흔들흔들 물약이었나?

       

       열심히 일하던 드워프도, 온천에서 물장구치던 이베르도,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엘프들도 크게 놀랐는지 모두 바짝 엎드려 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놀라게 한 것 같아 양심이 쿡쿡 쑤셔온다.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인 황금 나무의 묘목은…

       

       빠밤ㅡ!

       

       《황금 나무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겨우 이만큼 자랐다고?’

       

       요란한 이펙트와 달리, 작은 사과나무만큼의 크기로 자라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솜사탕처럼 몽실몽실한 후원!!! 감사합니다!! 그렇게나 오랫동안 제가 글을 쓸 수 있을지…!!! 그저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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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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