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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7

       

       

       

       

       

       177화. 마수의 산, 그 정상으로 ( 1 )

       

       

       

       

       

       계시라는 것은,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형태의 것으로 찾아온다.

       

       온갖 상징을 부여하고, 비틀고, 이리저리 비튼다. 그렇기에 범인이 계시에 대해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은 법이다.

       

       계시란 그런 것이다.

       

       빛나는 전지(全知)의 편린. 그것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풀이한 복잡한 무언가.

       

       “여기는…?”

       

       그렇기에 한스가 안개로 둘러싸인 설원에서 눈을 떴을 때, 단박에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습격인가!’

       

       자신이 잠든 침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한스가 본능처럼 손을 뻗어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잠잘 때도 빼놓지 않는 그의 애검이 있어야 할 곳이다.

       

       파앗.

       

       손이 허공을 가른다. 검이 없다.

       

       “칫.”

       

       짧게 혀를 찬 한스가 전투 자세를 취하며 사방을 경계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머리가 미친 듯이 돌아간다.

       

       온갖 경우의 수를 떠올리고 계산한다.

       

       ‘악마? 습격인가? 아니면 환상? 나만 따로 납치된 건가?’

       

       그렇게 빙빙 돌며 안개 속을 얼마나 노려봤을까. 불현듯 강한 바람이 불어와 한스의 몸을 강하게 밀어냈다.

       

       “으읏!”

       

       불어온 바람이 안개 사이로 힘차게 내달린다. 창틈 사이로 햇빛이 쏘아지며 어둠을 가르는 풍경이 이럴까. 바람이 지나간 흔적을 따라 안개가 갈라졌다.

       

       파앗.

       

       길고 올곧게 뻗은 길에 보이는 것은, 거대하고 드높게 솟아오른 산. 그 정상에는 하얗게 내려앉은 만년설이 보였다.

       

       익숙한 산이다. 당장 한스가 자기 전에도 창문을 통해 보았던 것이니까.

       

       “마수의… 산?”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인지, 만년설이 작게 반짝였다. 샛별의 밝고 순수한 색이 아닌 불길한 검붉은 색이다.

       

       바람이 지나간 길을 따라 한스가 걸음을 옮겼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수의 산꼭대기에 있는 무언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

       

       따스한 저녁 식사의 초대 따위가 아니다. 어둡고 질척한 악의가 자신을 부르고 있음이다.

       

       강렬한 이끌림이 느껴진다.

       

       가야 한다.

       

       마수의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야 한다.

       

       한스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마수의 산을 향해 발을 옮겼을 때ㅡ

       

       쿵!

       

       “억!”

       

       침대에서 굴러떨어진 한스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정수리부터 박았는지 골이 울린다.

       

       “아, 으윽…”

       

       한참이 지나서야 고통이 가라앉는다. 고통이 가시자 방금까지 꾸었던 꿈이 떠올랐다. 꿈이라는 것은 깨어나면 모래성처럼 흩어지기 마련인데, 희한하게도 꿈의 모든 순간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안개, 바람, 설원, 마수의 산, 불길한 불빛과 이끌림.

       

       “이건…”

       

        범상치 않은 일이다. 직감적으로 깨달은 한스가 벌떡 몸을 일으켜 복도를 내달렸다. 야심한 밤에 쿵쾅거리며 달리는 것이 미안하지만, 언제 꿈의 기억들이 사라질지 모르는 일.

       

       최대한 빨리 전달할 필요가 있다. 누구에게?

       

       “용사님!”

       

       케니스가 머무는 방의 문을 힘차게 열었다.

       

       여인이 혼자 머무는 방을, 그것도 깊은 밤 중에, 그것도 한창때의 남자가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연 것이다.

       

       엄청난 실례였지만, 한스의 머릿속에는 그저 방금까지 꾸었던 꿈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아주 힘차고 강하게 문을 밀고 나서야, 한스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여인의 방에 숨어드는 변태로 오해받기 딱 좋은 모습이다.

       

       엄습해오는 위기감. 오감이 곤두서더니 세상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의 손에서 벗어나 열리는 문을 붙잡기 위해 손가락이 애처롭게 꿈틀거렸다. 붙잡을 수 없다.

       

       한스의 손가락은 마치 새의 부리에 붙잡힌 애벌레의 단말마와도 같았다.

       

       덧없고, 부질없다.

       

       ‘안돼!!’

       

       점점 문이 열린다. 문이 밀리면서 방 안의 공기가 확 밀려 들어왔다. 느려진 세상 속에서 달콤한 향기는 뚜렷하게 존재감을 발했다.

       

       한스가 저도 모르게 코를 움찔거렸다.

       

       향기에 정신이 팔린 짧은 빈틈, 문은 매정하게 몸을 움직여 활짝 공간을 내주었고.

       

       “어? 한스 님?”

       

       “한스,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이 야심한 밤에 용사님 방까지 찾아오다니… 설마 너도 ‘꿈’을 꾼 거냐?”

       

       용사님의 방 안에는 익숙한 얼굴 여럿이 보였다. 그들은 사도 부대원이거나, 몬테그로스의 베테랑 사냥꾼 혹은 제국의 기사였다.

       

       설마 여기 모인 이들 모두가 똑같은 꿈을 꾸었다는 것일까?

       

       그들의 가운데에 위치한 케니스가 한스를 바라봤다. 애초에 잠을 자지 않았던 모양.

       

       “설마 한스 님도 ‘꿈’을 꾸셨나요?”

       

       “휴…”

       

       긴장과 함께 다리가 풀린 한스는 대답할 생각도 못 한 채,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악마와 칼을 맞댄 순간 다음으로 오싹한 순간이었다. 

       

       

       

       *****

       

       

       

       뽀득 뽀득.

       

       해가 뜨기 무섭게 산을 오르기 시작한 여섯 명의 전사. 그들의 선봉에는 한스가 위치했고, 마수의 산을 훤히 알고 있다는 사냥꾼이 길잡이를 자처했다.

       

       “이쪽이요.”

       

       북부의 사냥꾼이 방향을 잡는다. 날씨도 그들을 축복하는 것인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라 시계가 아주 좋았다.

       

       저 멀리 마수의 산 정상이 보인다. 

       

       꿈에서 봤던 불길한 빛이 반짝거리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은 가시지 않았다.

       

       뽀득 뽀드득.

       

       단단하게 뭉친 눈을 밟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전사들 사이에 쓸데없는 말은 오가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꾸었던 공통된 하나의 꿈. 케니스는 그것을 ‘계시’라고 해석했다.

       

       – “마수의 산 정상에서 보인 불길한 반짝임과 강렬한 이끌림을 느꼈다… 여섯 분이 모두 같은 꿈을 꾸었어요. 이건 틀림없이 계시입니다.”

       

       여섯 명의 전사, 하나의 꿈.

       

       – “안개와 설원이 보였다고 하셨죠? 안개에 둘러싸였다… 이건 어쩌면, 지금의 저희 상황을 뜻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서 한 치 앞의 위험도 못 보고 있는 거죠.”

       

       – “오오오! 과연 그렇게 해석할 수 있군요!”

       

       – “…여러분. 염치 없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산의 정상으로 가주세요. 그곳에 분명 뭔가 있을 겁니다. 오직 계시를 받은 여섯 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신께서는 그들을 산의 정상으로 인도하였다.

       

       전사들의 얼굴에는 결연함이 가득했다. 쉽지 않은 여정이 되리라. 그럼에도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뽀드득. 뽀드득.

       

       출발부터 며칠 동안은 각오가 무색할 정도로 평온한 여정이었다. 마수는 커녕 그 흔적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으니까.

       

       이런 상황에 대해 사냥꾼은 몹시도 불안해했다.

       

       “이건 안 좋은 신호요. 내 평생 살면서 마수의 산에 이렇게 마수가 없는 걸 딱 한 번 본적이 있지.”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사냥꾼.

       

       “서리고룡… 그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괴물이 마수의 산에 자리 잡았을 때 딱 이랬단 말이오. 지금처럼 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마수는커녕 짐승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지.”

       

       최소한 서리고룡과 동급, 어쩌면 그 이상의 무언가 있을 수도 있다는 최악의 가정. 전사들의 분위기가 조금 무거워졌다.

       

       “거, 너무 힘 빠지는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저 위에 뭐가 있든,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무엇이 그리 걱정입니까? 저 별이 우리 머리 위에 있는 한, 신께서는 우리를 보우하실 겁니다!”

       

       가라앉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성기사가 과장되게 외치며, 손가락으로 눈동자의 별을 가리켰다.

       

       한낮에도 반짝이는 일곱 개의 별.

       

       신의 눈동자.

       

       신께서 그들을 굽어 보고 계신다.

       

       “맞습니다! 신께서 저희의 여정을 인도하시는데, 걱정할게 뭡니까?”

       

       “…그건 그렇구만.”

       

       사냥꾼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를 먹었더니 쓸데없이 잔걱정만 늘었다. 벌써부터 엄살을 부려 이상한 걱정이나 하게 만들고.

       

       의기투합하며 의지를 다진 전사들은 다시 눈을 밟으며 정상을 향해 올랐다. 발걸음에는 씩씩한 투기가 가득했다.

       

       

       

       ***

       

       

       

       멈칫.

       

       선두에서 걷던 한스가 걸음을 멈췄다. 한스의 수신호에 뒤따라 걷던 전사들도 멈춰 섰다.

       

       한스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코를 킁킁거린다.

       

       고산 지대 특유의 옅은 공기를 타고 희미한 냄새가 난다. 냄새가 옅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ㅡ

       

       이건… 짐승의 누린내와 피의 냄새.

       

       “적이 옵니다! 모두 전투 준비!”

       

       검을 꺼내든 한스가 크게 외쳤다. 전사들은 놀란 기색 없이 침착하게 각자 무기를 꺼내며 사방을 경계했다.

       

       …ㅡ투두두두!

       

       저 멀리 눈보라를 일으키며 무언가 달려온다. 짐승의 누린내가 점점 더 강해진다.

       

       웨어울프 떼다.

       

       수는… 제법 많다. 한스가 눈으로 얼핏 보기에도 얼추 스무 마리 되는 듯싶다. 붉게 충혈된 눈에 이지는 찾아볼 수 없다.

       

       꾸욱.

       

       롱소드를 움켜쥔다. 침착하게 때를 기다리고, 등 뒤의 동료를 믿는다.

       

       웨어울프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지척에 달했을 때.

       

       “차앗!”

       

       한스의 롱소드가 눈부신 궤적을 그리며 웨어울프의 아가리를 갈랐다. 곧장 달려드는 놈을 피해 복부를 베고, 팔을 자르고, 손톱을 부수고, 머리를 박살 낸다.

       

       “죽어라, 이 개새끼!”

       

       “크아압!”

       

       순식간에 다섯을 도륙낸 한스. 다른 이들도 저마다 웨어울프 두 셋을 담당하며 순조롭게 승기를 점하고 있었다.

       

       촤아악!

       

       성기사의 검이 웨어울프의 몸을 두 동강 냈다.

       

       쐐애액!

       

       노련한 사냥꾼의 화살이 웨어울프의 눈동자에 꽂히며 숨통을 끊었다.

       

       뻐억!

       

       묵직한 메이스에 얻어맞은 웨어울프는 골통이 으스러졌다.

       

       스무 마리의 웨어울프가 눈밭에 몸을 뉘이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완벽한 승리였다.

       

       

       

       

       

       *****

       

       

       

       

       

       빠밤ㅡ!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정찰대는 수월하게 웨어울프를 물리쳤다. 이거야 뭐, 당연한 거니까.

       

       그것보다 방금의 전투로 좀 심각한 문제 하나를 깨달았다.

       

       “아니, 무슨 애들 스킬이 다 ‘강타α’, ‘강화β’ 이런 거밖에 없어?”

       

       깜짝 놀랄 정도로 올라간 게임 퀄리티에 잠깐 정신이 팔렸지만, 다행히 전투는 별다른 개입 없이 자동으로 진행됐다.

       

       마주친 웨어울프는 총 20마리. 딱 보니까 그냥 잡몹 특유의 냄새가 가득했고, 정찰대는 어렵지 않게 녀석들을 상대했다.

       

       선두로 나선 한스가 웨어울프 5마리, 나머지가 2,3마리씩 나눠서 잡았는데…

       

       애들이 영웅급 모험가가 아니라 그냥 전사들이라서 그런가.

       

       사냥꾼이랑 기사는 아예 스킬이 없었고, 내 무기를 들고 있는 녀석들도 굉장히 허접한 스킬을 들고 있었다.

       

       심지어 한스도 영웅급 모험가가 아니여서 ‘강타α’를 들고 있었다. 그동안 한스가 꽤나 활약해서 잊고 있었다. 

       

       한스의 태생은 그냥 모험가 출신. 혼자서 악마도 때려 잡는 국밥급의 성능을 보여주는 녀석이기에 그동안 당연히 영웅급이라도 생각하고 있었다.

       

       한스만 편성창에 넣은 것이 조금 후회되기 시작했다. 원래 이런 일에 한스를 막 던지고 보는 습관이 아직 남아있던 탓이다. 편성할 때도 당연히 영웅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한스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피어오른다.

       

       정찰대가 정상에 도착하려면 아직 제법 많이 남았는데, 영웅급 모험가 한 명도 없이 가라고? 한스로 충분할까?

       

       “쓰읍…”

       

       이번에는 큰 사건 없이 웨어울프들을 이길 수 있었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애매한데.”

       

       이 파티, 괜찮은 걸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과 추천은 작가에게 엄청난 힘이 됩니다.

    《묘사가 다소 수정되었습니다. 공지에 자세하게 적어두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신선우’님!!! 콘푸러스트처럼 기운이 솟아나는 후원!!! 감사합니다!!! 모 게임의 소식은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세상에 그런 비인간적인 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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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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